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245)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245화(245/581)
내기 바둑.
바둑 교실이라는 빛(?)의 루트로 바둑을 배워 온 사람이라면 접할 일이 없는 문화지만, 기원(棋院)에서 바둑을 접한 사람이라면 모를 수가 없는 게 내기 바둑이다.
작게는 몇천 원에서 짜장면 한 그릇 정도를 걸고 내기를 하지만, 큰 판은 몇십, 몇백, 심지어 어두운 음지에서는 한 판에 수천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 오가는 경우도 있다는 모양이었다.
-뭐, 현실에서는 당연히 불법이지만 여긴 게임이니까 상관없겠지. 자, 드렛슈 속 좀 살살 긁어서 판돈 올려 봐. 너 사람 속 긁는 거 잘하잖아.
‘선량한 사람 모함하시네. 아니, 그것보다 형 기원 같은 곳도 다녔어요? 좀 의외네요.’
-한때 푹 빠졌었지. 꼰대들 텃세 때문에 몇 번 가다가 말긴 했다만.
‘잘 두는 거 확실하죠?’
-내가 언제 허언하는 거 봤냐? 지금이야 귀신이지만, 이 꼴 되기 전까진 종종 인터넷으로도 뒀어 인마. 나만 믿으라고.
항상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성격인 천마가 이렇게 호언장담을 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어쩔래? 둘 거야? 말 거야?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기다려 줄 수 있으니 충분히 배우고…….”
“아뇨. 좋습니다.”
카르페는 천마를 믿기로 했다.
태세를 전환한 카르페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바둑판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두 남자.
드렛슈가 의외라는 듯 카르페에게 물었다.
“오호. 맘이 바뀌었나? 바둑 못 둔다면서?”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어깨너머로 배운 기억이 있는 것 같아서요. 두다 보면 생각이 좀 나겠지.”
“……하. 그래? 어린 시절 어깨너머로 배운 실력으로 이 나랑 붙어보겠다 이 말이렷다?”
-캬. 역시, 대단한 놈이라니까. 사람 속 긁는 거 하나는 프로 9단이야.
꽤 울컥한 것인지 드렛슈의 입가가 기묘하게 뒤틀렸다.
“좋다. 도전한다면 피하지 않는 게 규칙이니까. 너무 겁먹을 필요 없어. 네가 지더라도 대충 내 마음에만 들면 되는 거니까. 어디 보자. 한 아홉 점 먼저 깔아 두면 일방적으로 처 발리진 않을…….”
“맞바둑.”
“……뭐?”
“남자끼리 진검 승부하는데 접바둑이 웬 말입니까? 호선(互先)으로 가시죠. 공제는 6집 반.”
사실 바둑에 무지한 카르페로서는 접바둑이니 호선이니 하는 바둑 용어도 알지 못했다.
옆에서 천마가 그리 말하라고 하니 그냥 따라 하고 있을 뿐!
카르페는 거기에 조금 더 불을 지폈다.
“그리고 하나 더. 바둑은 자고로 내기 바둑이지. 뭐 좀 걸고 하시죠. 예를 들면…….”
카르페가 조금 뜸을 들인 후,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인형 전용 레전더리 아이템이라든지. 아, 다른 것도 좋고요.”
“…….”
드렛슈는 멍한 얼굴로 카르페를 쳐다보다가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하. 재밌네. 800년 동안 기다린 보람이 있을 만큼 즐거워. 내기 바둑? 좋지! 네가 뭘 좀 아는구나!”
드렛슈는 그렇게 말한 후, 손가락을 딱! 튕겼다.
그러자 허공에서 새하얀 갑주 하나가 튀어나와 바닥에 쿵! 떨어졌다.
“엇……?!”
“와. 진짜 있었네?”
새하안 갑주를 본 티나와 세실리아가 반응했다.
마성갑(魔聖甲) – 아크라가드.
과거 전성기 시절의 티나가 사용했던 바로 그 갑옷이었다!
