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347)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347화(347/581)
파스스.
용도를 마친 루할의 신상이 가루가 되어 사라졌다. 성녀가 처음 건네주면서 일회용이라고 했었는데 그게 아무래도 이런 의미였던 모양이었다.
“음……”
성직자란 존재가 모시는 신의 모습을 본뜬 석상을 이렇게 부숴 먹어도 되나 싶었지만…….
아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바로 가겠습니다.”
당장 급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카르페는 워프 게이트를 이용해 곧장 세인트루할로 향했다.
“어서 오세요. 형제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세인트루할의 대도시 헤넷의 대신전에 도착하자마자 대기하고 있던 성녀와 조우할 수 있었다.
“르쉬 산에서 찾으시던 유물을 발견하셨나요?”
“네. 운 좋게 한 번에 당첨이었습니다. 성녀님 덕분입니다요.”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네요. 후후. 또 다른 도움이 필요하시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전력을 다해 돕겠습니다.”
원래도 호감도가 높은 상태였지만, 카르페가 상급 악마를 쓰러뜨린 이후 성녀의 태도는 더욱 살가워졌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갈게요. 교황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그쪽에서는 이미 용사 후보의 선택을 마쳤다고 합니다.”
“그렇군요. 그럼 이제 성녀님께서 후보를 선택하시면 그때부터 본격적인 용사 선정이 시작되는 거죠?”
“그렇습니다. 카르페 님. 며칠의 말미 동안 결정은 마치셨나요? 변동 사항이 없으시다면 그대로 티스타니아 님을 용사 후보로 등록…….”
“아, 그거 말인데 잠시만 기다려 주실 수 있나요? 그동안 또 다른 후보가 생겼거든요.”
“네? 그게 무슨……?”
성녀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카르페는 굳이 말로 설명하기보다는 권속들 중 티나와 아리스만을 따로 소환해서 성녀에게 보였다.
“어머?”
아리스테나를 쳐다보는 성녀의 눈동자가 조금 커졌다. 그녀의 몸에 잠들어 있는 신성력을 알아본 것이다.
“새로운 인형분이시네요. 이분이 르쉬 산에 잠들어 있으셨던 분이신가요?”
“네. 맞습니다. 아리스테나라고 합니다.”
카르페가 아리스테나를 소개하자, 아리스는 성녀를 향해 정중하게 고개를 한 번 숙였다가 들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그런 인사였다.
“어때요? 성녀님. 용사 후보로서 어울리지 않을까요?”
“그렇네요. 루할 님의 신성력과는 다른 성질의 신성력이지만, 확실히 강대한 신성력을 품고 계세요. 용사로 활약하시기에는 더없이 훌륭한 신체입니다.”
“오, 그러면 용사 후보로는 티나보다도 더 낫다는 건가요?”
“네! 적어도 제 판단에는 그렇게 보이…….”
뛰어난 자질을 발견한 탓에 성녀의 목소리가 점차 올라가는 그 순간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돌연 단호한 목소리 하나가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지금까지 침묵하고 있던 아리스테나의 목소리였다.
“용사 후보로 적합한 이는 제가 아니라 티나 님이십니다. 저따위는 티나 님과 비교하면 태양과 반딧불…… 아니, 감히 비교하는 것조차 송구스러울 따름입니다.”
아리스는 스스로 말하고도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니, 거기서 더 나아가 얼굴을 살짝 붉히며 망상을 더해 나갔다.
“아아! 성스러운 검으로 악마를 양단하시는 티나 님이라니! 너무 멋지세요. 이건, 반드시 티나 님이 하셔야 해요!”
“어, 음. 물론, 티나 님도 굉장히 어울리시긴 하는데…….”
성녀는 이걸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말끝을 흐리며 카르페를 쳐다봤다.
성녀의 SOS 신호를 받았지만 카르페도 난감하기는 매한가지였다.
‘티나와 관련된 일이라면 돌발행동을 일으킬지도 모른다는 게 이런 걸 말하는 거였군요.’
-흠. 모든 행동 원리가 티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모양인데…… 뭐, 이러면 해결하는 것도 어렵지 않지.
