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52
52
건곤연환탈백도를 이 정도의 깊이로 수련한 자는 서너 명 된다. 하지만 여자 문제로 속 끓인 자는 팽효뢰뿐이다. 최근에 출타한 것도 월아라는 계집과 연관있을 게다.
팽효뢰, 월아, 호가.
연결선이 쭉 그어진다.
팽청치는 솜가시도 찾아냈다.
가주의 자식이 마물을 쓰는 자와 한자리에 있었다. 뿐만 아니라 그들과 연수하여 호가를 제거한 듯하다. 무공으로 제거한 것이 아니라 암기를 썼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팽효뢰는 뛰어난 절공을 지니고 있다. 누구와도 싸울 수 있을 정도로 강한 무공을 가졌다. 부족한 경륜만 쌓으면 쉽게 격동하는 마음도 사라질 터이고, 그러면 ‘절대’라는 말도 들을 수 있다.
그런데 왜 암기를 썼나?
자신의 무공을 믿지 못했거나, 마물을 사용한 자가 싸움을 가로챘거나 둘 중 하나이리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어찌해야 할까?
‘허허! 네가 도대체 무슨 생각에서 이런 자들과 어울렸단 말이냐. 이런 자들은 어찌 알았고! 휴우!’
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마물을 쓰는 자는 두말할 것도 없이 죽여야 한다. 하지만 가주의 아들까지 죽일 수는 없다. 따끔하게 혼을 내주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 최선이다.
이런 일은 팽효뢰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하북팽가 전체의 문제로 변질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루주가 먼저 발견해서는 안 된다. 자신이 먼저 발견해서 미리 해결해야 한다. 루주가 먼저 발견하면 아주 곤란해진다. 팽효뢰의 입지가 와르르 무너질 수 있다.
팽효뢰와 루주!
팽청치는 아무래도 루주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었다.
루주에게 이검이 있는 한, 이검의 대응책을 수련하지 않은 자는 함부로 나서서는 안 될 것이다.
‘여기서 본가로 가려면… 이쪽 방향이군.’
팽청치는 방향을 살핀 후, 신형을 띄웠다.
‘효뢰가 왜?’
팽효기는 미간을 찌푸린 채 묵묵히 신형만 쏘아냈다.
그곳에는 팽효뢰가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족적은 알아보지 못했어도 팽효뢰가 남긴 흔적만은 제일 먼저 알아봤다.
죽고 등근 원이 한 줄로 이어진 듯한 족적, 쇠사슬 형태로 끌린 자국. 두말할 것도 없이 연환회전도의 흔적이다.
팽효기는 두 동생을 슬쩍 훔쳐봤다.
동생들의 미간에도 짙은 어두움이 깔려 있다. 팽효뢰의 족적을 한눈에 알아본 것이다.
그들과 팽효뢰는 동배(同輩)다.
어려서부터 같이 자란 사이라서 누구보다도 잘 안다. 비무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이 해봤다. 그가 연환회전도를 쓸 때, 어떤 족적을 남기는지, 족적의 깊이와 모양새가 어떤지 정도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
그곳에는 분명히 팽효뢰가 있었다.
팽효뢰가 왜 또 이런 자들과 뒤섞였는가?
호가 같은 무뢰배를 뒤쫓던 중에 팽효뢰가 나타났다. 이게 우연인가? 아니면 기루 사건이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것인가. 그럴 게다. 계속 이어지고 있는 게다.
‘효뢰, 이 자식!’
팽효뢰는 이 사건에서 완전히 손을 뗐어야 한다. 루주 문제는 자신에게 맡기고 잊어버렸어야 한다.
그가 직접 움직여서 좋은 건 하나도 없다.
‘무슨 짓을 벌인 거야! 너!’
팽효기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
2
루주에게 북경은 낯선 땅이다.
천요루 주변과 하북팽가 주변을 제외하고는 거의 초행(初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루주는 흑풍을 데리고 가급적 멀리 물러섰다.
낯선 곳, 어디가 어딘지 알 수도 없는 곳으로 걸어갔다. 약이 뿌려진 곳에서 멀리만 떨어지면 되는 것이기에 굳이 목적지를 정할 필요가 없었다.
투벅! 투벅!
흑풍이 기운을 잃었다.
팽효뢰의 냄새는커녕 주인의 냄새마저도 맡지 못한다는 데에 충격을 크게 받은 것 같다.
얼마나 걸었을까?
족히 십 리는 벗어난 것 같은데, 흑풍은 여전히 기운을 잃고 있다. 아직 냄새를 맡지 못한다는 뜻이다.
도대체 어떤 약이기에 약효가 이리 독할까?
루주는 걸음을 멈췄다.
십 리를 벗어났어도 후각을 찾지 못했다면 이십 리를 벗어나도 마찬가지다.
그는 흑풍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마도 당분간은 냄새를 맡지 못할 것 같구나.”
껑!
흑풍이 말귀를 알아들은 듯 힘없이 짖었다.
‘후우!’
