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539)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539화(539/581)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
합일이 끝나자, 양쪽 다 외양이 다소 달라져 있었다.
카르페의 경우에는 온몸에 서리가 낀 백발의 모습으로 변했고, 지크아이젤의 경우 그림자가 몸 전체를 감싼 듯 기묘한 모습이었다.
스르릉.
그리고 합일을 마친, 지크아이젤이 자신의 그림자에서 한 자루의 검을 뽑아냈다.
아주 아름다운 은빛 날의 곡도였다.
카르페가 살짝 감탄하며 물었다.
“그건?”
“흑영흑검. 직업 전용 무기다.”
“……흑검이라고? 은색인데?”
“아직 내 경지가 낮아, 모든 힘을 끌어내지 못했기 때문이지. 나도 본 적은 없다만…… 최고 경지까지 도달하면 검이 흑색으로 변한다더군.”
“호오.”
재밌는 설정이군.
카르페가 살짝 감탄을 내뱉으며 자세를 잡자, 이번에는 지크아이젤이 놀랐다는 듯 물었다.
“……정령합일 스킬이라니? 물리 계열 클래스가 아니었나?”
흑익의 퀘스트에서 만난 사이다 보니, 지크아이젤은 카르페를 어쎄신 계열, 그게 아니면 민첩에 특화된 물리 계열 직업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설마 정령사일 줄은…… 아니, 그게 아니라면 정령사가 아니면서 정령합일을 익힐 방법이 있는 건가?”
“뭐, 비슷해. 일종의 체질 같은 거랄까.”
“……재주가 많을 거라 생각은 했다만 이건 아주 놀랍군.”
지크아이젤이 카르페를 향해 검을 겨눴다.
“하지만 조심해라. 아무리 정령합일 상태라 해도 방심하면…… 순식간에 죽을 테니까.”
“읏?!”
카르페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지크아이젤의 마지막 말 ‘순식간에 죽을 테니까’라는 말이 바로 왼쪽 귀 옆에서 들렸던 탓이었다.
불과 1초, 아니 0.5초 전만 해도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는데 지크아이젤은 순식간에 카르페의 왼쪽 등 뒤를 잡아 버린 것이다. 단순히 빠르게 움직인 게 아니다. 이건 순간 이동 계열의 스킬이었다.
“블링크?!”
“그런 잡스러운 스킬과 비교하면 섭섭한데.”
8성 스킬 – 흑영보.
대상의 그림자로 이동할 수 있는 순간 이동 스킬이었다. 묵향이 보유하고 있는 은영보가 아군 판정인 대상의 그림자로만 이동할 수 있는 반면, 흑영보는 그런 제약 없이 적과 아군을 가리지 않고 자유롭게 그림자를 누빌 수 있는 암살에 특화된 스킬이었다.
순식간에 카르페의 등 뒤를 점한 지크아이젤이 재차 스킬을 발동했다.
“흑영검 제1초식 – 흑천(黑天).”
쐐액!
은빛의 검이 카르페의 목을 노리고 빠른 속도로 쏘아져 온다.
“큭!”
기습적으로 뒤를 잡히긴 했으나, 아직은 괜찮다. 빠른 공격이지만 어떻게 못 피할 정도는 아니었다.
카르페가 젖 먹던 힘까지 내며 허리를 젖히려는 그 순간.
슈욱!
“미친?!”
아무런 낌새도 없이 갑자기 검이 늘어나 카르페의 목을 노려 왔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늘어난 것처럼 보였다’.
이건 피할 수 없었다. 카르페는 회피 대신 황급히 스킬을 발동했다.
“젠장! 호신강기! 커헉!”
콰아앙!
흑천이 카르페의 목을 찔렀고, 카르페는 무시무시한 기세로 뒤로 튕겨 나가고 말았다.
“……대단하군.”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공격을 성공시킨 지크아이젤이 오히려 감탄을 터뜨렸다.
호신강기와 강시공의 효능으로 즉사를 면한 카르페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와, 진짜 한 번에 죽는 줄 알았네. 방금 그건 뭐지?”
“……묻는다고 영업 비밀을 말해 줄 바보로 보이나?”
“쓰읍. 그건 그렇겠지. 진짜 깜짝 놀랐네. 갑자기 검이 길어지다니.”
검 자체의 기능인가?
