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68
68
월아와 주설언.
두 여인의 등장은 여러 사람을 놀라게 했다.
맹삼력은 월아만 있을 줄 알았다.
팽가연과 비연사도는 루주와 말을 나누기 전까지만 해도 인질 같은 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오직 루주만이 두 사람을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정말 놀랄 일은 그다음에 벌어졌다.
“납치한 사람이 누구야?”
“그 사람이요. 팽효뢰.”
“그렇군.”
팽효뢰!
월아의 입에서 둘째 오라버니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더욱 놀라운 점은 루주와 맹삼력은 이런 놀라운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가.
그러나 그것도 이어지는 놀라움에 비하면 별것 아니었다.
“고생했어.”
“미안해요.”
“널 납치한 사람…….”
“납치는 이 사람들이 했는데, 나중에 가모를 만났어요.”
“그렇군. 대충 짐작은 하고 있었어. 하하! 그런 말을 들으니 더 미안해지는걸.”
이들이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지?
팽가연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성녀나 다름없는 어머니가 한낱 기녀를 납치해? 그것도 쌍겸구악을 시켜서?
천지가 뒤집힐 노릇이다.
이 일은 아주 신중해야 한다. 정확하고, 세밀하게 진상조사를 해야 한다.
팽가연의 표정은 납덩이를 달아놓은 듯 무거웠다.
비연사도 역시 일의 중함을 알기 때문에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했다. 다른 때 같으면 농담 몇 마디라도 했겠지만 지금은 오직 긴장만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요. 염려 마세요.”
비연사도가 금배대도를 뽑아 들고 사방 경계에 나섰다.
“이놈아, 이쪽은 네가 잘 지켜야 돼!”
맹삼력은 후문에 흑풍을 배치했다.
흑풍은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운농선생을 만나지 않았다면 한 시진을 넘기지 못하고 절명했을 게다.
루주가 치료법을 알려주기는 했지만 개복을 하고, 심장을 찾아내고, 피로 물든 심장에서 깨알만 한 솜가시를 찾아내는 건 무공으로 해결할 일이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쌍겸구악과의 싸움이 의외로 일찍 끝났다. 또 부상자도 속출했다. 루주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고, 백살겸은 다리 하나가 잘렸다.
팽가연은 가의(家醫)나 다름없는 운농선생을 즉시 찾았고, 그 덕분에 흑풍까지 치료받을 수 있었다.
비연사도가 사방을 경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만, 그래도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 싶어서 흑풍까지 배치했다.
컹! 컹!
흑풍이 말귀를 알아듣고 크게 짖었다.
“자식, 움직이지도 못하는 놈이 목청만 커서…….”
맹삼력은 흑풍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루주가 독상당했다는 소문은 곧 퍼질 것이다.
비밀보장을 신신당부해 놨지만, 그래도 어느 입에서인가 발설되기 시작해서, 온 천하가 다 알게 된다.
그럴 경우 제일 먼저 회자수의 복수가 염려된다. 루주에게 기루를 빼앗겼던 홍독사도 달려들 수 있다.
그런 피라미들은 자신이 충분히 처리할 수 있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염려되는 것은 모순되게도 하북팽가다.
루주에게 검을 들이댄 살수들, 하북팽가에서 고용한 자들이다.
쌍겸구악, 하북팽가에 동조자가 있다.
루주의 상태는 아무래도 비밀로 하는 것이 좋다.
“잘 지켜, 인마! 난 들어가 볼 테니까.”
그는 흑풍의 머리를 세게 문지른 후, 일어섰다.
네 사람이 한자리에 둘러앉았다.
맹삼력, 팽가연, 그리고 뇌옥이나 다름없는 동굴에 갇혔다가 풀려난 월아와 주설언이다.
두 여인의 표정은 몹시 불안해 보였다.
루주가 치료를 받는 중이기 때문에 마음을 평온하게 가라앉히지 못하는 것 같다.
“시간이 꽤 걸리네요?”
주설언이 손톱을 깨물며 말했다.
“사람 배를 생으로 찢는 건데 쉽겠어? 너무 염려 마. 운농선생은 하북제일의야.”
“그렇지만 솜가시와 단장독에 당했는데…….”
“그렇게 염려한다고 죽을 사람이 살고, 살 사람이 죽지 않아. 지금은 운농선생을 믿는 게 최선이야.”
“그건 알지만…….”
주설언이 너무 불안해 보여서 도저히 대화를 이끌 수 없었다.
팽가연은 월아부터 건드리기로 생각을 바꿨다.
“어떤 일을 겪었는지 빠짐없이 말해봐.”
“지금은 안 돼요.”
월아가 냉정하게 거절했다.
