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64)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64화(64/581)
“후우우.”
“왜 한숨 쉬어? 고민 있어?”
“어른이란 그런 거란다. 늘 고민의 연속이지.”
“흐응. 어른은 힘들구나.”
세계수에서의 일이 있고 이틀 후.
카르페는 심경이 복잡했다.
석관 속의 내용물을 확인한 그 순간, 카르페는 지금 이야기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바로 파악할 수 있었다.
100% 완벽하다고 할 순 없지만, 아마 90% 이상은 들어맞을 것이다.
요 이틀 동안 나름대로 열심히 조사한 결과였다.
카르페의 옆에는 어린 엘프 소녀가 폴짝 폴짝 뛰어다니고 있었다.
인간으로 치면 6살이나 7살쯤 되었을까?
마을에서 이것저것 퀘스트를 하다 보니 친해진 엘프 소녀였는데, 이름은 제니아였다.
처음에는 인간이라는 낯선 존재를 보고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다가왔지만, 이제는 카르페가 머리를 쓰다듬어도 배시시 웃을 만큼 친해진 상태였다.
“제니아.”
“응?”
“여왕님이 얼음을 다룬다는 거 알고 있었어?”
“응! 알고 있어! 그래서 여름에 시원해. 아, 엄마가 그러는데 어엄청 옛날에는 여왕님도 얼음 마법을 못 썼대! 열심히 공부해서 배웠나 봐.”
“……그래.”
과거엔 못 썼다라.
카르페가 씁쓸하게 웃었다. 아마 예상이 확실한 거 같았다.
-뭘 씁쓸해하고 있냐? 그냥 그대로 시나리오 따라가면 될 텐데.
‘엔딩이 예상가니까 그렇죠. 엘프들에게는 해피 엔딩이 아닐 테니까.’
그렇다고 배드 엔딩도 아니겠지만……. 아무튼 좀 미묘한 상황이었다.
제니아의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던 카르페가 물었다.
“여왕님이 좋아?”
“응. 엄청 좋아. 숲에서 길 잃어버렸을 때 여왕님이 구해 줬어! 근데 알고 보니 여왕님도 길 잃고 헤매고 있던 거라서 결국 사이어스가 구해 줬어!”
“그래? 언제?”
“으응. 한 40년 전 쯤?”
“……40년?”
제니아의 머리를 쓰다듬던 카르페의 손이 멈췄다.
“제니아. 혹시 나이가?”
“나? 56살인데.”
“……누님이셨군요. 죄송합니다.”
감히 자신의 나이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여성의 머리를 쓰다듬은 것이다. 불손하게도.
‘아니, 근데 생각해 보면 엘프는 대충 인간의 10배쯤 사니까 인간 나이로 치면 5살 6살 정도인데…….’
-이건 또 무슨 아인슈타인이 이마 탁 치는 소리냐. 시간이 상대적으로 흘러? 56살이면 그냥 56살인 거지 인간 나이는 무슨.
‘……그쵸? 저도 그냥 해 본 말이었어요.’
-그리고 애초에 NPC인데 나이가 뭐가 중요해? 하여간 과몰입 좀 하지 말라니까. 슬슬 준비나 해라.
‘그래야죠.’
그동안 정말 부지런히도 게임을 했다.
퀘스트, 닥사, 수집……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타이트하게 레벨을 올렸고, 이제 그 결실을 거둘 순간이었다.
“퀘스트 창.”
띠링.
[루드람의 열매가 완전히 익기까지 1시간 37초 남았습니다.]그리고 37초가 지나 열매가 완전해지기까지 딱 1시간 남는 시점이었다.
[시나리오 이벤트 – 파편의 습격이 진행됩니다!]댕! 댕!
“비상! 비상! 몬스터가 쳐들어온다!”
“서둘러! 어린아이들은 한곳에 모으고 철저하게 지켜라!”
“루드람이시여. 축복을!”
드드드드.
느껴진다. 몬스터의 대군이 이곳을 향해 달려오는 것이.
서빙제가 조종하는 몬스터 군단의 등장이었다.
