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48
48
진기가 필요치 않을 때, 단전은 진기를 응축시킨다. 진기가 필요할 때, 방사형(放射形)으로 뻗어나간 진기가 필요한 부분에 필요한 만큼의 힘을 부여한다.
지금은 방사형의 진기만 사용할 수 있지만 혼원벽력신공의 최정점은 일점(一點)이다. 전신 진기가 한 톨의 낭비도 없이 일점에 집중된다.
그 파괴력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한다.
“됐어!”
팽가연은 자신도 모르게 고함을 지르며 강도를 휘둘렀다. 그러자,
��! ��!
창수가 급박하게 창을 두 번이나 내지르더니 뒤로 풀쩍 물러섰다. 그리고 말했다.
“그만!”
팽가연은 막 공격을 시작하려다가 너무 익숙한 소리에 몸이 얼어붙었다.
“아버님!”
수련동에 장마가 들이쳤다.
평소에는 습기조차 차지 않는 수련동이다. 한데 그때는 장마가 너무 심했다. 물줄기를 틀어버릴 정도로 폭폭 쏟아졌다. 그리고 지하 암류(巖流)는 바위를 깨버렸다.
수련동으로 물이 들이쳤다.
입구가 제일 먼저 막혔다. 그리고 안으로 들이친 급류는 언제 있었는지도 몰랐을 암동(巖洞)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물살에 휩쓸려 버렸다. 하지만 떠내려가지 않으려고 발버둥 쳤다.
물살이 수련동을 가득 메워서 숨도 쉴 수 없는 상황, 거기에 항거할 수 없는 수압(水壓)이 온몸을 끌어당긴다.
죽을힘을 다해서 버텼다.
건곤미허신공을 이끌어서 한동안은 버텨냈지만, 곤 한계에 부딪치고 말았다.
자연의 폭력을 인간이 견뎌낼 수는 없다.
진기가 스러지고, 육신의 힘조차 소멸되고, 탈진이 찾아왔다. 극한의 상황에서 오직 살아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버텼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수압도 느껴지지 않는다. 육신의 감각도 사라졌다. 살아 있는 것은 몸이 아니라 의식뿐이다. 육신은 이미 기능을 잃어버렸다. 이제 의식마저 놓아버리면 죽음이다.
그 순간, 한 줄기 빛이 찾아왔다.
혼원벽력신공!
혼원벽력신공을 수련하는 길이 열렸다.
가주가 수련해 낸 방법은 분명히 정통은 아니다. 정통은 비급에 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꾸준히 수련하다 보면 순수한 깨달음으로 깨우칠 때가 있다고 한다.
팽가 무인들은 이 말을 반대로 해석했다.
어쩌면 영원히 깨우치지 못할지도 몰라.
그런 생각은 혼원벽력신공을 일확천금(一攫千金)의 신공이거나 아니면 운이 닿지 않은 사람은 깨우치지 못하는 신공쯤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한데 편법이나마 길이 열렸다.
한 사람이 그 길로 들어섰다. 그러나 그는 수장(水葬)된 시신으로 발견되었다.
또 한 사람이 들어갔다. 그도 나오지 못했다.
또 들어갔다. 혼원벽력신공을 깨우칠 수 있다면 죽음을 불사할 사람이 많다. 그리고 어김없이 죽었다.
가주는 세 사람에게 자신이 겪은 이야기를 했고, 세 명이 죽었다.
그날 이후로 지하 육층에 자리한 십구 수련동은 폐쇄되었다.
“혼원벽력신공은 죽음의 한계를 건너뛴 사람만이 수련해 낼 수 있다. 네가 견뎌내지 못했다면 지금쯤 죽어 있을 게다. 난 멈추지 않았을 테니까.”
어느 순간까지 몰아쳐야 죽음의 한계에 이르는지 알 도리가 없다. 그래서 시작했다 하면 끝까지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조금만 더 하면 깨달을 수도 있다. 또는 지금이 정말로 마지막일 수도 있다. 버티는 데 한계가 왔는지도 모른다. 한데 공격자는 그러한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알지 못하니까.
“이 공부를 전수할 때는 신중해야 할 것이다. 알아서 깨우치지 않으면 죽일 수밖에 없으니까.”
가주는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고마워요, 아버님,”
“고마워?”
“절 믿어주셨잖아요.”
팽가연이 탈진하여 하얗게 질린 얼굴로 웃었다.
제14장 한 사람이 쓰러질 때까지
1
루주는 사흘 동안 운기조식에만 몰입했다.
곡기를 끊었다. 잠도 자지 않았다. 사흘 동안 내리 운기조식으로만 버텼다.
여독이 밀려난다.
몸 안에서 새로운 진기가 생성되고, 썩은 기운은 말끔히 쏟아져 나간다.
기분이 좋다. 아주 상쾌하다.
맹삼력도 숲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 역시 곡기를 끊었다. 잠도 자지 않았다. 사흘 동안 숲을 돌아다니면서 때리고 또 때렸다.
