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114)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114화(114/581)
‘와, 라세에도 전용 장비가 있구나.’
보통 모바일 게임, 특히 SR이니 SSR이니 하는 캐릭 육성 게임에나 등장하는 개념이었다.
‘전용 장비라 그런지 옵션 한번 끝내주네요.’
-호들갑은…… 전용 장비가 별거냐? 특정 인물만 낄 수 있으면 그게 전용 장비지. 너도 몇 개 있잖아?
‘엥? 제가요?’
-그래. 그 마도병기라든가, 건틀렛이라든가. 라세에서 유일하게 너만 장착할 수 있잖아. 그럼 그게 전용 장비지.
‘……듣고 보니 그러네.’
다만, 이번 경우는 길리안이 장착 시 추가 옵션이 따로 개설되어 있어서 한층 더 특별해 보였을 뿐이었다.
-너처럼 일부 히든 직업이나, 유명 NPC들 같은 경우에는 전용 장비가 따로 있기도 해.
그리고 그 경우 전용 장비는 동급의 장비에 비해서 한층 더 탁월한 성능을 자랑한다.
즉, 카르페의 장비나 눈앞의 중력도는 레전더리와 에픽 사이의 어딘가쯤에 해당하는 성능이란 소리였다.
“원래대로라면 중력도는 길리안 장군을 기리며 국보로 지정할 생각이었습니다만…….”
당연한 이야기다.
유저나 몬스터는 물론이고 NPC를 포함한 라세 대부분의 생물은 사망 시 시체를 남기지 않는다.
그저 회색빛 재로 변한 뒤 사라질 뿐.
때문에 라세의 세계관에서 ‘시신을 수습한다’라는 말은 시신이 사라질 때까지 옆에서 자리를 지킨 후, 고인이 남긴 물건을 수습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길리안의 중력도는 그가 남기고 간 유일한 유품인 셈.
라마르크를 150년 넘도록 수호해 온 그의 무기라면 국보로 지정되는 게 너무나 자명한 이치였다.
하지만 이 역시 소유자가 허락할 때의 경우다.
길리안의 사후 중력도의 소유권은 그의 손녀인 엘레노아에게로 넘어갔다.
하지만 그녀는 중력도를 라마르크의 상징으로 남기는 것 대신 무기로 사용되어지기를 바랐다.
“중력도는 그저 상징으로 남기에는 너무 아까운 아이랍니다. 할아버님도 분명 원치 않으시겠죠. 본디 무기란 누군가의 손에서 휘둘러질 때 그 가치를 발하는 법이니까요.”
끼긱.
엘레노아의 말에 길리안의 고개가 아주 살짝 끄덕여지다가 화들짝 놀라며 자세를 바로 했다.
“마음 같아서는 제가 직접 사용하고 싶지만 저는 이런 대검에 익숙하지가 않아서…….”
“아, 그러셨죠.”
그녀의 주 무기는 레이피어다. 대검이랑은 차이가 클 수밖에.
“그런데 저도 무기가 따로 있는데요. 건틀릿으로.”
“후예께서는 그렇지요. 하지만 뒤에 계신 암군께서는 무기가 따로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부디 할아버님의 이름을 받은 그가 이 검을 사용해 준다면, 필시 하늘의 계신 그분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 그렇겠죠?”
그야 당연히 기뻐하겠지. 본인이니까.
-야, 이쯤 되면 쟤가 모든 사실을 간파하고 놀리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인데.
‘설마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능성이 0이 아닌 점이 조금 무서웠다.
-아무튼 이게 이렇게 되네. 잘 됐군. 고민할 시간을 덜어서.
설마 공헌도로 구입할 수 있는 물품 중에 이런 히든 아이템이 숨어 있었을 줄이야.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랜덤 박스를 까 봤자 나올 수 있는 가장 높은 등급은 레전더리.
