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575)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575화(575/581)
“마르바스?”
갑작스레 언급된 이름에 카르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분명 들어 본 기억이 있는 이름이다. 발라크와 리리스가 마계에서 주의해야 할 악마들을 이야기할 때, 항상 1순위로 거론된 이름이었으니까.
“마계 대공 중 한 명이었지. 아마?”
<그렇다. 인간. 현재 대공의 위(位)를 가진 악마들 중 가장 오래된 악마 중 하나이다.>
지혜의 대공 마르바스.
기만이니 탐욕이니 하는 다른 대공들의 수식어에 비하면 매우 점잖은 수식어였지만, 대부분의 악마들은 알고 있었다. 지혜라는 이명 뒤에 숨어 있는 마르바스의 어두움은 그 어떤 악마도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마계에 일어나는 깊은 음모는 그 배후가 모두 마르바스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마르바스와는 최대한 얽히지 않는 것이 상책이나…… 나는 어리석게도 놈의 혀에 넘어가고 말았다.>
깊은 탄식과 함께 바포메트는 자신이 겪었던 옛이야기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 * *
시대를 짐작할 수도 없는 머나먼 옛날.
마계의 험지로 유명한 지옥 불화산은 열기는 너무나도 강렬해 동식물은 생존조차 힘들었고 웬만한 악마들조차 접근을 꺼리는 오지 중의 오지다.
<…….>
그러한 불모의 땅에서 바포메트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한 손에는 삼지창을 쥐고 두 눈을 지그시 감은 채로 몇십, 몇백 년을 같은 곳에 망부석처럼 서서 자리를 지켰다.
그것이 그가 받은 유일한 사명이자 존재 의미였기에.
위대한 마신이 자신에게 명한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매일 같이 같은 풍경을 보며 세월을 보내던 그 어느 날.
평소와는 전혀 다른 일이 생겼다. 어디서 날아온 까마귀 한 마리가 바포메트의 어깨 위로 살며시 내려앉은 것이다.
까악-!
<…….>
평범한 까마귀…… 아니, 마수라 할지라도 지옥 불화산의 열기를 버텨 내고 이곳까지 올 순 없었다.
즉, 이 까마귀는 절대로 평범한 까마귀가 아니었다.
악마의 사역마수. 그것도 보통 악마가 아닌 최고위 악마의 냄새가 풍겨 왔다.
그리고 바포메트가 아는 한, 이런 까마귀를 상징적으로 부리는 최고위 악마는 한 명밖에 없었다.
바포메트가 몇백 년의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마르바스.>
바포메트의 말에 까마귀가 다시 한번 까악까악 울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이내 울음소리가 아닌 명확한 언어가 까마귀로부터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역시 한 번에 알아보시는군요. 바포메트 공. 그간 격조하셨습니까?>
까마귀로부터 흘러나온 것은 늙은 남성의 음성이었다. 바포메트는 그 목소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대공 마르바스. 우리가 인사를 나눌 만한 사이는 아닌 걸로 기억하는데. 무슨 볼일이지? 이곳에는 네놈이 원할 만한 것이 없다.>
<후후. 그렇게 경계하시지 않으셔도 됩니다. 정말로 옛 지인에게 인사차 방문한 것이니.>
<필요 없다.>
바포메트는 한층 더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마르바스는 이 드넓은 마계에서도 아주 특수한 악마였다.
일신의 무력이 부족한 하급악마로 태어났으나, 마르바스에게는 부족한 무력 대신 강력한 무기가 있었다.
지혜. 다른 악마와는 비교조차 불허하는 비상한 두뇌!
마르바스는 음모와 계략을 이용해 자신보다 강한 악마를 함정에 빠뜨려 잡아먹고 자신의 힘을 키워 갔다.
달콤한 말로 상대를 홀리기도 하고, 혹은 극복할 수 없는 약점을 잡아 그것을 집요하게 후벼 파며 자신보다 강한 악마들을 하나둘 먹어 치웠다.
그리고 그것을 셀 수도 없이 반복한 결과, 마르바스는 결국 대공의 위까지 얻어내고야 말았다.
묵묵하게 받은 명령만을 수행하는 바포메트와는 그야말로 상극 중의 상극이었다.
