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7
7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 기루의 잡배에 불과한 자일지라도 싸움을 아는 놈이니 방심하면 안 된다.
그런데 천요루주는 순순히 무릎을 꿇었다.
이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팽효문이 무엇을 할지 익히 예상된다. 그런 마당에 누군들 억울하기 짝이 없는 공매를 순순히 맞겠는가.
천요루주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눈을 감았다.
“저 아이가 고통을 호소했다고 했느냐!”
가모의 추궁이 시작되었다.
“그렇습니다.”
“그래서 추궁과혈을 해줄 수밖에 없었다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추궁과혈을 하느라고 예도 차리지 못했고?”
“그렇습니다.”
“넌 예의도 차리지 못할 정도로 다급한 환자를 마차에 실어왔다. 저 여인이 괴로워도 상관없다는 게냐! 고통보다 금전에 대한 욕심이 앞서더냐!”
말도 안 되는 꼬투리다. 억지로 갖다 붙인 이유다.
지금이라도 물러갈 수 있다. 이제 그만 물러가겠다는 의사 표시만 한다면…….
루주의 입꼬리가 비틀린다.
두 사람은 서로의 의중을 확인했다.
‘끝을 봐야 끝나겠어.’
루주가 담담한 음성으로 말했다.
“제가 잘못했군요.”
“저 아이의 고통을 느껴봐라. 닷 대!”
가모도 담담하게 말했다.
이제 격동은 필요없다. 옛 기억도, 추억도 지워 버린다. 혈육의 애잔함도 잊는다. 복수의 칼을 든 자와 방어하는 자만 남는다.
‘그래, 네가 준비한 수… 써봐라. 재롱을 떨어봐. 뭘 하려는지 구경이나 해보자꾸나. 호호!’
가모의 말에 목도를 들고 있는 팽효문이 움찔했다. 정말 닷 대를 때리느냐고 눈으로 물었다.
가모는 감정이 개입되지 않은 딱딱한 표정으로 재촉했다.
어서 때려!
이건 너무 심하지 않나. 잘못한 것은 팽효뢰이지 이자가 아니지 않은가. 억지. 가모가 따귀를 때리면서 하는 말도 억지고 죄를 묻는 것도 억지다.
하지만 팽효문은 목도를 들었다.
“뼈마디 부러지지 않게 잘 맞아라.”
“…….”
천요루주는 대답하지 않았다. 눈을 감은 채 묵묵히 매를 기다렸다.
쒜엑! 따악!
목도가 등짝에 작렬했다.
루주는 고통스러운 듯 얼굴을 찡그렸다. 상반신을 휘청거렸고, 두 손으로 땅을 짚기까지 했다.
진기를 가미하지는 않았지만 목도 자체가 상당한 타격을 준다.
‘이왕 맞을 바에는…….’
쒜엑! 따악! 쒜엑! 딱! 쒜엑!
팽효문은 남은 네 대를 연달아 후려쳤다.
“꺼억!”
루주가 격한 신음을 토해냈다.
그는 철인(鐵人)이 아니었다. 살과 피로 이루어진 인간이었다. 도법으로 다져진 하북팽가 무인의 목도를 맨몸으로 받아내기에는 무리일 수밖에 없다.
가모는 그것으로 끝내지 않았다.
“벌써 소문이 번졌다고 했느냐!”
“그렇습니다.”
“루주로서 손님을 어떻게 챙긴 것이냐! 기본이 은자 석 냥이라! 호호호! 그만한 대가를 지불하고 술을 마실 정도라면 자잘한 실수쯤은 감싸줄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거늘!”
“말씀을 듣고 보니 그것도 제가 잘못했군요.”
천요루주는 약간 허리를 굽혀서 등을 댔다.
“닷 대.”
“가모.”
팽효문이 불가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때리지 않으면 모를까, 일단 목도를 들어 올리면 죄를 다스리는 심정으로 내려친다.
거기에는 일말의 사정도 담기지 않는다.
먼저 때린 다섯 대로 루주의 등짝은 해질 대로 해져 버렸다. 살이 찢어져서 피가 흘렀다. 뼈와 근육에 받은 충격도 한 달 동안은 정양을 해야 할 정도로 중하다.
팽가 무인에게 목도와 살도(殺刀)를 구분한다는 건 의미없다.
“닷 대!”
가모가 싸늘하게 일갈했다.
“다섯 대를 한 대처럼 맞아라. 그럼 조금은 나을 터이니.”
팽효문은 말을 하면서도 이자가 과연 자신의 말을 알아들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무인은 상처를 입는 경우가 다반사다. 가벼운 경상에서부터 움직일 수 없을 정도의 중상까지 다양한 상처가 기다린다. 그리고 그런 상태에서도 싸워야 할 때가 있다.
어떻게 할 것인가?
