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sting to Fight Bulk RAW novel - chapter 175
* * *
“대검 감찰 3과 검사 곽현우.”
남영진… 아니, 곽현우의 손끝이 가리킨 곳은 오늘 아침 내가 떠나온 대검찰청이었다.
“자, 잠깐! 검사였다고?”
“네. 제 첫 번째 인생은 검사였습니다.”
“검사였다는 사람이 어떻게 지금 같은 선택을 한 거지?”
“검사여서!!! 검사였기 때문에 두 번째 인생에서 지금 같은 선택을 한 겁니다!”
차분하던 녀석은 검사라는 말에 흥분했다.
“나 역시 지금의 당신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당신처럼 정의로웠고 비리가 있다면 검사동일체의 원칙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늘같은 선배들을 감찰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죠.”
곽현우가 생각하는 검사라는 직업은 나와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저에게 어떤 결과가 돌아온 줄 아세요?”
“어떤…….”
어?!
흥분하는 녀석을 보며 질문을 던지려 하는 순간.
머릿속에서 한 줄기 빛이 지나갔다.
곽현우 검사.
나 역시 첫 번째 인생을 살았고, 그 인생에서 나는 서울연합파의 두목이었다.
그리고 그 인생에서 어렴풋이 기억나는 이름이 바로 곽현우였다.
당시 서울연합파는 SY라는 기업으로 바뀌고 있었고, 나 역시 두목이 아닌 대표라는 직위로 바뀔 때쯤 병적으로 경제면과 사회면 신문을 읽어 댔다.
당일 뉴스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나온 모든 뉴스를 말이다.
물론 첫 번째 인생에서도 공부를 잘했고, 사법시험까지 합격했기에 머리가 텅텅 비어 있지는 않았다.
다만, 주입식 배움과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함은 달랐다.
지식이 많다고 경제인들과 어울릴 수 있는 것은 아니었으니까.
거기에 조폭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있어 재계 인사들은 나와 어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덕분에 지나온 과거를 살피는 건 사회면과 경제면을 보는 것으로 대체했고, 뉴스 역시 빼놓지 않고 보았다.
“혹시… 뇌물받고 자살했다는 곽현우 검사가 당신이야?”
“역시 한 검사 기억력이 좋네요. 맞습니다. 10년 동안 대한민국에 썩어 빠진 검사들을 정화시키려 노력한 대가가 바로 자살…로 위장된 죽음이었죠.”
“자살이 아니었다는 소리인가?”
“당시에 수많은 검사들이 연루된 게이트 사건이 하나 있었고, 수사는 대검 중수부가… 아니, 몇 년 후 바뀔 반부패부가 맡았습니다. 그리고 그와 연루된 검사에 대한 조사는 바로 우리 감찰 3과가 맡았죠.”
“흠…….”
곽현우는 운만 띄었을 뿐인데 어떤 식으로 녀석이 죽임을 당했는지 머릿속에 그려졌다.
“이미 알고 계시나 보네요.”
“대충은.”
“네, 맞습니다. 자살한 검사에 대한 수사 역시 검사가 했고, 총장과 차장, 그리고 감찰부장이 한통속이 되어 제 사건을 급하게 마무리했죠.”
“당신을 죽인 건 누구지?”
“누군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누가 시켰는지가 중요하지.”
“게이트 사건에 연루된 누군가겠군.”
“당시 사건에 연루된 검사들과 기업 회장이 저를 자살로 위장해 죽였죠.”
“그렇다고 당신이 두 번째 인생에서 해 온 범죄가 용서되지는 않아.”
“제가 더 화가 나는 건! 정의롭고 국민을 보살피는 검사가 되겠다고 선서를 한 검사들이 누구보다 정의롭고 국민을 위해 일한 저를 죽였다는 겁니다. 그리고 저는 뇌물을 받은 파렴치한 검사가 되어 역사에 기록되겠죠. 만약 첫 번째 인생이 아직도 흘러가고 있다면 남겨진 제 가족들은 파렴치한 검사 남편과 아빠를 두어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을 테고요.”
