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43)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43화(43/581)
거대 슬레터의 사체는 회색빛으로 물들고, 이내 재가 되어 사라졌다.
“후우.”
“훌륭한 솜씨였습니다, 주군.”
“고마워. 티나도 수고 많았어.”
스텟을 투자하긴 했지만, 아무래도 엘레멘탈 애로우가 3성 스킬이다 보니 조금 불안한 면이 없지 않아 있었다.
혹시라도 딜이 모자라지 않을까 불안했는데 다행히 딱 맞아떨어진 모양이다.
-엘레멘탈 마스터리를 마스터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겠지. 후우우. 빨리 끝나서 다행이군.
‘그러게요. 저거 실피로 살아남아서 2페이즈 발동됐으면…… 어우. 천장, 벽 안 가리고 미친 듯이 기어 다녔을 거 아니에요? 그거 잡으려면 시간 엄청 걸렸겠죠.’
-시간이 걸리는 게 문제냐? 상상만 해도 정신 혼미해지니까 더러운 묘사는 그만하자, 제발. 소원이다.
‘아니, 영혼 모드면 저놈이 달려들어 봤자 해코지도 못 할 텐데.’
-물리적인 문제가 아니야, 인마. 그냥 DNA 깊은 곳에서부터 일어나는 거부감이라고. 아무튼, 이 얘기는 그만하고 일단 전리품부터 챙기자.
‘아뇨. 그건 조금 이따 하고 지금은 저기부터요.’
-응?
놀랍게도 카르페가 발걸음을 옮긴 곳은 한조가 있는 곳이었다.
“파티원이 정상이 아닌데 아이템부터 챙기는 건 좀 그렇잖아.”
-……허.
천마는 ‘내가 지금 잘못 들었나?’라는 심정이 뚝뚝 묻어나는 얼굴로 말했다.
-천하의 템 귀신 카르페가 전리품보다 파티원을 먼저 챙긴다고?
“전리품은 늦게 확인한다고 도망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절 뭐로 보시는 겁니까?”
-이야, ‘우리 애가 달라졌어요’가 실제로 가능한 거구나. 형이 웬만해서 눈물이 안 나는 사람인데…… 눈물이 나네?
“벌레 보고 쫄아서 찔끔하셨나 봅니다. 아, 그러고 보니 딱히 직접 챙길 필요는 없구나.”
묵향의 스킬 ‘수집 본능’.
플레이어 주변의 아이템을 자동으로 수집하고 그 아이템을 보관할 수 있는, 인벤토리까지 딸려 오는 최고의 날먹 스킬!
카르페는 백설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다가가는 묵향에게 말했다.
“향아.”
“뀨?”
“인벤토리 비어 있지? 저기 가서 아이템 좀 주워다 줄래? 다 가져오면 도토리 줄게.”
“뀨!”
묵향은 짧은 앞발로 경례를 착! 올려붙인 뒤, 보스 몬스터의 사체가 있던 곳으로 쪼르르 달려갔다.
그 모습에 카르페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쟨 또 언제 저런 걸 배웠대.”
카르페의 혼잣말에 어느새 인형 모드로 돌아온 티나가 대답했다.
“제가 알려 줬습니다. 향 또한 주군의 기사이니 예법을 알아야 한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래?”
“네. 습득이 빨라서 가르치는 보람이 있습니다. 필시 훌륭한 기사가 될 테지요.”
딱히 기사가 안 돼도 상관없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티나가 실망할 것 같아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크윽.”
어느새 정신을 차린 한조는 카르페가 다가가자 돌연 고개를 푹 숙였다.
“못난 모습을 보였소. 이번 일은 꼭 보상토록 하겠소.”
“아니, 뭐…….”
만약 한조가 억지로 보스 레이드를 강행하고 이 사달이 났다면 꽤 발암 스토리였겠지만, 이 경우는 자신이 보스를 잡자고 주도했던 터라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말을 하다가 끊은 탓일까.
카르페의 어중간한 태도를 화가 나서 그렇다고 생각한 것인지, 한조는 횡설수설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그…… 소인은 어릴 적 독거미에게 물린 일이 있었소.”
“응? 독거미? 한국에 독거미가 있나?”
“음? 소인은 미국인이오만?”
“……진짜로?”
“그렇소이다. 2년 전부터 한국에 머물고 있긴 하지만, 확실히 미국인이오.”
“…….”
미국인이 한국에 와서, 닌자 컨셉을 잡으며 게임을 하고 있다?
이 무슨 해괴한 혼종인지…….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그 거미는 독성 자체는 그리 강하지 않은 종이었소. 그러나 문제는, 소인이 소인도 몰랐던 독 알레르기 체질이었다는 점이었지.”
