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149
149
이래서 팽효기를 밖으로 내보냈다.
그는 팽가촌에 오지 않는다. 당분간은 백인대와 함께 정도무림을 돌볼 것이다.
오늘 하북 팽가가 잘못 되어도 그가 있으니 안심이다. 그가…… 하북팽가를 이을 것이다.
그조차도 죽을 수 있다. 두 노부부의 악랄한 손속이라면 하북 팽가의 뿌리를 끊어놓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딸이 있다.
이 딸은…… 검치가 뒤를 돌봐준다. 노부부로부터 안심할 수 있다. 그리고 자식을 낳으면…… 그들 중 한 명은 팽씨 성을 줄 것이다. 하북팽가를 재건할 것이다.
하북 팽가는 살아남는다.
그는 검치가 죽은 것을 몰랐다. 그래서 희망을 가졌다.
‘세상은 아직도 살만한 곳이야.’
“이 아비, 너에게 혼원벽력공의 진수를 보여줘야겠구나.”
“아버지”
“허허허! 나로 인해 비롯된 씨앗은 내가 거두는 게 마땅하지. 내가 거두지 못한다면 제물이라도 되어야겠지. 그래야 죽어서라도 식솔들과 얼굴을 마주할 수 있을 거 아니냐.”
팽가주가 절염색녀를 쳐다봤다.
일장격돌의 전운이 감돈다. 팽팽한 긴장감이 어린다.
“호호호!”
절염색녀는 같잖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
그녀는 하북팽가의 도법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 정도의 도법은 얼마든지 파해할 수 있다. 팽가오로의 합공이라면 모를까…… 일대일의 격전으로는 사라천요공을 깰 수 없다.
그리고 그 생각이 맞다.
팽가오로의 합벽진만이 사라천요공과 맞설 수 있다.
그녀가 청석 바닥에 대고 있던 검을 들었다.
“그래도 내가 좋았지? 내 위에서 헐떡거렸잖아. 그거 좋았다는 뜻 아냐? 더러웠다고? 끔찍했다고? 호호호! 더럽긴 뭐가 더러워. 좋아서 죽을 지경이었으면서. 그만큼 즐거움을 줬으면 몇 마디 정도 해줄 수 있잖아?”
“무슨 말을 해주면 좋겠소?”
“무결…… 구결을 말해.”
“저승길에서.”
팽가주가 그녀에게 검을 겨눴다.
‘흔들린다!’
팽가연은 아버지의 검을 봤다.
흔들린다. 격동하고 있다. 혼원벽력공의 진수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 싸움…… 아버지가 진다. 순간,
“취취가 죽었어요.”
팽가연이 차분하게 말했다.
“흠화도 죽고, 유리도 죽고…… 비연사도가 다 죽었어요.”
그런가? 매우 침통한 일이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말할 일은 아니 것 같은데?
팽가연이 눈을 내리깔았다. 발끝을 쳐다봤다. 눈은 반개(ㄴ半開)한다. 그녀의 정신은 차분하게 가라앉고 있다. 주위의 여건에 흔들리지 않는다.
혼원벽력도가 극성으로 치달았다.
“나보다…… 뛰어나다!”
팽가주의 얼굴에 경악성이 어렸다.
평가연의 모습은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경지를 보여준다. 자신이 이루지 못할 도신의 지경이다.
팽가연이 말햇다.
“오라비도 죽고 효문 오라비도 농락당하고…… 저 여자, 우리 팽가에 참 많은 짓을 저질렀어요.”
“우리 팽가? 호호호! 계집…… 그래, 그럼 넌 효문이가 단순히 유혹에 넘어갔다고 생각해? 그래서 나와 동침했다고? 호호호! 혼이 빠져서 백모와 동침했다고?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편해? 웃기지마. 내 배위에서 헐떡일 때는 모두 제정신이었어!”
팽가촌 무인들은 낯을 들지 못했다.
절염색녀가 하는 말은 하북 팽가의 치부가 된다.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다. 가모가 팽가촌 무인들을…… 도대체 창피해서 이 일을 누구에게 말한단 말인가.
천추의 한이다.
여자 한 번 잘못들이면 집안이 망한다더니, 지금이 딱 그 짝이다.
그러나…… 팽가주는 흥분하지 않았다. 팽가연은 더욱 더 차분했다. 아예 감정이라는 것이 없는 사람처럼 침착했다.
“루주를 생각해서 당신…… 목숨은 살려주려고 했어. 하지만…… 안 되겠네. 루주에게 잘못을 빌더라도, 이쯤에서 당신 인생을 끝내주는 게 좋을 것 같아.”
“호호호호! 너 그놈 좋아하냐? 이것아, 잘 들어. 그놈 핏속에는 내 피가 섞여있어. 팔난봉꾼의 피도 섞여 있고. 그놈은 천요루주가 딱 제격인 놈이야. 딴 짓은 못해. 평생 계집장사나 해먹을 놈이라고. 그런 놈한테 빌붙어서 살려고? 호호호호! 그놈한테 안겨서 생각해. 이 남자를 누가 나았는지. 호호호!”
