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56
56
그나마 다행인 점은 놈이 너무 느려서 십여 걸음을 옮기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팽가촌이 고요한 점도 천만다행이다.
팽가 무인들은 동이 트기 전에 논밭으로 나가서 해가 떨어진 후에나 들어선다. 크게 다치지 않는 한 대낮에 집안에서 빈둥거리는 사람은 없다.
쾌재를 부를 수 있는 환경이다.
“낚아채야지?”
“말이라고!”
쒜에엑!
두 사람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신형을 쏘아냈다. 누가 먼저라고 할 것도 없이 거의 동시에.
2
하북팽가는 경계를 세우지 않는다.
제아무리 용맹한 사냥꾼이라도 호랑이가 득실거리는 호굴로 들어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수십 마리의 호랑이를 제거하려면 사냥꾼도 그만큼 많아야 한다.
사냥꾼 한두 명이 다가온다면 겁먹을 필요가 없다. 아니, 그럴 만한 가치도 없다.
사냥꾼은 활을 쏘지 못한다.
기습적으로 한두 마리는 쏠 수 있겠지만, 그 후에는 그 자신도 목숨을 내놓아야 한다. 그리고 화살을 쏜다고 해서 다 맞는 것도 아니다. 언제 어디서 어떤 화살이 날아오더라도 너끈히 피해낼 수 있어야만 진정한 호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만약 기습 화살에 맞아서 죽는다면 무인의 수명이 그것뿐이었던 것이다.
팽가촌은 안심할 수 있는 장소가 아니다.
팽가촌 역시 무림의 일부분이다. 본인 스스로 항시 긴장하고 경계해야 한다.
야간에는 형식적으로 동서남북에 경계 무인을 배치하지만, 주간에는 그마저도 없다.
팽가촌은 텅 비었다.
하지만 지켜보는 눈은 있다. 그곳이 석경산이라면 굴러떨어지는 돌멩이마저도 볼 수 있다.
그들은 제일 먼저 기괴하게 걷는 자를 봤다.
그는 숨지 않았다. 그러면서 누가 봐도 빤히 쳐다볼 수밖에 없는 걸음걸이, 억지로 쥐어짜듯 움직이는 것도 걷는 것은 걷는 것이니까, 그런 모습을 보면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뭐야? 지체장애?”
“아닌데… 그 범주를 넘어서.”
“석경(石硬) 수준이지?”
석경. 괴이한 움직임을 정확하게 표현한 말이다. 돌처럼 딱딱하게 굳은 몸을 억지로 움직이고 있다.
“사람이 태어나면서부터 저런 몸일 리는 없고… 저런 몸이었다면 돌아다닐 수도 없는 처지…….”
“중독인가?”
“그런 거 같아.”
“더군다나 저자는 산 위에서 내려왔어. 산 건너편에서 달려왔다는 거지.”
“저런 몸으로 움직이려면 죽을 맛일 텐데.”
“도와달라는 뜻이야. 저자의 움직임을 봐. 마을을 향해서 곧장 내려가고 있잖아. 옆으로는 눈길도 주지 않아. 돌덩이 굴러오듯 내리꽂히고 있어. 굴러서 무사할 수 있다면 백 번이라도 굴렀을걸?”
그들은 호가를 알아보지 못했다.
석경산 지하에 숨어서 세상이 돌아가는 모습을 지켜만 보는 자들이 천요루 점소이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들에게 호가는 독상을 당한 무인일 뿐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쫓기는 거야? 굉장히 다급해 보이는데.”
“쫓는 사람이… 있군.”
그제야 쏜살같이 뛰쳐 내려오는 두 사람이 눈에 띄었다.
두 눈을 부릅뜨게 만드는 환상적인 신법!
“뭐야!”
“누군지 찾아봐!”
“경고! 경고다!”
여기저기서 온갖 말이 우수수 쏟아져 나왔다.
산을 치달려 내려오는 두 사람의 신법이 굉장히 뛰어나다. 팽가 무인들 중에서도 저 정도의 신법을 쓸 수 있는 자는 몇 명 되지 않을 것 같다.
더군다나 그들은 외인이다.
낯선 자가 팽가촌 근처에 나타났으며, 도움을 절실히 바라는 자를 공격하고 있다.
“쌍겸구악!”
그들 중 한 명이 사총유인록(死塚遺人錄)에서 두 사람을 찾아냈다.
쌍겸구악의 병기는 한 쌍의 겸(鎌)이다. 사람을 찍는 낫이라고 하여 일명 인벽겸(人劈鎌)으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겸공(鎌功)은 사못 다르다. 너무 달라서 같은 무공처럼 보이지 않는다.
바지를 무릎까지 걷어 올린 자는 백살겸(白殺鎌), 손을 품에 찔러 넣고 있는 자는 흑마겸(黑魔鎌이다.
백마겸은 겸공에 각법(脚法)을 섞었다. 겸을 주시하면 각법이 터지고, 각법을 주시하면 겸이 살광을 토해낸다. 흑마겸은 음수(陰手), 암기를 섞었다. 암기 중에서도 세모미침을 특히 잘 쓰는데, 효과는 치명적이다. 고수라고 해도 한순간의 방심으로 유명을 달리한다.
