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110)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110화(110/581)
강제 이벤트.
해당 시나리오가 진행되기 위해서 반드시 일어나야 하는 사건이기에 유저가 개입할 수 없는 이벤트를 말한다.
라세가 어마어마한 자유도를 자랑한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유저가 모든 것을 조작하고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게임인 이상 반드시 따라가야 하는 스토리도 있는 법이었으니까.
카르페 역시 지금까지 두 번의 강제 이벤트를 겪어 봤다.
하나는 묘지기 게아스의 사망.
마도왕 시나리오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이벤트였고, 그 결과 티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겪은 강제 이벤트는 서빙제의 ‘본체’와 직접 조우하였을 때다.
아주 찰나의 순간에 불과했지만, 신체의 조작까지 불가능했던 강제 이벤트였기에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 있었다.
그리고 지금 세 번째로 겪는 강제 이벤트는 앞서 경험했던 두 가지를 섞어 놓았다.
[시나리오 이벤트 ‘암습’이 시작됩니다. 이벤트가 진행되는 동안 플레이어는 시나리오에 개입할 수 없습니다.] [시나리오와 관련되지 않은 모든 권속이 역소환됩니다.]“윽?!”
알림이 등장하는 순간, 카르페는 신체의 조작이 불가능해졌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동시에 혁명군 속에 섞여 있던 티나, 미라쥬, 묵향이 룸으로 돌아갔다.
‘와, 도대체 무슨 시나리오길래 역소환까지……?’
-곧 있으면 알게 되겠지.
‘후우. 고개 정도는 돌릴 수 있나? 두 번째 겪는 건데도 여전히 답답하네요.’
-공격 행위나 스토리에 개입하는 것만 아니면 어느 정도 움직일 순 있어. 말도 가능하고. 아무튼 괜히 쓸데없는 데 힘 빼지 말고 스토리나 감상…….
‘해금! 해금! 풀려라! 아, 역시 안 되나?’
-……그게 되겠냐? 시나리오 개판 낼 일 있어?
‘그냥 한번 시험만 해 본 거예요. 시험만…… 응?’
그리고 그 순간.
“뭐, 뭐야?!”
“으헉! 그, 그림자에서 사람이 튀어 나왔어!”
혁명군 사이에서 소란이 일기 시작했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복면과 암복(暗服)을 착용한 어쌔신 무리가 혁명군 간부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다.
“이놈들이 감히!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그 이상 말하지 않는 것이 좋다, 1왕자. 우리의 목적만 해결하면 떠날 터이니.”
“목적이라니? 그 무슨……?”
“지켜보면 알게 될 것이다.”
약 20명쯤 되어 보이는 어쌔신들이 혁명군 사이사이에서 인질을 붙잡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슉! 슉! 탓!
마찬가지로 혁명군의 그림자에 숨어 있던 다른 어쌔신 무리가 이번에는 국경 수비대 쪽으로 향했다. 처음 나타난 어쌔신보다 더 많은, 30명에 달하는 숫자였다.
그중 리더 격으로 보이는 자가 길리안의 앞으로 다가갔다.
“도패 길리안. 상황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시오?”
“……네놈들. 흑익이군.”
“정확하게 보셨소.”
흑익(黑翼).
약 100년 전, 신성국의 성녀 후보를 암살함으로써 세상에 이름을 알린 암살 조직.
그 이후 100년 동안 수없이 많은 의뢰를 수행하였고, 놀랍게도 단 한 건의 실패도 없이 모든 의뢰를 수행해 낸 명실상부 최강의 어쌔신 집단이었다.
“1왕자를 처리하려고 온 것 같지는 않고…… 그래, 목적은 나인가?”
“그렇소.”
“어떤 돈이 썩어나는 놈이 멍청한 짓을 했나 보군.”
길리안은 대검을 바닥에 한 번 쿵! 찍으며 말을 이었다.