“아.”
들어 본 거 같다.
주로 독충에게 쏘이거나 물렸을 때 알레르기 증상이 도지는 사람들이 있다고.
분명 아나 뭐시기라고 불렀던 거 같은데…….
-아나필락시스 쇼크. 벌초 시즌 때 벌에 쏘여서 응급실 실려 갔다는 뉴스 본 적 있지? 그게 다 저거 때문이다.
천마는 심하면 죽을 수도 있는 무서운 증상이라고도 덧붙였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가 겨우 살아났소이다. 하지만, 그 이후 소인은 벌레를 보면 얼어붙게 되었소.”
“일종의 트라우마 같은 거군.”
카르페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괜찮아졌지만, 과거에 잠깐 트라우마로 고생한 적이 있어서 그 심정이 십분 이해되었다.
“그런 거였으면, 나 혼자 다녀와도 됐는데.”
“아니 될 말이지. 참된 협객은 결코 동료를 홀로 보내지 않소!”
“대단하다, 정말.”
컨셉이 뇌를 지배하면 트라우마조차도 멈출 수가 없구나.
카르페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리고 최근엔 좀 괜찮아졌다고 생각하고 있었소. 하지만 자만이었군. 면목이 없소이다.”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
오히려 그런 트라우마를 무릅쓰고 도우려 했단 점에서 박수를 쳐 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무튼, 이제 끝났으니까 얼른 정리하고 나가자. 아직 심적으로 힘들 텐데 쉬어야지.”
“배려에 감사드리오, 투신.”
묵향이 보스 드랍템을 싹 수거한 걸 확인한 뒤 보스 룸에서 벗어났다.
이후 펜던트가 떨어진 곳까지는, 잡몹 몇 마리가 더 출현한 게 다였다.
띠링.
[마력을 품은 단단한 갑피를 획득하셨습니다(15/15).]“오.”
던전 내 몬스터를 빠짐없이 전부 잡아낸 덕인지, 룸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재료 중 하나가 전부 모였다.
카르페는 상태창을 열어 확인했다.
띠링.
[룸 업그레이드]-플레이어의 레벨(20/20)
-마력을 품은 단단한 갑피(15/15)
-바다를 머금은 고목 껍질(0/1)
‘이제 남은 건 고목 껍질뿐인데…… 이건 또 어디서 찾아야 하나.’
-딱 하나만 구하라는 거 보니, 아무래도 네임드 몹을 잡아야 하는 모양인데?
‘그럴 가능성이 크겠네요.’
룸을 업그레이드할 때 필요한 재료들은 천마조차도 처음 들어 보는 것들이라고 했다.
그래서, 바다 동굴 던전에서 단단한 갑피가 뜬금없이 튀어나왔을 때는 얼마나 놀랐던지.
-아마도 룸 기능을 개방한 플레이어 전용 재료라는 거겠지. 내가 모라는 것도 당연해.
그 증거로, 마력을 품은 단단한 갑피는 재료템인 주제에 ‘거래 불가’가 걸려 있었다.
-어쨌든, 너무 걱정하지 마라. 바다, 고목, 그리고 네임드 몹. 이 정도 힌트면 금방 찾을 거야. 당장 떠오르는 것만 해도 두 개나 있으니까.
“매번 느끼는 거지만, 군사님의 식견은 놀랍습니다. 필시 오랜 세월 동안 지식을 쌓아 올리셨겠지요.”
-……뭐, 한 10년쯤?
“훌륭하십니다. 저도 본받아 정진토록 하겠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어느새 동굴 제일 끝에 도착했다.
“이건가?”
동굴 바닥에 자그마한 펜던트 하나가 떨어져 있었다.
카르페가 그것을 주워들자, 기다렸다는 듯 알림창이 등장했다.
[‘소녀의 펜던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NPC에게서 보상을 수령하실 수 있습니다.] [워프 게이트가 생성됩니다. 해당 워프 게이트는 던전 입구와 루아나 중 원하는 곳으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됐다. 넌?”
“소인도 방금 완료되었다는 알림을 받았소.”
“좋아. 진짜로 끝났군.”
스킬팩에 혹해서 들어온 것치고 많은 것을 얻었다.
레벨도 3이나 올렸고, 보스 몬스터 사냥도 성공했다. 거기에 룸 업그레이드 재료까지.
카르페는 만족스러운 던전이었다고 생각하며 워프 게이트를 발동하려 했다.
하지만 그때, 한조가 돌연 입을 열었다.
“이보시오, 투신.”