세실리아가 처음 예상했던 대로 인형들의 무구는 이곳에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마성갑. 이긴다면 너에게 주지. 어때? 이 정도면 충분히 판돈이 되나?”
“충분하다 못해 넘치죠. 자, 그럼 한 수 잘 부탁…….”
“잠깐. 뭘 어물쩍 넘어가려고 그래? 내기라면서? 나 혼자만 걸면 그게 내기냐? 너도 걸어야지.”
“쓰읍.”
얼렁뚱땅 넘어가려고 했는데 이게 안 되네.
카르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죠. 그럼 저는 골드를…….”
“골드? 장난하냐? 내가 그런 걸 어디다 써먹어?”
사실 카르페가 들고 있는 물건 중, 드렛슈에게 의미가 있는 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기억의 조각일 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드렛슈는 카르페에게 ‘각오’를 요구했다.
“너에게 소중한 걸 걸어. 그걸로 네 각오를 확인하겠다.”
“골드도 소중한데…….”
“골드 얘기 한 번만 더 하면 그냥 내쫒을 줄 알아. 네가 걸어야 할 판돈은 바로 이거다.”
딱!
드렛슈가 다시 한번 허공에 손가락을 튕기자 카르페의 눈앞으로 퀘스트 창이 등장했다.
[돌발 이벤트 발생!] [‘문무의 관 진(眞)’의 특별 NPC가 플레이어에게 특수한 내기를 제안합니다. 드렛슈의 기억에게 바둑으로 승리하십시오!] [승리 시 : 마성갑 – 아크라가드(레전더리) 획득] [패배 시 : 플레이어의 전 스테이터스 각각 15씩 영구 소멸]“……뭐?”
퀘스트를 읽어 나가던 카르페가 눈을 깜빡였다.
뭐를 걸라고? 지금 제대로 읽은 게 맞나?
“미친. 전 능력치를 15씩? 아니, 총 75씩이나 걸라고? 10레벨 이상의 스텟인데?!”
“이 정도는 돼야 저울이 맞지. 안 그래?”
-흠. 세게 나오는걸.
‘아니, 형. 잠깐만요. 이건 너무 크잖아!’
불현듯 문무의 관으로 들어오기 전에 봤던 경고문이 떠올랐다.
[주의하십시오. 도전 시, 목숨 이상의 것을 걸어야 할지도 모릅니다.]플레이어에게 목숨이란 크게 가치가 있는 요소가 아니다. 얼마든지 다시 살아날 수 있으니까.
플레이어에게 있어 목숨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란 바로 레벨!
플레이어는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 시간을 쏟고 거금을 투자하여 아이템을 맞춘다. 오로지 보다 더 높은 레벨을 위해서 말이다.
그리고 스텟을 뺏어간다는 건, 사실상 레벨을 뺏어간다는 소리와 다름이 없었다.
‘목숨보다 소중한 거라는 게 스텟이었어? 와, 씨. 미친 똥겜이네. 무슨 RPG 퀘스트에 스텟 소멸이 있냐고!’
-가끔 있기도 해. 가아끔.
카르페의 안색이 창백해지자 드렛슈가 킬킬 웃었다.
“설마 이 정도도 못 걸 거면서 그렇게 도발한 건 아니겠지? 그럼 조금 실망인데.”
“……아니. 잠깐만요.”
“참고로 판돈 바꿔 줄 생각은 없다. 이게 싫으면 그냥 돌아가. 네가 아쉽지 내가 아쉽냐?”
낄낄거리는 드렛슈가 그렇게 얄미울 수 없었다.
하지만 얄밉다고 해서 그대로 들이받기에는 판돈이 너무나 컸다.
어쩌지? 그냥 무를까?
차라리 그냥 순수하게 운 싸움인 도박이라면 시원하게 질러 버렸을 텐데!
