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50
50
“네놈이 청성파의 무학을 지녔다더니 정말이군.”
“약간 훔쳐 배운 거야. 긴장하지 마.”
“긴장? 후후후!”
한 사람은 긴장했다. 전신이 한껏 늘어난 고무줄처럼 팽팽했다.
다른 사람은 정반대로 축 늘어졌다. 아니다. 검을 든 오른손만 늘어졌다. 머리부터 허리, 다리로 이어지는 선은 천년 고송처럼 굳건하다.
파앗!
팽효뢰가 선공을 취했다. 두 발이 팽이처럼 빙글빙글 돌았다. 신령도 돌고, 칼도 돈다.
작은 회오리가 일어났다.
“연환회전도(連環回轉刀)! 제길! 이걸 어떻게 막으라고!”
호가는 툴툴거렸다. 하지만 그의 검은 어느새 회오리를 푹푹 찔러대고 있었다.
“환환미종보(幻環迷踪步)라는 게 있는데, 그게 상당히 쓸 만해. 웬만한 공격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거든.”
까앙! 깡!
검이 회오리바람 속에서 정확하게 유엽도를 찾아내어 가격했다.
검과 도의 부딪침이 일어났다.
이것은 팽효뢰의 회전에 제동이 걸렸다는 의미다. 허점을 파고든 검을 막아내느라 두 발의 회전이 꼬였다.
그러나 팽효뢰는 멈추지 않았다.
파앗!
유엽도가 세 가닥 빛을 뿜어냈다.
목과 팔과 옆구리를 동시에 노리며 수평으로 갈라온다.
환도(幻刀)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세 방향의 칼날에서 강한 살기가 뿜어진다.
“왕자사도(王字四刀)! 제길! 못하는 게 없군.”
호가의 신형이 흔들거리는가 싶더니 유유히 뒤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그 순간, 팽효뢰의 왕자사도가 마지막 절초를 뿜어냈다. 왕자사도의 가로 획이 부욱 그어졌다.
“청성의 부운약표(浮雲躍飄)? 역시 넌 청성 인물이었군.”
“이봐, 이봐. 억지 부리지 마. 청성파는 도인(道人)에게만 무공을 전수해. 내가 도인처럼 보여?”
호가는 공수(攻守)가 끝날 때마다 유들거렸다.
그가 말을 걸면 상대는 어김없이 되받아친다. 이쪽에서 한마디 하면 저쪽에서도 한마디 하게 되어 있다. 공격의 맥이 끊기는 줄도 모르고, 싸움의 형태가 상대방에게 넘어가는 줄도 모르고 태평하게 말을 받는다.
역시 아직은 경험이 부족한 어린애다.
팽효뢰는 공격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중간 중간 본인 스스로 맥을 끊는다. 이제 다 왔다. 팽효뢰가 전력을 다하지 못할 때 결판을 낸다.
그런데 하늘이 호가를 돕지 않았다.
“흐흐흐!”
“키키키!”
느닷없이 숲에서 음침한 괴소가 울렸다.
3
호가는 미간을 찌푸렸다.
웃음소리만으로도 상대의 공력을 알아볼 수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어떤 종류의 인간인지, 어떤 성정을 지녔는지, 어떻게 살아온 인간인지까지 알아볼 수 있다.
방금 들려온 웃음 속에는 요악한 마기(魔氣)가 섞여 있다.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안으로 은밀히 숨긴 마기다.
마인(魔人)은 마기를 숨기지 않는다. 마공(摩功)도 당당하게 사용한다.
마기를 안으로 숨긴 인간은 마인보다도 나쁘다.
이런 종류의 인간들은 마성(魔性)이 진하다. 하지만 마성을 드러내는 법은 없다.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한 사람들과 함께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한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악행을 즐기기 위해서다.
“좋지 않은 자들이군.”
“흐흐흐!”
음침한 괴소는 계속 들려왔다.
한데 방향이 달라졌다? 옆에서 들렸다가 뒤에서 들리고, 그러다가는 난데없이 앞에서 들려온다.
‘회성마소(回聲魔笑)!’
느낌이 좋지 않다.
“귀신인가? 모습은 보이지 않고 웃음소리만 들리니… 에구! 나도 늙었어. 환청(幻聽)이나 듣고 말이야.”
호가는 손을 들어 귀를 후볐다.
팽효뢰도 기분 나쁜 괴소를 들었다. 하지만 괴소 외에 다른 소리도 들었다.
“공자, 뒤로 빠지시지요.”
“가모께서 오망정으로 오라 하시더군요.”
‘오망정!’
팽효뢰의 눈에서 기광이 번뜩였다.
가모가 사건을 알고 있다. 월아와 함께 있는 것도 안다. 그렇기에 오망정으로 오라고 한 것이다.
오망정은 까마귀가 들여다보는 우물이라는 뜻이다.
우물 옆에 고송(古松)이 있는데, 유독 까마귀들이 많이 꼬인다. 그래서 우물을 들여다보면 마치 까마귀들이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오망정을 생각하다가 문득 자신이 환청을 들었다는 데 생각이 돌아갔다.