“그래. 누가 의뢰했나? 후이난? 아니면 세르가일?”
“의뢰자에 관한 정보는 발설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오.”
“흥. 뭐, 그렇겠지. 그래. 인질까지 잡고 나에게 뭘 원하나? 이대로 자결이라도 하랴?”
“그렇게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안타깝게도 그건 내가 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오. 수장은 우리가 직접 처리하는 것을 명하였소.”
“……수장? 암왕(暗王)이 말인가?”
5좌 중 한 명인 ‘암왕좌(暗王座)’.
흑익의 수장은 길리안과 마찬가지로 대륙 11강 중 한 명이었다.
길리안은 50년 전쯤 우연한 일로 암왕과 싸운 적이 있었다.
양쪽 다 임무가 아닌 순수한 호승심으로 발생한 전투였고, 결과는 무승부.
두 사람은 서로를 인정하고 물러나며 훗날 다시 결판을 낼 것을 약조했다.
“협박에 인한 자결 따위로 도패의 명예를 땅에 떨어뜨릴 수야 없다는 수장의 전언이오.”
“하. 여전히 웃기는 놈이로구나. 인질을 잡는 놈들이 감히 명예를 운운해?”
“걱정 마시오. 그대가 이쪽의 요구를 따라준다면 인질이 다칠 일은 없을 거요. 흑익은 불필요한 살생은 하지 않소.”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손을 들자 묵묵히 대기하고 있던 30명의 어쌔신이 무기를 뽑아 들었다.
“혼자서 우리 모두를 상대하면 되오. 결과는 상관없소. 우리가 성공하든, 그대가 살아남든. 인질의 목숨은 보장하도록 하지.”
“……저 뒤쪽에 있는 놈들은?”
“그들은 이번 전투에 무관하오. 그대가 제안을 거부한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그는 혁명군을 인질로 삼은 것은 어디까지나 1 대 30의 대결을 성립시키기 위한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제안을 거부하는 순간 준비되어 있는 독이 살포될 것이고,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대답은?”
“흥!”
길리안은 대검을 치켜들어서 겨누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장군! 안 됩니다!”
“저희도 함께하겠습니다!”
“암살자와는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된다고 장군께서 가르쳐 주지 않으셨습니까!”
국경 수비대가 소리쳤으나 길리안은 고개를 저었다.
“내가 물론 그렇게 가르치긴 했다만…… 그건 어디까지나 상대의 요구가 터무니없을 때의 얘기고.”
이 경우는 이야기가 달랐다.
인질을 잡고 나서 고작 한다는 소리가…….
“자신을 전부 쳐 죽여 달라는 데 굳이 거부할 필요가 있느냐? 다시 한번 확인하지. 너희들을 전부 쳐 죽여도 인질은 풀어주는 거겠지?”
“……검은 날개의 이름을 걸고 약조하지. 허나 그대도 명심해야 할 거요.”
30명의 어쌔신이 길리안을 향해 동시에 달려들었다.
“흑익으로부터 살아남은 목표는 지금까지 단 한 명도 없다는 걸!”
“이거 영광이군! 그 첫 역사를 내가 쓰게 될 테니까!”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촤아악!
길리안의 검이 빗방울을 가름과 동시에 어쌔신의 팔 하나가 허공에 날아올랐다.
비명은 없었다.
흑익의 구성원들은 하나하나가 극한의 단련을 마친 자들이다.
고작 팔 하나 날아간 정도로 소리를 지르는 놈은 결코 흑익의 훈련을 견뎌 낼 수 없었다.
핏!
팔이 날아간 어쌔신은 기어코 길리안의 몸에 작은 생채기를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머리를 잃고 말았다.
동료의 죽음이 있었지만 미동도 없이 다른 어쌔신이 달려들었다.
이미 길리안의 주위에는 10명 이상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는 상황.
길리안의 몸에도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겨 반 혈인(血人)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상처 주위의 피부가 보라색으로 변한 것을 보아 치명적인 독에 중독된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다.