1%의 뽑기 확률에도 ‘그 정도면 거저 주는 거지 껄껄!’ 웃으며 지를 수 있는 게 카르페였으나 바둑은 엄연히 지능을 겨루는 게임이다.
결코 운이 좋다고 해서 이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도 천마는 태연했다. 아니, 평소보다 훨씬 더 침착해 보였다.
-재밌군. 그 도발. 받아 주지!
‘……즈기요. 판돈이 제 스텟이거든요? 왜 형이 받아요?!’
-야, 형 못 믿냐? 일단 좀 걸어 봐. 따서 갚는다니까!
‘그런 말 하는 사람 절대로 믿으면 안 되는 거 형도 알죠?’
-쯧쯧. 반대로도 한번 생각해 봐라. 만약 이게 바둑이 아니라 육탄전이었다면? 판돈은 똑같다 치고.
‘그러면 당연히 그대로 들이받았지.’
-그치? 나한테는 바둑이 그렇다. 딱 믿어 봐라. 묻고 더블로 가도 이겨 줄 테니.
‘흐음.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알겠습니다. 1분만 고민…….’
“거, 바둑 한 판 두기가 왜 이리 힘드냐? 쫄? 우리 후예가 생각보다 간이 작구만. 실망이 크다.”
‘……무조건 이겨 주세요! 망할!’
그래. 언제 자신이 이것저것 재고 게임하는 인간이었나!
리스크가 어떻든 간에 재밌을 것 같으면 그냥 지르는 것이다. 카르페는 그런 인간이었고 지금 상황은 그의 기준으로 충분히 재밌는 상황이었다.
“콜! 두말하기 없습니다.”
“누가 할 소리를. 얼른 돌이나 쥐어라. 이러다 날 새겠다.”
-언제까지 그렇게 나올 수 있나 보자. 고스트 바둑천마 출격이다!
* * *
[돌발 이벤트가 진행됩니다.] [특수한 상황입니다. 바둑이 진행되는 동안 접속을 종료할 수 없으며 또한 다른 인터넷 창이나 프로그램을 활성화할 수 없습니다.]바둑 퀘스트이기 때문에 평소에는 볼 수 없는 특별한 시스템 제한도 등장했다. 아마도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나 훈수를 방지하기 위한 수단 같았다.
촤르륵.
“둘…… 넷…… 여섯…… 짝. 틀렸군. 내가 백(白)이다.”
“제가 흑이군요.”
카르페의 선공. 카르페가 바둑통에서 흑알을 하나 집어 드는 순간, 드렛슈가 피식 웃어 버렸다.
“얼씨구? 바둑 둘 줄 아는 거 맞지?”
바둑알은 본래 검지와 중지 사이로 집는 것이 정석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잡는 건 나름대로 시간을 들여 요령을 익혀야 하는 파지법이고 익숙해지지 않으면 돌이 흘러내리기 일쑤였다.
-낙수불입(落手不入). 흘러내린 돌은 물릴 수가 없으니 넌 그냥 최대한 안전하게 잡아. 가오는 떨어져도 그게 낫다.
카르페는 검지와 중지 대신 엄지와 검지로 바둑알을 집은 것이다. 그 엉성한 자세에 드렛슈는 비웃음을 날린 것이고.
“…….”
카르페는 대꾸하는 대신 바둑알을 내려놓았다. 우하귀의 화점(花點)이었다.
“첫 시작이 화점? 드문 스타일이군.”
드렛슈는 그렇게 중얼 거리며 착수했다. 좌상귀의 소목(小目)이었다.
-좌상귀에 날일 자 걸침……이라고 해도 못 알아 들을테니 그냥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마. 넌 정확하게 두기만 해.
‘와. 이거 만화에서 보던 거랑 똑같네요. 뭔가 두근두근하다.’
카르페는 느리지만 확실하게 천마가 가리키는 곳에 착수했다.
딱. 타악. 딱.
그렇게 몇 수가 지나가자 드렛슈는 다소 놀랍다는 듯 눈을 치켜떴다.