카르페가 의심스럽다는 듯 흑영흑검을 쳐다보자, 지크아이젤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궁금하면 직접 알아보도록.”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야. 이번엔 이쪽에서 간다!”
카르페가 창룡보를 밟으며 지크아이젤에게 접근했다.
“얼음 정령의 숨결.”
[얼음 정령의 숨결이 발동합니다. 플레이어의 무기에 얼음 속성이 깃들며, 물리, 마법 데미지가 동시에 상승합니다. 또한, 낮은 확률로 적중 대상에게 결빙 효과를 발생시킵니다.]무기의 인첸트를 마친 카르페가 주먹을 휘둘렀다. 지크아이젤 역시 그에 맞춰 검을 휘둘러 왔다.
챙! 채애앵! 챙! 푸욱!
“큭?!”
그렇게 3합.
놀랍게도 카르페가 다시 한번 검에 찔리고 말았다. 지크아이젤의 공격은 별다른 효과가 없는 평범한 공격이었음에도 말이다.
-어, 너 뭐냐? 왜 그래? 왜 저런 밋밋한 공격에 얻어맞냐?
‘아니, 이게 진짜 뭐지?’
카르페는 실로 오랜만에 혼란스러움을 느꼈다.
천마의 말처럼 지크아이젤의 공격은 지극히 평범했다.
아니, 속도와 정확성 같은 건 다른 유저랑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경지였으나…… 그건 당연하다는 전제하에 평범하다는 소리였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공격인데 허용하고 말았다. 그리고 당연히 맞혀야 하는 타이밍의 공격은 번번이 빗나가기 일쑤였다.
그렇게 몇 차례 더 공방이 지났으나 이번에도 카르페가 일방적인 손해를 봤다. 그리고 카르페는 그제야 무엇이 잘못됐는지 깨달았다.
‘이거, 거리감이 이상해요.’
카르페가 받아들이는 감각과 실제 거리감이 어긋나 있었다.
설마 감각 혼란 계열의 스킬인가? 그것도 아니면 환영 계열? 아니,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신안과 해금이 있는 이상 카르페는 그런 계열의 스킬에는 완전 면역인 상태였다.
그렇다면 어째서 이런 혼란이 발생했지?
푸욱!
“큭!”
“……대단하군. 이 기술에 이 정도로 반응한 건 네가 처음이다. 어떻게든 치명타는 피해 내는구나.”
그렇게 다시 약 10합. 카르페는 기어코 감각 이상의 원인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거 착시구나.”
“정답이다. 놀랍군. 이 짧은 시간에 알아낼 줄이야.”
카르페가 웨폰 드랍 같은 스킬과 별개의 기교를 사용하듯, 지크아이젤 역시 ‘착시’라는 기교를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림자를 늘리거나 줄이면서 물건의 실제 위치에 혼란을 준다. 혹은 그림자를 조금 변형시켜 검의 면적을 살짝 늘이거나 줄이는 방식이었다.
이런 건 스킬이 아니다. 때문에 해금도 신안도 반응하지 않았던 것이다.
-하. 그렇군. 착시라. 오히려 감각이 예민하면 예민할수록 불리한 기술이었어.
카르페의 날카로운 감각이 오히려 독이 되어서 평소보다 훨씬 더 혼란이 가중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알았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감각이란 건 그렇게 쉽게 돌아오는 게 아니니까.”
“글쎄. 그건 어떨지. 그런 건 기합으로 적응하면 되는 거야.”
“……무식한 소리로군.”
하지만 그렇게 다시 30합이 지났을 때.
이번에는 지크아이젤이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게 된다고?”
어이가 없었다. 이제 그림자를 이용한 착시도 처음에만 잠깐 움찔할 뿐, 순식간에 착시에 적응해서 대응해 온다.
아니, 단순히 대응하는 수준이 아니다.
후웅-! 핏!
주먹이 어깨를 스쳐 지나간다. 처음에는 크게 빗나가던 공격이 어느새 타이밍을 맞춰서 몸을 노려 온다.
단순히 착시에 적응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퍼억.
이번엔 기어코 맞고야 말았다. 정타는 아니었지만, 가격당한 팔뚝 부분이 저릿저릿하다.
‘따라가기 힘들군.’
그냥 빠르다. 그저 순수하게 속도가 빠른 것이다. 흑영합일 중인 자신보다도 더.