<이곳에서 꺼져라. 네놈이 발을 들일 만한 장소가 아니다.>
바포메트가 삼지창을 꽉 쥐었다.
상대는 마계의 최정점인 대공이었으나 바포메트에게 그런 것은 하등 중요하지 않았다.
상대가 아무리 대공이라 한들 자신은 오직 마신을 따를 뿐이었으니까. 그저 그분의 명을 수행할 뿐이었다.
바포메트의 몸에서 기세가 뿜어져 나오는 것을 감지한 마르바스가 다시 웃음을 터뜨렸다.
<후후. 매정하십니다. 그려. 이래봬도 당신께 도움이 될 만한 정보도 가지고 왔건만.>
<……정보?>
<그렇습니다. 당신이 지금 가장 알고 싶어 하는 정보지요.>
마르바스의 사역마수인 까마귀의 눈동자가 붉은빛으로 빛나기 시작한다.
<위대한 마신. 그분의 행방 말입니다.>
<……무슨 헛소리인지 모르겠군. 그분은 마계 그 자체. 그 어디에서라도 존재하신다.>
<후후. 그렇게 애써 부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나 저같이 오래된 악마들은 대부분 알고 있는 사실이지요. 지금 마신께서 마계에서 자취를 감추었단 사실을 말입니다.>
<…….>
바포메트가 침묵했다. 마르바스의 말이 사실이었으니까.
언제부터일까. 위대한 마신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신의 가장 충실한 종인 자신에게조차 말이다.
<알고 싶지 않으십니까? 마신께서 지금 어디에 계신지를.>
<……넌 그걸 알고 있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제가 유희 중에 그분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우연히도 말이지요.>
<우연이라.>
그 말을 믿어야 하는 것일까. 바포메트는 의심스러움을 느끼면서도 마르바스를 내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는 너무나 달콤한 말이었다.
겉으로 내비치지는 않았지만, 바포메트는 현재 아주 불안정한 상태였다. 마신의 종속된 악마였기에 마신의 부재가 길어질수록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으니까.
그런 그에게 마신에 대한 정보는 아무리 자그마한 것이라도 허투루 할 수가 없었다.
결국 바포메트가 다시 물었다.
<마신께선 어디에 계시지? 아니, 그 전에 나에게서 무엇을 원하는 것이냐?>
상대는 그 음험한 마르바스다. 자신에게 간절한 정보를 아무런 대가도 없이 내어줄 리가 만무했다.
하지만 바포메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말이 까마귀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원하는 것? 후후. 그런 것은 없습니다. 마계의 악마로서 위대한 마신이 다시 마계에 임하시길 빌 뿐입니다.>
<대가가 필요 없다면 당장 말하라! 마신께서는 지금 어디에 계신 것인가!>
바포메트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 격양되어 있었다.
바포메트 어깨 위의 까마귀는 까악-! 하고 한 번 운 후에 하늘 위를 쳐다보았다.
<이곳과는 다른 세상. 인간계. 그곳에서 마신의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인간계?>
예상치 못한 말에 바포메트가 의문을 표했으나, 이내 그 말이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가. 그래서 그분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았던 것인가.>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마신의 충복인 자신이 이곳 마계에서 마신의 기운을 느끼지 못할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마계가 아닌 다른 세상에 있다면?
그렇다면 자신이 그분의 기운을 느끼지 못하는 것도 말이 되었다. 마계와 인간계는 전혀 다른 세계였으니까.
<그분이 어째서 인간계를?>
<그것까진 저도 알 수가 없습니다. 허나 큰 뜻이 있으시겠지요. 어쩌시겠습니까?>
마르바스가 묻는 의도는 명확했다. 너 역시 인간계로 가겠냐는 물음이었다.
<가겠다.>
<즉답이시군요.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분께서 맡기신 사명이 있을 터인데.>
<……잠깐. 아주 잠깐 그분의 존재를 확인만 하고 돌아올 것이다.>
<훌륭합니다. 멋진 충심이군요.>
평소의 바포메트라면 절대로 하지 않았을 행동. 하지만 오랜 세월 이어진 마신의 부재는 바포메트를 혼란스럽게 만들었고, 마르바스는 그런 바포메트의 틈을 파고들었다.
까마귀의 붉은 눈이 한층 더 빛나기 시작했다.