시기상 앞으로 5년 후.
곽현우 검사는 자살로 위장되어 살해된다.
하지만 두 번째 인생에서 곽현우가 죽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는 두 번째 인생에서 똑같은 인생을 살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죽임을 당했으면서 왜 그들과 같은 길을 걸으려 한 거지?”
“아니죠. 길만 같이 걸을 뿐 제가 원하는 목적지에 다다르면 저와 함께 걸은 모두를 낭떠러지로 밀어 버릴 생각이었습니다.”
“어떻게?”
“자폭.”
“뭐?”
“당신이 저를 잡으려 하지 않았어도 언젠가는 모두 감옥에 보낼 예정이라는 소리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아니. 당신의 방법은 틀렸어. 그럼 당신이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동안 당신 때문에 피해를 입은 국민들은 무슨 죄가 있는 거야?”
“대를 위해서는 소를 희생해야 하는 법이죠. 이미 암 덩어리 같은 그들은 세상에 퍼져 있고 깨끗한 곳을 건드리지 않은 채 떼어 낼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대를 위해 소를 희생한다라… 희생당하는 ‘소’들도 당신의 생각에 동의했나? 그들 자신이 원한 희생이었냐고.”
“그, 그건…….”
대한민국 국민 중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을 권리는 그 누구에게도 없다.
그래.
몇몇의 사람들은 곽현우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이 희생당해야 하는 ‘소’ 중 한 명이 된다면 과연 희생할 수 있을까.
그 희생이 자신이 선택한 게 아니라 강제적으로 선택된 거라면 아마 그 누구도 일리가 있다 말할 수 없을 것이다.
“나 역시 당신 같은 생각을 한 적이 있어. 하지만 대의를 위해서라 변명해도 당신이 한 모든 일은 결국엔 범죄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어.”
“한 검사, 당신의 목적지 역시 저와 같은 거 아니었습니까?”
“맞아. 나 역시 대한민국이 정화되길 바라고, 그러기 위해 달려가고 있지. 내가 틀렸다는 건 목적지가 아니라 방법이야.”
“당신이 하는 방법으로는 절대로 대한민국을 정화시킬 수 없습니다.”
“충분히 가능해. 당신 역시 나와 같은 방법을 썼다면 가능했을 거야.”
“하하… 결국 또 죽임을 당하겠죠.”
“아니. 우리는 과거로 돌아왔잖아. 앞으로 벌어질 미래를 알고, 그래서 남들보다 더 강한 힘과 권력을 가질 수 있잖아. 충분히 합법적이고, 최대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방향으로 말이야.”
“…….”
내 말에 녀석은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아마 녀석 역시 조금 전에 나와 같을 것이다.
정곡이 찔려 무슨 대답을 해야 될지 모르는 것이니까.
“당신은 그냥 두렵던 거야. 또다시 똑같은 삶이 되풀이 될까 봐. 과거로 돌아왔다는 엄청난 능력을 가지고도 말이야.”
“두려웠다고 내가……?”
“그래. 그리고 대의를 위한다 말하지만 질렸겠지. 검사가 정의로움을 지키는 게 얼마나 괴롭고 힘든지 아니까, 또 그런 상황을 만든 대한민국 역시 꼴 보기도 싫었을 테고.”
꿀꺽.
술잔을 들이키는 곽현우.
분명 달콤한 샴페인이었지만, 쓴맛이 느껴지는 지 녀석의 표정이 찡그러졌다.
“하지만 당신의 방법은 내 방법을 이기지 못했어.”
녀석은 곧 구치소로 들어가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는 걸음을 멈추어야 했고, 나는 여전히 멈추지 않고 달려갈 테니 말이다.
“그러게요…….”
“정의를 실현시키는 데 지름길은 없어. 오히려 지름길을 찾을수록 방향은 삐뚤어지고 목적지는 왜곡될 뿐이지.”
과정이 힘들고 고통스러워 쉬운 길을 찾으려 하는 순간,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겠다는 다짐은 약해지고 누군가가 그 다짐을 흔든다.
