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61
61
쒜엑! 따악!
“컥!”
뭐가 어떻게 된 일인지 모르겠다. 눈앞에서 말을 하던 사내가 갑자기 사라졌다 싶은 순간, 몽둥이로 뼈를 부수는 듯한 소리가 나더니 혈족 한 명이 풀썩 꼬꾸라진다.
“천… 마!”
“눈깔 하나는 뒈지게 밝네. 한눈에 알아본다 이거지?”
“네놈이 감히!”
“감히? 하하하! 감히? 이것들이 정말!”
쒜엑! 따악!
백살겸을 알아본 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무너졌다.
가산 지하에서 무림 정세를 논하던 문인(文人)들은 백살겸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권각법 정도로는 일초조차도 받아내지 못했다.
그들이 몰살당하는 건 시간문제였다.
“후후후! 숨는다 이거지.”
백살겸은 어둠 속을 노려보며 하얀 이를 드러냈다.
무공을 모르는 문인들이라지만 사람을 죽이는 맛은 다를 바 없다.
오랜만에 피를 흠뻑 마신다.
하북팽가의 지척에서,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서, 땅속만 아니라면 소리만 질러도 들을 수 있는 곳에서, 그들의 자식이며 형제이며 부모들을 도륙한다.
그 맛이 아주 좋다.
피할 곳이 없는 생쥐들은 구석구석으로 숨는 수밖에 없다.
그들은 숨었다. 처음에는 저항 비슷한 것이라도 했는데, 이제는 아예 꽁꽁 숨어버렸다.
그런데 그들은 알까? 그들이 숨어 있을 만한 곳들 또한 두루마리 도면 속에 그려져 있다는 것을.
그는 아무것도 없는 벽에 손을 댔다.
‘횃불 옆, 맨질맨질한 손자국.’
도면에 그려진 밀실이 있는 곳이다.
그그긍!
돌벽이 옆으로 밀리면서 밀실이 드러났다.
그곳에 칼을 든 채 바들바들 떨고 있는 어린아이가 보였다.
“몇 살이냐.”
“주, 죽엿!”
“죽일 거니까 서둘지 말고… 몇 살이냐?”
“열, 열셋이다!”
“이곳에 온 지는 얼마나 됐냐?”
“자, 작년에 왔다!”
어린아이는 바락바락 악을 쓰면서도 묻는 말에 순순히 대답했다.
대답을 잘하면 혹여 살려줄지도 모른다는 바람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대범하게 죽이라는 말을 하지만 내심으로는 살고 싶은 욕구가 강렬한 게다.
하기는 이제 겨우 열셋 아닌가. 죽음을 감당하기에는 너무 어린 나이 아닌가.
“작년에 들어왔다면 열둘……. 그렇군. 팽가는 그 나이에 재능을 가늠해 내는군.”
“주, 죽여랏!”
이 말은 잘못되었다.
아이는 묻는 대로 다 말했으니 제발 살려달라고 호소하는 게다.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살심이 굳어질 것 같으니까 애처롭게 애원을 하고 있는 것이다.
��! 따악!
지극히 짧은 파공음이 격타음으로 이어졌다.
단철각, 그리고 파열된 머리!
백살겸은 애병을 꺼내지 않았다. 이런 무공도 모르는 무지렁이들을 죽이는데 굳이 인벽겸까지 꺼낼 필요가 없다. 사실 사람을 죽이는 맛은 뭐니뭐니해도 발로 짓밟아 죽이는 게 제일 짜릿하다. 흑마겸 처럼 음수를 즐기는 놈은 다른 소리를 하겠지만.
백살겸은 아이를 쳐다봤다.
머리가 깨져 죽은 아이는 죽음의 순간조차 알아채지 못했다. 죽음이 너무 빨라서 죽음의 경계로 넘어서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흐흐흐! 그래도 옛날에는 이런 아이까지 죽이지는 않았는데… 그래도 어쩔 수 없지. 한 놈이라도 살아 있으면 곤란하니까.’
다른 밀실에 숨은 자들은 아이의 발악 소리를 들었을 게다. 하지만 나오지 않는다. 숨소리도 내지 않는다. 조용히 숨어서 자신에게만은 어둠이 덮쳐 오지 않기를 바라고 있다.
그들은 죽음을 예견한다.
밀실 한 곳이 열렸다는 건 다른 곳도 열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찌 된 영문인지는 모르지만 쌍겸구악이 암동의 구조를 샅샅이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죽음을 피할 수 없다.
그래도 그들은 움직이지 않는다. 모든 게 노출되었지만 순간적인 착각이라는 게 있지 않은가. 백살겸이 착각을 해서 자신이 숨어 있는 밀실만은 열리지 않을 것을 희망하고 있다.
움직여 봤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 그들이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별로 없었다.