* * *
“다들 장전! 대기!”
“장전! 대기!”
수비 대장 크로제의 호령에 맞춰 엘프 사수들이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그 수가 약 200명. 인구가 500명도 되지 않는 작은 마을임을 감안한다면 싸울 수 있는 전력은 죄다 끌어온 셈이었다.
“후우.”
하지만 그에 반해, 목책 너머로 보이는 몬스터의 군단은 대충 어림잡아도 1,000마리는 넘어 보였다.
수액 벌레 같은 소형 몬스터부터 고블린, 오크, 심지어는 드물게 트롤도 보였다.
그 광경에 크로제가 짧게 혀를 찼다.
“생각보다 많네. 그동안 잘도 숨어 있었구나.”
오랜 세월 동안 부지런히 토벌을 진행했는데도 이 정도나 남아 있었을 줄이야.
서빙제의 파편이 숲에 존재하는 야생 몬스터를 죄다 끌고 온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 몬스터 군단의 중심.
마치, 얼음으로 조각해 놓은 듯한 푸른 사마귀가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놈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세계수 가지 끝에 걸린 붉은 과실이 있었다.
“……이 괴물 놈이! 감히!”
그 노골적인 시선에 분노한 크로제는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세계수의 가호가 미치는 범위는 눈앞의 목책까지.
이 밖으로 나가게 되면 엘프 역시 서빙제의 세뇌에 당할 수밖에 없었다.
“진정하거라. 크로제여.”
“……죄송합니다, 여왕님. 못난 모습을 보였습니다.”
“조급해하지 말거라. 지키기만 하면 되는 싸움이다. 놈이 어떻게 행동하든, 이곳을 통과시키지만 않으면 되는 것이다.”
알테어는 그렇게 말한 후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위를 메긴 채 대기하고 있는 엘프들 사이로 이질적인 두 남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마도왕의 후예. 그리고 티나.
그들은 한껏 진지한 표정으로 몬스터들의 움직임을 주시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에 살짝 미소를 지은 알테어가 그들에게 다가가려는 순간.
“키에에에엑!!”
찢어지는 듯한 목소리로 서빙제의 파편이 울부짖었다.
서빙제의 신호가 떨어지자, 멍하게 서 있던 몬스터들의 눈빛에 흉포함이 깃들기 시작했고.
“그오오오!”
“크롸롸롸롹!”
몬스터들은 제각기 함성을 지르며 목책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크로제가 즉시 반응했다.
“반드시 지켜내라! 마을을 위해, 가족을 위해, 신목을 위해…… 쏴라!”
“지켜라!”
“루드람이시여 축복을!”
그녀의 신호에 맞춰 엘프들이 시위를 놓았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되었다.
* * *
“막아라! 한 놈도 통과시키지 마!”
“쏴라!”
목책은 높고 거대했기에 울타리보다는 일종의 나무 성벽에 가까웠다.
그 때문에 전투는 자연히 공성전의 양상을 띠었다.
엘프들은 목책을 기어오르는 몬스터를 향해 마법과 활을 쏘며 최대한 저지하기 위해 힘쓰고 있었다.
“궁수들은 최대한 날아다니는 놈부터 쏘고, 마법사들은 목책에 그리스 마법을 걸어라!”
크로제가 고함을 지르며 지시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눈은 빠르게 전장을 살폈다.
‘왜 안 움직이지?’
몬스터들은 계속해서 달려들고 있었지만, 정작 가장 강력한 전력인 서빙제의 파편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놈은 그저 세모난 눈으로 세계수의 과실을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익!”
그 모습에 다시 열이 뻗친 크로제는 자신의 화살에 바람의 마법을 부여했다.
어차피 통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화살이라도 날려야 속이 풀릴 것 같았다.
핑!
바람의 화살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허공을 찢으며 날아갔고.
“……어?!”
크로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부릅떴다.
그냥 화풀이 삼아 쏜 화살이 그대로 서빙제의 파편을 관통해 버린 것이다.
챙그랑!
서빙제, 아니 서빙제의 형상을 한 얼음 동상이 그대로 화살에 부서져 바람에 흩날렸다.
