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24
24
팽가만 그런 게 아니다. 중원에 산재한 대문파 거의 대부분이 이런 식으로 운용된다.
일부 문파는 자체적으로 쓰레기들을 처리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놓고 있다. 또 일부는 팽가처럼 외부의 힘을 이용하기도 한다. 또 일부는 아예 내놓고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
회자수가 하는 일은 많다.
그들이 하는 일이란 거의 대부분 하북의 평화를 위해서 악(惡)을 악(惡)으로 치는 일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그들의 편리를 봐줘야 한다는 점에서 악과 손잡은 게 맞다.
회자수를 정리하면 지저분한 일들을 직접 처리해야 한다. 그래도 그것이 검치를 적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지하에서 음성이 들려왔다.
“현재 루주는 중상입니다. 누가 상처를 돌봐주지 않으면 사망입니다. 즉, 그를 죽인 사람은 우리가 아니라 회자수입니다. 그러니 그냥 죽도록 내버려 두자는 의견입니다.”
“흠! 그 후는?”
일로가 물었다.
“상황에 따라서는 우리가 직접 회자수를 치는 일도 벌어질 겁니다. 어쨌든 지금의 상황에서 최선은 그자를 죽여서 사단을 종식하는 겁니다. 더 이상 그자와 얽히는 건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흠! 그게 좋겠어.”
일로가 말하면서 사로를 쳐다봤다.
사로가 말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이 일은 그렇게 처리하겠습니다.”
가주와 팽가오로가 세심루를 떠난 후, 세심루 지하에서 작은 회합이 열렸다.
“천요루주가 검치의 제자라……. 새로운 국면이군.”
“이렇게 되면 말이야. 흠…….”
“생각하고 있는 게 뭐야?”
“가모님… 아니, 금검문하고 검치하고 어떤 사연이 있지 않을까 해서 말이야. 그러니까 천요루주가 노린 건 우리가 아니라 가모님이란 말이지.”
“가모임이 금검문을 떠난 건 십여 년. 십 년 이전 사건을 뒤져 봐야겠군.”
“그즈음에 금검문이 크게 움직인 일이 있었나?”
“조용했던 거 같은데?”
“그렇지? 나도 기억나는 게 없어. 그래서 긴가민가하는 거야.”
“조사해 봐서 나쁠 건 없지. 어차피 지금은 사방이 막힌 상태잖아? 더군다나 검치까지 들먹거리는 상황이니… 뭐든지 해봐야지. 그런데 팽가오도에게서는 연락이 없나?”
“가모님? 암자로 들어가셨대.”
“그냥?”
“그냥.”
“쳇! 헛다리 짚은 건가?”
“계속 주시하라고는 해놨어. 그런데 천요루주 말이야, 정말 죽이는 게 상책일까?”
“상책 중의 최상책이야. 그자가 죽으면 모든 게 해결돼. 검치가 살아 있든 죽었든.”
그들은 보고서를 묶었다.
천요루주만 죽으면 이 사건은 일단락된다.
2
하가(夏家)는 양하(洋河) 물줄기가 굽이지는 곳에 세워졌다.
팽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가에서 머문다는 자체가 수련을 중지하고 쉰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또 여름은 한창 바쁜 농번기(農繁期)다. 하루도 쉴 짬이 없다.
비연사도는 하가에 들어서자 청소부터 했다.
저택을 관리하는 사람이 있기는 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워낙 없다 보니 관리가 부실했다.
“이 사람 정말 안 되겠네. 솥은 먼지가 가득하고 방 안은 습기 때문에 곰팡이가 피었어.”
“어휴! 냄새.”
비연사도는 연신 쓸고 닦았다.
휴양처라고는 하는데 마치 폐가(廢家)에 들어선 기분이다.
그동안 취취는 루주와 맹삼력을 방 안으로 옮겼다.
현장에서 응급조치는 취했지만 상처가 워낙 깊고 많아서 출혈이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녀는 급히 팽가연을 찾았다.
“저 사람들, 내버려 두면 죽겠어요. 혈을 짚어도 피가 안 멈춰요.”
“금창약은?”
“안 먹혀요. 피가 밀고 나와요.”
“압박해.”
“압박은 해놨는데…….”
“그럼 됐어. 우리가 더 할 수 있는 게 없잖아.”
팽가연이 냉정하게 말했다.
그녀는 천요루주를 죽이고자 쫓아왔다. 상처 입은 놈을 되살리려고 쫓아온 게 아니다.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서 치료를 해줘야 할 입장이지만 흔쾌한 건 아니다. 그를 볼 때마다 아이를 잃은 의모의 눈물이 떠올라서 견딜 수 없다.
그녀는 이런 상황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야수들의 세계는 가슴 찌릿한 흥분을 불러일으켰지만, 그런 자를 치료까지 해주고 싶지는 않다.
“노명단(露命丹)을 쓰면…….”
“지금 제정신이야? 저런 자에게 노명단을 쓰라고?”
