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26)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26화(26/581)
띠링.
[스킬이 발동합니다.] [반복하시겠습니까?]“……어?”
약 3초.
카르페의 알림을 보고 난 후 상황을 파악하기까지 필요한 시간이 딱 그 정도였다.
물론, ‘반복’ 스킬이 발동한 상황이란 걸 이해하는 데는 1초도 걸리지 않았고, 나머지 시간은 단순히 뇌 정지를 회복하는 시간이었다.
“아, 아니. 이거.”
차라리 카드 팩을 까서 8성 스킬이 떴으면 ‘우와, 말도 안 돼! 미친!’ 이런 식으로 소리라도 질렀을 텐데.
사람이 정말 눈곱만큼도 예기치 못한 상황에 맞닥뜨리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허.
카르페가 흘긋 천마를 쳐다봤다.
그는 차마 말로 형용키 어려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불신, 분노, 허탈, 체념, 기대…… 등등.
그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인세에 차마 없을 표정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아마, 저 ‘허’라는 짧은 탄식에는 범인들은 상상조차 하기 힘든 번뇌가 담겨 있을 것이 틀림없겠지.
-한때는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한 적도 있었어. 라세만 한 갓겜이 없다고. 이렇게 운빨 요소가 주는 재미와 밸런스, 둘 다 잡은 갓겜은 라세가 유일하다고.
“어…… 음.”
-그런데 다 개소리였지 뭐냐? 똥겜도 이런 똥겜이 없어. 밸런스? 금수저도 흙수저도 운은 공평하다고? 응, 아니야. 안 좋은 거 나오면 다시 반복해서 좋은 거 뽑으면 돼……. 울고 싶다, 진짜.
“아니, 다 큰 어른이 뭐 그런 거로 울고 그래요…….”
-이딴 쓰레기 똥겜에 인생 걸린 내 처지가 불쌍해서 그런다 왜!
기연이 무섭도록 몰아친다.
사실, 라세 10년 차 공략집 천마를 뽑는 그 순간부터 기연이 쏟아질 것은 예정된 바였으나, 천마조차 예상치 못한 핵폭탄급 기연이 묻고 더블로 가 버리는 바람에 주체하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이쯤 되니까 저도 진짜 무섭네요. 운영자가 찾아와서 이레귤러라고 캐삭 시킬 것 같아.”
-라세에는 운영자 같은 거 없어. 아니, 모니터링 요원 정도는 있겠지만 게임에 개입할 권한을 가진 운영자가 없다는 게 정확하겠군.
“신기하네. 그러고도 게임이 제대로 굴러가요?”
-10년 동안 버그나 운영으로 사건 터진 적 없으니 잘 굴러가는 거겠지. 아무튼, 우리가 라세 걱정까지 해 줄 필요는 없고.
거기까지 말한 천마는 여전히 둥둥 떠 있는 카드들을 가리켰다.
-안 뽑을 거냐? 설마 2성 스킬로 그대로 가려고?
“설마요.”
카르페가 다시 카드들을 터치했다.
[반복하시겠습니까?]“반복한다.”
[0성 스킬 – 반복이 발동합니다.]스르륵.
스킬을 발동하자 카르페가 뽑았던 2성 스킬, ‘차지 애로우’ 카드에 다시 ‘?’ 문양이 새겨지며 원래 자리로 돌아갔다.
“와. 혹시나 했는데 진짜 되는구나.”
-그런데 반복 쓰면 스킬 카드 구성이 싹 다 새롭게 교체되는 식인가? 아니면 카드 구성은 그대로인데 선택만 반복해서 할 수 있는 건가? 그리고 반복은 한 번만 가능한지…….
“누가 고인물 아니랄까 봐, 새로운 거에는 엄청 적극적이시네요.”
길어질 게 뻔한 천마의 말을 카르페가 중간에 잘랐다. 그런 자잘한 의문은 지금부터 확인하면 될 일!
“다시 갑니다.”
2성을 뽑았을 때 느꼈던 실망감은 온데간데없었고, 기대감으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이번엔 오른쪽에서 두 번째.”
띠링.
[3성 스킬 카드 – ‘초급 마력 회복’을 획득하셨습니다!]“으. 3성.”
-그래도 1성 올랐네. 다시 한번 되는지 해 봐.
“되려나?”
‘무한으로 반복되면 그건 너무 사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띠링.
[반복하시겠습니까?]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된다!”
-에휴, 진짜 이 썩을 게임은 선을 모르네.
이 타이밍에서 한 가지 실험에 들어가기로 했다.
제일 처음 골랐던 것과 똑같이 왼쪽에서 두 번째 카드를 고른 것이다.
[2성 스킬 카드 – ‘차지 애로우’를 획득하셨습니다.]그리고 처음 고른 것과 똑같은 스킬 카드가 등장했다.
“아무래도 반복 스킬을 사용한다고 해서 카드 구성이나 카드 배치가 달라지는 건 아닌가 보네요.”
