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n Swordsman RAW novel - Chapter 9
9
기루의 아침은 초저녁이다.
그러나 단 한 군데, 천요루만큼은 정오 무렵부터 부산하다.
기루에서 유흥을 즐기기에는 거리가 먼 사람들, 하인이나 몸종으로 생각되는 사람들이 부산하게 들락거린다.
술자리를 예약하기 위해서다.
하루 기본이 은 석 냥이라는 말은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못한다. 은 석 냥이 아니라 열 냥이라고 할지라도 망설임없이 이용했을 부유층이다.
오시정(午時正)에서 시작된 움직임은 오시말(午時末)이면 끊어진다.
단 반 시진 만에 모든 예약이 끝난다.
이것이 통상적인 일상이었는데…….
“뭐야? 왜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아?”
콧수염을 기르고 오른쪽 볼에 사마귀가 있는 자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흐흐! 내 말했잖냐. 사람이 말을 하면 좀 믿어라.”
마부가 능글맞게 웃으며 말했다.
“믿긴 믿는데… 그래도 하루 정도 시간을 줄 줄 알았지.”
“바랄 걸 바라라. 팽가들이 어떤 놈들인데 시간을 줘. 우린 단단히 미운털 박혔다니까. 아! 루주는 왜 되지도 않은 짓을 벌여서 잘살고 있는 사람들 이 모양을 만드는 거야!”
“네가 언제 잘살았는데?”
“지금 잘살잖아!”
“그러니까 대머리지. 너무 공짜를 밝히면 안 돼.”
점소이 복색을 하고 있는 중년인이 예약 장부를 접으며 말했다.
“야, 이놈아, 그래서 넌 난쟁이 똥자루냐!”
마부가 점소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점소이는 일어선 키가 보통 사람의 어깨 높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미련해서 뚱뚱하고, 공짜 밝혀서 머리 벗겨지고… 너보다는 내가 인기다.”
“그러셔?”
“어젯밤에 내 침상에 누가 들어왔는지 아냐?”
“……!”
“흐흐!”
“너, 설마……!”
“꽃봉오리 떨어졌다. 다른 꽃 골라라.”
점소이는 장부를 옆구리에 끼고 태연히 걸어갔다.
마부는 얼굴이 발갛게 상기되어서 씩씩거렸다.
“이년을 그냥……. 내가 공들인 게 얼만데! 그래, 난 똥줄 타고 있을 때 이 잡것들은 그 짓 하고 있었단 말이지! 이 한주먹거리도 안 되는 것들이!”
보름 안에 천요루를 정리하라!
직접 두 귀로 듣고도 믿기 힘든 소문이 단 하룻밤 만에 북경을 휘저었다.
소문의 진원지(震源地)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하북팽가와 연관이 있다는 말까지는 흘러나온 상태다.
하북팽가의 명이라면 절대적이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으니 저간의 사정이야 어떻든 천요루가 문을 닫을 건 뻔해 보인다.
사람들은 천요루를 지켜봤다.
일단 예약하러 오는 하인이나 몸종이 전혀 없다. 말 그대로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는다.
천요루의 밤은 휘황찬란하다.
온갖 문양을 한 오색등 천여 개가 일제히 사방을 밝힌다. 기루 전체가 활활 타오르는 것 같다.
그 모습 또한 북경의 일절(一絶)이다.
오늘도 불은 밝혀졌다. 하나 사람이 얼씬거리지 않는다. 초저녁부터 늦은 밤까지, 얼큰하게 취해서 비틀거리는 취객까지도 천요루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
손님이 뚝 끊겼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점소이가 투덜거렸다.
아니, 그는 점소이가 아니다. 마부와 더불어서 루주의 양팔 중 한 팔인 흑풍견주(黑風犬主) 호강평(胡江萍)이다.
그가 흑풍견주라고 불리는 것은 대단한 위용이 있어서가 아니다. 흑풍이라는 사람만 한 큰 개를 기르기 때문에 불린 이름이니 뜻을 살피면 개 주인이라는 의미다.
하나 그는 그런 별호를 좋아한다.
흑풍을 워낙 사랑하고, 별호 끝에 주(主) 자가 들어가니 루주와 동급이라고 우겨대기도 한다.
호강평이라는 이름은 불리지 않는다.
사실 천요루에서도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은 다섯 손가락을 넘지 않는다.
그는 호가(胡軻)라고 불린다.
그의 우상인 전국시대(戰國時代)의 전설적인 자객(刺客) 형가(荊軻)의 이름을 본뜬 것이다.
그는 잔재주가 많다. 이것저것 잡다한 상식도 많이 안다. 웃음기 없는 얼굴로 농담도 잘한다. 사람 비위도 잘 맞추고, 무엇보다도 도박(賭博)을 아주 잘한다.
호가는 천요루의 사무를 관장한다.
예약에서부터 식품 구입까지 모든 부분을 총괄한다.