“속임수?! 이런, 여왕님! ……어?”
크로제는 황급히 알테어를 찾았지만 다시 한번 얼빠진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알테어는 전장 어디에서도 그 모습을 찾을 수 없었으니까.
더불어 마도왕의 후예와 티나의 모습도 찾을 수 없었다.
“도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당혹스러운 크로제의 음성만이 전장에 울려 퍼졌다.
* * *
“후우.”
몰래 전장에서 벗어난 알테어는 세계수 앞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으로 세계수를 쓰다듬으며 중얼거렸다.
“……이제 오늘로 마지막이니라.”
그녀가 다른 엘프들 몰래 홀로 이곳에 온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지금부터 일어날 싸움은 다른 엘프들에게 보이면 안 됐으니까.
알테어는 한눈에 알아챘다.
몬스터 무리 속에 있던 서빙제의 파편이 얼음으로 만들어진 가짜라는 것을 말이다.
성동격서(聲東擊西).
세뇌한 몬스터들로 주의를 끌고 그 틈을 타서 서빙제가 은밀히 세계수로 접근한다는, 얄팍하기 그지없는 작전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허공을 노려보면서 입을 열었다.
“모습을 드러내라.”
[크크크. 다른 멍청이들과 다르구나. 엘프의 여왕.]알테어의 말에 주변 풍경과 동화되어 있던 서빙제의 파편이 모습을 드러냈다.
서빙제의 파편은 얼티밋 카모플라쥬의 효과로 풍경 속에 숨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바위 뒤에 숨어 있던 카르페와 티나도 모습을 드러냈다.
“……응?”
“……어? 저 부른 거 아니었나요? 모습을 드러내라길래 따라온 거 눈치챈 줄.”
“저도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주군.”
“이익! 그대들이 왜 여기에 있어! 얼른 내 뒤로 붙어…….”
[이놈들이 감히!]그때였다.
자신을 앞에 둔 채 장난을 친다고 생각한 서빙제는 분노하면서 최강의 스킬을 꺼내 들었다.
콰가각!
얼음의 파도가 셋을 덮치려는 그 순간.
“흥!”
알테어가 양손을 앞으로 뻗었다. 그러자 불의 장막이 치솟아 오르며 영구동토와 격렬히 부딪혔다.
콰앙!
불꽃과 얼음이 부딪히며 수증기를 만들어 냈다.
놀랍게도 그녀는 9성 스킬을 홀로 막아 낸 것이다.
조금 피해를 입은 것 같긴 했지만, 큰 지장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녀는 인상을 찌푸리고서 투덜거렸다.
“크으. 여전히 무식한 위력이로다. 놈이 약화된 상태라서 다행이지. 아니었다면 그대로 얼어붙었을 터. 카르페여. 괜찮은가?”
“네. 괜찮습니다. 아니, 그보다…….”
이글거리는 열기에 카르페의 시선이 그녀의 양팔로 향했다.
놀랍게도, 그녀의 양팔은 마치 불사조처럼 불길이 넘실거리는 커다란 날개로 변해 있었다.
어딜 보더라도 ‘엘프’가 쓸 만한 능력은 아니었다.
“……역시 놀라지 않는구나. 언제부터 눈치채고 있었더냐?”
“확신한 건 이틀 전이죠. 그때 여왕님이 세계수 안에 들어갔을 때, 저도 따라 들어갔거든요.”
“……그랬군. 내가 저놈으로 변했던 것도 보았겠구나. 그럼 눈치챌 수밖에 없겠지.”
사실, 그걸 보고도 제대로 감을 못 잡았었다.
정확히 알아챈 것은 석관 안을 확인했을 때.
그 석관 안에 들어 있어야 할 마도왕의 유물 대신 ‘진짜’ 알테어가 희미한 숨소리를 내며 가사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확인한 후였다.
뭐지? 설마 서빙제가 알테어를 봉인하고 흉내를 내고 있는 것인가?
처음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유물이 없었으니까.