‘정상적인 음성이 아니다. 미음전성. 어떤 자들인지 궁금하군. 가모가 보낸 자들이라…….’
그는 궁금증을 풀 기회가 없었다.
“월아를 구하시고 싶으면 지금 움직이시는 게 좋을 겁니다. 가모시라면 대책을 마련해 주실 터.”
“흐흐흐! 이 자리는 저희에게 맡기시고.”
팽효뢰는 망설이지 않았다.
월아를 죽이지 않을 수 있다면, 그리고 그녀를 옆에 둘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
그는 미련없이 도를 거두고 월아에게 걸어갔다.
끄르릉!
흑풍이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며 앞을 가로막았다.
팽효뢰는 상관하지 않고 걸었다. 흑풍이 영물이기는 하지만 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가로막아 서라! 죽인다!
두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정말 죽일 생각이다. 갈비뼈를 부러뜨려서 심장에 꽂아 넣으련다. 그러면 아무리 가죽이 베이지 않는 놈일지라도 죽을 수밖에 없다.
끄르… 릉!
흑풍이 슬그머니 옆으로 물러섰다.
“저놈의 개새끼! 좌우지간 써먹을 데가 없어.”
호가가 툴툴거렸다.
쉬익!
팽효뢰가 월아를 옆구리에 끼고 신형을 쏘아냈다.
호가는 그런 모습을 멀거니 지켜봤다.
그는 두 괴인과 팽효뢰 사이에 오간 말을 듣지 못했다. 미음전성은 진동이 전달된 사람만 들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고간 것은 짐작했다.
괴소가 울리는 동안 팽효뢰의 안색이 급변했다.
어두침침하고 음울한 얼굴이었는데, 반가운 말을 들은 사람처럼 안색이 활짝 펴졌다.
‘도망가 봐야 쥐벼룩이지.’
호가는 급하게 쫓지 않았다.
흑풍이 존재하는 한 그가 숨을 곳은 없다. 이미 냄새를 읽힌 이상 땅속으로 숨어도 찾아낸다.
지금은 그보다 선급한 문제가 있다.
‘이놈들이 놓아줄 기세가 아닌데… 허! 곤란하게 됐군.’
팽효뢰가 자리를 뜨자 두 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중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다. 체격, 얼굴, 옷차림. 특출한 구석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느 방면의 고인이신가?”
“흐흐흐!”
마음(魔音)이 짙어졌다.
평소 마기를 숨기는 인간들이 마음을 드러냈다는 것은 살기를 띠었다는 뜻이다.
죽일 생각이다.
“우리 웬만하면 말로 푸는 게 어때?”
“크크크!”
“나이가 들었는지 삭신이 쑤셔서. 야, 인마! 거기서 꼬리 말고 뭐해! 어서 가자니까!”
호가가 흑풍에게 소리를 질렀다. 하나 눈길만은 두 괴인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한시도 떨어뜨릴 수 없었다. 지금 당장에라도 덮쳐 올 것 같아서 방심하지 못했다.
두 놈을 알아볼 수 없다. 평범한 놈은 아닌데 어디서 놀던 놈들인가. 하북 놈들은 절대 아니고…….
두 괴인이 좌우로 갈라섰다.
한 명은 전면으로 나서고, 다른 놈은 등 뒤로 돌아섰다.
“뭐야? 치사하게 나 하나 두고 함께 덤비겠다는 거야? 이러지 말라고. 나 싸움 잘 못하는 거 봐서 알잖아. 그냥 눈 딱 감고 한 번만 보내주면 안 될까?”
“흐흐흐!”
두 괴인은 호가의 말에 휘둘리지 않았다.
머릿속에 살인 이외에 다른 생각이 들어 있지 않다. 심지어는 자신을 사람으로 보지도 않는다. 그저 목숨을 끊어놓을 똥개! 그래, 똥개 정도로 여긴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호가가 암중으로 진기를 끌어올릴 때,
��!
뒤로 돌아갔던 자가 선공을 취해왔다.
“아이쿠! 말도 없이 다짜고짜!”
호가는 청성파의 절기인 세류보(細流步)를 밟아서 미끄러지듯 옆으로 물러섰다. 동시에 송풍검법이 살랑살랑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흘러나갔다.
까앙! 깡!
검과 겸(鎌)이 부딪쳤다.
순간, 호가의 눈이 부릅떠졌다.
괴인이 들고 있는 낫, 자루부터 날까지 온통 검은색. 낫끝이 독사의 혓바닥처럼 두 갈래로 갈라져 있고, 낫자루에는 역시 검은색의 쇠사슬이 길게 늘어져 있다.
‘흑삭마겸(黑索魔鎌)!’
호가는 두 괴인이 누구인지 짐작해 냈다.
십여 년 전, 하루라도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좀이 쑤셔서 잠을 자지 못한다는 살인귀들이 있었다.
무림이 그들의 존재를 알았을 때, 이미 천 명 가까운 인명이 한낱 재미를 위해서 희생된 후였다.