아리스의 행동 원리가 티나를 중심으로 돌아간다면, 티나가 나서서 바로잡아 주면 될 일이다.
애초에 그걸 위해서 티나도 같이 소환했던 것이기도 했다.
카르페가 슬쩍 티나를 쳐다보자, 티나가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리스.”
“네에! 티나 님. 티나 님 걱정하지 마세요. 티나 님 서포트는 제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완벽하게…….”
“그게 아닙니다. 아리스. 물론, 간악한 악마를 처단하는 기사를 동경하지 않는 건 아닙니다만.”
티나는 거기까지 말한 후, 한 템포 말을 쉬었다. 그리고 신뢰가 넘치는 눈동자로 아리스를 쳐다보았다.
“저는 그것보다 용사로서 악마와 싸우는 아리스가 보고 싶습니다. 그건 무척이나 멋질 테니까요.”
“티나 님…….”
티나의 말에 아리스는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방금 저 말이 그렇게까지 감동을 먹을 만한 멘트냐? 도대체 어떤 부분이?
‘이해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냥 받아들여. 전 그러는 중입니다.’
아리스는 티나의 손을 꼭 잡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악마를 처단하는 것 같은 궂은일을 티나 님께 시킬 수는 없어요. ‘정화’라는 이름을 걸고 제가 모두 청소하겠습니다.”
“역시 아리스입니다. 든든하군요.”
“네. 맡겨만 주세요. 용사! 제가 하겠습니다.”
“…….”
다루기가 쉬운 건지 어려운 건지 모르겠다.
이야기가 일단락되자, 성녀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그럼, 아리스테나 님이 최종 용사 후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네. 그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그럼 아리스테나 님. 손을 내밀어 주시겠어요?”
“네. 알겠습니다.”
“잠시만 실례할게요.”
성녀는 아리스의 손을 잡고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의 몸에서 은은한 황금빛이 빠져나와 아리스테나의 몸으로 스며들어 갔다.
“네. 끝났습니다.”
“어, 이게 끝인가요?”
“네. 후보 등록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니니까요. 이제 저와 용사 후보께서 ‘선정의 방’으로 들어가기만 하면 된답니다.”
선정의 방이란, 교황 측의 용사 후보와 성녀 측의 용사 후보가 모두 한자리에 모여 루할로부터 직접 신탁을 받는 특별한 장소였다.
성신교의 성역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성역 중 하나였고, 이곳에 출입이 가능한 인물은 오직 당대의 교황, 당대의 성녀, 그리고 용사 후보들뿐이었다.
“하지만 카르페 형제님과 아리스테나 님은 주종 관계이시니 이 경우는 같이 가셔도 괜찮습니다.”
거기에 더해 아리스가 폭주할 때를 대비해서 티나까지 ‘선정의 방’으로 향하게 되었다.
“선정의 방은 수도 루할의 대신전에 있지만, 이곳에서 쉽게 워프로 이동할 수 있어요. 자, 그럼 안내할게요.”
그렇게 성녀와 함께 선정의 방으로 출발하려는 그 순간.
“저기, 카르페 형제님?”
성녀가 조그만 목소리로 카르페만 따로 불렀다.
“네? 무슨 일이신가요?”
“저, 사소하다면 사소할 수 있는 질문인데 그, 아리스테나 님…….”
“아, 방금 일 때문에? 괜찮습니다. 티나 관련해서 가끔 폭주할 때도 있지만 실력은 확실하니까요. 용사의 역할은 충분할 거예요.”
“아니, 그게 아니라요.”
“응? 그럼요?”
“저기, 그…….”
성녀는 이런 걸 물어봐도 되는지 망설였지만,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리스테나 님은 왜 메이드 복장이세요?”
“……네?”
“만약 용사가 되시면 메이드복을 입은 용사가 되시는 건데 그게 좀…… 이상하니까요.”
“아.”
전혀 생각해 보지 못한 문제였다.
……확실히 지금 생각해 보니 이상하긴 했다.
성신의 가호를 받아 악마를 무찌를 위대한 용사의 정체가 메이드라니?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상상도 되지 않았다. 아마 현실을 부정하지 않을까.
“카르페 형제님. 굳이 메이드복을 꼭 입히셔야 할 이유가 있으…… 핫?!”