“아씨, 그게…….”
“시끄럿!”
팽가연은 유유히 흐르는 양하로 눈길을 돌렸다.
취취가 루주의 옷을 벗기고, 깨끗한 물로 몸을 닦았다.
찔리고 베인 상처가 온몸에 가득하다. 그 사이사이로 오래전에 입은 듯한 상처들이 가시나무 얽힌 것처럼 새겨져 있다.
“어떻게 살아온 거야.”
유리가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훗! 그래도 용케 얼굴은 피했네. 몸은 엉망진창인데 얼굴은 깨끗하잖아.”
“칼이 날아오면 두 손으로 머리부터 감쌌나 보지.”
루주의 몸은 단단했다. 바윗덩어리처럼 단단했다. 검에 베인 듯한 상처, 창에 찔린 듯한 상처, 톱니 같은 것에 갈린 듯한 상처까지 온갖 상처로 범벅이 되어 있지만 그래도 아름다웠다.
아름다워? 그렇다. 루주의 몸은 그 어떤 여인의 몸보다 아름답다.
유리와 취취는 루주의 몸을 보자 죽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옷을 벗기기 전에는 금방이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았다. 한데 옷을 벗기고 바위처럼 단단한 몸, 그물처럼 얽혀 있는 상처 자국들을 보자 이까짓 상처쯤은 훌훌 털고 일어설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 사람 좀 준비시켜 줘.”
취취가 말했다.
유리는 맹삼력의 옷을 벗겼다.
그 역시 한 개의 바윗덩이다. 온몸이 쇳덩어리로 만들어진 듯 손톱조차 들어가지 않는다.
두 여인은 얼룩진 피를 물로 닦아내고 마른 헝겊으로 다시 닦았다.
그제야 두 사내가 사람다운 모습을 띠었다.
“아씨!”
취취가 팽가연을 쳐다봤다.
팽가연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단환 두 개를 내밀었다.
노명단은 하북팽가의 보물이다.
출타하는 무인에게 한 알씩 지급하며, 출타 중 사용하지 않았을 시에는 다시 회수한다.
그만큼 귀중하게 여기는 영약 중의 영약이다.
당연히 제조 비법도 비전(秘傳)이다. 현재 팽가촌에서는 가주를 제외하고는 제조 비법을 아는 사람이 없다.
팽가연은 항상 세 알을 휴대했다.
워낙 천방지축처럼 돌아다니기를 좋아하는지라 특별히 세 알을 내준 것이다.
그중 두 알이 그녀가 죽이고자 했던 자들에게 복용된다.
취취가 노명단을 받아서 두 사내에게 복용시켰다.
노명단은 삼킬 필요가 없다. 물이 없어도 상관없다. 입에 넣기만 하면 스르륵 녹아서 목구멍 속으로 굴러들어 간다.
피비린내와 곰팡내만 가득하던 방 안에 청아한 향기가 퍼졌다.
“한두 시진은 더 버틸 것 같아요.”
“의원을 데리러 간 계집애는 왜 아직 안 오는 거야!”
팽가연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사람의 몸은 그가 살아온 인생을 말해준다.
루주의 몸은 이 세상에도 지옥이 있음을 말해준다.
취취의 말이 맞다.
얼굴에도 검흔이 새겨졌을 법한데 용케 얼굴을 피했다. 몸에 난 상흔들을 살펴보다 보면 얼굴이 이렇게 깨끗할 수 있나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마치 제 얼굴이 아니라 깨끗한 가면을 쓰고 있다는 느낌마저 든다.
그녀는 루주에게 호기심을 느꼈다.
그가 야수처럼 싸우는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거칠게 뛰고 피가 빨리 도는 것을 느꼈다.
자신도 그렇게 싸우고 싶다.
루주와 싸워도 좋고 회자수와 싸워도 좋다. 상대는 누구라도 관계없다. 단지 죽을힘을 다해서, 앞으로 두 번 다시 도를 잡지 못할 만큼 전력을 다해서 싸워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인은 저런 싸움을 하지 못한다.
무인의 칼은 너무 날카롭다. 무인들이 수련한 초식은 일격(一擊)에 상대를 절명시킨다. 약간만 방심하면 두 번 다시 손을 써볼 기회가 없다. 이들처럼 칼에 맞고도 꿋꿋이 버티면서 또다시 찔러 넣는 싸움이 못 된다.
그를 깨워서 말이라도 나눠보고 싶다.
정말 그것뿐인가? 그것 이외에는 다른 감정이 없나?
아니, 있다. 진짜 감정이 있다. 놈을 깨워서 진정으로 겨뤄보고 싶다. 놈의 방식대로 싸우면 단 일합의 싸움이 되겠지만 자신에게도 단 일합에 승부를 걸 만한 칼이 있다.
검과 유엽도가 부딪치면 둘 다 부서진다.
이게 놈의 방식이다.
여기서 전제 조건이 깔린다. 부딪친다면, 부딪친다면…….