무조건 이겨내야 한다. 신경을 분산시켜도 좋고, 육제를 망각하는 방법도 좋고, 집념(執念) 같은 정신적인 문제에 몰입하는 것도 좋은 방편이다.
아픔을 망각해야 한다.
팽효문은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빨리 때려주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쌕! 따악! 쒜엑! 따악! ��!
다섯 대가 순식간에 터졌다.
“끄으으으윽!”
루주는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지르며 허리를 숙였다. 목도가 작렬할 때마다 한 치씩 숙여갔다.
마지막 다섯 대가 떨어졌을 때, 루주는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땅에 머리를 처박고 말았다.
살이 부들부들 떨린다. 손끝이 파르르 떨린다. 하반신은 경련이 일어나는지 풀썩거린다. 입고 있는 옷은 붉은 물감을 들여놓은 듯 시뻘겋다.
그래도 가모의 음성은 냉랭했다.
“할 말이 있느냐?”
이 순간만큼은, 천요루주를 만나는 순간만큼은 인자함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외상값을 주시겠습니까?”
천요루주는 어느새 평온을 되찾았다. 무심한 표정, 딱딱한 어조. 등에서 치미는 고통을 참느라고 이마에 핏발이 섰지만 겉으로 내색하지는 않았다.
이번에는 가모도 트집을 잡지 않았다. 이 정도면 됐다는 듯이 고개를 까닥거렸다.
팽효문이 품에서 작은 전낭(錢囊)을 꺼내 홱 던졌다.
천요루주가 떨어지는 전낭을 낚아챈 후 마부에게 건네주었다.
“확인!”
어처구니없는 말이 루주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토록 어이없는 공매를 맞았는데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했단 말인가.
한데 웃긴 것은 루주의 말대로 마부가 전낭을 열어 은자를 확인한다는 것이다. 분위기가 살얼음판을 걷는 듯 조마조마한데, 자신과는 상관없다는 듯이 주머니를 열고 은자를 일일이 헤아렸다.
“하나, 둘, 셋…… 아홉, 열. 헤헤! 맞네.”
그때, 루주가 또 한 번 기막힌 이야기를 했다.
“저 아이에게도 보상을 해주셔야겠습니다.”
그는 웃지 않았다. 인상을 찡그리지도 않았다. 무표정한 얼굴로 단순한 일 처리를 하듯이 가모를 대했다.
“호호호! 저 아이… 그래야지. 당연히 보상해 줘야지. 그건 우리가 알아서 하마. 치료도 우리가 직접 해줄 것이고 보상도 해줄 터이니 놓고 가라.”
“알겠습니다.”
천요루주가 꿇었던 무릎을 펴고 일어섰다.
그는 당연히 받을 것을 받으러 왔다. 하지만 힘있는 자가 위세로 찍어 눌렀다. 말 같지도 않은 트집을 잡아서 몽둥이찜질을 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세상 어디를 가더라도 이런 일은 흔히 벌어진다. 다만 하늘 위에 하늘 없고 인간 위에 인간 없다고 말하던 하북팽가에서 이런 일을 당했다는 게 의외일 뿐이다.
가주나 팽가오로가 나섰다면 이런 식으로 일이 처리되지는 않았을 게다.
그들은 절대로 매를 들지 않는다. 억지를 부리지도 않고 위세로 찍어 누르지도 않는다. 사실 이야기를 들어보고 합리적인 선에서 보상을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팽가오로가 고민했던 게 아닌가. 가주와 상의까지 해가면서 고심했던 게 아닌가.
가모의 처리 방식은 팽가의 이념과 다르다.
그래서 때리는 팽효문도 마음이 편치 않다. 지켜보는 팽가연도 미간을 찌푸린다. 천요루가 수작 부린 걸 생각하면 단단히 혼을 내줘야 마땅하겠지만 이런 식은 너무하다.
힘들게 몸을 일으킨 천요루주가 포권지례를 취하며 말했다.
“여러 가지로 생각해 주신 점, 감사합니다. 저 아이를 놓고 가라는 분부도 기쁜 마음으로 받들겠습니다. 제가 살펴봤을 때, 두 달 정도는 치료를 받아야 될 것 같은데 괜찮겠습니까?”
“알았다. 치료해 주마.”
“그러면 셈은 어찌하올지?”
“…….”
“저 아이는 저희 기루에서도 상기(上妓)입니다. 하루에 은자 열 냥은 보장된 아이지요. 두 달이면 육백 냥인데… 전표(錢票)로 끊어주시겠습니까?”
“하!”
지켜보던 팽가연이 혀를 찼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천요루주가 불쌍해 보였는데, 말 한마디에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싹 가셨다.
등에서 흘러내린 피가 바지를 적시고 있다.
얼굴은 하얗게 질리고, 눈에는 핏발이 서 있다. 입술은 바짝 마르고, 몸은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킨다.