스릉!
팽가연이 유엽도를 뽑았다.
정말이다. 절염색녀를 죽이고 싶지 않았다. 그가 팽가촌 초입에 있다. 말을 하지 않았지만 제발 어미의 목숨만은 부지시켜 달라고 소원하고 있을 게다.
하지만 안 되겠다.
스읏!
유엽도가 쳐들렸다.
혼원벽력공…… 일순, 시간이 정지한다.
세상의 시간은 여전히 흐른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시간이라는 관념이 없어졌다.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다. 몸이 고정되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가만히 서있다.
파앙!
그녀의 머릿속에 한줄기 빛이 스며들어다.
강렬하게 짓쳐들어온 광채는 그녀의 신경을 두들겼다.
노파가 썼던 수법과 흡사하다. 그녀를 일시 실명상태로 몰아넣었던 바로 그 수법이다.
다른 점이 있다면 절염색녀의 공부는 시신경을 건드리지 않고, 욕념을 자극한다는 거다.
사내와 발가벗고 침상에서 뒹구는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그 모습 속에 자신은 없다. 누군가가 침상에서 뒹굴고 있다. 그리고 자신은 한참 떨어진 곳에서 지켜본다.
파앙! 팡! 파앙!
광채는 계속 환상을 만들어 낸다.
그녀를 치지 못하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환상만 그려낸다.
원래 이 환상 속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 자신이 열락에 들떠 있어야 한다. 실제로 정사를 갖을 때처럼 사내의 숨결을 느끼고, 체취를 감지해야 한다.
그래야 사라천요공에 걸려든 것이 된다.
지금은 그런 느낌이 들지 않는다.
정염이 일어나기는 하지만 거리가 있다. 자기 자신이 멀리서 일어나는 정염을 객관적으로 차분하게 지켜본다.
그렇다. 이것이 진정한 관조(觀照)다.
조용한 마음으로 사물의 본질을 들여다본다. 분명히 저 환상은 자신의 머릿속에서 일어나고 있으련만…… 자신이 지켜본다. 그것은 본질이 허상을 꿰뚫고 있다는 뜻이다.
사라천요공은 통하지 않는다.
스읏!
그녀는 움직였다.
“엇!”
절염색녀가 깜짝 놀라서 엉겹결에 검을 쳐냈다.
그녀로써는 이토록 정심한 공격이 쏟아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 이런 적이 없다. 사라천요공을 펼치면 누구라도 휘청거렸다. 남자, 여자, 노인, 어린아이…… 누구라도 넋을 잃었다.
넋 잃은 놈을 베는 것은 쉽다.
검에 진기를 주입할 필요도 없다. 검의 날카로움만으로도 육신 하나 베어내는 건 충분하다. 넋을 잃은 무방비 상태의 허수아비를 누가 죽이지 못하나.
팽가연도 그런 상태가 되어야 한다.
팽가주는 그런 상태였다.
팽가연이 끼어들기 전에, 그가 먼저 나섰을 때…… 사라천요공을 펼쳤다.
그는 당했다. 검끝이 흔들렸다.
팽가연은 다르다. 전혀 흔들리지 않는다., 굉장히 빠른 도법을 전개해온다.
“허억!”
카앙!
엉겁결에 내민 검이 유엽도와 부딪치면서 잘려나갔다.
절염색녀는 사라천요공을 완전히 믿었다. 그래서 자신의 절기조차 펼치지 않았다. 하북 팽가에 스며드는 조건으로 배운 사십팔로 무스검법조차 펼치지 않았다.
파앗!
한줄기 빛이 육신을 관통하며 지나갔다.
“커억! 꺼어억!”
그녀는 세상에 태아나서 가장 힘든 비명을 토해냈다.
그녀의 머릿속에 한 사람이 스쳐간다.
– 크윽! 끄으으윽!
그가 비명을 내질렀다. 그래도 그의 가슴에, 등에, 목에…… 수없이 비수를 찔렀다.
탐화랑군!
‘죄 받은 거야.’
그녀는 웃으면서 쓰러졌다.
청석 바닥의 차가움이 얼굴에 닿는다. 그 감촉이 좋다. 평생을 너무 뜨겁게 살아왔으니까.
루주는 없다.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떠나고 없다.
“언니, 괜찮아요. 내가 있잖아요. 그 사람, 날 버리고는 못가요. 그러니까 반드시 와요. 안 오면 우리 가만두지 마요. 언니는 나만 꼭 붙잡고 있어요. 호호호!”
주설언이 웃었다.
그래도 팽가연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그의 어미를 죽였다. 그가 용서하지 않을 것 같다.
‘용서? 용서해서 어쩌라고……’
그렇다. 용서를 한다고 해도 그는 특별한 사내가 되지 않는다.