그 단순한 사실을 깨닫고 나서 지크아이젤은 순간적으로 머리가 멍해졌다.
‘그게 가능해?’
히든 직업 ‘흑영신’의 전용 스킬 ‘흑영합일’ 상태에서는 사용자의 모든 스텟이 폭증한다.
물론, 이건 꼭 흑영합일 스킬에만 해당하는 건 아니었고, ‘합일’ 스킬로 분류되는 모든 스킬들의 공통점이었다. 현재 눈앞에서 발동 중인 ‘정령합일’ 또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같은 합일 스킬로 분류된다고 해서 그 스텟의 증폭량 역시 같은 건 절대 아니었다. 설령 그게 같은 9성 스킬이라 할지라도.
‘정령합일’의 경우 특수한 퀘스트를 수행해야 습득할 수 있긴 했지만, ‘정령사’ 계열의 직군이라면 누구나 익힐 수 있는 스킬이었다.
반면, 흑영합일은 오로지 히든 클래스 ‘흑영신’만이 습득할 수 있는 유일 스킬.
당연히 같은 9성 스킬이라도 흑영합일 쪽의 격이 더 높고 기능도 많았다. 스텟의 상승량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속도에서 내가 밀린다고?’
보다 상위의 스킬인 흑영합일이 정령합일에 밀리고 있는 현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명백했다.
‘도대체 어떻게 되먹은 스텟이야!’
기본 스텟 자체가 크게 차이가 난다는 뜻이다. 근데 이게 상식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았다.
지금까지 자신이 얻은 기연과 영약이 얼마인가. 유저 전체를 통틀어도 독보적인 수준이라 감히 자신할 수 있었다.
레벨 역시 마찬가지. 전 세계 사람들은 가장 레벨이 높은 플레이어를 ‘군터’라고 알고 있지만, 진실은 그게 아니었다.
군터는 공식 랭킹을 등록한 인물들 중 1인자일 뿐, 실제 레벨 1위는 지크아이젤 본인이었다. 적어도 그가 아는 정보 내에서는 그러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레벨과 스텟은 정비례 관계이므로…… 라세 유저 중 자신보다 스텟이 높은 인간은 없어야 정상이었다. 그래야만 했다.
하지만.
콰아아앙-!
“큭!”
“좋아! 점점 더 적응되는 거 같은데?”
점점 더 가격당하는 횟수가 늘어 가고 있다. 어떻게든 최대한 흘려 내곤 있으나 데미지가 조금씩 쌓여 간다.
반면, 자신의 공격은 크게 데미지를 주는 느낌이 없었다. 속도뿐만이 아니라, 체력과 근력 스텟도 무지막지하다는 의미였다.
‘무슨 이런 괴물이……!’
이대로는 안 된다.
전투가 길어져 녀석이 적응을 마치게 되면, 결국 스텟의 차이로 패배할 게 분명했다. 그 전에 무슨 수를 사용해야만 했다.
‘어쩔 수 없나.’
지크아이젤이 각오를 굳혔다. 웬만해선 사용하고 싶지 않은 기술이었지만, 유물이 걸려 있는 이상 이것저것 따질 상황이 아니었다.
팟!
지크아이젤이 이형환위 스킬을 발동해 뒤쪽으로 거리를 벌렸다.
격렬한 전투가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다. 둘 모두 전신에 크고 작은 상처들이 즐비했다.
“후. 후우. 대단하군. 솔직히 이렇게까지 강할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래? 내 느낌으로는 그쪽도 아직 여력이 좀 있는 거 같은데 말이지.”
“……남은 시간이 많지 않군. 슬슬 끝을 내자.”
“오. 그 말은 끝내고자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지 끝낼 수 있다는 말처럼 들리는데?”
“그렇다면 제대로 들은 게 맞다.”
스윽.
지크아이젤이 오른쪽 어깨까지 검을 들어 카르페를 향해 겨눴다.
“네가 내 생각보다 훨씬 강하다곤 하나…… 게임에 속한 플레이어인 이상, 피할 수 없는 시스템상 판정 같은 게 있지.”
그리고 지금부터 발동할 스킬은 그런 류의 ‘판정’ 스킬이었다.
띠링.
“흑영검 8초식 – 절명(絶命).”