그르릉!
또 하나의 밀실이 열렸다.
흑마겸은 미간을 찌푸렸다.
앞쪽에서 뜨거운 불길이 쏟아져 들어가고 있는데, 어찌 된 영문인지 튀어나오는 인간이 없다.
입구가 두 개다. 그중 하나에 죽음의 사신이 들어섰다. 다짜고짜 눈에 띄는 모든 사람을 죽여 나간다.
문인들은 뒷문으로 탈출해야 마땅하다.
한데 그런 뛰쳐나오는 사람들이 없다.
죽음이 일어나고 있는 건 분명한데, 어느 한 명도 그가 있는 곳으로 기어나오는 사람이 없다.
‘이놈들…….’
등줄기가 서늘해진다.
문인들은 뒷문으로 빠져나와도 살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 그렇기에 앉은 자리에서 죽는 것이다. 약간의 기대라도 걸고 뛰쳐나올 법한데, 그런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너무나도 확실하게 뒷문의 함정을 예견한다.
뒷문에서 가느니 차라리 앉은 자리에서 삶을 도모하는 게 낫다.
이것이 저들의 판단이다.
저들은 자신들의 생각이 맞는지 시험조차 해보지 않는다.
뒷문을 지키는 자가 없을지도 모르지 않나. 앉아서 죽느니 한두 명 정도는 뒤쪽으로 보내볼 법도 하지 않은가. 자신들의 머리만 믿고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다는 건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다.
‘한 놈도 기어나오지 않는다는 건… 지독한 놈들! 앉아서 죽겠다는 말이냐. 앉아 있어도 죽고 뒤로 빠져도 죽는다. 이럴 때는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게 사람의 본능인데… 아무래도 좋지 않아. 이놈들을 치는 게 아니었어.’
가모는 왜 하찮은 문인들을 제거하려는 것일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무언가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것에 뒤통수를 맞고 있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가모… 어차피 이용당하려고 나왔으니까 실컷 이용하되…… 후후! 대가는 확실하게 지불해야 할 거야. 만약 지불하지 않는다면 후후! 후후후!’
흑마겸은 아무도 기어나오지 않는 동혈을 쳐다보면서 섬뜩한 살소를 베어 물었다.
하북팽가의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간다.
저들의 존재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문파는 거의 없다. 하북팽가와 원수지간인 문파들도 저들에게는 눈길을 돌리지 않는다.
하지만 저들은 매우 중요하다.
하북팽가에서 일어나는 크고 작은 모든 일들이 저들의 머릿속에서 정리된다.
저들은 발언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판단한 내용을 말하기만 할 뿐, 받아들이는 문제는 듣는 사람의 마음에 맡긴다.
일의 중심에 서지 않고, 옆에서 보좌만 해준다.
아무런 권력도 바라지 않고, 오로지 자신들도 가문에 일조할 수 있다는 자부심 하나만으로 살아간다. 따뜻한 말 한마디,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만 들으면 만족한다.
그렇기에 저들의 말을 무시하는 사람은 없다.
가주나 팽가오로조차도 무슨 일을 결정할 때면 늘 저들의 말부터 듣는다.
저들이 금화산 금검문을 뒤지기 시작했다.
이미 잊혀 버린 십 년 전의 일들을 캐기 시작했다. 아니, 그보다 훨씬 전의 일들을 캐묻는다.
지금은 겉으로 드러난 게 아무것도 없다.
겉 표면을 살짝 긁었다고 드러날 정도라면 십 년 전에 이미 드러났을 게다.
금검문 사건은 땅속 깊이 묻혀 있다.
그런데 저들이 그 일을 들춰내고 있다. 지금은 묻혀 있지만, 저들의 집착이라면 결국은 캐내고 말 것이다.
난감한 문제였다.
세상 끝에 묻어두었던 것이 드러나면 십 년의 고역을 내팽개치고 훌훌 떠나 버리면 그만이다.
그것으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북팽가는 수모를 당했다는 치욕감에 이를 갈겠지만, 자신을 찾을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마무리 지을 수 없다.
그녀에게 검소함이나 검박함은 뜨겁게 달군 인두로 허벅지를 지지는 것보다 더 큰 고역이다. 근검절약이 몸에 배인 곳에서 산다는 것은 지옥 불에 떨어진 것과 같다.
십 년이라는 세월을 그런 고통 속에서 보냈다.
그러니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절대로!
지하 문인들의 눈과 귀를 어떻게 가린다? 어떻게 해야 금화산 금검문에 꽂혀 있는 이들의 시선을 떼어낸다?
마침 이럴 때 쌍겸구악이 드러났다.
그들을 부를 때는 이렇게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보니 아주 좋다. 이들을 이렇게 써먹는 것이 아껴두는 것보다 훨씬 낫다.