귀동 살수는 열일곱 명이다.
그들 중 열두 명은 매 맞는 도중에 도주했다.
도주하는 자는 치지 않는다. 때릴 가치가 없다. 때릴 가치도 없는데 죽일 가치가 있겠나.
두 명은 맞아죽었다.
놈들은 너무 약했다. 어떻게 저런 놈들이 살수가 되었나 싶을 정도로 약골이었다. 살수라면 충분히 버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두들겨 팼는데 그만 죽어버렸다.
나머지 세 명만 끝까지 버텨냈다.
“때리는 것도 피곤해서 못하겠다. 보아하니 남의 밥 얻어먹을 데가 없는 모양인데, 그만하자. 나와.”
사내 세 명이 비칠거리며 나왔다.
그들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머리가 깨진 것은 기본이고, 온몸이 크고 작은 상처투성이다.
“너희는 왜 도망 안 가냐?”
“훗!”
실컷 두들겨 맞은 사내가 입술을 비틀며 웃었다.
“동주도 죽었고, 갈 곳도 없고……. 정도 문파에는 발을 못 붙이고, 쓰레기 같은 놈들과 섞이기는 싫고. 보아하니 그쪽도 오늘내일 간당간당하는 것 같은데… 사는 날까지 공밥 좀 먹여주쇼.”
그러자 옆에 있던 자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흐흐흐! 공밥 가지고는 안 되지. 공밥 먹으려고 사람 죽이는 짓을 할 순 없잖아. 매달 닷 냥. 일 년 단위로 예순 냥. 언제 죽을지 모르니 선금이오.”
“넌?”
맹삼력이 아직 한마디도 하지 않은 자에게 물었다.
“그만합시다.”
그는 할 말이 뭐 있겠냐는 듯 손을 내저었다.
“후후! 따라올 놈은 따라와.”
맹삼력은 숲에 들어온 이후 처음으로 등을 보였다.
귀동에서 추려낼 놈은 세 놈뿐이다.
이놈들은 도주하지 않았다. 안전하게 사는 게 목적이 아닌 놈들이다. 돈도 필요치 않다. 돈이 목적이었다면 이미 패가망신해 버린 루주를 찾아오지 않았다.
같은 이유로 의리 같은 것도 기대할 수 없다.
동주를 죽인 놈에게 몸을 의탁한다? 의리는 개똥보다도 못하게 생각하는 놈들이다.
그럼 왜 남았나?
매 맞다가 도주한 놈들은 동주의 복수를 하려고 왔다.
솔직히 그놈들이 순수하다. 그놈들은 자신의 능력은 고려치 않고 살수로서 복수를 노렸다.
이놈들은 음흉하다.
모르기는 해도 다른 자들이 복수를 논의할 때 음흉한 생각을 숨긴 채 한마디도 하지 않았을 게다.
그렇지만 냉정하다.
이놈들은 복수가 가당치도 않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 그래서 그렇게 두들겨 맞으면서도 도주하지 않았다. 매 맞아 죽는 놈이 나타났는데도 죽기를 각오하고 남았다.
이놈들로서는 승부다.
이놈들은 출세하기 위해 살인귀를 선택했다.
세간에 살수는 아주아주 나쁘지만 없는 자라면 해볼 만한 직업으로 알려져 있다.
청부 살인을 하면 돈을 많이 번다. 무공도 강해진다. 무서운 것이 없어진다.
이것이 살수에 대해서 알려진 것들이다.
하나 직접 살수를 해보면 이런 말들이 얼마나 허황된 것인지 알 것이다. 돈을 벌기 전에 죽기 일쑤다. 무공이 강해지기 전에 이용만 당하다가 죽는다. 무서운 것? 귀동 밖에 한 발만 내디디면 만나는 사람 모두가 무섭다.
이들은 출세하기 위해 살수가 되었지만, 이제는 다른 길을 택하고 싶어 한다.
아주 욕구가 강한 놈들이다. 또 욕구를 이루고야 말겠다는 의지 하나는 탐나는 놈들이다.
놈들은 사전에 준비했다.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루주를 찾은 게 아니다. 루주의 행적을 냉정하게 살펴보았으리라. 무척 강한 운을 보았으리라.
운이 너무 좋으면 아예 사람이 강한 것처럼 보인다.
루주는 강하지 않다. 하북팽가에서 전력으로 들이쳤다면 그는 이미 죽었다. 지금은 다르지만, 예전에는 회자수에게도 쩔쩔맸다. 처음 그들과 싸울 때, 평소 회자수들이 싸우던 방식대로 싸웠다면 그때 쓰러졌다.
암사에게도 기회가 있었다. 동주는 말할 것도 없다. 결정적인 기회를 잡았다.
모두가 루주를 죽일 수 있었는데 되레 죽임을 당했다.
이것이 루주의 운이다. 루주의 강함이다.
이놈들은 그런 점을 보고 남은 것이다.