그런 몸으로 기껏 한다는 말이 떼쟁이처럼 떼를 쓰는 일인가.
그런데 가모의 표정에는 웃음기마저 어렸다.
다시 봤을 때는 냉랭한 표정으로 돌아가 있어서 잘못 본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놀랍다거나 불쾌한 표정은 아니었다. 단지 얼음처럼 찼다.
그런데 천요루주가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아니, 아닙니다. 은자 육백 냥…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뭐라! 선물로 준다?”
“태중이신 것 같은데, 약소하나마 뱃속에 있는 도련님께…….”
루주는 말을 끝맺지 못했다.
쒜엑! 쫘아아악!
허공을 찢는 파공음이 울렸다. 그리고 따귀를 때릴 때와는 상대가 되지 않는 격타음이 터졌다.
가모가 신형을 날리면서까지 손을 썼다.
루주는 실 끊어진 연처럼 나가떨어졌다. 그리고 일어서지 못했다. 왼쪽 논두렁에 처박혀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죽었는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살았다.
가모가 석상(石象)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서 있는 마부에게 말했다.
“깨어나거든 전해라. 보름 시간을 준다. 천요루를 정리하고 하북에서 떠나라. 앞으로 팽가와 천요루는 한 하늘 아래 공존할 수 없다. 절대로! 보름이란 시간을 잘 이용해라. 나중에 무정하다 하지 말고.”
말을 마친 가모는 찬바람 나게 뒤돌아섰다.
팽효문은 팽가연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인 후 가모를 뒤따랐다.
가모가 기루를 지극히 혐오하는 것을 오늘 처음 알았다. 혐오하는 정도가 아니다. 아예 죄악시한다. 그런데 거기에다가 십여 년 만에 잉태한 태아를 들먹였다. 입에 담지 말아야 할 소리를 했다. 지금 당장 살수를 쓰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다.
가모가 돌아서자 마부가 재빨리 루주를 마차에 실었다.
“죄, 죄송했습니다.”
그는 자신까지 해를 입을까 봐 걱정된다는 듯 연신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 머리를 돌렸다.
“그 여자는 내려놔. 치료해 준다고 했잖아.”
“아, 아닙니다. 이까짓 것 별거 아닙니다. 사실 이런 일, 한두 번 벌어지는 것도 아닌데… 루주가 잠시 정신이 회까닥해서.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도록 주의하겠습니다.”
마부는 팽가연의 대답도 듣지 않고 급히 말고삐를 잡아챘다.
히히히히힝!
마차는 올 때와는 다르게 빠른 속도로 질주해 사라졌다.
3
일개 기루가 기침 소리만으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무림세가(武林世家)에 맞설 수는 없다.
천요루주는 외상값을 받으러 갔다가 목도 열 대를 얻어맞은 수모를 당했다. 그래도 어디에 하소연할 곳이 없다. 관(官)은 물론이고 무가(武家)조차 기루 편에 서지 않는다.
처음부터 천요루주가 건방졌다.
감히 팽가촌으로 마차를 타고 올 생각은 어떻게 했는가. 외상값을 달라니. 그것도 슬그머니 연통을 넣은 것이 아니라 외상 독촉하듯이 직접 받으러 갔다니.
죽지 않은 게 다행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근본 잘못은 팽효뢰에게 있다.
그가 외상술을 마셨고, 기녀를 두들겨 팼다. 옆에서 보기에 끔찍할 정도로 심하게 때렸다.
가모의 처벌은 방귀 뀐 사람이 성낸 것이나 다름없다.
“흠! 너무 심한 거 아니오?”
가주도 이런 결과가 벌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한 듯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말했다.
“막돼먹은 자예요.”
“흠!”
가주는 그 말밖에 하지 않았다.
가모의 돌발 행동은 모두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재미있겠다고 웃었던 팽가오로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미워하는 것과 그로 인해서 사람을 파괴하는 것은 분명히 다르다.
가모는 천요루주를 파괴했다.
어쨌든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천요루주가 매 맞고 혼절한 상태에서 실려 갔다.
“이렇게 되면 삭초제근(削草除根)만 남은 것인가.”
“허! 가모께서 그런 부분에 결벽증이 계셨구먼. 어쩐지 직접 처리하겠다고 하실 때부터 불안하기는 했는데…….”
평생 앞에 나서는 일이 없던 사람이 자진해서 일을 맡을 때면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가주, 결정을 내리셔야겠네. 이런 일은 빨리 처리할수록 좋지 않겠나.”
그래도 가주는 신중했다.
“효뢰의 말을 들어봐야겠습니다.”
술에 취해서 널브러졌던 팽효뢰는 저녁 시간을 훌쩍 넘긴 술시(戌時)에서야 의식을 차렸다.
“으음!”
그는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