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34)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34화(34/581)
마이나데스의 몸으로 강신한 배후령은 주변을 몇 번 쳐다본 뒤 상황을 파악했다는 듯 웃었다.
[크크. 아크람의 잔당인가? 몇백 년 만에 잠에서 깨어난 곳이 하필 이곳이라. 누구의 수작질인지 몰라도 기분이 좋진 않군.]그녀의 몸을 중심으로 검은색 기운이 사정없이 뻗치고 있었다.
[모처럼의 현계가 엉망이 되었으니, 네놈이 책임을 져야겠다.]폭사하던 검은 기운이 갈무리되어 거대한 검의 형상을 이루었다.
그 광경에, 카르페는 상황도 잊고 감탄을 터뜨렸다.
“와, 라그나 블레이드!”
-그게 뭔데 씹덕아.
“인싸들만 아는 그런 게 있어요.”
-헛소리가 분명하지만 그건 그렇다 치고, 왜 이렇게 태평해?
“뭐, 방법이 없다 보니.”
카르페가 어깨를 으쓱였다.
라세의 설정상, 배후령은 플레이어에게 퀘스트나 스킬 등을 제공하는 강력한 존재들이다. NPC들에게는 정말 말 그대로 ‘신’이기도 하고.
그런 배후령이 직접 강림하셨다니 이건 뭐, 싸우겠다는 의지조차 들지 않았다.
아니, 애초에 싸우고 싶어도 ‘홀리 세크리파이스’의 페널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일반적으로는 강신은 강신으로밖에 대항할 수 없지.
“어? 플레이어도 강신을 쓸 수 있어요?”
-2차 전직 후에 가능해. 대가가 너무 커서 쓸 수 있어도 안 쓰긴 하지만.
“대가가 뭐길래?”
-배후령 상실. 강신 이후에는 배후령 없이 게임 해야 해.
“와 씨.”
상상만 해도 욕이 절로 나왔다. 배후령이 다 하는 게임에서 배후령 없이 게임을 하라니.
목숨이 하나밖에 없는 NPC라면 몰라도, 플레이어는 죽어도 쓰지 않을 기능이었다.
[뭘 그렇게 중얼거리지? 아크람은 예나 지금이나 하나같이 기분 나쁜 놈들뿐이로구나.]배후령이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바닥이 쩍쩍 갈라졌다.
[감히 이 몸 앞에서 여유를 부리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믿는 구석이라도 있나? 그게 아니면 상황 파악도 못 하는 머저리인가?]HP가 1밖에 안 남은 상황에서 믿는 구석이 있을 리가.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은 퀘스트가 완료됐다는 알림이 떴기 때문이었다.
이제 여기서 죽더라도 퀘스트가 날아가는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아마도.
[죽어라.]배후령이 카르페를 향해 거대한 검을 휘두르려는 그 순간.
파앗!
카르페 손에 들린 보석이 붉은빛을 내뿜었다.
[강렬한 배후령의 기운에 영혼석이 반응합니다!]알림에 반응할 틈도 없었다.
카르페에 손에 있던 붉은 보석이 미끄러지듯 기사 인형 속으로 스며들었다.
부지불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카아앙!
강렬한 쇳소리와 함께 바람이 몰아쳤다.
“……어?”
정신을 차렸을 때는, 누군가가 카르페 앞에서 배후령의 검을 받아 내고 있었다.
[누, 누구냐?!]“위신(僞神) 따위에게 댈 이름은 없다.”
은빛 갑주의 기사.
방금까지 카르페가 들고 있던 인형과 똑같은 모습을 한 소녀가 배후령을 향해 매섭게 검을 휘둘렀다.
푸욱.
갑작스러운 사태에 당황한 것일까.
배후령은 어이없을 만큼 쉽게 공격을 허용하고 말았다.
[크학! 이, 이럴 수가…… 아크람에 이런 힘이 남아 있었다고……?]“말을 삼가라. 더러운 입에 담을 이름이 아니다.”
[감히!]배후령이 분노를 토했으나 상황은 뒤집히지 않았다.
처음 허용한 공격이 치명적이었는지, 배후령은 계속 수세에 몰리다가 끝끝내 가슴을 관통당하고 말았다.
[너…… 이게 끝이라고…….]“재촉하지 않아도 찾아갈 것이다. 몇 번이라도 쓰러뜨려 주마.”
[아, 크……람!]그 말이 마지막 말이었다.
쿵.
마이나데스의 시체는 땅으로 쓰러진 후 그대로 재가 되어 사라졌다.
등장할 때의 포스를 생각한다면 놀랍도록 허무한 결말이었다.