그것도 레전더리가 등장할 확률은 약 3%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눈앞에 확정적으로 얻을 수 있는 레전더리 아이템이 있다? 심지어는 웬만한 레전더리 아이템보다도 성능이 좋은 놈으로!
지금 이 방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공헌도로 중력도를 구입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단 한 명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흐으으으으음.”
-……그 깊은 고민 섞인 한숨 소리 뭔데? 정녕 미쳐 버렸니?
‘혹시라도 랜덤 박스에서 에픽이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형이 몰랐을 뿐이지, 사실 랜덤 박스에서 극악의 극악의 확률로 에픽이나 신화가 등장…….’
-안 나와. 미친 새꺄!
‘아, 진짜 세상이 너무하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이런 시련을 주는 거지…….’
랜덤 박스를 거르라니!
상상만 해도 심장이 옥죄여 오고 호흡이 가빠졌다. 차라리 안 보여 줬으면 모르겠지만, 뻔히 있는 걸 보여 줘 놓고 이런 선택지를 준단 말인가.
카르페는 게임을 시작한 이후, 가장 큰 번뇌에 빠지고 말았다.
-……이쯤 되면 진짜 정신병 수준인데. 무섭다. 무서워.
카르페가 랜덤 뽑기에 미친 인간이라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이 정도였을 줄이야.
평소에 ‘10%면 확정이지 확정’, ‘1%만 돼도 충분히 해 볼 만해!’ 이러는 건 그냥 드립이라 생각하고 웃고 넘겼는데…… 어쩌면 드립이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 레전더리 아이템을 거르고 레전더리가 3%로 등장하는 박스를 고르는 게 말이나 되는가?
그렇다. 어디까지나 논리적으로 생각했을 때는 말이 안 된다.
즉.
비논리적으로 접근하면 말이 된다.
‘형. 영국의 유명 산악가 조지 말로리는 이런 말을 했어요.’
-도대체 뭔 개소리를 하려고 빌드업을 까는 건데?
‘일단 들어 봐요. 들어 보고 판단해도 늦지 않아.’
1923년.
세계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정복하려는 말로리에게 기자가 물었다.
‘당신은 도대체 무슨 이유로 에베레스트에 오르려는 것이냐?’
그리고 그 물음에 대한 그의 대답은 세상 누구나 아는 최고의 명언이 되어 버렸다.
‘그게 거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카르페가 랜덤 상자를 까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랜덤 상자가 거기에 있기 때문! 논리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아닌 사랑의 영역이다!
‘랜덤 뽑기를 한다는 그 행위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 그 뽑기에서 어느 등급이 나오냐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
-응. 아니야. 개무리수인 거 너도 알지? 얌전히 중력도 픽하자.
‘넵. 저도 그냥 해 본 말이었습니다. 아무리 행복 회로를 돌리려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되네.’
참고로 조지 말로리는 그렇게 시도한 에베레스트 등반에서 조난당해 사망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지.’
하다못해 전용 무기가 아니라 일반 레전더리였다면 눈곱만큼의 여지라도 있었을 텐데!
카르페는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는 눈으로 중력도를 선택하려는 그 순간.
“저, 후예이시여? 혹시 문제라도 있습니까?”
너무나 당연한 선택지를 놔두고 카르페가 한참을 고민하자, 의문을 느낀 드렉이 그렇게 물어왔다.
“아, 아뇨. 아무런 문제도 없어요.”
“그런데 너무 고민하시는 듯하시어…… 설마 다른 보상을 고민하셨을리는 없고.”
죄송합니다. 그 설마가 맞습니다.
카르페가 움찔하자 드렉은 믿을 수 없다는 듯 탄식을 터뜨렸다.
“허어…… 설마설마 했습니다만 정말 그러신가 보군요. 허허. 그렇다면 이건 어떠십니까? 공헌도를 추가로 획득할 수 있는 임무를 지금 드리겠습니다.”
“어, 그런 게 있나요?”
“없습니다만 지금부터 만들면 될 일이지요. 마침, 딱 좋은 구실이 있긴 합니다.”