<그렇다면 도와드리지요. 마계와 인간계 사이에 있는 차원 역장. 제가 어느 정도 해결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다. 정녕 나에게서 원하는 게 없는가.>
<네. 아무것도요. 그저 저 역시 마신께서 빨리 마계에 돌아오시길 바랄 뿐입니다.>
<좋다. 마르바스. 감사를 표하마.>
까악-!
높은 목소리로 우는 까마귀의 눈동자가 그 어느 때보다 서늘했다.
* * *
<……그렇게 준비를 마치고 놈의 도움을 받아 이곳 인간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순간이었다. 내 몸속에서 나도 모르게 심어져 있던 마르바스의 주박이 발동한 것은.>
바포메트의 힘과 지능을 봉인함과 동시에 바포메트를 인간계에 영원히 묶어 두는 주박.
차원 역장을 피하기 위함이라며 자신의 몸에 새겨 넣었던 마법진 속에 또 다른 저주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어리석게도 그제야 놈의 의도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마르바스는 나를 마계에서 내쫓는 것 자체가 목적이었음을 말이다.>
“어째서 그럴 필요가 있지?”
<필시 내가 지키고 있던 그분의 유산을 탐내고 한 짓일 테지. 하지만 놈도 몰랐을 것이다. 가장 중요한 유산은 열쇠 없이는 얻을 수 없다는 걸.>
-흐음. 그렇군. 대충 어떤 스토린지는 알겠어.
“그러게요.”
카르페와 천마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바포메트와 얽힌 마신의 스토리가 얼추 이해가 되었다.
<쿠리 님. 그리고 인간. 지금부터 마계로 향해 니스 님의 유산을 얻으십시오. 이곳에서나마 쿠리 님을 응원하겠습니다.>
“쿠리잇? 바포메트 님은 가지 않는 것이다요?”
“맞아. 마르바스에게 당했다며? 그럼 마계로 가서 복수를 해야 하는 거 아니야?”
<그건 불가능합니다.>
바포메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배꼽 부분을 가리켰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곳에는 뭔가 께름칙한 형태의 마법진이 그려져 있었다.
“그건?”
<아까 말했던 마르바스의 수작이다.>
“응? 그건 내가 다 정화시킨 거 아니었어?”
<힘과 이지를 상실하게 만드는 저주는 전부 해제되었다. 허나, 이건 다르다. 상태이상이 아닌 일종의 ‘계약’이니까.>
“계약?”
<이곳 한정된 인간의 땅을 벗어날 수 없는 대신, 차원의 페널티를 피할 수 있게 하는 계약 주술. 애석하게도 나의 힘으로는 이것을 해제할 순 없다. 술자인 마르바스를 처치하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하다.>
“아니, 뭔 놈의 게임이 이렇게 치사해?”
카르페가 어이없다는 듯 중얼거렸다.
명색이 디스펠이면 이런 것도 전부 지워야 하는 거 아닌가? 상태이상은 지울 수 있고 계약은 못 지운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또 양심 터진 생각했지? 바포메트 구속이 풀리면 어차피 쿠리의 부하니까 잔뜩 부려먹을 수 있겠다고? 쯔쯔.
“그게 뭐 어때서! 자연스러운 거잖아! 이 빌어먹을 게임! 더럽게 치사하네.”
-어쩔? 꼬우면 니가 게임 제작진 하든가.
“그러게요. 이건 도저히 꼬아서 안 되겠다.”
-……응?
카르페는 그렇게 말한 후, 바포메트를 향해 다가갔다.
“야.”
<……무슨 일이지. 인간. 이럴 시간이 없다. 너는 지금부터 쿠리 님을 보필해 마계로 향해야 한다.>
“일단 됐고. 배 내밀어. 내가 그거 풀 거니까.”
<어리석구나. 마르바스는 마계 최고의 주술사다. 놈의 주술은 한낱 인간이 풀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신적인 존재. 아니, 그 이상의 존재라도 장담할 수가 없다.>
“그럼 되겠네.”
<……뭐?>
“내가 뭐 해제하는 것만큼은 대공보다도 위야.”
카르페는 그렇게 말하며 바포메트의 배꼽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자신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스킬을 발동했다.
“해금.”
<인간. 지금 도대체 무슨 헛짓거리를…… 으허억?!>
파앗!
스킬이 발동되자 바포메트의 복부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