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405)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405화(405/581)
파직! 파지지직!
찬란한 빛을 내뿜던 서빙제의 징표에 점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몰아치는 폭풍은 순식간에 눈보라로 변모했다. 주변의 온도가 급속도로 냉각되기 시작한다.
심상치 않은 전조현상.
아직 서빙제의 힘이 제대로 구현된 것도 아닐진대 주변 환경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침묵했다.
직감적으로 깨달은 것이다. 지금부터 일어날 일에 단 한 순간도 눈을 떼서는 안 된다는 것을.
띠링.
[‘개방된 서빙제의 징표’가 파괴됩니다.]에픽+ 등급의 아이템을 제물로 서빙제의 힘을 빌려온다.
사실, 여기서 ‘힘을 빌려온다’라는 말은 애매모호한 표현이었다.
구체적으로,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서빙제의 힘을 빌리는 건지 명시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때문에 과거 카르페와 천마는 이 ‘서빙제의 힘을 빌린다’라는 문구에 대해서 여러 가지 가능성을 토론한 적이 있었다.
반지가 파괴되는 순간, 카르페가 서빙제 본신의 스킬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는 가능성.
혹은 순간적으로 극도의 스텟 증가를 부여하는 부스터 아이템일 가능성.
혹은 배후령의 ‘강신’ 스킬처럼 서빙제의 의지 자체가 카르페의 신체에 깃들 가능성 등등.
하지만 이 모든 가능성은 그저 추측으로 그칠 수밖에 없었다.
시험해 보겠다고 반지를 깨 먹을 순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하지만 카르페도 천마도 한 가지 사실에는 이견 없이 동의했다.
만약, ‘서빙제의 힘을 빌려온다’라는 행위가 최강, 최악의 형태로 구현된다면 그건 바로…….
-……온다!
챙강-!
그 순간, 서빙제의 징표가 완전히 박살 났다.
박살 난 서빙제의 징표는 그대로 새하얀 얼음 가루가 되어 허공에 떠올랐고 가루는 이내 허공을 빙글빙글 맴돌며 균열을 생성하기 시작했다.
[차원 게이트가 생성됩니다.] [차원 게이트 생성 불가 지역(무의 식 공간)입니다.] [법칙이 충돌합니다. 충돌 판정 중……] [판정 완료.] [현격한 격의 차로 인해 의식 공간 일부가 법칙에서 벗어납니다.] [차원 게이트가 강제적으로 생성됩니다.]오픈된 차원 게이트에서 지독한 냉기가 쏟아져 나온다.
[사해(四害). 서빙제(西氷帝) – 가이저. 현현(顯現)합니다.]서빙제 본신이 직접 강림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형태로 서빙제의 힘을 빌리는 행위였다.
<……감히. 이따위 일에.>
게이트 너머에서 끔찍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쇠를 긁는 듯한 음성은 마치 귀곡성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순간, 게이트 너머로 느껴지던 막대한 존재감이 순식간에 줄어들기 시작했다.
띠링.
[또 다른 태고의 존재가 해당 소환에 기겁합니다.] [또 다른 태고의 존재가 황급히 소환에 개입합니다.] [게이트가 소멸합니다.]스르륵.
알림과 함께 게이트가 소멸하면서 게이트는 다시 백색의 얼음 가루로 돌아와 버렸다.
“……어.”
-……조졌네.
눈앞이 캄캄해진다.
소환 취소라니? 설마 이대로 그냥 에픽+ 아이템 하나를 날려 먹은 거라고?
“……당연한 일이다. 한낱 인간 따위가 감히 빌릴 수 있는 힘이 아니었으니.”
흑화 드렛슈의 차가운 시선이 카르페에게 꽂힌다.
“서빙제 가이저. 사해 중에서도 가장 속을 알 수 없는 괴물이다. 혹, 정상적으로 소환에 성공하였다 하더라도 힘을 빌려줬을 리 없다. 넌 놈의 기만에 속았을 뿐이다.”
그렇게 말하는 흑화 드렛슈의 목소리에선 지금까지와 달리 씁쓸함이 묻어나고 있었다. ‘만약, 정말로 빌릴 수 있다면……’ 아주 미약한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으나, 이내 다시 무감정한 목소리로 돌아왔다.
“혹시나 했지만, 의미는 없었군. 최후의 수단이었겠지? 이제 죽음을 받아들여라.”
“큭!”
파지직!
드렛슈의 주먹에 다시 검은 번개가 서린다. 카르페가 황급히 물러나며 재차 전투 자세를 취했으나.
“명멸(命滅).”
드렛슈가 내지른 일권에서 막대한 기운이 터져 나와 카르페를 덮쳤다.
이건 못 피한다. 그리고 버텨 낼 수도 없다.
직감적으로 죽음을 떠올린 카르페가 이를 악문 그 순간.