길리안은 지금 서서히 죽어 가고 있었다.
“…….”
그리고 카르페는 왜 시스템이 캐릭터를 강제로 통제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만약 지금 자신이 움직일 수 있었다면 무조건 저기로 뛰어 들어갔을 테니까.
그리고 자신이 움직인 대가로 혁명군은 독을 뒤집어쓰게 되었을 것이다. 길리안이 목숨 걸고 지키려 했던 것을 카르페 본인이 망치게 되었을 터였다.
-…….
평소 NPC에게 과몰입하지 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천마조차도 침묵을 지켰다.
그만큼 눈앞에서 펼쳐지는 사투는 처절했다.
촤아악!
“크으으으!”
길리안의 대검이 다시 한 명의 어쌔신을 갈랐다.
그리고 대가로 이번에는 옆구리에 큰 자상을 입었다.
베고, 베이고.
길리안의 검이 휘둘러질 때마다 어쌔신의 시체가 늘어났으나, 반대로 길리안의 몸의 상처도 늘어났다.
그렇게 적지도 길지도 않은 시간이 흘렀다.
비는 어느새 거의 그치고 있었다.
촤악-!
길리안의 대검이 마지막 어쌔신 리더의 가슴을 스쳐 지나가며 피가 튀었다.
어쌔신 리더는 크게 벌어진 자신의 가슴을 한번 쳐다보고는 입을 열었다.
“……이거 놀랍군. 설마하니 우리가 전멸할 줄은 몰랐는데.”
“후욱. 후우우욱.”
“자랑스럽게 생각해도 좋소. 긴 역사상 단 한 명이 흑익의 1개 소대를 전멸시킨 것은 그대가 유일하오.”
“후우. 후우우욱.”
“하지만 우리 역시 임무를 완료했…… 커헉!”
쿵!
그는 거기까지 말한 후, 그 자리에 쓰러졌다.
리더로 보이는 자가 쓰러짐과 동시에 혁명군을 인질로 삼고 있던 모든 어쌔신들이 자리를 이탈했다.
약속을 지킨 것이다.
“커…… 흐…… 끝까지 재수 없는 놈들 같으니…… 커헉!”
길리안의 무릎을 꿇으며 피를 토해냈다.
바닥에 흩뿌려진 검은색 피에서 연기가 솟아올랐다. 극독에 중독되었다는 증거였다.
“장구우운!”
“힐러! 힐러는 어디 있나! 포션을 준비해!”
그러나 그들 모두 알고 있었다.
길리안은 더 이상 살 수 없다. 이건 치료할 수 있는 수준을 한참 넘어선 상처였다.
수비대와 혁명군.
이곳에 존재하는 모든 이들이 길리안에게 목숨 빚을 졌기에 다들 참담한 심정이었다.
“자, 장군……! 대부님!”
비통한 표정의 1왕자가 길리안에게 다가가려는 그 순간.
“쿨럭! 거기까지요. 1왕자. 다가오지 마시오.”
길리안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몸을 기어코 일으켜 세웠다.
“아직 나의 일은 끝나지 않았소.”
그는 후들거리는 팔로 검을 들어 1왕자에게 겨눴다.
“나의 왕을 위협하는 자는 결코 요새를 통과할 수 없소이다.”
“장군! 지금 그럴 말을 하실 때입니까! 그러다가는 목숨이……! 서둘러 치료해야 합니다!”
“불가하오. 내가 왕께 받은 명령은 이곳을 지키는 것이오.”
“내가, 이 나라의 적통이자 1왕자인 내가 명하겠습니다! 어서 물러나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그대는 나의 왕이 아니오. 1왕자.”
“대부님! 지금은 고집을 피울 때가……!”
“자, 국경 수비대는 들으라!”
길리안은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회광반조(回光返照).
촛불은 꺼지기 전에 가장 밝게 타오르는 법이다.