“응?”
“묻지 않는 것이오? 소인이 사실은…….”
“여자인 거?”
“……그렇소이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계속 눈치를 보길래 왜 저러나 싶었는데, 그걸 신경 쓰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어? 뭐야? 여자였어?
‘보스 룸에서 비명 지를 때 못 들었어요? 여자 목소리였잖아요.’
-나도 지르느라 신경 못 썼지……. 흠, 그럼 저 남자 목소리는 캐쉬템인가 보네. 그거 의식하고 있어야만 발동되거든.
‘진짜 컨셉질하기 좋은 게임이네요. 별의별 아이템이 다 있구나.’
한조는 잠시 주저했지만, 이내 곧장 카르페에게 사과했다.
“미안하오. 그러나, 딱히 나쁜 의도를 가지고 속인 건 아니…….”
“아니, 잠깐만.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되는데. 이게 사과할 일이야?”
카르페는 지금까지 살아오며 수많은 게임을 즐겼다.
온라인 게임도 많이 했고, 길드에서 활동도 하면서 수많은 사건 사고를 직접 보고 겪어 왔다.
자신이 여성임을 숨기는 유저? 그런 건 너무 흔해서 이야기거리조차 되지 않는다.
이유도 각양각색이다.
찝쩍거리는 게 싫어서.
딜러 하고 싶은데 서포터를 기대하는 게 싫어서.
심지어는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다짜고짜 욕부터 박고 시작하는 인간도 존재했다. 성희롱은 옵션이다.
카르페의 길고 긴 게임사 중에는 그런 소수의 인간 때문에 파탄 난 파티와 길드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어떻게 보면 현명한 거지. 드물긴 하지만 미친놈들이 있긴 하니까. 고작 성별 속인 거 가지고 사과할 필요는 없어. 그게 뭐 대수라고. 게임만 잘하면 됐지.”
“……그렇게 말해 주니 마음이 편하구려.”
카르페로서는 한 점 가식 없이 평소의 생각을 말한 것이지만, 한조는 꽤 감동한 것 같았다.
복면 때문에 정확한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무튼 그런 느낌이었다.
“오늘 수고 많았어.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보자고. 컨셉질 응원한다.”
“앗, 이보시오 투신! 잠깐만…….”
그녀가 붙잡으려고 했지만, 카르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대로 워프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한조가 워프를 멍하니 쳐다보며 중얼거렸다.
“친구 추가 아직 못 했는데…….”
* * *
“신의 사자님! 정말 감사합니다!”
띠링.
[초급 스킬팩을 획득하셨습니다.]“좋아!”
워프를 통해 던전 입구로 돌아온 카르페는 소녀로부터 보상을 챙겼다.
“흐흐. 스킬팩이 두 개군요.”
20레벨 도달 보상으로 얻은 스킬팩까지 총 두 개의 스킬팩이 인벤토리에 장전되어 있었다.
카르페는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듯 웃으며, 인적이 드문 곳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냥 아무 데서나 까면 안 되냐? 어차피 다른 사람들한테는 보이지도 않는 건데.
“어허. 사람이 많은 곳은 잡기운이 많다는 상식도 모르십니까? 부정 탑니다.”
-그냥 확률이라는 개념 자체를 부정하는 거 같은데…….
숲속으로 조금 걸어 들어가자 이내 인적이 드물어졌고, 카르페는 대충 근처 바위에 앉은 뒤에 스킬팩을 꺼내 들었다.
“적당한 공격 스킬이 나오면 좋겠네요.”
엘레멘탈 애로우가 범용성이 좋긴 했으나, 한 스킬만 줄창 쓰다 보니 재미가 없었다.
-뭐, 반복으로 계속 돌리다 보면 하나쯤은 얻어걸리겠지. 게다가 팩도 두 개잖아.
“그러길 빌어야죠.”
“뀨뀨!”
“아, 참. 그러고 보니 확인을 안 했네.”
향이에게 보스 드랍템 수거를 시켜 놓고, 정작 어떤 걸 가져왔는지 확인은 안 한 상태였다.
“스킬팩 까기 전에 아이템부터 확인해야겠다.”
카르페는 맛있는 음식을 가장 마지막에 먹는 타입의 인간이었다.
스킬팩 개봉을 자연스럽게 뒤로 미루려는 그 순간.
“엥?”
카르페는 보았다. 묵향의 입에 물린 직사각형의 물체를.
“……향아. 그거 어디서 났니?”
“뀨우?”
향이의 입에는 카르페 손에 쥐어진 것과 똑같은 물건, 스킬 카드 팩이 물려 있었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