배울 점이 많다고 여기면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위험은 수없이 몰아치겠지만 루주라면 충분히 뚫고 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이들은 철저한 계산 끝에 남았다.
“널 선택했다.”
맹삼력의 말에 루주는 피투성이 사내들을 쓱 훑어보았다.
“독기는?”
맹삼력이 루주 곁에 앉으면서 물었다.
“괜찮아.”
“정말? 정말이야?”
맹삼력이 얼굴을 활짝 펴며 반색했다.
“호가는?”
“그놈이야 제 앞가림 잘하는 놈이잖아. 걱정 마. 듣자 하니 홍독사에게 은자를 퍼줬다더라. 뭐? 후원에 은자를 묻어놔? 무슨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돌아올 날이 지났어.”
“독상이 중해서 말하지 않았는데… 그놈이 구한 저택에서 제법 큰 화재가 있었던 모양이야. 월아를 비롯해서 몇 명 죽은 것 같은데, 흉수를 그놈으로 점찍은 것 같아.”
“팽효뢰?”
“그쪽 일… 조금 복잡해질 것 같다.”
“쟤네들, 필요없을 것 같은데. 괜한 짐이잖아?”
“사람치고 짐인 건 없다. 조금 더 살아봐라. 모든 사람이 다 힘으로 보일 때가 있을 테니까.”
“알아서 해.”
“그런데… 저쪽이 꽤 심각한 것 같은데?”
맹삼력이 팽가의 하가 쪽을 쳐다보며 말했다.
루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팽효기가 바보가 아닌 이상 가만히 있으면 비정상이다. 자신을 이기기 위해 무엇인가는 하고 있어야 한다. 해독을 시켜준 것은 고맙지만 승부는 승부다.
루주는 소도를 꺼내 들었다.
“왜? 목검 다듬게?”
“언제 올지 모르잖아.”
“하하하! 그걸 왜 힘들게 다듬어. 봐라, 사람이 왜 모두 힘인지 보여줄 테니. 야, 너희, 한 사람 앞에 다섯 자루씩 목검 좀 다듬어와. 열 자루면 더 좋고.”
맹삼력이 멀뚱멀뚱 서 있는 사내들에게 고함쳤다. 그리고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하!”
“납치요? 저흰 그런 짓 안 했는데요?”
귀동 살수들은 일제히 고개를 내저었다.
거짓이 아니다. 그들의 얼굴에는 정말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루주는 미간을 찌푸렸다.
맹삼력은 손으로 이마를 짚었다.
지금까지 주설언을 납치한 범인이 귀동인 줄 알았다. 한데 귀동이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면 누가 했단 말인가. 또 누가 그녀를 필요로 했을까?
이번 일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흉악범에게 납치된 건가?
주설언을 납치할 사람이 없다. 하북팽가는 절대로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미련하다시피 정면 대결만 고집하는 걸 보면 모르겠는가. 그들에게는 무인의 자부심이 있다.
“홍독사를 이렇게 빨리 써먹을 줄 몰랐는데. 그놈에게 애들을 풀어보라고 하지. 뭐든 알아내기는 할 거야. 너무 걱정 마. 뭔 일이야 있겠어?”
맹삼력이 루주의 어깨를 툭툭 치며 일어섰다.
자식 된 도리로 아비, 어미를 죽일 수는 없다. 세상에 막돼먹은 개망나니도 그런 짓은 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지은 죄를 덮을 수도 없다.
그냥 덮기에는 너무 억울하고, 원통하고, 가슴이 찢어져서 참을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을 위해서 죄를 물어야 한다.
죄, 죄, 죄!
자식이 어미에게 묻는 죄!
최악의 행동을 했다. 어미의 행복을 짓밟았다. 아니, 그 정도일 줄은 알았는데 훨씬 심한 짓이었다.
원래가 악독한 여자다.
지금은 아이를 잃은 원한까지 겹쳐서 더 악독한 여자가 되었다.
살수를 고용할 때, 받아들였다.
어미가 고용한 살수를 깨끗이 죽여주는 것도 ‘자식이 어미에게 묻는 죄’의 일부라고 생각했다.
죽였다. 죽였다.
이제 어미는 더욱 가슴이 아플 게다. 또 다른 술수를 쓸 것이고, 또 다른 자들을 고용할 것이다.
하면 자신은 어떻게 해야 하나?
언제까지 어미를 괴롭힌다고 생각하면서 어미가 보낸 살수를 죽이겠는가.
어미의 행복을 흔들어놓으면 족하다고 생각했다. 물론 가만히 있을 어미가 아니지만 그럭저럭 받아넘기고 그만 인연을 끊을 생각이었다.
주고받고, 주고받고…… 정말 언제까지 이 짓을 해야 하나.
루주는 좀처럼 자리를 털고 일어서지 못했다.
어차피 끝은 불행이다.
자식은 어미를 죽이지 못한다. 어미의 죄를 더 이상 물을 수도 없다. 하지만 이대로 시궁창 싸움으로 끌려들어 가면 자신도 폐인이 되고 어미도 폐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