의붓남매끼리 특별한 사이가 될 수 없다. 용서를 한들 어떻고, 하지 않은들 어떤가. 이대로 평생을 살아야 한다는 것은…… 삶이 곧 지옥이지 않은가.
그녀는 가슴이 무너졌다.
루주를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프다.
그녀의 가슴속에는 루주의 그림자로 꽉 찼다.
무뚝뚝한 사내, 잘 생긴 사내, 천하제일의 무공을 터특한 사내…… 어느 여자라도 좋아할 사내……
‘어떻게 해……’
바람에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2
무결!
무결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할 지도 모른다. 이 모든 무공을 창안한 사람이 거짓말이라고는 해본 적이 없다고 하니, 정말로 존재할 수도 있다. 마지막 유언대로 어딘가에 맡겨놨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 세상에서 말하는 무결은 완��히 거짓이다. 바둑판을 멘 ‘멍청한 놈’이 만들어낸 가짜 무결이다.
이 간단한 장난이 무림에 불었을 피바람을 막았다.
이제 그들은 늙었다.
세상사가 한낱 물거품이라는 것을 알게 될 나이가 되었다. 또 안다. 하지만 욕심을 내려놓지는 못한다. 아마도 이 욕심은 마지막 죽는 순간까지도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사총을 재건한다. 사총은 언제든지 일어설 수 있다. 또 살천루도 일어선다. 그에게 죽은 숫자만큼 보충될 것이고, 한 번의 패배를 경험삼아 더 강한 조직을 만들게다.
세상에는 언제나 사마외도가 존재해왔다.
그 이름이 사총이든, 살천루이든…… 어떤 이름으로 무림에 나타나든…… 항상 피를 몰고오는 자는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사람도 또 나타난다.
향후의 일은 신경 쓸 것이 없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가지고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다.
사총과 살천루는 이미 굴러가기 시작했다. 구르는 바퀴가 되었다. 산정에서 떨궈진 눈덩이다. 조금 더, 조금 더…… 점점 커지기 시작해서 언젠가는 폭발할 게다.
두 노부부는 언제까지 사총과 살천루에 매달릴까?
그들은 나이가 많다. 많이 늙었다. 이제 와서 세상을 정복한들 어쩌자는 말인가.
그들은 욕심이 꽤 많다.
아직도, 그 나이가 되었어도 하고픈 일들이 참 많은 것 같다.
그들은 후인을 정하지 못했다.
절염색녀는 애초부터 후인 자리를 박탈당했다. 노파의 눈총을 받는 순간부터 사라멸공과도 인연이 없는 불쌍한 존재가 되었다. 절염색녀가 하북 팽가주에게 구결을 얻어왔다면, 그 즉시 참살 당했을 지도 모른다.
그들은 후인을 거두고자 한다.
젊은 나이에 천멸독경을 완득(完得)했으니 좋다. 천재라는 게 입증됐다. 고난이도의 무공을 충분히 수련해낼 수 있다.
기녀라는 점도 좋다. 웬만큼 알 것은 알아야지, 맹숭맹숭한 여자는 싫다. 절염색녀처럼 탁탁 튀어 오르는 여자가 좋다. 노인이 좋아하는 취향이다.
그런 여자가 자식까지 낳아주면 더욱 좋다.
노인은 그런 여자에게 사라멸공을 전수하고 싶어한다. 그리고 죽을 때가 되어서야 노파가 동의했다.
바로 주설언이다!
그녀를 끌고 와서 무공을 전수한다. 아이를 낳게 한다.
아주 가벼운 욕심이지 않나.
또 하나의 욕심은 무결을 완성하는 것이다.
곧 죽어서 관에 들어갈 나이에 무공을 완성한들 무엇하나. 하지만 완성하고 싶다. 사부처럼 완벽해지고 싶다. 사부처럼 무공을 수련한 다음에 무림에 흥미를 잃을지언정 그 위치에 한 번은 올라서봐야 하지 않겠나.
궁극의 무공이란 어떤 것인가?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무공을 지니면 어떤 기분이 될까?
지금도 그런 기분은 느낀다. 사라멸공 만으로도 천하무적이다. 하지만 항시 마음 한 편에는 무결이 나타나면 어쩌나 하는 불안감이 없지 않아 있었다.
그런 느낌 없이…… 완벽한 자유를 누리게 만들어주는 무공!
그들은 그런 무공을 원한다.
노인은 바둑판을 풀었다.
“바둑 둘 줄 아나?”
“모릅니다.”
“쯧! 이 재미있는 바둑도 못 두고…… 바둑을 모르면 인생 헛사는 거야. 배워둬.”
“시간이 나면 배우겠습니다.”
“쯧쯧쯧! 시간은 언제나 있는 거야. 지금 있는 건 시간이 아니고 뭐야? 너 지금 뭐 할 일 있냐?”
“없습니다.”
“그럼 시간이 철철 넘치는구먼. 그런데 왜 안 배워?”
“하하! 그렇군요.”
루주는 바둑판을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