띠링.
[플레이어와 라마르크 왕실 간의 우호도가 최대치입니다.] [NPC 드렉과의 호감도가 최대 수치입니다.] [임시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임시 퀘스트 : 대관식 참석] [현재 라마르크는 큰 변혁을 맞이했습니다. 오랜 세월 백성을 괴롭혔던 왕이 물러나고 새로운 왕이 취임하려 합니다. 새로운 왕은 당신이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길 원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괜찮다면 참석하는 것도 괜찮을지 모릅니다.] [라마르크 왕의 대관식에 참석하십시오.] [퀘스트 성공 시 : 라마르크 공헌도 3,200Point]-헐. 이런 미친 날먹을 봤나.
“헐…….”
“허허. 월권행위이긴 합니다만, 후예께서 해 주신 것을 생각한다면 다들 이해할 겁…… 으헉! 왜 갑자기 우십니까?!”
그렇게 카르페는 대관식에 참석하게 되었고.
[공헌도를 소모하여 ‘중력도 – 그라비티 블레이드’를 획득하셨습니다.] [공헌도를 소모하여 ‘랜덤 장비 상자’를 획득하셨습니다.]기어코 두 가지 아이템을 모두 손에 넣을 수 있었다.
* * *
카르페는 워프 NPC를 이용해서 제노니아 왕국에 도착했다.
“와, 여기는 사람 장난 아니게 많네요. 라마르크랑은 비교도 안 되네.”
-제노니아는 대륙에서 가장 강한 4개의 나라 중 하나니까. 라마르크 같은 소국이랑 비교하는 거 자체가 실례지.
<……실례일 것까지 있겠는가. 크흠. 뭐 소국인 건 맞네만.>
하지만 그런 길리안의 말도 무색한 것이, 정말 비교도 되지 않았다.
사방 어디를 쳐다봐도 유저와 NPC가 넘쳐났으며, 다들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거기 전사분! 준비는 제대로 마치셨나요? 더 높이 오르기 위해선 충분한 준비가 필요하답니다. 자, 특별히 포션을 5% 세일해서 드릴게요!”
“자네! 내 유심히 보니까 자네 검날이 조금 상했구만! 이리로 오게. 내가 깔끔하게 수리해 주도록 하지.”
“탑에서 구한 마력석 비싸게 삽니다!”
카르페가 도착한 곳 주위로는 커다란 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
“자, 자 돈 내고 돈 먹기~ 항아리 속에 있는 구슬의 숫자를 맞추면 건 돈의 5배를 드립니다!”
“오? 진짜로?”
-……저런 건 대부분이 당연히 사기지. 넌 어째 다른 건 다 잘 판단하면서 도박만 관련되면 이상해지냐?
“에이. 구경만 하려고 했죠. 구경만. 아무튼 여기 분위기는 마음에 드네요.”
-제노니아를 통틀어서도 제일 활기가 넘치는 곳 중 하나긴 하지.
사실, 카르페는 제노니아 왕국으로 넘어가려고 했을 때 아주 막막한 상태였다.
새로 등장한 마도왕의 퀘스트에는 제노니아에서 단서를 찾으라고만 했지, 구체적인 위치는 알려 주지 않았으니까.
카르페는 티나와 미라쥬에게 혹시 짚이는 것이 있냐고 물었지만, 두 인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퀘스트와 관련되어 기억에 시스템적 락이 걸린 듯 했다.
결국 직접 찾아낼 수 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고작 3개의 도시가 하나의 왕국이었던 라마르크와 달리, 제노니아 왕국은 광활했다.
수십 개의 도시가 있었고 그 몇 배에 달하는 사냥터, 퀘스트가 즐비한 강대국 중의 강대국이었다.
“그런 곳에서 어찌 단서를 찾아내나 했는데…… 진짜, 여기에 있는 거 맞아요?”
-그래. 내 생각에는 이곳일 확률이 제일 높다.