다른 기루로 치면 총관(總管) 역할이지만, 그는 굳이 점소이 차림으로 돌아다닌다.
그런 그가 천요루의 앞날을 예측하지 못할 리 없다.
천요루는 망한다. 쫄딱 망한다.
팽가에서 손님 발길을 끊었다. 장사를 할 수가 없다. 하루하루 버티면 버틸수록 적자만 쌓인다. 또 그런 소문까지 퍼졌다. 하니 기루를 팔고자 해도 사는 사람이 없다.
망하는 집을 제값 주고 사는 놈은 멍청이다. 가만히 있으면 빈손으로 떠날 터인데, 그때 나서서 헐값으로 매수하면 된다. 모르긴 해도 거저줍다시피 할 수 있다.
팽가가 한 일이 그런 일이다.
소문만 내지 않았어도 상황은 많이 달라진다.
천요루에 눈독 들이는 사람은 많다. 천요루야말로 황금 알을 낳는 거위다. 감나무 밑에 누워서 입만 벌리고 있으면 잘 익은 감이 똑 떨어진다.
그런 물건은 내놓기가 무섭게 팔린다.
북경을 떠나더라도 거부가 되어서 떠날 수 있었는데, 알거지로 만들고 말았다.
“우린 망했다니까.”
마부가 신발을 탁탁 털면서 말했다.
다른 때 같으면 손님맞이로 쉴 틈이 없을 시간이다. 그런 시간에 한가하게 신발이나 털면서 앉아 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이게 모두 루주 탓이다.
호가가 말했다.
“망할 땐 망하더라도 발버둥은 쳐봐야지.”
호가와 마부는 루주를 찾았다.
루주는 등짝이 걸레처럼 해졌는데도 태연하게 앉아서 죽(竹)을 치고 있다.
“아이구, 움직이시는 걸 보니 살았나 보네.”
호가가 빈정거리듯 말했다.
“사정을 많이 봐준 덕분이지. 전력으로 때렸다면 일격도 받아내기 힘들었을 거야.”
루주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제길! 지금 웃음이 나오나.”
마부가 탁자 위에 털썩 걸터앉으며 투덜거렸다.
호가는 루주와 마주 보며 앉았다. 대화를 진지하게 풀어나가고자 할 때 종종 이런 식으로 앉는다.
“홍독사(紅毒蛇), 기억해?”
“후후!”
“그놈에게 천요루를 넘기려고.”
“어떤 놈 입꼬리 찢어지는 거 보인다. 허! 죽 쒀서 개 준다더니 떡 그 꼴이네. 고생고생해서 기껏 모양을 잡아놨더니 꼬리 말고 도망친 개망나니에게 넘겨줘!”
“저놈 말은 신경 쓸 것 없고. 홍독사, 요즘 포구(浦口)에서 아이들 열댓 명 데리고 꼬리 뜯기를 하는 모양이더라고. 이곳은 원래 놈의 영역이기도 하고, 애가 불쌍하잖아.”
“조건은?”
“하! 눈치는 빨라가지고. 매월 수입의 오 할만 챙기자고. 그 정도면 눈을 까뒤집고 달려들걸?”
“팽가에서 눈치채지 않을까? 팽가 그놈들, 우릴 알거지로 내쫓고 싶어서 저 지랄하는 거 아냐. 그런데 뒷돈 챙기는 걸 알면… 홍독사 그놈도 무사하진 못할 텐데?”
마부가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허참, 거,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러니 일을 은밀하게 진행해야지. 쥐도 새도 모르게, 몰라? 쥐도 새도 모르게. 쯧! 그런 머리를 얹고 다니는 몸뚱이가 고생이다.”
“넘겨.”
루주는 ‘차나 마셔’ 하는 식으로 아주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이런 식의 말, 익숙하다.
“건물 값을 따로 받기는 어려울 거야. 홍독사 그놈에게 그만한 돈이 있을 리도 없고. 하지만 기루를 운영해 본 경험이 있으니까 잘 꾸려 나가기는 할 텐데…….”
“말하고 싶은 게 뭐야?”
호가는 물음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즉시 말했다.
“설언(雪嫣)이는 어떻게 하려고?”
“신경 쓰지 마.”
“물론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닌데… 그래도 그만한 아이도 없잖아? 웬만하면 데려가지 그래. 어딜 가더라도 수발들 아이는 필요하고 말이야.”
“필요없어.”
“그 아이, 지난 육 개월 동안 잠 한숨 편히 못 자면서 루주만 쳐다본 아이야.”
“…….”
“여자에게 정 주지 않는 건 아는데, 이번만은 예외로 하자.”
“그래서? 책임이라도 지라고?”
“꼭 그리 야박하게 책임 운운할 게 아니라… 사실 루주도 좋아했잖아. 항상 그 애만 곁에 뒀으면서 뭘 그래.”
“기녀야.”
“뭐라고?”
“기녀와 동침한 것에 대해서 더 이상의 의미를 두지 마.”