성녀는 거기까지 말하다가 무엇을 깨달았다는 듯 소리쳤다. 그리고 이내 얼굴을 새빨갛게 붉혔다.
“그, 그렇군요.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이 있는 법이니까요!”
“아니, 잠깐만요. 지금 상당히 이상한 오해를 하시는 거 같은데.”
“제가 괜한 질문을 드렸습니다. 잊어 주세요! 선정의 방으로 모실게요!”
성녀는 그렇게 말하곤 앞장서서 후다닥 달려가기 시작했다.
“……환장하겠네.”
-떳떳해져라. 메이드복을 싫어하는 남자는 없다! 그건 로망이니까!
“후. 그 말 자체는 동의하지만, 이상한 오해받는 건 싫거든요. 일단 오해부터 풀어야…….”
그 순간이었다.
띠링.
“…….”
-…….
성녀 본인이 앞서 말했듯, 세상에는 다양한 취향이 있는 법이었다.
* * *
슈욱.
카르페 일행과 성녀는 워프를 통해 선정의 방으로 이동했다.
“음. 오셨는가.”
그리고 그곳에는 이미 두 사람이 먼저 와 있었다.
언뜻 보기에 인자해 보이면서 동시에 엄격할 것 같은 모순된 인상의 노인이 한 명.
그리고 그 노인의 옆에 순박해 보이는 청년 한 명이 서 있었다.
-어, 쟤다. 쟤가 용사 맞아.
‘누구요? 저 남자요?’
-그래. 내가 기억하는 용사 얼굴이랑 똑같네. 그래, 원래 역사에서 용사는 교황 측 후보가 선정됐던 모양이다.
‘흐음.’
남자는 아주 순박해 보이는 인상이었다.
그러고 보니 천마가 용사는 원래 농부 출신이라 했던가? 잔뜩 긴장한 것이 눈에 선하게 보였다.
“오랜만에 뵙습니다. 예하.”
“그렇소이다. 성녀. 그간 잘 지내셨소?”
“루할께서 보살피시는데 무엇이 걱정이겠습니까.”
“으음. 성녀께서 인형도 후보가 가능하냐고 물으셨을 땐, 조금 크게 당황했소. 편견이란 좋지 않은 것이지만 좀 파격적이어야 말이지.”
“세상 만물의 어느 것 하나 루할의 손길이 스미지 않은 곳이 없으니 인형이라 한들 용사가 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으음. 그건 맞는 말씀이오. 전능하신 루할이시여…….”
“루할이시여…….”
종교의 최고 신분 두 사람이 만나 간단하게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본론으로 넘어갔다.
“그럼 지금부터 기도를 올리겠소.”
선정의 방 정중앙에는 거대한 루할의 신상이 있었다.
이 기도에 교황과 성녀가 동시에 기도를 올리면 루할로부터 신탁이 내려온다.
그리고 그 신탁의 내용에 따라 용사의 시험이 결정되고, 두 후보는 그 시험 내용으로 서로 경쟁을 하게 된다.
이게 용사 선정의 기본 골자였다.
“루할이시여. 부디 어둠으로부터 이 세상을 구원해 주시옵소서.”
“전능하신 검과 창. 그 엄중함으로 삿된 것들에게 벌할 수 있도록 힘을 허락해 주시옵소서.”
두 사람이 신상에 기도를 올리는 그 순간.
파앗!
“엇?!”
“이건 설마!”
교황과 성녀는 동시에 깜짝 놀라며 고개를 조아렸다.
그 순간, 카르페 눈앞으로 알림창이 등장했다.
[성신 루할이 이곳에 직접 강림합니다.]파앗!
거대한 빛이 루할의 신상에 깃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분명 돌로 조각되어 있는 루할의 신상에 사람의 색이 스며들기 시작하더니.
투두둑.
신상의 겉면에 붙어 있던 돌이 후드득 떨어지더니 이내 완벽한 사람의 모습이 되었다.
“어으, 이 짓도 오랜만이네. 다들 잘 지냈어?”
한없이 껄렁해 보이는 대륙 최고 종교의 신.
루할이 지상에 강림했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