“사총!”
“쌍겸구악!”
팽가촌이 발칵 뒤집힐 만한 사건이 일어났다.
뎅뎅뎅뎅뎅!
석경산 지하에서 시작된 종소리가 팽가촌을 지나쳐서 너른 들판으로 번져 갔다.
쒜엑! 퍼엉!
호가는 일초지적도 되지 못했다.
득달같이 쳐낸 일장이 등에 꽂히자 실 끊어진 연처럼 힘없이 나가떨어졌다.
후둑! 후둑! 드득!
호가는 땅에 쓰러진 후에도 꿈틀거렸다.
기괴한 모습이다. 뼈가 으스러지고, 내장이 흩어질 만한 충격인데, 그래도 일어서려고 꿈틀거린다.
“정말 요상한 술법이군.”
“청성파 말코 도사 놈들이 귀계(鬼界)까지 엿보는 건가?”
“흐흐흐! 귀신 앞에서 귀신 놀음이냐! 번데기 앞에서 주름을 잡아라. 흐흐!”
쌍겸구악이 득의의 웃음을 흘렸다.
호가를 잡았다.
그들이 한참 활동할 당시에는 아무것도 아닌 일이지만 오랜만에 수족을 놀리다 보니 이것도 뿌듯한 일이 되었다.
이제 숨통이 끊어졌는지 확실하게 확인을 한 다음, 시신만 치우면 된다.
짐작대로 팽가 무인들은 눈치채지 못했다. 팽가촌 지척에서 살인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른다. 그때,
뎅뎅뎅뎅뎅!
누가 들어도 급변을 알리는 종소리가 우렁차게 번져 나왔다.
소리의 울림은 땅속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들이 악! 소리도 지르기 전에 온 세상을 울렸다.
논에서 일하던 자들이 허리를 펴고 석경산을 쳐다본다. 밭에서 일하던 아낙들이 고개를 돌린다.
“제길! 어쩐지 너무 쉽더라니!”
“지하? 팽가 무인들이 지하에? 뭐야, 이건!”
“뭐든지간에 빨리 움직여야겠는걸!”
백살겸이 급히 일장을 내리찍었다.
퍼억!
머리에 일격을 당한 호가는 두개골이 으스러진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
“한 번 더!”
백살겸은 그래도 만족하지 못하고 발끝으로 명문혈(命門穴)을 힘껏 걷어찼다.
퍼억!
축 늘어진 몸뚱이가 일 장 밖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쉬익! 쒜에엑!
멀리서 팽가 무인들이 벌떼처럼 날아든다.
동구 밖에서 신형을 날린 자가 제일 빠르다. 그는 그 짧은 시간 동안에 팽가촌 안으로 들어섰다. 팽가촌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정고수가 틀림없다.
팽가 무인들이 메뚜기처럼 퍼덕거린다.
사방에서 분분히 날아오르는 모습이 가히 장관이다.
뎅뎅뎅뎅뎅!
종소리는 급박하게 울린다. 그리고 팽가 무인들은 정확하게 그들이 서 있는 곳으로 쏘아온다. 아마도 종소리가 사건이 일어난 장소까지 알려주는 듯하다.
“가지.”
“아니… 틀린 것 같은데.”
흑마겸의 말에 백살겸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팽가 무인들의 움직임을 면밀히 살폈다.
잠시라도 머뭇거릴 틈이 없지만 무엇인가 기분 나쁜 느낌이 머리끝을 잡아당겼다.
‘제길!’
느낌은 정확했다.
팽가 무인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그들 모두 석경산을 향해 달려오는 것 같지만 일부는 옆으로 빠지고 있다. 예정된 포위 계획에 따라서 천라지망(天羅地網)을 펼치고 있는 것이다.
팽가 무인들은 석경산을 중심으로 수십, 수백 번에 걸쳐서 포위 훈련을 했을 게다. 가상의 적이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수십 번에 걸쳐서 허점을 보완했을 게다.
바로 그 포위망이 가동되고 있다.
하지만 팽가 무인들은 임자를 잘못 만났다. 그들은 자신들이 누구를 포위하고 있는지 모를 게다. 과거에 이런 포위망 정도는 수십 번도 더 뚫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짐작도 못할 게다.
그물이 펼쳐지면 빠져나가는 방법은 딱 두 개뿐이다.
고기가 그물보다 작으면 유유히 빠져나간다. 이 말을 반대로 바꿀 수도 있다. 그물이 고기를 잡을 만큼 충분히 촘촘하지 않으면 쉽게 놓친다.
팽가 무인들의 포위망은 적어도 이 부분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들의 그물은 너무 촘촘해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숱한 세월에 걸쳐서 세밀하게 가다듬은 포위망이기 때문에 실수 같은 것을 바랄 수도 없다.
그렇다면 다음 수가 있다.
그물을 찢는 것이다.
물론 팽가 무인들의 그물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방비가 되어 있다. 상어의 이빨을 들이대도 찢기지 않을 만큼 서로 간의 연결 고리가 단단하다.