“야! 이 빌어먹을 자…….”
마부가 씩씩거리다가 입을 꾹 닫아버렸다.
스르륵!
방문이 살며시 열리며 노을빛 비단옷을 입은 여인이 들어섰다.
아담한 체구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미녀.
그녀는 아름답다. 밖에 나가면 모두의 이목을 단번에 끌어당길 정도로 대단한 미녀다.
하지만 천요루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수수함, 깨끗함, 맑음…… 이런 종류의 미모는 화려함이나 농염함에 파묻혀 버린다.
더군다나 천요루는 미인 아닌 여인이 없다.
북경에서 아름다운 여인은 모두 천요루에 모여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런 곳에서는 그저 아름답다는 말만 들어도 감지덕지해야 한다.
그녀는 다반(茶盤)을 들고 들어왔다.
“분위기가 왜 이래요?”
그녀가 싱긋 웃으면서 말했다.
붉은 입술이 살짝 벌어지면서 상아처럼 고운 이가 드러난다.
“흠!”
마부는 잔기침을 하면서 고개를 돌려 버렸다.
“설마 제 흉보신 건 아니죠?”
여인은 탁자 위에 다반을 내려놓고 차게 식어버린 주담자와 찻잔을 교체했다.
“드시기 알맞게 데워왔어요. 따라드릴까요?”
그녀의 음성에 따뜻함이 담겨 나왔다.
음성뿐만이 아니다. 루주를 쳐다보는 눈길에도 사랑의 물결이 넘쳐흘렀다.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대번에 심상치 않은 관계임을 눈치챌 정도다.
“나가봐.”
루주가 차게 말했다.
루주는 언제나 이런 식이다. 거짓으로라도 따뜻하게 대해준 적이 없다.
두 사람은 같은 침상을 쓴다. 같이 잠을 잔다. 하나 그것뿐이다. 아침이 되어서 방문을 열고 나오면 마치 처음 본 사람처럼 딱딱하게 돌변한다.
어떤 때는 침상에서도 저럴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사랑을 나누면서도 사무적인 말투를 쓸까? 운우지락(雲雨之樂)을 나눈 다음에는 무슨 말을 할까? 아무 소리도 하지 않을까? 아니면 돌아누워 잠들어 버릴까?
주설언(周雪嫣)에게만 차갑게 대하는 건 아니다.
천요루 기녀 중에서 그에게 따스한 말을 들어본 사람은 없다.
월아를 잠적시키면서 앞날에 대한 충고 몇 마디 해준 게 기적같이 들렸다면 말 다한 게 아닌가.
그는 여자에게 혐오감이라고 갖고 있는 듯이 행동한다.
실제로 그런 것은 아니다. 말하고 대하는 것만 그렇다. 뒤에서는 감동이 절로 나올 만큼 끔찍하게 보살펴 준다. 그러니 천요루 기녀들이 따르는 것이겠지만.
물론 루주는 어느 여인이든 한눈에 반할 정도의 미남이다. 체격도 건실하다. 아니다. 루주는 그렇게 단편적으로 볼 수 없다. 사내든 여인이든 어느 누구에게든 호감을 느끼게 만드는 마술적인 매력을 지녔다.
성격이 막말로 거지같지만 그래도 매력있다.
기녀들이 따르는 것은 당연하다.
주설언도 이런 말투에 익숙하다.
차갑게 대한다고 해서 상처받지는 않는다.
“네, 나갈게요.”
주설언이 상큼발랄하게 말했다.
사박! 사박!
옷 끌리는 소리만이 고요한 정적을 일깨운다. 그리고 시를 읊듯이 잔잔한 울림이 흘러나왔다.
“본의는 아니었지만 문밖에서… 하시는 말씀 들었어요.”
“거 듣지 않아도 될 소리를!”
호가가 무뚝뚝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녀니까 책임질 필요가 없다고요? 흠! 맞아요. 조금 섭섭하긴 해도 맞는 말씀이니까 뭐라고 할 순 없네요. 잠 좀 같이 잤다고 해서 모두 책임져야 된다면 어디 무서워서 기녀와 잠자리하겠어요? 걱정 마세요. 울고불고 매달리지 않을 테니.”
여인이 문가에 이르러 방문을 열었다.
“그러니까 가시고 싶으면 언제든지 가세요. 그때까지는 제가 계속 수발들게요. 마음 편하시죠?”
주설언이 생글생글 웃으며 문을 닫았다.
“…….”
정적이 흘렀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루주는 죽 치던 손을 멈췄고, 마부와 호가는 천장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했다.
사단이 났다!
많은 사내들이 여인을 안다고 자신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세 사람처럼 잘 아는 사람도 없을 것이다.
주설언의 태도는 버림받은 여인의 모습이 아니다. 그런 쪽하고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비탄에 잠겨 있어야 마땅한데 오히려 희망에 들떠 있는 것 같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