“뭐야? 제대로 둘 줄 아네? 그런데 아까는 왜 못 두는 척했어?”
“…….”
드렛슈의 말에 카르페는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바둑에 대해서 잘 모르다 보니 굳이 할 말이 없었던 것이지만 드렛슈는 카르페의 침묵을 다르게 해석했다.
“흐. 굳이 말로 대답할 필요가 없다 이거냐? 좋은 태도다. 자고로 바둑은 손으로 나누는 대화(手談)라고 했지. 맞아. 대화는 돌로 나누면 될 뿐!”
‘마도왕이 아니라 수다왕이 맞네요. 아까부터 뭘 자꾸 혼자서 중얼거리고 혼자서 감탄하네.’
-이해해 줘라. 혼자서 800년쯤 살다 보면 혼잣말이 안 느는 게 이상한 거 아니겠냐.
‘그것도 그렇네. 그렇게 생각하니 좀 불쌍하다.’
드렛슈는 카르페가 자신을 측은하게 쳐다보는 것도 모른 채, 신이 나서 바둑을 진행해 나갔다.
딱. 따악. 딱!
바둑은 모르는 사람이 보고 있자면 지루하기 짝이 없다.
처음 바둑이 시작될 때만 해도 흥미 있게 지켜보던 권속들은 100수가 넘어가는 시점에서 제각각 딴 짓을 시작했다.
“향! 거기 서!”
“뀨웃! 뀨!”
묵향과 미라쥬는 넓은 연무장 위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고.
“티나아. 재미없는 거 그만 보고 얘기나 하자아.”
“그럴 수 없습니다. 세실. 주군의 신하로서 주군의 전투를 지켜볼 의무가 있습니다.”
“흑흑. 너무해. 티나. 이렇게 오랜만에 만났는데 나랑 이야기 나누는 것도 싫다는 거야?”
“그, 그게 아니라…… 으음. 그럼 조금만…….”
“로이도 올래?”
<사양한다. 난 명상이나 하겠다.>
티나와 세실은 다른 곳에서 추억을 회상했으며…….
딱!
<으음! 그런 수가! 신묘하구먼!>
<아, 아니?! 거기서 귀삼수가?!>
인형들 중 유일하게 바둑을 둘 줄 아는 길리안은 옆에서 연신 감탄을 토해냈다.
딱 고수들 바둑을 보며 옆에서 추임새 넣는 할아버지 그 자체였다.
딱. 딱.
그렇게 다시 50수.
여유로웠던 드렛슈의 얼굴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째서?”
바둑계에서 농담으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만약 현대의 프로기사가 바둑의 천재 제갈량이랑 둔다면 누가 이길까?
그리고 그에 대한 대답은 아주 뻔했다.
100번 붙으면 100번. 전부 현대의 기사가 압승할 게 분명했다.
-그야 당연한 거지. 아무리 천재라고 해도 고작 100년도 못 사는 게 인간인데.
제갈량의 바둑 솜씨가 하늘에 닿아 신산(神算)이라고 불린다 한들.
드렛슈가 아무리 최고의 지능을 자랑하는 캐릭이라고 한들.
5,000년이 넘는 역사가 쌓아 올린 현대 바둑의 정수를 이길 리 만무했다.
-라세가 아무리 뛰어난 게임이라고 해도 RPG NPC에 알파go급 연산을 심어 놨을 리는 없지. 그건 그냥 퀘스트 깨지 말라는 소리니까.
“뭐야. 왜지? 어째서 이렇게 된 거지?”
-흐흐. 예상대로구만. 뭘 당황하고 있어? 이제부터 시작인데. 설마 한 판으로 끝낼 생각은 아니겠지? 넌 오늘 다 털릴 각오 해라.
‘와. 씨. 형 저는 형 믿고 있었다니까요!’
아마도 오늘은 역대급 날먹이 될 것 같았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