“아까 넌 엄청난 이야기를 했어. 그런데도 말하지 않겠다는 건가? 음모 같으면 이 자리에서 죽일 수도 있어!”
팽가연의 눈빛에 살기가 어렸다.
두 여인은 가모와 팽효뢰 오라버니를 쌍겸구악과 연결시켰다. 사마 무리와 한통속이라고 말했다. 이보다 더 큰 음모는 없다. 이보다 더 악질적인 모략은 없다.
제대로 말을 하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을 생각이다.
월아가 팽가연의 표정을 읽고, 차분히 말했다.
“그래서 지금은 안 된다는 거예요. 아씨, 아씨는 사실을 감당하지 못해요. 제가 사실대로 말한다면… 어쩌면 우릴 모두 죽일지도 모르잖아요. 루주의 치료가 끝나면, 루주께서 정신을 차리시면 그때 말씀 올리죠. 그래 봤자 하루 상관이에요.”
팽가연은 눈가에 짙은 어둠이 깔렸다.
이 말은 아까 산에서 들은 말이 사실이라는 뜻이지 않나. 가모와 오라버니가 팽가 식솔을 무참하게 살해한 쌍겸구악과 한통속이라면 이를 어찌할까.
팽가연은 월아의 말대로 정말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두 사람은 팽가의 적이 된다.
쌍겸구악이 하수인이고, 그들이 주범이다.
팽가를 떠나올 때 모두들 같은 소리를 했다. 팽가에 동조자가 있다고. 그렇지 않고는 그토록 세밀하게 지하 암동을 타격할 수 없다고. 밀실에 숨어 있는 사람들을 모두 찾아낼 수 없다고.
그 말을 믿지 않았거늘.
“아……!”
그녀의 입에서 깊은 한숨이 쏟아져 나왔다.
루주는 운농선생의 말대로 꼬박 하루를 잠으로 보냈다.
개복을 해서 솜가시를 뽑아냈다. 혈액 속에 풀어진 단장독을 해독시켰다. 그리고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서 장기를 일시 경화(硬化)시켜 놨다.
장기는 돌처럼 단단해져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천공되는 일도 없다. 약효는 하루나 이틀 정도? 시간이 지나면서 경화가 풀어지니 걱정할 것 없다.
다만 극통은 면하지 못한다.
장기가 경화되면 체한 것 같은 통증, 장염에 걸린 것 같은 통증이 아주 심하게 몰아친다. 어지간히 참을성이 강하다는 사람도 비명을 지르면서 데굴데굴 구를 정도로 아픔이 심하다.
운농선생은 약을 달였다.
“이것만 먹으면 통증이 가시는 거유?”
“통증이야 가시지.”
“그럼 뭐가 또 있소?”
“회복이 늦어져.”
“말씀하신 정도의 아픔이라면 회복 좀 늦어진다고 대수요. 아휴! 생각만 해도 끔찍하네.”
운농선생이 맹삼력을 힐끔 쳐다봤다.
“농담은 아닌 것 같고. 그것참 희한하네. 칼에 맞는 걸 다반사로 여기는 사람이 배 아픈 걸 참지 못해서 끔찍하다니. 허허! 칼 맞는 것보다 배 아픈 게 더 아픈 것이었군. 자네 덕분에 오늘 몰랐던 거 배웠네.”
“거 놀리지 마쇼.”
맹삼력이 툴툴 거렸다. 그때,
“깨어났어요! 깨어나셨어요!”
주설언이 방문을 활짝 열며 세상이 떠나가라 고함쳤다.
그녀에게는 루주의 회복이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기쁨인 것처럼 보였다.
모두들 방으로 들어섰다.
“괜찮아?”
루주는 고개만 끄덕였다.
얼마나 힘들었으면 입술이 바짝 말라 버렸다.
“이거 마시게. 통증이 좀 가라앉을 게야.”
운농선생이 약사발을 내밀었다.
루주는 고개를 저었다.
“참아도 되는 거라고 하셨으니, 참아보겠습니다.”
“그러게나.”
운농선생이 약사발을 루주 곁에 놓고 밖으로 나갔다.
그는 팽가연의 얼굴에서 초조한 기색을 읽었다. 무엇 때문에 초조해하는지는 알 수 없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비연사도가 꼬박 밤을 새워가며 바깥 경계를 하는 것으로 보면 굉장히 심각한 일인 것 같다.
이럴 때는 눈치껏 피해주는 게 상책이다.
운농선생이 밖으로 나가자 방 안 분위기는 그 어느 때보다도 딱딱해졌다.
“왜들 그래?”
루주가 사람들을 돌아보며 물었다.
“팽 소저께서 사실을 알고 싶어 하시는데…….”
맹삼력이 말끝을 흐렸다.