배후령의 소멸을 확인한 은빛의 기사가 카르페 쪽으로 천천히 몸을 돌렸다.
-헐.
그녀의 모습은 ‘그래픽 쪼가리’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천마조차 감탄할 만큼 완벽했다.
푸른색 투명한 눈이 카르페를 주시했다.
아주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착각이라고 생각할 만큼 순간적으로, 그녀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마도왕의 첫 번째 검. 광휘(光輝)의 티스타니아.”
고운 미성이었지만 단단한 의지가 느껴지는 목소리였다.
“아크람의 인도에 따라 이 자리에서 눈을 떴다.”
어라?
이거 어디선가…….
“묻겠다.”
붉은색이 옅게 감도는 금발이 마력에 의해 흩날렸다.
어처구니없게도, 그녀를 보고 느낀 카르페의 첫 소감은 ‘아름답다’라거나 ‘고고하다’ 같은 감탄과는 거리가 아주 멀었다.
“그대가 나의 마스터인가?”
이 게임.
‘진짜 표절로 걸리는 거 아니지?’라는 현실적인 걱정이었다.
* * *
“광휘의 티스타니아?”
“티나라고 불러 주시길. 너무 긴 호칭은 유사시 대응이 늦어질 우려가 있습니다.”
“음. 그럼 티나 씨.”
“편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가신에게까지 말을 높여서야, 왕의 위엄이 살지 않습니다. 마스터.”
그녀가 카르페 앞에서 한쪽 무릎을 꿇은 채로 말했다.
소설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기사 그 자체인 모습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그래, 알겠어. 그러니까 티나는 마도왕이 직접 제작한 인형이란 말이지?”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호문쿨루스(Homunculus)입니다만, 그렇게 이해하셔도 무방합니다.”
그녀의 설명에 따르면, 마도왕은 자신의 모든 정수를 담아 일곱 체의 인형을 만들었다고 한다.
배후령들과의 최후의 전투까지 왕을 보필하던 마도왕의 최측근들.
티나는 그 일곱 인형 중 가장 처음 만들어진 인형이었다.
덧붙여, 티나는 카르페가 마도왕의 후예인 것을 첫눈에 알아보았다고 한다.
그래도 마스터였는지 물어봤던 건 그냥 한번 해 보고 싶은 대사였다고…… 여러 의미로 범상치 않은 인형이었다.
-설마, 마도군주가 소환 계열 클래스였을 줄이야.
천마가 혀를 내둘렀다.
포대형 극딜 법사 이상의 화력을 뿜을 수 있는 주제에 묘하게 HP도 높아서, 근접 마검사로도 싸울 수 있었다.
그뿐인가? 8성 제작 스킬도 달고 있는 판국인데, 뭐? 이번에는 9성 소환수 스킬?
-니들이 뭘 좋아할지 몰라서 일단 다 넣어 봤다. 뭐 이런 거냐?
이쯤 되니, 개발진이 ‘신화’라는 이름하에 합법적으로 밸런스를 터뜨리는 중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아무튼 잘됐군. 혼자서는 결국 한계가 있으니까.
MMORPG 장르를 즐기는 유저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는 로망이 있다.
일인군단(一人軍團) 만인지적(萬人之敵)!
수많은 유저들이 달려들어야 겨우 잡을 수 있는 레이드 보스를 단독 토벌.
거대 길드의 철옹성을 홀로 무너뜨리는 압도적인 힘!
그러나 당연하게도, 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상상이었다.
현 공식 랭킹 1위 ‘군터’조차 최상위 랭커 10명을 감당할 수 없다는 게 세간의 중론.
일인군단이라는 건 그야말로 소설 속에서만 성립되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소환 계열은 조금 예외지. 정말 잘만 크면 일인군단도 꿈은 아니야.
네크로맨서, 테이머, 정령사 등등.
자신의 권속을 이용해서 전투하는 직업군들은 정말 혼자서 레이드 몬스터를 토벌하기도 한다.
물론, 그런 직업군은 보통 본체가 허약한 경우가 대부분이었기에 어느 순간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하지만 카르페는 다르다.
개인 전투력 역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압도적인 신화 클래스!
여기에 강력한 권속까지 더해진다면 정말로…….
-흐음. 이렇게 되면 또 계획을 수정해야겠는데. 우선 권속 강화 계열 아이템부터…….
“마스터. 아까부터 궁금했는데 이 잡귀는 무엇입니까?”
-잡귀도 얻어야…… 야, 너 방금 뭐라 그랬냐? 잡귀?!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나 검을 뽑아 들고 정확히 천마를 향해 겨눴다.
“허락만 해 주신다면 저 하잘것없는 잡귀를 당장 토벌하도록 하겠습니다. 마스터, 명령을.”