카르페가 워프를 통해 이동한 곳은 제노니아 왕국에 ‘적색탑’이라는 지역이었다.
그 지역 이름 그대로 현재 카르페의 눈앞에는 끝도 없이 솟은 거대한 붉은 탑이 있었다.
어찌나 높은지 탑은 구름을 뚫었고 지상에서는 꼭대기가 보이지 않을 지경.
그런 탑 주위로 NPC들이 시장을 만들었고, 나아가 하나의 마을이 된 곳이 바로 이 ‘적색탑’ 지역이었다.
“그런데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마도왕과 관련된 퀘스트는 형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이번엔 100% 정확한 건 아냐. 너, 나랑 처음 만났을 때 기억나냐? 마도군주로 전직할 때.
“당연히 기억나죠.”
고물상 퀘스트를 통해 드렉을 만났고 우연히 배후령이 있는 듯 없어서 마도군주로 전직하게 되었다.
아마 앞으로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때 드렉이 너한테 마도왕이라는 이름을 들었냐고 물어봤었잖아.
“아아. 맞아. 그래서 형이 고대 제국의 초대 황제라고 알려 줘서 호감도를 올렸…… 어? 설마?”
-그래. 내가 마도왕이라는 명칭을 처음 접하게 된 곳이 바로 여기다.
이 적색탑 내부를 오르다 보니 어떤 비밀 장소를 발견하게 되었고, 그곳의 낡은 서적에서 ‘마도왕’이라는 이름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내가 방문했을 때는 별다른 게 없긴 했는데, 또 모르지. 마도왕의 후예가 직접 방문하면 새로운 이벤트가 등장할 수도 있는 거 아니겠어? 제노니아에서는 여기가 가장 유력해.
“가능성은 충분해 보이네요.”
카르페가 다시 한번 적색탑을 올려다보았다.
그 끝이 보이지 않는 높은 탑. 도대체 몇 층까지 있는 것일까?
“후우. 엄청 높네. 전쟁 장르로 한번 찍었으니 이제 탑 등반물 장르도 한번 찍으라 이건가?”
참고로 카르페는 탑 등반물 장르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초반에는 그만큼 재밌는 장르도 없지만, 조금 읽다 보면 나왔던 패턴 또 나오고 똑같은 몬스터 또 나오고 반복 반복 또 반복되다 보니 50층쯤 되면 읽는 입장에서 질려 버리게 되었으니까.
그래서 카르페는 탑 등반물 장르는 완결까지 읽은 기억이 없었다.
“짧았으면 좋겠는데.”
-100층까지 있긴 한데, 당연한 말이지만 거기까지 올라갈 필요는 없어. 올라갈 능력도 없고. 내 기억상 마도왕과 관련된 비밀 방은 20층에서 30층 사이였을 거다.
“오. 그 정도면 딱 좋네요.”
아무것도 없는 백지 상태라면 그 정도의 높이도 미칠 듯이 힘들었겠지만, 천마 내비가 함께하는 한 유희용으로 적당한 수준이었다.
그럼, 이제 행선지도 정해졌겠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상자깡 타임!”
카르페는 랜덤 상자를 얻은 직후 곧바로 오픈하지 않았었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새 박스는 새로운 지역에서 까야 한다는 논리정연하고 과학적인 근거 때문이었다.
-…….
“어허. 그런 눈으로 보지 마십쇼. 딱 봐. 뜬다니까. 지지뜬. 지지뜬!”
그러나 안타깝게도 카르페는 상자깡을 조금 미룰 수밖에 없었다.
“어?! 왔다!”
“와 씨. 진짜야? 진짜지? 기다린 보람이 있어!”
“오늘 드디어 30층 깨지나?”
카르페의 바로 뒤에서 사람들이 호들갑을 떨어 댔으니까.
무시하고 싶어도 무시할 수 없는 그 떠들썩함에 카르페의 고개가 돌아가고 말았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