스킬이 발동하자, 지크아이젤의 검에 요사스러운 기운이 서리기 시작한다.
히든 클래스 ‘흑영신’은 암왕 이전 세계 최강의 어쎄신이라 불렸던 자의 직업이다.
어쎄신이 수행하는 직무는 수도 없이 많았지만, 흑영신은 그중에서도 ‘암살’에 극도로 특화되어 있는 직업이었다.
과거, 설령 대국의 황제라 하더라도 흑영신의 타겟이 되면 반드시 죽었다고 하니 그 솜씨는 가히 하늘에 닿았다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절명’은 그런 흑영신 직업의 최종 오의 스킬이다.
그 능력은 실로 단순하면서도 강력했다.
[절명이 발동합니다.] [대상이 NPC가 아닌 플레이어입니다. 조건을 만족하고 있습니다. 100%의 확률(기본 65% + 대상 간의 레벨 차이 보정 35%)로 대상을 즉사시킵니다.]슈르르륵.
검에 서린 요사스러운 기운이 카르페를 향해 순식간에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읏?”
깜짝 놀란 카르페가 순식간에 창룡보를 밟으며 거리를 벌렸다.
하지만.
“뭐야? 유도 기능?”
절명의 기운은 그런 카르페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따라가고 있었다. 당연한 일이다. ‘절명’은 회피 불가, 방어 불가 판정을 가진 스킬이었으니까.
오직 NPC가 아닌 플레이어에게만 사용할 수 있고, 흑영합일 상태여야만 하며, 대상이 흑영흑검에 30회 이상 피격당해야만 발동할 수 있는 조건부 스킬이었으나, 발동만 한다면 대상을 확정적으로 죽일 수 있었다.
그렇다. 절명은 그 어떤 게임에서도 사기 소리를 듣는 ‘즉사 판정’의 스킬이었던 것이다!
[절명이 발동하여 플레이어의 레벨이 1 감소합니다. 스킬 포인트가 1 소모됩니다.]물론, 강력한 효과를 가진 스킬인 만큼 어마어마한 페널티가 따라붙는다. 레벨과 스킬 포인트가 동시에 감소해 버리는 것이다. 또한, 절명으로 사망한 플레이어는 그 어떤 데스 페널티도 받지 않는다.
‘레벨을 복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리겠군.’
하지만 유물을 얻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다. 충분히 감내할 만한 페널티였다.
“큭?!”
어느새 절명의 기운이 카르페를 감싸 안기 시작했다.
이로써 끝이다. 지금까지 절명의 대상이 되어 살아남은 플레이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지크아이젤이 담담하게 중얼거렸다.
“저주 내성을 무시하는 즉사 저주 스킬이다. 발동 자체를 막는다면 모를까. 한 번 발동된 이상 피할 방법은 없지. 부활하면 그쪽으로 찾아가도록 하겠…….”
하지만 바로 그 순간이었다. 지크아이젤의 눈앞으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알림이 등장한 것은.
띠링.
[절명이 알 수 없는 상위의 힘에 의해 무효화됩니다.] [절명이 강제로 취소됩니다. 단, 소모된 레벨과 스킬 포인트는 반환되지 않습니다.]“……엥?”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지크아이젤의 얼빠진 목소리. 그 직후, 카르페의 주먹이 지크아이젤의 안면에 꽂히고 말았다.
퍼어어억-!
“크억?!”
“와. 즉사 저주 스킬?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걸 가지고 있어?”
카르페가 혀를 내둘렀다. 물론, 그 말도 안 되는 걸 아무렇지 않게 씹어 버린 당사자가 할 말은 아니었다.
“어, 어떻게…….”
“아쉽게 됐어. 이쪽도 좀 타고난 체질 같은 게 있어서…… 저주 같은 건 잘 안 통하거든.”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절명은 저주 내성 무시…… 커헉!”
소리치는 지크아이젤의 복부에 카르페의 주먹이 다시 꽂혔다. 치명타다. 더 이상 회생의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은 여기까지인가. 하하. 재밌었어. 너, 사실 아직 숨긴 거 꽤 있지? 본선에서는 꼭 전부 보여 주길 바란다.”
“마, 말도 안 돼…….”
“잘 가라. 그럼 다음에 또 보자고.”
퍼어억!
카르페의 주먹이 다시 한번 자비 없이 지크아이젤의 안면에 꽂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