그렇게 흔들리고 흔들리다가 결국 그 다짐은 깨져 버리게 되는 것이다.
“방법 역시 마찬가지야. 쉬운 방법을 찾는 순간, 지금의 당신처럼 되는 거지.”
“하하… 말은 잘하시는군요. 두고 보겠습니다. 과연 당신의 방법대로 세상이 정화되는지. 아니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지가 먼저겠네요.”
테이블에 잔을 내려놓는 곽현우.
“이제 가시죠.”
자신이 만들어 놓은 호텔 스위트룸을 한 바퀴 돌아본 채 말했다.
“그래요. 그리고 호텔 압수 수색해 봤자 소용없을 겁니다. 검사님이 원하는 모든 자료들은 백숙집으로 옮겨 놨으니까요.”
“그런다고 형량이 줄지는 않을 텐데.”
“하하, 물론 저도 알죠. 나도 검사였으니까. 그래서 그런 겁니다. 수사관들 고생하지 말라고.”
녀석의 웃음이 편해 보였다면 내 착각일까?
한 쪽 팔을 나한테 붙잡힌 채 스위트룸을 나가는 곽현우의 웃음은 씁쓸해 보이지 않았다.
그런 곽현우의 모습을 보니 할까 말까 고민하던 한마디를 해 주려한다.
“만약 당신의 말이 사실이라면 걱정하지 마. 당신이 이루지 못한 목적은 내가 반드시 이루어 줄 테니까.”
* * *
2년 후.
클럽의 사건이 마무리되기까지는 무려 2년이란 시간이 필요했다.
서른한 명의 국회의원.
부총리급 감사원장과 세 명의 장관급 인사.
그리고 일곱 명의 차관급 인사를 포함한 200명이 넘는 고위공무원단의 구속이 단 한 사건을 통해 이루어졌다.
구속이 된 인물들은 정계에서만 나오지 않았다.
KC 그룹의 정종진 회장과 대기업 임원들.
돈 좀 있다는 지방 유지들, 그리고 잘나가는 중소기업의 사장들까지.
총 7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기소되었고, 그중 150명 이상이 구속되었다.
“오늘 따라 하늘이 더 맑은 것 같네.”
“그러게요.”
조용한 낚시터.
입질을 기다리던 강철호가 청명한 하늘을 보며 말했다.
2년이란 시간동안 한 집에서 살다보니 동네 사람들은 이미 나와 강철호 총장이 부자지간이라 떠들어 대며 확신했다.
“계속 저렇게 청명하면 좋겠네요.”
“그럴 수가 있나… 언젠가 또 뿌예지고 어두워지겠지.”
그래, 언젠가는 또 그렇게 되겠지.
하지만 클럽 사건이 마무리된 지금.
썩어 가던 대한민국은 대청소를 마쳤다.
“그나저나… 지역구 안 가 보세요? 요즘 국회에서 국회의원 스케줄 공개 법안 만든다고 하던데.”
“하하하하! 팔자에도 없는 국회의원 노릇을 하고 있으니 아주 귀찮아 죽겠네.”
“지금 14만 종로구민의 선택을 폄하하시는 겁니까?”
“이게 다 자네 때문 아닌가!”
많은 변화가 있던 건 대한민국뿐만이 아니었다.
반 강제적으로 출마한 강철호는 82%라는 말도 안 되는 득표율로 국회에 입성했고…….
“아이고, 약속 시각 11시 아니었습니까?”
멀리 낚시터로 뛰어오는 백성원 국정원장은 국가안보실장이 되었다.
“죄송합니다. 늦었습니다.”
“아닐세. 얼른 와서 매운탕 좀 먹어 보게. 한 검사가 끓였으니 맛은 장담 못하네만.”
주차된 차에서 내려 강철호와 백성원 원장에게 고개를 숙이는 서윤호는 역대 최연소 검찰국 검찰과장이 되었다.
“아따! 머리는 허벌나게 좋은디 체력은 영 아니네, 우리 회장님.”
“아직 시간 많이 남았는데 부회장님이 뛰어왔으니까 그렇죠.”