즉, 부딪치지만 않으면 놈은 진다. 허공에 헛손질을 하게 된다. 그리고 허무한 헛손질은 죽음으로 이어질 게다.
자신에게는 그런 칼이 있다.
파르르르!
피가 끓어오른다. 따귀라도 때려서 깨우고 싶다. 지금 당장에라도 싸워보고 싶어서 부글부글 끓는다.
이 모든 것이 호기심이란 말로 함축된다.
그녀는 호기심을 억눌렀다.
그는 죽여야 할 자다. 지금은 치료를 해주고 있지만 결국은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질 게다. 의모가 낙태를 했는데…… 여인에게는 참으로 한스러운 사건을 묻어둘 수는 없다.
자신이 원하는 기회는 곧 다가온다.
루주에게 진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그를 적수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루주의 검이 독특하기는 하지만 그런 식으로 따지면 무림에 적수 아닌 사람이 없다.
그녀는 루주의 투지를 보고 피가 끓었다. 그것, 투지와 싸워보고 싶은 것이다.
그녀는 호기심을 억눌렀다. 그리고 루주의 검법으로 생각을 돌렸다.
‘검법 때문에 살려놓으라고 한 건데… 그게 무슨 검법일까? 아주 독특했어.’
“내 이럴 줄 알았다니까.”
그는 언덕 위에서 빠끔히 고개를 내밀고 강가에 위치한 저택을 쳐다봤다.
“어떻게 해요?”
“하! 그것참… 저 계집애들이 보통내기가 아니라서 말이지. 나 같은 것은 한 팔로도 죽여 버릴 수 있는 괴물들이거든. 이걸 어쩐다? 하필이면 저 계집들에게 걸려 가지고.”
“얘도 안 돼요?”
주설언이 두 발을 쭉 뻗고 편히 쉬는 흑풍을 보면서 말했다.
“저 똥개가 뭘 안다고.”
“영리하다고 하셨잖아요.”
“그래 봐야 똥개야.”
“그래도 어떻게 해보세요!”
“가만히 좀 있어봐, 이것아! 머리 좀 굴려봐야 될 거 아냐!”
호가는 저택을 내려다보면서 눈을 끔뻑거렸다.
팽가연과 비연사도.
그녀들은 여인이지만 이미 무림에 무명(武名)을 알리고 있는 여협(女俠)들이다.
어설프게 행동했다가는 담장을 넘기도 전에 목이 떨어질 게다.
‘어쩐다…….’
그는 연신 눈만 끔뻑거렸다.
한참 만에 그가 말했다.
“너 몇 대 맞아야겠다.”
“네?”
“괜찮아. 살살 때릴 테니까.”
주설언은 피투성이가 되어서 비칠비칠 걸었다.
“흐흐흐! 네가 도망쳐 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지. 흐흐흐!”
징그러운 웃음소리가 그녀의 뒤를 쫓았다.
주설언은 악착같이 움직였다. 한 걸음이라도 더 멀어지려고 발버둥 쳤다.
“살려줘, 살려줘요.”
실낱같은 음성이 바람을 타고 실려 나갔다.
그러나 그녀의 음성을 들어줄 사람은 없다. 설혹 인근에 누군가가 있다고 하더라도 간신히 목구멍을 비집고 나온 개미소리를 들었을 리 없다.
퍼억!
둔탁한 소리가 울리더니 가냘픈 신형이 끈 떨어진 연처럼 나가떨어졌다.
“네가 도망을 가? 죽일 년 같으니! 너한테 처들인 돈이 얼마인데 도망을 가! 어디, 더 가봐라, 이년아!”
퍼억!
사정없이 내리꽂힌 발길이 그녀의 복부를 내리찍었다.
“컥!”
주설언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등을 활처럼 굽히면서 배를 움켜잡고 헐떡거리기만 했다.
“내 생각 같아서는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리고 싶은데 참는다. 안 일어나, 이년아!”
호가는 주설언의 머리채를 움켜잡았다. 바로 그 순간,
쒜엑!
뭉툭한 도 한 자루가 손목 어림을 스쳐 갔다.
호가가 느낌이 들자마자 재빨리 손을 뺏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으면 손목이 뎅겅 잘릴 뻔했다.
“꺼져!”
금배대도를 든 여인이 말했다.
비연사도 중에서 가장 예쁘다는 효령이다. 그러나 이 순간, 그녀의 얼굴은 북풍한설보다도 매서웠다.
호가는 잠시 멈칫하다가 정중히 포권지례를 취했다.
“팽가의 소저 아니십니까?”
“너 뭐야?”
“회자수입니다.”
“뭐!”
“하급이라 계집 뒤꽁무니만 쫓아다니고 있습니다만… 곧 일급으로 올라갈 예정입니다.”
호가와 효령이 실랑이를 벌이는 사이, 유리와 취취가 무슨 일인가 싶어서 다가왔다.
“뭐야?”
“쓰레기.”
유리의 물음에 효령은 미간을 찌푸리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