긴 한숨이 절로 나왔다. 호가의 생명이 위태로운데, 그를 찾을 방도가 끊겼다.
맹삼력은 삼살수(三殺手)에게서 간단한 말을 전해 들었다.
사람만 한 큰 개가 급히 달려왔고, 루주가 정신없이 쫓아갔다는 정말로 말 몇 마디에 지나지 않는 짧은 보고였다.
‘호가!’
맹삼력은 즉시 사단을 예감했다.
흑풍이 달려올 정도라면 상당히 급박한 위기가 닥쳤다는 뜻이다.
“어디, 네놈들의 능력 좀 보자.”
“후후! 걱정 마십시오. 이 정도는 일도 아닙니다.”
“주둥이는 나중에 나불거리고 뭐 좀 보여봐.”
“상(賞) 좀 있습니까?”
“자식들… 좋다. 일만 잘하면 술 한 잔 내지.”
“그 뭐야, 그 옛날의 그 기녀들… 그 여자들도…….”
“이것들이 정말 보자보자 하니까.”
“흐흐흐! 뭐 나쁜 거 있습니까? 외로운 영혼들끼리 의지 좀 하자는데. 흐흐!”
세 명의 살수가 농을 흘리며 뛰어갔다.
“저놈의 새끼들, 저걸!”
맹삼력은 눈꼬리를 치켜떴지만, 입가에는 옅은 웃음을 지었다.
살수들 중에서 몇 명을 수습했는데, 이토록 요긴하게 쓰일 줄은 몰랐다.
목유곡직(木有曲直)하니 요각진기용(要各盡其用)이라.
나무는 구부러진 것도 있고 반듯한 것도 있으니, 각기 용도에 맞춰서 잘 써야 한다는 말이다.
사람도 제 용도가 있다.
저들은 무공도 약하고, 심성도 믿음직스럽지 못해서 쓸모가 없을 것 같은데, 그래도 힘이 된다.
귀동 살수들은 기본을 잘 닦았다. 그 이상을 닦지 못한 부분이 아쉽지만 지금으로서도 웬만한 일은 다 해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추적이다.
루주와 흑�V이 오래전에 떠났지만, 저들이라면 충분히 뒤를 밟을 수 있을 게다.
맹삼력은 급히 신형을 띄웠다.
루주만 움직였으면 찾을 길이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흑풍과 함께 움직였다.
흑풍은 덩치가 산만 하다.
이빨 굵기도 어른 손가락만 해서 담이 약한 사람은 가까이 다가오지도 못한다.
그런 놈이 질풍처럼 질주했다.
사람 눈에 띄지 않는다면 오히려 그게 비정상이다.
“저쪽으로 가보슈.”
“그거 늑대 아니었소? 허! 호랑이도 잡아먹을 놈 같던데. 저쪽으로 달려갑디다.”
“그게 사람이 기르는 개요? 어휴! 저쪽 산등성이를 넘어가던데.”
누구에게 물어보든 길을 가르쳐 주었다.
세 살수는 굳이 추적술을 펼칠 필요도 없었다. 다른 사람이 일러주는 대로 걸어가기만 하면 되었다. 이런 추적은 누워서 식은 죽 먹기보다 쉬었다.
살수들은 웃었다.
“어디 숨으려면 흑풍은 버려야겠습니다. 하하!”
더 이상 길을 가르쳐 주는 사람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살수들은 당황하지 않았다.
“여기 있군.”
“이리로 이어졌어.”
흑풍의 발자국은 뚜렷하다. 지나간 시간이 오래되었지만 풀 밑에 찍힌 발자국을 찾아내기는 쉽다.
세 살수는 뛰어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걷는 것보다는 훨씬 빠른 걸음으로 헤쳐 나갔다.
세 살수가 벌인 추적은 별것 아니다. 기껏해야 개 발자국을 찾는 정도다. 세심한 주의력과 예리한 안력만 있으면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그들은 흑풍의 발자국을 쫓으면서 발자국 간의 거리를 계산했다. 일반 어른의 발자국보다 두 배는 넓다. 걷거나 뛰는 것이 아니라 도약했다는 뜻이다.
“여기까지 왔는데요.”
살수가 맹삼력을 쳐다봤다.
“음!”
맹삼력도 접전의 흔적을 발견했다.
‘호가가 실종된 곳.’
맹삼력은 접전 장소를 뒤지지 않았다.
살수들은 이곳저곳을 훑으면서 누가 어떻게 싸웠는지를 찾고 있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루주가 이곳을 다녀갔다. 그러니 루주만 찾으면 상황 이야기는 들을 수 있다.
지금 가장 선급한 것은 루주를 뒤쫓는 것이다.
“쓸데없는 짓 말고 루주가 어디로 갔는지만 찾아. 빨리!”
“그건 쉽습니다만.”
살수들은 흔적을 살피고 싶은 모양이다. 하지만 맹삼력의 눈길을 접하자 두말없이 흑풍을 뒤쫓았다.
“이쪽으로 갔는데… 어라? 뛰지를 않았네?”
“타박타박 걸은 것 같지?”