채앵-!
“……무슨?”
새하얀 무언가가 카르페와 드렛슈 사이에 끼어들어 완벽하게 공격을 막아 냈다. 무엇이든 파괴할 것 같던 강력한 드렛슈의 일권이 허무하리만치 손쉽게 막히고 말았다.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고?”
흑화 드렛슈의 공격을 막아 낸 새하얀 무언가의 정체.
그건 바로 서빙제의 징표가 파괴되며 생성되었던 얼음 가루들이었다.
게이트를 생성했던 얼음 가루들이 사라지지 않고 카르페를 지켜낸 것이다.
그리고 그 순간, 카르페의 눈앞으로 무수한 알림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서빙제의 징표의 ‘첫 번째 패턴 – 현현’이 동격의 존재에 의해 취소되었습니다.] [우선 패턴이 취소되며 두 번째 패턴으로 전환됩니다.] [징표 속 잠들어 있던 가이저의 기운이 유형화되어 구현됩니다!] [서빙제 파편의 기운이 1개체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너지가 발생합니다.]휘오오오오-!
드렛슈의 공격을 막아 낸 얼음 가루들이 서로 휘감기기 시작하며 형상을 이루어낸다.
얼음 동상.
그리고 그 얼음 동상에 얼음 가루가 더해지면서 점점 더 형태를 갖춰 나갔고, 잠깐의 시간이 지나지 이윽고 완벽한 형태가 나타났다.
얼음 동상은 마치, 여신을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었다.
[서빙제 가이저의 아바타가 생성됩니다.]파앗!
얼음 동상에서 강렬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이 사그라들었을 때는 얼음 동상 대신 한 여성이 서 있었다.
투명할 정도로 깨끗한 은색의 단발.
붉은 두 눈동자는 광기로 번들거리고 있었고, 핏빛보다도 더 붉은 입술을 가진 여성이었다.
“……서빙제 아바타라고?”
-아니, 허. 그 사마귀 진짜 암컷이었어?
얼마 전에 봤던 동해룡의 아바타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만큼 아름다운 모습.
사마귀 형태의 서빙제 파편을 보아온 카르페에게는 인지 부조화가 찾아올 만큼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
서빙제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카르페를 쳐다봤다.
할짝.
-……너보고 입맛 다시는데?
“…….”
먹음직스러운 먹이를 눈앞에 둔 맹수의 눈빛이 저렇지 않을까?
뱀 앞의 개구리가 된 기분이다. 서빙제의 아름다움 같은 건 조금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히죽 웃고서는 고개를 돌려 흑화 드렛슈를 쳐다봤다.
흑화 드렛슈는 어지간히 충격이었는지 그 자리에 얼어붙어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고 있었다.
“…….”
서빙제는 여전히 광기 어린 미소를 지은 채, 오른손을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검지를 펴서 드렛슈를 가리키는 그 순간.
피잉!
“큭?!”
그녀의 손가락에서 생성된 백색 광선이 그대로 흑화 드렛슈의 오른팔을 날려 버렸다.
순간, 이상함을 감지한 드렛슈가 몸을 비틀지 않았으면 그대로 심장이 꿰뚫렸을 만한 공격이었다.
아니, 그걸 공격이라고 표현하는 게 과연 맞는 걸까?
흑화 드렛슈의 입장에선 치명적이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으나 서빙제의 입장에서는 그냥 ‘장난’이었다.
히죽.
서빙제는 웃는 것 외에 다른 의사 표현이 불가능한 인형 같았다.
그녀는 광기 어린 미소를 유지한 채, 이번에는 드렛슈를 향해 직접 몸을 날렸다.
그녀의 새하얀 손날에는 어느새 유형화된 백색의 기운이 서려 있었다.
그건 마치, 사마귀의 낫 같은 형태였다.
“……?!”
흑화 드렛슈는 한없이 느렸다.
대응하기 위해 움직이려고 했으나 그보다 서빙제의 움직임이 수 배는 더 빨랐다.
촤악-!
서빙제의 손이 한 번 휘둘러진다.
흑화 드렛슈의 왼쪽 다리가 잘려나갔다.
촤악-!
다시 한번의 휘두름. 이번에는 왼손이 잘려나갔다.
“커헉!”
흑화 드렛슈가 사지를 내어주는 대신 치명상을 피해 내고 있는 게 아니다.
서빙제가 의도적으로 그 부분만을 잘라낸 것이다.
마치, 순수한 어린아이가 아무런 악의도 없이 개미의 다리를 하나하나 뜯어내듯.
서빙제는 그저 그런 장난으로 흑화 드렛슈의 사지를 모조리 잘라내 버렸다.
“…….”
너무나도 압도적인 광경에 카르페는 할 말을 잊고 말았다.
동시에 분함과 허탈함이 찾아왔다.