“벌써 사람들 다 모여 있다고 톡 왔당께요.”
강서빈과 민태호가 있는 SY 그룹은 여전히 성장 중이었다.
“처음 뵙겠습니다. 방성훈이라고 합니다. 이분은 저희 아버지인 방영호 회장님이십니다.”
“어이쿠! 방 회장님께서 여기까지는 어쩐 일로.”
“요즘 SY 그룹과 합작 프로젝트를 하고 있어서요. 오랜만에 치우 얼굴도 보고 싶고.”
내가 징검다리가 되어 만난 SY 그룹과 성훈 그룹.
오랜만에 만난 성훈이와 방영호 회장과도 짧게 눈인사를 나누었다.
“아이고! 안녕하세요. 우리 총장님 원장님…….”
어머니와 새아버지의 등장에 낚시터에 모여 있던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을 맞이했다.
어머니와 새아버지 역시 건강했다.
그리고 정의로운 검사이자 스타 검사가 태어난 내 고향,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문국밥은 지역의 명물이 되어 버렸다.
“아, 맞다! 이제는 의원님이라 불러야 되지.”
“하하, 편하신 대로 부르세요, 어머니. 그리고 제∼발 요놈 좀 데려가 주면 안 되겠습니까? 아주 귀찮아 죽겠습니다.”
“씁! 이놈이! 왜 우리 의원님을 귀찮게 하고 그래!”
“아니… 제가 언제 귀찮게 했다고…….”
— 하하하하!
청명한 하늘 아래 모인 우리는 행복했고, 또 즐거웠다.
악은 구치소에서 눈물을 흘렸고, 선은 청명한 하늘 아래 웃을 수 있는 대한민국에 한발자국 더 다가간 것 같았다.
“워메! 총장님 입질 오는 거 아닌겨?”
“맞네, 맞어.”
후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첫 번째 인생에서 나와 곽현우가 죽은 날과 죽은 시간은 같았다.
그 사실을 알게 되자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세상을 지켜보고 있던 신이 두 사람을 놓고 실험을 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말이다.
“아따∼ 떡밥만 먹고 도망가 버렸네.”
신이 어떤 결과를 원했든 상관없다.
결국 내가 원하던 결과를 이루어 냈으니까.
“워메, 수육이 그때보다 허벌나게 더 맛있어졌네잉∼”
“우리 태호 삼촌 드시라고 엄청 많이 싸 왔으니까 천천히 드세요.”
“나가 치우 저노마 때문에 새로운 인생도 살아 뿔고… 이렇게 맛있는 수육도 먹어 뿔고… 크흥…….”
그리고 지금 나는 누구보다 행복하니까 말이다.
“부회장님… 고만 좀 울어요. 등치에 안 맞게.”
젓가락으로 수육을 들고 남산만한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흘리는 민태호.
그런 민태호를 바라보며 말하는 강서빈.
“하하하하!”
두 사람을 보며 웃는 어머니와 새아버지.
“아따! 또 도망가 버렸네.”
“총장님이 범인은 잘 잡는데 낚시에는 영 소질이 없네.”
“그러는 원장님은 입질이나 오는 거요?”
“저야… 고기가 아닌 세월을 낚는 거죠.”
“뭐래는 거야.”
이제는 꽤 편해진 강철호와 백성원.
“어, 박 검사. 집 압수 수색하고 체포 영장 신청해.”
낚시터에서도 여전히 바쁜 서윤호.
“이번 상반기 인사는 성훈이 네가 검토하는 게 어떻겠냐?”
“아직 부족합니다, 아버지.”
이제는 완벽한 기업인이 되어 버린 성훈이.
내게는 그 어떤 것과도 바꾸지 않을 소중한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나는 소중한 사람들이 살아갈 대한민국을 위해 앞으로도 멈추지 않고 달려갈 것이다.
“자! 모두 모였으니 짠 한 번 하시죠!”
오직 ‘깡으로 싸우는 검사’가 되어서…….
[完]깡으로 싸우는 검사 7권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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