사실대로 말하면 사건의 파장이 너무 커진다. 하북팽가가 발칵 뒤집힐 사건이며, 하북팽가의 입장 정리에 따라서는 오히려 루주 쪽을 칠 수도 있다.
루주는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 말했다.
“말해. 모두.”
“루주, 그러다가…….”
월아가 마차를 타고 하북팽가를 찾아갔던 사건이 떠오른 듯 주춤거렸다.
당시, 루주는 팽효문에게 등짝 열 대를 얻어맞았다.
루주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가볍게 말했다.
“말해줘.”
말은 양쪽 모두에게서 들어봐야 한다. 한쪽의 일방적인 말만 듣고는 사실 여부를 정확하게 판단하지 못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이건 너무하다.
오라버니가 파락호들을 죽였다. 월담을 하고, 기녀 한 명을 쟁취하기 위해서 불을 질렀다. 물론 월아와 함께 있던 기녀들도 살아남지 못했고.
거기까지만 해도 무인이 범해서는 안 될 중죄인데, 쌍겸구악과 인연을 맺는다.
오라버니는 월아를 악마들에게 인계한 후, 태연히 팽가촌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 무공 수련도 하고, 책도 읽으며, 농사일도 거든다.
가모는 더 심하다.
주설언은 납치된 즉시 가모를 만났다고 했다. 가모가 한 말, 행동, 표정 변화까지 상세하게 말했다.
거짓이 아니다.
그 두 사람이 뒷산 암동 사건에 깊이 간여했다.
그 두 사람이 호가를 죽이려고 했고, 그런 와중에 팽가 무인 두 명이 격살당했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아버지? 아버지에게 먼저 말해야 하나? 아니면 사실 관계를 조금 더 확인해 봐야 하나.
그녀는 좀처럼 갈피를 잡지 못했다.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
“으음!”
루주가 이를 꽉 깨물었다.
복부에서 치미는 고통이 상상 이상인지 이마에서는 굵은 땀이 쉴 새 없이 흘러내렸다.
“너무 아프면 참지 마세요.”
주설언이 옆에서 젖은 물수건으로 이마를 닦아주며 말했다.
팽가연은 문기둥에 등을 기대고 서서 메마른 음성으로 말했다.
“어머님을 건드린 이유가 뭐야?”
“으음!”
루주는 신음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마부에게 물어보니까 모른다고 해서. 모두가 말렸는데 루주가 혼자서 저지른 일이라며? 처음부터 어머니를 노렸던 거야? 아니면 오라버니도 관계있는 거야?”
‘어머니.’
루주는 금방이라도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소리를 꾹 눌러 삼켰다.
“팽효뢰는 상관없다. 이용만 했을 뿐이야.”
“어머니를 노린 거네?”
“…….”
“그 외에 사람은 관계없고?”
“관계없다.”
“좋아. 무슨 사연이 있겠지. 물어봤자 말해주지 않을 것 같아서 묻지 않아. 두 사람이 서로 좋지 않은 관계인 것 같은데, 왜 그렇게 싸워? 한적한 곳에서 만나가지고 결판을 내면 안 돼?”
“안 돼.”
“안 돼? 그런 수도 있구나. 서로 원수지간처럼 보이는데 싸우면 안 된다……. 세상에는 그런 관계도 있네?”
“…….”
“하나만 더. 그때 월아가 입은 상처는 팽가 무공이었어. 할아버지가 직접 확인했으니 부인하지 못해. 월아는 그 상처를 루주가 만들었다고 하던데… 팽가 무공… 어디서 배운 거야?”
“훔쳐 배웠다.”
루주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남의 문파의 무공을 훔쳐 배우는 것은 목숨으로 갚아야 할 정도로 위험한 행동이다. 그런 경우는 정도나 사도를 막론하고 용서하는 문파가 없다.
루주는 그런 말을 태연히 한다.
“훔쳐 배웠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아. 팽가 무공은 지켜본다고 배워질 수 있는 게 아냐.”
“돼지를 분석했다.”
“돼지? 아! 그렇구나.”
팽가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시종일관 힘없는 말투로 말했다. 문기둥에 등을 기대고 선 모습도 세상을 달관한 듯한 태도였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그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일은 없어 보였다.
그녀가 말했다.
“돼지를 분석했다면… 무공을 훔쳐 배운 게 아니라 타격 부위만 분석한 거네.”
“그거면 충분하니까.”
“훗! 앞으로는 돼지도 함부로 치지 못하겠어.”
그녀의 눈빛이 공허해 보였다.
하북팽가 무인들은 권격(拳擊) 수련에 돼지를 사용한다.
초보적일 때는 목각(木脚)을 쓰다가, 능숙해지면 죽은 돼지를 격타한다.
살을 때리는 감촉을 익히기 위해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