유물은 마도왕의 후예가 아닌 자가 취하려 하면 그대로 기능을 정지하게 설계되어 있었다.
만약 서빙제의 파편이 한 짓이라면 유물은 진작에 파괴되었을 터.
하지만 마도왕의 유물 퀘스트는 그대로 진행되고 있었다. 유물이 온전하다는 뜻이었다.
그렇다면 어째서 유물이 사라진 것일까?
결론은 금방 도출할 수 있었다.
마도왕의 유물 스스로가 의지를 가지고 움직이고 있는 경우뿐이었다.
지금 눈앞의 경우처럼 말이다.
마도왕의 두 번째 유물.
도플갱어 기반의 호문쿨루스.
환영의 미라쥬.
그것이 바로 엘프 여왕 알테어의 진정한 정체였다.
“생각해 보면 힌트는 꽤 있었지.”
‘죄송합니다, 주군. 엘프의 숲은 마력을 흐트러뜨리는 효과가 있어서 마법 생명체인 호문쿨루스는 방향을 잡기 어렵습니다.’
처음 엘프의 숲에 들어왔을 때 티나가 했던 말이었고, 알테어가 방향치일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그 밖에도 못 쓰던 얼음 마법을 쓰게 되었다든가.
게을렀던 여왕이 800여 년 전 사건 이후로 갑자기 부지런해졌다든가.
그녀는 800여 년 전부터 모종의 이유로 쭉 엘프 여왕을 흉내 냈던 것이었다.
“그런데 석관 위에서 굳이 왜 서빙제로 변신했던 거예요?”
“그건…… 나중에 얘기하마. 지금은 눈앞의 적부터.”
스킬이 막혔지만 서빙제의 파편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열매를 내놓아라. 그렇다면 순순히 물러나마.]“절대로 내줄 수 없다.”
[그렇다면 죽음뿐이다!]쇠를 긁는 듯한 소리가 머리를 때렸다.
자신의 공격이 막힌 게 마음에 들지 않는지, 놈은 흉흉한 기운을 뿌려 댔다.
너무나도 흉흉한 기운에 카르페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거, 진짜 이길 수 있나?’
광신도 프리스트를 쓰러뜨리고 나서 그녀의 몸에 강신했던 배후령.
그놈과 마주했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었다.
압도적인 전력 차에 의욕마저 꺾이려 했지만.
“주군.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응?”
“제가 주군과 처음 만났을 때 위신을 격퇴했던 것처럼, 미라쥬 또한 아직 힘을 간직하고 있으니까요.”
“뭐. 티나의 말대로니라. 마도왕의 후예…… 아니, 마스터여. 거기서 지켜보도록 하거라.”
우우웅!
그녀를 중심으로 거센 바람이 몰아치기 시작했고.
“마도왕의 인형이 가진 힘을 말이다!”
미라쥬가 밝은 빛무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도플갱어는 기본적으로 복사 몬스터다.
상대의 모습과 기억을 그대로 구현해서 똑같은 기술을 쓰고, 파티에 혼란을 주는 몬스터.
미라쥬 역시 기본적으로는 도플갱어와 동일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마도왕의 걸작이라 불리는 일곱 인형인 만큼 다른 도플갱어에겐 없는 특별한 능력이 있었다.
바로 상대가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로 변신할 수 있는 능력이었다.
스스스.
아름다웠던 엘프 여왕 알테어의 모습이 점차 지워지며, 새로운 모습이 만들어졌다.
키가 좀 더 커졌고, 하늘하늘한 여왕의 옷 대신 두터운 로브를 입은 인간 남성.
푸른 단발이 잘 어울리는 젊은 청년의 모습이었다.
[네 녀석은!!]알테어가 변한 모습을 목도한 서빙제의 파편은 흥분에 차서 소리를 질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눈앞의 존재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죽음의 공포를 각인시켜 준 인간이었으니까.
마도왕(魔道王).
드렛슈 아크람.
800년 전 서빙제의 파편을 죽음 직전까지 몰고 간 아크람 제국의 초대 황제.
그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자, 지겨운 악연의 종지부를 찍자. 이 괴물아.”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