“……한참 멀었네요.”
자신은 제대로 된 타격조차 못 했던 흑화 드렛슈가 서빙제의 손에선 그저 하루살이와 다를 게 없었다.
유저 중 최강? 그딴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이 라세에는 이토록 괴물이 많은데.
언젠가는 기필코…….
카르페는 내심 마음을 다잡으며 흑화 드렛슈의 최후를 지켜봤다.
그때, 카르페의 옆으로 다가온 어린 드렛슈가 멍한 표정으로 카르페에게 물었다.
“……저 순백의 여인은 누구인가. 실로 아름답도다.”
“……뭐?”
“여신인가? 그래. 여신이 있다면 분명 저러한 모습이겠지. 실로 고결하며 감히 닿을 수 없을 만큼 강하구나. 짐이 반려를 맞이한다면 저런 여인으로 맞이하고 싶다.”
“……혹시, 충격을 너무 받아서 미쳤니?”
“아아! 아름답도다!”
중2병은 아무래도 뇌를 좀먹는 병인 모양이었다.
투두두둑.
어느새 유린은 끝나 있었다.
서빙제는 가녀린 팔로 드렛슈의 목을 붙잡아 들어 올리고 있었다.
아주 약간의 힘만 줘도 그대로 목이 부러질 터.
“……쿨럭. 믿을 수가 없군.”
드렛슈는 온몸을 축 늘어뜨린 채로 피를 토해냈다. 하지만 그 얼굴에서 고통의 기색 따위는 찾을 수 없었다. 그냥 믿기지 않는 광경을 보았다는 듯 황당해할 뿐이었다.
그는 흘긋 눈을 돌려 카르페를 똑똑히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사해의 비호. 상정치 못한 결과다. 좋다. 인정하도록 하지. 네놈의 가능성을 지켜…….”
뚜두두둑.
하지만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질 수 없었다. 서빙제의 가녀린 팔이 드렛슈의 목을 그대로 분질러 버렸다.
띠링.
[퀘스트 정보가 갱신됩니다.] [놀라운 업적! 당신은 절대로 항거할 수 없는 적으로부터 승리를 쟁취해 냈습니다.] [추가적인 보상이 지급됩니다!]승리를 쟁취한 게 아니라 강제로 승리당한 경우였지만, 어쨌든 카르페는 살아남았다.
흑화 드렛슈가 회색 재가 되어 사라진 곳에 언뜻 아이템이 보였다.
하지만 그건 그림의 떡이다.
할짝.
서빙제가 손가에 묻은 피를 핥으며 카르페에게로 걸어오고 있었으니까.
“……어.”
서빙제의 힘을 빌리는 대가는 아무래도 죽음인가 보다.
……뭐, 이제 죽어도 되겠지? 퀘스트는 갱신되었으니 죽더라도 직업이 소멸할 일은 없었다.
서빙제가 히죽히죽 웃으며 카르페에게로 다가오는 그때.
투콰악!
아무런 전조도 없이 공간이 갈라지며 막대한 물이 쏟아져 들어와 서빙제를 덮쳤다.
당황한 서빙제가 황급히 자리를 피했으나, 놀랍게도 물 덩어리는 서빙제의 속도를 따라잡아 그대로 그녀를 가두어 버리고 말았다.
꼬르르르륵!
서빙제가 격한 분노를 토해내며 발버둥을 쳤으나 물의 감옥은 깨지긴커녕 반대로 점점 서빙제를 압착해 나가기 시작했고.
꽈드드드득!
놀랍게도 서빙제의 아바타는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그대로 소멸하고 말았다.
카르페는 그 광경을 바라보며 그냥 눈만 껌뻑였다.
“……뭐지? 이 급전개는?”
-어, 저거. 너한테 다가오는데?
물 덩어리는 둥둥 뜬 상태로 천천히 카르페 앞으로 다가왔다.
설마, 서빙제에 이어서 자신도 잡아먹으려고?
하지만 물 덩어리는 그러지 않았다. 그 대신 꾸물꾸물 움직이더니 이내 한 줄기 글자가 되었다.
[밖에 나오면 이야기 좀 하자? 거부권은 없단다.]“아.”
물 덩어리들은 그렇게 메시지를 전달한 후, 그래도 자신이 들어왔던 균열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결론만 말하자면 살았다.
“후우우우…….”
“아아! 이럴 수가! 여신이! 여신이 소멸하다니! 통탄할지고!”
“야.”
“짐에게 말을 걸지 말라. 카르페. 짐은 그녀를 추모해야겠다.”
“아니, 육갑 그만 떨고 할 것부터 끝내.”
“할 것?”
“그래.”
카르페가 씨익 웃으며 어린 드렛슈에게 말했다.
“정산합시다. 설마 이대로 끝내려고?”
받을 건 받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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