-반복할 때마다 카드 구성이 달라지면 원하는 카드가 나올 때까지 무한 반복할 거 아냐. 말이 안 되지.
“하긴.”
알고 싶은 것을 알아냈으니 이후는 부담 없이 뽑기를 계속했다.
네 번째 뽑기에서는 초급 마력 회복과 다른 새로운 3성 스킬이 등장했다.
볼 것도 없이 반복!
그렇게 네 번째를 반복하고 카드를 선택하던 그 순간, 지금까지 없던 이펙트가 터져 나왔다.
화악!
카드를 선택한 순간 뿜어져 나오는 찬란한 황금빛!
“어?!”
-헐.
배후령 뽑기와 마찬가지로 스킬 또한 뽑을 때 등급에 따라 이펙트가 터진다.
그중 황금빛 이펙트가 의미하는 것은 바로.
[7성 스킬 카드 – ‘홀리 세크리파이스’를 획득하셨습니다.]“우와!”
-아니, 이게 뜬다고? 진짜로?
5성도 감지덕지할 판에 7성이라니!
카르페가 밀려오는 감동에 잠기는 그 순간, 천마가 말을 걸었다.
-야.
“네?”
천마의 얼굴에는 이제껏 본 적 없던 환한 미소가 걸려 있었다.
도박판에서 개털 직전까지 몰렸다가 마지막 올인 한 방으로 기사회생한 도박꾼의 표정이 저렇지 않을까?
-배후령 바꾸면 스페셜 스킬 삭제된다.
더불어, 배후령과의 호감도가 일정 미만으로 떨어지면 비활성화되기도 한다.
동급의 스킬보다 성능이 강력한 만큼 이래저래 제약이 많은 것이 바로 스페셜 스킬이었다.
-형은 슬프다. 이거 가르쳐 주고, 저거 알려 주고. 업어 키웠더니 고작 직업이랑 스킬 좀 구린 거 나왔다고 배후령을 바꾸느니 마느니……. 아, 배후령 바꿔 줘?
“……에이. 제가 진심이었겠어요? 애정 표현으로 장난 한번 쳐 본 거지. 당연히 우리 형이 최고죠.”
-괜찮아. 바꿔 줄게. 다 이해해. 우리 정훈이, 9성 배후령이랑 같이 꽃길 걸어야지.
“그 무슨 섭섭한 말씀이십니까? 교주님. 천마신교 1번 타격대장 카르페. 신교의 주구가 되어 견마지로를 다할 것입니다.”
“뀨!”
“봐요, 소교주님도 인정하시잖아.”
-……잘들 논다. 아무튼,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홀리 세크리파이스라.
“좋은 거예요?”
-당연히 좋은 스킬이지. 괜히 7성이겠냐.
홀리 세크리파이스(Holy Sacrifice).
일명 ‘신성 수류탄’이라고 불리는 성 속성 계열 최강 딜링 스킬이었다.
-데미지는 끝내주지. MP 총량이 많을수록 데미지가 늘어나는 방식인데, 조건부긴 하지만 암 속성이나 마 속성 몹에 제대로 꽂히면 다른 스킬과는 데미지 자릿수가 달라. 9성 중에도 저거보다 센 건 별로 없어.
다만, 그런 무지막지한 딜링에도 7성에 그친 것은 그만큼 페널티가 막심하기 때문이었다.
-일단 사용하면 HP랑 MP가 1만 남고 전 스텟 300% 감소. 스킬 사용 불가.
“흠. 쓰고 나면 그냥 죽으라는 소리네요.”
-그래서 진짜 제대로 막타각이 나올 때만 써야 하는 스킬이지.
“페널티를 감안해도 엄청 좋은 스킬인 거 같은데.”
최후의 한 방으로 쓸 수 있는 무지막지한 폭딜 스킬이라니. 활용의 여지가 넘치지 않는가.
-거기까지라면 당연히 최소 8성은 줘야 하는데, 페널티가 하나 더 있어.
“뭔데요?”
-일회용 스킬이라는 거.
“네?”
-스킬 한 번 쓰고 나면 그대로 삭제된다고.
“……으아. 구리다.”
스킬 포인트는 아주 귀하다. 레벨 업 외에는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 극히 적은 데다가, 1레벨당 1포인트밖에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전직 때와 달리 스킬 카드로 스킬을 익힐 때는 1의 스킬 포인트가 소모된다는 점이었다.
-다른 페널티는 그렇다 쳐도, 일회용 스킬에 스킬 포인트를 써야 한다는 게 좀 그렇지.
“확실히 그렇네요.”
-그래도, 나름대로 수요가 있어. 퀘스트 중에도 죽으면 퀘스트 자체가 소멸하는 경우도 있으니, 그럴 바엔 스킬 포인트 하나 투자하는 게 훨씬 좋을 수도 있으니까. 경매장에 등록해 놓으면 잘 팔릴걸.
“팔려요? 얼마에?”
-나중에야 매물이 많으니까 싸지지만, 현시점에서는 보자……. 대충 500만쯤 할 거 같은데?