자, 여기서 승부다.
팽가 무인들의 고리가 질기면 잡힐 것이다. 쌍겸구악의 이빨이 날카로우면 빠져나갈 것이다.
쌍겸구악은 팽가 무인들의 포위망 따위는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
백살겸이 무릎을 가슴까지 차올리며 말했다.
“어쩔 수 없군.”
쌍겸구악은 늑대다. 수많은 먹이들 중에서 가장 약한 먹이를 본능적으로 감지해 낸다.
“저놈들은 바람막이군.”
“바람막이면 지켜주는 놈이 있겠지.”
“저 뒤, 사오 장쯤 뒤에 있잖아. 키 큰 놈.”
“바람막이를 지켜준다는 놈이 사오 장이나 떨어져 있어? 이런 일이 많이 있었던 건 아니군.”
“많이 있을 리 있겠어? 십 년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하겠지.”
바람막이로 동원된 자들은 무공이 깊지 못하다. 적은 인원으로 넓은 지형을 막아내려니 어쩔 수 없이 약한 자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게다.
하지만 팽가 무인들도 바람막이가 쉽게 뚫린다는 건 안다. 그래서 지키는 자를 배치했다.
지키는 자는 진정 강자다.
누군가가 바람막이를 향해서 달려들면, 재빨리 튀어나가 가로막을 만한 실력을 구비했다.
그가 오 장이라는 간격을 두고 뒤에 선 것은 그만큼 방어하는 공간이 넓다는 뜻이다.
팽가는 실수했다.
다른 자들에게는 이런 포위망이 먹힐지 몰라도 쌍겸구악에게는 어림없다.
먹이를 찾아냈다.
그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병약한 먹이가 눈에 띄었는데 먹지 않을 리 있겠나. 그러나 먹이를 동요하게 만들면 안 된다. 당하는 순간까지 아무것도 몰라야 한다.
스스스스!
그들은 은밀히 움직였다.
쒜엑!
바람 소리가 울린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낯선 바람 소리다. 느낌도 좋지 않다. 바람 소리를 듣는 순간, 등줄기에 소름이 쫘악 끼친다.
‘뭐……?’
바람 소리가 들린 곳으로 고개를 돌린 순간,
쒜엑!
또 한 번 바람 소리가 일었다.
그는 키 작은 사내를 봤다.
이마에 붙은 검붉은 혹, 사이할 정도로 크고 검은 눈!
퍽!
갑자기 눈에서 불이 번쩍 튀었다.
‘뭐지?’
“엇!”
그는 깡마른 사내를 보았다.
언제 어디서 나타난 자일까? 하늘에서 뚝 떨어져 내렸을까? 분명히 아무도 보이지 않았는데, 어떻게 나타난 거지?
의문을 추스를 사이도 없었다.
품 안에 넣고 있던 손이 쑥 빠져나왔다. 순간,
퍼억!
“악!”
그는 자신이 무슨 소리를 질렀는지도 알지 못했다. 몸이 시키는 대로 외마디 단말마를 내지른 후, 뒤로 벌렁 쓰러졌다.
쒜엑!
건곤연환탈백도(乾坤連環奪魄刀)가 두 괴인을 향해 쏘아졌다.
놈들은 강하다. 아주 강하다.
놈들이 다가올 때까지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느닷없이 급습해서 두 명을 죽였다. 장난이라도 하듯이 손쉽게 제쳐 버렸다.
‘최선을 다해야 해!’
그는 전력을 다해서 건곤연환탈백도를 펼쳤다.
이들과 승부를 결할 필요는 없다. 자신의 역할은 걸음을 멈춰 세우는 데 있다. 다른 사람들이 다가올 때까지 도주하지 못하도록 잡아두기만 하면 성공이다.
그렇다고 허투로 상대할 생각은 버려야 한다.
상대는 죽을힘을 다해서 공격해 올 것이다.
자신을 제쳐야만 포위망을 뚫는다. 그 점을 알고 있는 자들이 허술하게 공격해 올 리 없다. 지금 펼치는 이 도법이 마지막 도법이 될 수도 있다. 그런데!
“훗!”
그는 건곤연환탈백도를 펼치다 말고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섰다.
두 괴인이 그를 상대하지 않고 좌우로 쫙 갈라졌다. 그리고 쏜살같이 치달렸다.
“이런!”
그는 낭패한 표정으로 달아나는 두 괴인을 멀뚱멀뚱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을 쫓아간다 해도 따라잡을 자신이 없다.
초수를 섞었다면 어땠을까? 자신이 당했을 게다. 한두 수 만에 당하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결국은 당하고 말았으리라. 물론 그 시간이면 팽가 무인들이 주위를 에워싸기에 충분하지만.
저들은 그런 점까지 계산했다.
두 명을 치는 시간, 자신이 달려드는 시간을 면밀히 계산했다. 자신을 상대할 때 소요될 시간과 피할 때 소요되는 시간도 계산했을 것이다. 만약 자신을 베어 넘겨도 시간이 남는다 싶었으면 틀림없이 베고 지나갔을 자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