-……하잘것없는…… 잡귀…….
이 아크람 놈들은 사실 퇴마 집단이라도 되는 걸까? 어째 자신을 보기만 하면 잡귀 타령이란 말인가.
우락부락한 겉모습과 달리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던 천마의 마음에 또 한 번 스크래치가 났다.
“잠깐, 잠깐! 절대 안 돼!”
“어째서입니까? 아주 미약하긴 하나 거짓 신의 기운이 느껴집니다. 하찮은 존재지만 만일을 위해 토벌을 제안합니다.”
-아주…… 미약…… 하찮…….
“그만해. 검으로 베기 전에 말로 죽이겠다!”
카르페는 그녀가 검을 휘두르기 전에 재빨리 상황을 설명했고, 잠자코 듣던 그녀는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과연. 알 수 없는 사고를 당했고, 정신을 차리니 거짓 신의 껍데기를 쓰고 있었다는 말씀이시군요.”
“맞아.”
“그렇다면, 어쩌면 거짓 신 놈들의 저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건 아닐걸…….”
“기운이 미약한 것은 원래 평범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지식은 하늘에 닿았기에 거짓 신이 아닌 왕의 수호령이 되어 가르침을 주고 있다. 네, 상황을 이해했습니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천마를 향해 허리를 숙였다. 더없이 정중한 사과였다.
“군사(軍師)께 결례를 범했습니다.”
-흥. 모르고 한 일이니 봐주도록 하마. 그나저나 군사는 또 뭐야?
“아닙니까? 왕께 가르침을 주시는 분이니 당연히 군사라 생각했습니다만.”
-흐음. 군사. 군사라……. 괜찮군.
천마는 그 호칭이 맘에 든 것인지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되뇌었다.
“또 궁금하신 점은 없으신가요? 마스터.”
“있긴 한데, 그 전에 그 마스터란 호칭부터 좀 바꿔야 할 것 같아.”
“무슨 문제라도?”
“표절 문제가…….”
“표절?”
의미 모를 말에 티나가 고개를 살짝 갸웃했다.
“잘 모르겠지만 불편하시다면 바꾸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그냥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 줘. 나도 그게 좋으니까.”
“그럴 순 없습니다. 신하 된 자로서 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순 없으니, 주군(主君)이라 부르겠습니다.”
“으음. 일단 그 정도로 타협할까.”
주군이라는 호칭도 충분히 낯 간지럽긴 했지만, 마스터만 아니라면야.
“네, 주군. 주군의 검이 되어 적을 멸할 것을 맹세합니다.”
“그래, 앞으로 잘 부탁해.”
띠링.
[퀘스트 이벤트 ‘강신’이 클리어됐습니다. 다음 퀘스트로 연계됩니다.]“오호.”
티스타니아의 맹세를 듣는 것이 이벤트 클리어 조건이었나 보다.
카르페가 다음 퀘스트를 확인하려는 그 순간이었다.
삐- 삐- 삐-
“아, 이런.”
접속 시간이 곧 끝난다는 알림이 들려왔다. 아쉽지만 퀘스트의 내용은 내일 확인해야 할 것 같았다.
“그럼, 내일 봐요.”
-오냐, 푹 쉬거라.
카르페가 천마, 묵향, 티나에게 작별 인사를 한 뒤 접속을 종료했고.
슈욱!
동시에, 천마의 몸은 그가 살아 있었을 때의 방으로 옮겨졌다.
“벌써 세 번째인데도 적응이 안 되네. 도대체 무슨 원리야 이거?”
“뀨!”
“……네가 제일 불가사의야, 인마. 도대체 여기까지 왜 따라오는 건데? 너 정령계라든가 그런 곳 없어?”
“뀨뀨!”
“에휴, 너랑 말해서 뭐 하겠냐. 나만 미친놈…….”
“과연, 이곳이 군사님의 집무실입니까? 독특한 공간이군요.”
휙.
천마의 고개가 번개처럼 돌아갔다. 그곳에는 감탄한 표정의 티스타니아가 있었다.
“아, 아니? 뭐야! 네가 왜 여기에 있는 건데?”
“음…….”
천마의 질문에 티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돌겠네.”
뭐여 이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그때였다.
당황한 천마의 앞에 알림창이 등장한 것은.
[권속의 수가 늘어났습니다.] [지금부터 ‘룸(Room)’ 기능이 오픈됩니다.] [룸은 플레이어와 권속의 휴식 공간이자 생산의 공간입니다. 룸을 업그레이드할수록 다양한 기능이 추가되며 권속의 능력이 향상됩니다.] [당신은 룸의 매니저입니다.]“……진짜, 뭔데 이거.”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