그들에게 검치를 상대시키려고 했었다.
아니,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다. 닭 잡는 칼을 황소에게 들이밀어서 어쩌겠다는 건가. 쌍겸구악 같은 자들은 검치의 발가락도 건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검치에게서 한 수, 두 수 정도 배운 자들은 상대할 수 있지 않겠나.
자식 놈…… 천요루주가 그런 놈이다.
나중에, 결정적으로 놈과 생사를 놓고 싸워야 할 때, 지금 놈의 성취도로 보면 십검 중 일이 검 정도 배운 것 같고, 쌍겸구악과 좋은 승부를 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자신에게는 어느 쪽이 이겨도 상관없는 싸움이다.
그러려고 했는데 그때까지 아껴둘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왕 꺼내 쓰기로 한 사람들이니 크고 작은 일을 가릴 필요가 없이 닥치는 대로 써먹는 게 좋겠다.
‘내가 생각한 쌍겸구악이 아냐. 예전의 쌍겸구악이라면 하북팽가 정도는 쥐락펴락 할 수 있었을 것. 이들에게 쩔쩔맨다는 건 그때 내상을 심하게 입었다는 뜻이겠지. 십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회복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내상……. 하기는 그런 부상을 입었을망정 죽지 않은 게 요행이지.’
가모는 소리없는 비명을 들었다.
가산은 피로 얼룩져 간다.
겉으로는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실바람이 스치고 지나가지만, 땅거죽만 들춰내면 핏물이 내가 되어 흐르고 있을 것이다.
저들이 죽고, 금화산도 묻힌다.
하북팽가와 쌍겸구악은 철천지원수가 되겠지만 그거야 예전인들 안 그랬나. 이런 일이 없었어도 그들은 같은 하늘을 이고 살지 못할 사람들이다.
쌍겸구악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살인을 저지르고 있는 것도 십 년 전의 부채가 크게 작용했으리라.
그녀는 속으로 웃었다.
‘호호호! 잘들 해봐.’
제18장 잠룡(潛龍)과 이무기
1
팽효기와 호가의 교환.
가주와 팽가오로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사단에 기가 막혀 말도 잇지 못했다.
“효기가… 잡혔단 말인가? 생포되었다는 소리야?”
“그렇습니다.”
팽청치의 싸늘한 얼굴이 더욱 차게 굳었다.
“자네!”
팽가일로가 뭔가 말하려고 할 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는가?”
팽가삼로가 불쑥 말했다.
팽청치는 미간을 찌푸리면서 신중하게 생각했다.
팽가일로는 백발에 온화한 인상을 지녔다. 성품도 너그럽다. 증손자, 고손자가 잘못하는 일이 있어도 껄껄 웃으며 흘려 넘긴다. 혹여 지도(指導)라도 청해오면 두 팔 걷어붙이고 도와준다.
팽가촌 어린애들이 가장 좋아하는 할아버지다.
팽가이로 역시 그리 어렵지 않다.
팽가이로는 무인이라기보다는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는 게 더 바람직했던 사람이다.
둘째 형은 무공을 그런 식으로 생각한다.
불교로 따지면 소승. 내 스스로 천하제일이라고 말할 수 없는데, 즉 깨우침을 얻지 못했는데 누구를 지도하고 가르칠 수 있냐고 말한다.
그래서 둘째 형은 침묵하는 순간이 가장 많다.
반면에 팽가삼로는 성격이 메마르다. 잘 웃지 않고, 웃어도 반드시 뜻을 담고 있다. 지모가 뛰어나고, 정에 흔들리지 않으며, 가문을 최우선적으로 생각한다.
팽가삼로는 늘 말을 듣기만 한다.
팽청치는 맏형보다도 셋째 형이 언제나 어려웠다.
그것은 나이가 환갑을 넘긴 지금도 마찬가지다. 말을 하지 않을 때는 존재 자체를 잊고 있다가도 한마디씩 불쑥 던질 때는 말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는가?
삼형(三兄)은 효기가 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전력을 다했다면 적어도 평수(平手) 정도는 나왔을 것이라고 판단한다.
정확한 안목이다.
팽청치는 잠시 루주와 팽효기의 싸움을 생각했다.
철혈적성도는 약하지 않다.
검치의 십검이라면 몰라도 제자 되는 놈의 일 검이나 이 검 정도를 막지 못할 정도로 약한 무공이 아니다.
팽효기도 강하다. 허명만 높인 허수아비 무인이 아니다.
천요루주의 검을 정확하게 읽었고, 맞받아쳤다. 첫 번째 검과 두 번째 검의 흐름을 누구보다도 자세히 꿰뚫어 봤다.
그런데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팽효기가 실전에서 들었던 강도는 도의 명가인 팽가에서는 하병(下兵)으로 취급하여 손대는 사람조차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