“보폭을 다시 계산해야겠어. 계속 걸었다면 쫓을 수 있겠지만 이러다가 느닷없이 뛰기라도 하면…….”
살수들이 하늘을 올려다보며 말했다.
해가 저물고 있다. 날이 어두워지면 발자국 찾는 건 어려울 게다. 아무리 안력을 돋운다 한들, 밤중에 희미하게 찍힌 발자국을 어떻게 찾는다는 말인가.
살수가 말했다.
“조금 빨리 가겠습니다.”
밤하늘에 별이 총총하다.
시간은 자정을 넘어 축시로 접어들었다.
세 살수는 하루 종일 걷고 또 걸었다.
웬만하면 지칠 법하다. 잠시 쉬었다 가자는 말이 나올 법하다. 하지만 그들은 한마디도 불평하지 않았다.
실력이 없는 자는 불평조차도 늘어놓지 못한다. 자신있는 자만이 배신도 한다. 동주를 죽인 자에게 몸을 의탁할 때에는 한 가닥 믿는 구석이 있었을 게다.
‘어렵겠어.’
맹삼력도 어둠이 깔린 후에는 포기해야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살수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들은 간단한 추적에서 자신들의 진가를 보여주었다.
흑풍이 느닷없이 뛰지만 않는다면 언제까지라도 쫓아갈 수 있다.
그들은 끈기있게 쫓았다. 그리고 작은 모닥불을 발견해 냈다.
온 세상이 깜깜하기 때문에 작은 모닥불이 더욱 뚜렷하다. 아주 멀리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찾은 것 같은데요.”
앞장섰던 살수가 말했다.
“거리는 약 백 장 정도 됩니다.”
“꿩을 구워 드신 것 같은데요. 꿩 고기 냄새가 진동해요.”
“피 냄새도 있네. 비린내에 누린내까지 섞인 걸 보니 사람 피는 아니고. 흑풍이 날고기를 좋아하는 모양이죠?”
살수들이 태연히 말하며 걸었다.
꿩고기 냄새가 진한 이유는 루주가 아직까지도 꿩을 굽고 있기 때문이다. 피 냄새가 진한 것은 흑풍이 꿩 한 마리를 생으로 뜯어 먹어서이다.
“어서 와. 빨리 왔군.”
루주는 네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올 줄 알고 있었다는 듯 태연하게 말했다.
“거 놀라는 표정이라도 지어라.”
“흑풍이 냄새를 잃었어.”
“그래? 어쩐지…….”
맹삼력이 다소 놀란 듯 흑풍을 쳐다봤다.
사실 그는 모닥불을 보면서도 루주가 편히 쉬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호가가 실종되었는데 어떻게 쉬랴. 밤을 새워서라도 쫓아가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로 쉬고 있다.
맹삼력은 루주를 만났다는 사실보다도 루주가 쉬고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흑풍이 냄새를 잃어?
그럼 호가를 찾는 일은 틀렸지 않나.
루주가 품에서 가죽주머니 두 개를 꺼냈다.
“이 속에 솜가시와 뭔지 알 수 없는 가루가 있어. 그게 흑풍의 후각을 마비시킨 것 같은데… 알아볼 수 있나?”
마지막 말은 세 살수에게 한 말이다.
“한 번 보겠습니다.”
세 살수가 가까이 다가와 조심스럽게 가죽주머니를 열었다.
솜가시는 이미 살펴봤으니 더 볼 것 없다.
“이건 아까 봤는데…….”
살수가 고개를 흔들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는 뜻이다.
솜가시를 만든 자는 상당히 고명한 솜씨를 지녔다. 그래서 이런 부분에 관심이 있는 자라면 당장 떠오르는 이름이 서너 명, 최소한 한두 명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살수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평소 솜가시 같은 것은 생각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뜻이다.
다른 주머니를 조심스럽게 열었다.
주머니 안에 든 것이 후각을 마비시키는 독분인 것을 알고 있으니 행동이 더욱 조심스럽다. 흑풍은 후각만 잃었지만 사람은 목숨까지 위험할 수도 있다.
두 명은 뒤로 멀찍이 물러서고, 한 명만 주머니를 열었다.
그가 손으로 하얀 가루를 찍어서 혀끝에 대고 맛을 봤다.
“흠!”
그는 인상을 찡그리더니 다시 한 번 맛을 봤다.
“이거 무미각(無味角)인데?”
“무미각?”
뒤로 물러섰던 살수들이 비로소 가까이 다가왔다.
그들은 망설이지 않고 가죽주머니에 손을 집어넣어 맛을 봤다.
“맞네. 무미각.”
그들은 어처구니없다는 듯 실소까지 지었다.
뭔가 대단한 걸 생각했는데, 뜻밖에도 구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분말이었다.
“무미각이 뭐냐?”
맹삼력이 물었다.
“이거 돈 좀 있는 살수들이 쓰는 거예요. 새삼스러운 건 아니고… 개들의 후각을 죽일 때 쓰는 거 맞아요. 사람에게는 해가 없는데, 개는 죽어나죠. 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