무림은 그들을 공적으로 선포하고 추격에 나섰다.
한데 그들은 오히려 그런 추격조차도 즐겼다. 뒤쫓아 오는 고수들을 유인하여 독살하고, 자신들의 소행이라는 흔적을 남겼다. 낫으로 살과 뼈를 분리해 버린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악행에도 한계는 있다.
그들은 끝내 추격을 따돌리지 못했고, 절명했다.
이게 옛날이야기인데, 그때 죽었다는 쌍겸구악(雙鎌 惡)이 이 자리에 나타났다.
‘좋지 않아.’
그의 안색이 무거워졌다.
쌍겸구악을 직접 만난 적도 없고 관심도 없었지만, 이들이 어떤 사람을 죽였는지는 알고 있다.
방심할 수 없다.
“크크크!”
쒜엑!
웃음과 함께 시커먼 낫이 날아들었다.
쒜에엑!
등 뒤에서도 파공음이 들렸다. 앞뒤에서 본격적으로 합공이 시작되었다.
호가는 환환미종보를 펼쳤다.
그의 신형이 뒤에서 날아오는 낫을 향해 쑥 쏘아졌다. 육신으로 낫에게 달려들었다. 아니, 아니다. 이것이 환환미종보의 묘용이다. 뒤로 간 듯하던 신형이 전면에서 불쑥 나타났다. 검으로 낫을 밀어올리고, 두 다리를 베었다.
촤르륵!
쇠사슬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쌍겸구악의 낫자루에 매달린 쇠사슬에는 어떤 묘용이 숨겨져 있을까? 단순한 쇠사슬은 아닌 것 같다. 그럴 것 같으면 낫에 걸어놓을 리 없다. 괜히 낫을 전개하는 데 방해만 된다.
이런 생각은 기형 낫을 보는 순간부터 해왔던 터다.
촤르륵! 깡!
호가가 전개한 검은 줄줄 풀려진 쇠사슬에 가로막혔다.
호가는 계속 밀어 쳤다. 쇠사슬 정도는 쭉 밀어붙이면서 다리를 벨 생각이다.
한 놈이라도 빨리 처리해야 한다.
아직 본격적으로 싸워보지 않았지만, 오래 싸우면 자신만 불리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그때,
두둑! 두두둑!
뭔가 기분 나쁜 예감이 들었다.
검과 쇠사슬이 부딪치면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
파앗!
공격을 받은 자는 훌쩍 물러섰다.
“크크크!”
“히히히! 히히히히!”
그가 쇠사슬을 살랑살랑 흔들며 웃는다. 뒤에 있는 자도 공격을 멈추고 웃는다.
“제길!”
호가는 검 든 손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손에 작은 솜털이 수북이 박혀 있다.
무림에서는 일명 ‘솜가시’라고도 불리는 세모미침(細毛微針)이다.
솜털보다도 가늘고 가벼워서 쏘아내거나 던질 수는 없다. 강하게 건드리면 먼지처럼 풀풀 날린다.
사용하기가 무척 난해한 암기다.
하지만 묘용은 뛰어나다. 살에 달라붙는 즉시 피부를 뚫고 혈관 속으로 침투한다.
피가 얼마나 빠르게 도는지 아는가? 심장에서 흘러나간 피가 셋을 세기 전에 다시 심장으로 돌아온다.
세모미침은 그렇게 빠른 피의 흐름을 타고 심장으로 달려든다.
“욱! 크윽! 컥!”
호가는 심장을 움켜잡았다.
심장에서 극통이 치밀더니 구역질이 솟구친다.
당했다. 너무도 치졸한 수에 당했다. 패인을 살피라면 세모미침을 몰랐던 것을 꼽을 수 있다.
“휙!”
호가는 사력을 다해서 휘파람을 불었다.
꺼엉!
흑풍이 포효를 내질렀다.
“흐흐흐! 이놈, 어딜 가려고!”
“크크크! 다리부터 잘라!”
도주하려는 흑풍과 흑풍을 죽이려는 쌍겸구악!
호가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신형을 쏘아냈다.
“흐흐흐! 미련한 놈! 움직이면 저만 더 괴롭다는 걸 모르나. 그냥 얌전히 앉아서 죽는 게 제일 좋은데.”
“그러고 싶겠어? 발악이라도 해보고 싶겠지.”
“이십 장?”
“난 십 장.”
“뭐로 할까?”
“이긴 사람이 머리 갖기.”
“좋아. 크크크!”
그들은 웃었다.
안다, 이놈들아!
심장에 침이 박혔으니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고통만 가중된다는 걸 모를 사람이 어디 있냐!
하지만 가만히 있으면 절대 살 수 없다. 그러니 네놈들 말대로 발악이라도 하는 게 아니냐!
미련한 놈들……. 너희들이 낄낄거릴 때 흑풍이 빠져나갔다. 내가 빠져나가려고 흑풍을 이용한 줄 알지? 천만에! 흑풍을 보내기 위해서 내가 움직인 게다, 이놈들아!
호가는 가슴을 부여잡고 풀썩 쓰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