그는 또렷한 음성으로 수비대에게 외쳤다.
“내 마지막 명령이다. 제군들은 지금부터 혁명군에 가담하라!”
“네?! 장군. 그게 무슨 말씀…….”
“군대는 백성을 지키는 검이다. 그런 검이 백성에게 겨눠지는 건 있어서는 안 될 일.”
“그렇다면 장군께서도 함께하시면…….”
“그럴 수는 없다.”
군인은 왕에게 충성하며 백성을 지키기 위해 존재한다.
그러면 왕과 백성이 상충할 때, 군인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길리안은 백성의 편에 서야 한다고 생각했다.
백성이 있어야 나라가 있고 왕이 존재하는 것이니까.
그런 논리를 따르면 자신 역시 백성의 편에 서는 것이 옳은 일이나.
“군인으로서는 그럴지 몰라도 인간으로서는 그럴 수가 없군.”
또다시 자식 같은 아이를 배신할 순 없었다.
군인 길리안이 아닌 인간 길리안은 최후까지 왕의 편에 서는 것을 택했다.
“…….”
그리고 그런 길리안의 앞으로 카르페가 다가갔다.
“영감님. 진짜 쇠고집이시네요.”
“음화홧! 자네인가? 그래. 내 자네가 올 줄 알았다네.”
“……얼마 안 남았죠?”
“음. 그래도 한 10분쯤은 버텨 볼 수 있겠어. 흐홧홧!”
“…….”
카르페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대신 그의 앞에서 자세를 잡았다.
지금까지 그와 수도 없이 진행했던 대련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
“…….”
“…….”
국경 수비대도, 혁명군도.
그런 그의 행동을 아무도 제지할 수 없었다.
카르페를 대하는 길리안의 미소가 너무나 행복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네에게 감사하네. 마지막까지 전사로 있을 수 있게 되었으니.”
“…….”
“그러니까 얼굴 좀 피게. 날 보게나. 언제나 웃지 않는가!”
“……제 얼굴이 어때서요?”
“울고 있네만.”
“착각입니다. 빗물이에요.”
“음하핫! 그런가? 이거 내가 착각했군. 자, 말이 길었군. 시간도 없는데 말이야. 그럼 준비하시게.”
길리안이 검을 들었다. 그리고 카르페 역시 주먹을 들었다.
쾅!
길리안의 검은 카르페가 평소 알던 것에 비해 너무나도 가벼웠다.
하지만 동시에 너무나 무거웠다.
“흐허허. 이거 말년에 너무 호사로군. 내 인생 최고의 순간일세.”
아직 걱정되는 것이 하나 남아 있긴 했지만…… 그쪽도 단단히 방비해 두었으니 크게 저어되진 않았다.
“즐거운 순간은 늘 빨리 끝나는 법이지. 참으로 아쉬운 일이야.”
쾅! 쾅!
검과 주먹이 부딪힐 때마다 무언가 빠져나가는 감각이 들었다.
이제 정말로 남은 시간이 한계에 봉착한 것이다.
이윽고.
터엉.
길리안이 대검을 놓치고 말았다. 더 이상 검을 들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카르페.”
“네.”
“고마웠네. 내 마지막 순간이 자네와 함께라 정말 다행이야.”
“저도 영광입니다.”
“이제 그만 쉬어야겠군. 너무나 긴 삶이었어.”
어느새 비는 그치고 날이 밝게 개어 있었다.
그는 따스한 햇볕이 떠오르는 것을 바라본 후, 자리에 똑바로 선 채로 스르르 눈을 감았다.
길리안 힐스카인.
힐스카인 가(家)의 장자로 태어나 라마르크에 헌신한 지 어언 160년.
수많은 전장에서 단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라마르크의 전설.
그가 향년 167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띠링.
[인벤토리 속의 ‘영혼석’이 강대한 영혼에 반응합니다.]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