“뭐?!”
500만?!
카르페의 입이 딱 벌어졌다. 20대 초반의 대학 휴학생에게는 어마어마한 금액이었다.
“무조건 팔아야지! 와, 이게 치킨이 몇 마리야?”
-확인부터 마저 하고. 거래 불가능 카드일 수도 있으니까.
“아, 맞다.”
카르페는 허겁지겁 홀리 세크리파이스의 정보를 확인했다.
카드 설명의 최하단에는 ‘거래 가능’이라는 단어가 선명하게 박혀 있었다.
“천마님 맙소사! 감사합니다.”
이게 나라다.
이게 게임이다.
이게 0성 배후령이다!
“경매장은 어디에 있어요?”
-웬만한 대도시에는 다 있지. 당연히 루아나에도 있다.
“퀘스트 재료 구하는 길에 들러서 등록하면 되겠네요.”
뭔가 착착 진행되는 게, 징조가 좋았다.
혹시나 5장 중 마지막 한 장에 8성 스킬이 숨어 있지 않을까 하고 다시 한번 반복 스킬을 사용했지만, 마지막 카드는 또 다른 2성이었을 뿐이었다.
-다섯 장 중에 두 장이 2성, 두 장이 3성이라……. 어이가 없네. 80프로 확률로 쪽박이잖아?
“뭐, 뽑기겜 확률이 다 그따위죠. 그런 거에 일일이 스트레스받으면 제 명에 못 삽니다.”
어차피 이제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20프로 확률을 100프로로 바꿔 주는 갓배후령이 있었으니까.
카르페는 그렇게 7성 스킬 카드를 최종 선택한 뒤, 서둘러 도시로 이동했다.
* * *
루아나의 동문 근처의 상업 지구.
카르페는 그중에서도 가장 커다란 건물 앞에 도착해 있었다.
“후우. 여기가 바로 경매장!”
-그래, 경매장이니까 진정 좀 해. 500만 원이 적은 돈은 아니긴 하지만, 그렇게 호들갑을 떨어야겠냐?
“대학생이 돈이 있어 봤자 얼마나 있겠어요? 500만 원이면 엄청 큰돈이지. 안 그래도 겜방비 부족했는데 잘됐다.”
-뭐? 뭐가 부족하다고?
“겜방비요. 안 그래도 오늘 돈 부족해서 정액도 5시간만 들었…….”
-인마! 뭘 담담하게 말하고 있어! 엄청 큰일이잖아!
천마가 기함했다.
하루 10시간이라는 제한을 꽉꽉 채워도 모자랄 판에 뭐? 겨우 5시간?!
“아니, 돈이 없는데 어쩔 수 없죠. 그래도 500만 원이면 이제 몇 달은 걱정 안 해도 되겠네.”
-아니, 그건 그냥 급한 불 끄는 수준밖에 안 되는 거고. 장기적으로 봤을 땐 확실하게 해결하고 넘어가야지.
카르페가 하루빨리 성장해 이 게임을 끝내주길 바라는 천마의 입장에서, 돈이 없어서 게임을 못 한다는 건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중대 사안이었다.
-일단 다른 건 다 제쳐 두더라도 게임 캡슐부터 사야겠군.
자고로 큰 집을 짓기 위해서는 지반부터 단단히 다져야 하는 법이다.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는 접속 시간 확보조차 힘든 상황에서 다른 일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캡슐이야 저도 사고 싶지만, 돈이 없다니까요. 이번 같은 득템을 몇 번 더하면 가능하겠지만.”
-아니, 그때까지 기다릴 필요 없어. 쉬운 방법 있으니까.
“쉬운 방법이요?”
-내가 사 줄게.
“네?”
-내가 사 준다고. 그게 제일 쉽잖아.
“……그게 가능해요?”
더는 언급할 필요도 없을 만큼 당연한 이야기지만, 천마는 죽었다.
죽은 사람이 캡슐을 사 준다? 어떻게?
자세히는 모르지만, 생전에 재산이 아무리 많더라도 당사자가 사망하면 그 재산은 가족에게, 가족이 없으면 국가에 환수되는 거 아닌가?
-다 방법이 있으니까 걱정 말고. 일단 경매장 안으로 들어가자. 캡슐 사려면 경매장 등록부터 해야 하니까.
점점 더 영문을 알 수 없는 발언이었다.
현실의 게임 캡슐을 사는 데 게임 내 경매장 등록이 왜 필요하단 말인가. 캡슐을 한 방에 구매할 만한 아이템을 들고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게임 지존이나 게임 클리어. 뭐, 그래. 그런 건 못할 수도 있어. 운도 많이 따라 줘야 하는 거니까. 하지만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딱 한 가지는 확실하게 보장할 수 있지.
카르페도 다른 건 몰라도 딱 한 가지는 알 것 같았다.
-앞으로 평생 돈 걱정 없이 게임만 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천마는 그냥 존나 멋있었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