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Star Player's Lucky Draw RAW novel - Chapter (7)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7화(7/581)
튜토리얼이 끝나면 도착하는 초보자의 도시 ‘레이씬’의 중앙 분수대에서 두 사람은 말을 이어 갔다.
-자, 너는 온라인 RPG에서 튜토리얼이 끝나고 제일 처음 뭘 할 것 같냐?
“그거야 뭐, 대부분 정형화되어 있죠.”
세상에 인터넷이 등장하고 네트워크가 연결되면서 얼마나 많은 온라인 RPG가 등장했던가. 카르페 역시 플레이해 본 RPG가 10개는 가뿐히 넘었다.
“초보자 수련장 같은 곳 가서 허수아비를 때리든가, 교육을 받든가. 혹은 무작정 마을 밖으로 나가서 초보 몹부터 사냥한다든가. 그것도 아니면 메인 퀘스트를 따라가든가.”
-세 개 다 정답이다. 어떤 걸 선택해도 나름의 길이 있지. 라세에는 무한한 자유도가 있으니까.
게임이 아닌 또 다른 현실. 식상하다면 식상한 말이었지만, 그만큼 라스트 세이비어를 잘 표현한 말도 달리 없었다.
-뭐, 그 무한한 자유가 지금도 남아 있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야.
“네? 그게 무슨 말…….”
그때였다.
“저기요! 우리는 우리끼리 알아서 길드 만들 거라니까요?”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소란이 일었다. 고개를 돌려 쳐다보니, 아까 지나갔던 뉴비 무리들과 한 남자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아.”
카르페는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저기 저 소란이 방금 천마가 한 말과 관련이 있을 거라고.
발걸음이 자동으로 그쪽을 향했고, 서글서글한 인상의 금발 사내가 초보자 무리에게 웃으며 말을 건네고 있었다.
“저희 초보자 지원 길드 ‘마모니즘(Mammonism)’에 가입하시면 아주 쾌적하게 게임을…….”
“아니,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저희는 친구끼리 해나가고 싶다니까요. 누구 밑에서 게임 하기 싫다니까?”
“맞아. 리얼 판타지아에서도 길드 밑에서 개처럼 일했는데, 여기서도 그러라고?”
“저기, 진정들 좀 하시고…….”
“충분히 진정하고 얘기하는 겁니다. 저희는 알아서 할 테니 그쪽도 갈 길 가 보시면 될 것 같네요.”
초보자들은 길드에서 크게 낭패를 본 경험이 있었던 것인지 금발의 남자에게 적대적이었지만, 남자는 별로 개의치 않는 듯했다.
“흐음.”
카르페가 그들에게 들리지 않을 정도의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
“길드 영입을 되게 공격적으로 하네요. 간다는 사람 억지로 붙잡으면서까지.”
-라세가 출시된 지 반년이랬지? 반년이면 자리를 잡은 기득권들이 슬슬 활동할 시기지. 더군다나 길드전까지 업데이트됐으니까 어떻게든 머릿수를 채우고 싶을 거고.
“뭐, 길드 권유 자체가 문제가 되는 건 아니긴 한데.”
-‘권유’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
카르페와 천마가 말을 주고받는 사이에 그들의 음성은 점점 높아져만 갔다.
“이렇게 막무가내식이면 앞으로 게임 하기 힘들어지실 수도 있습니다.”
“하! 이제는 협박까지 하네? 왜요? PK라도 하게요?”
게임의 자유도가 높다는 건 강력한 장점이지만, 반면 자유도가 너무 높아져 버리면 일부 유저들, 즉 기득권들이 게임을 악용할 여지가 생긴다.
예를 들어, 게임 플레이에 꼭 필요한 아이템을 사재기해서 가격을 폭등시킨다거나, 드랍 사냥터를 통제한다거나.
그것도 아니라면 아주 심플하게, 보이는 족족 죽여서 게임을 접게 만들어 버린다거나.
“씁쓸하네요. 어떤 게임을 해도 저런 길드가 있네.”
비단 라스트 세이비어에만 국한되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선발대들이 콘텐츠들을 선점하고 후발주자들을 착취하는 구조는 MMORPG에서 너무나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착취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서 기득권들은 피나는 노력을 기울인다. 저 반강제적인 길드 권유도 아마 그 일환이리라.
카르페가 그 모습에 한숨을 내쉬고 발걸음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하하, 제 말은 조금 오해하신 거 같네요. PK라뇨? 오히려 반대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보호해 드리려고 하는 거예요. 혹시 라세 입벤에 올라온 초보자 추천 공략 보셨나요?”
예상과는 다른 말이 나와서일까.
초보자들의 기세가 조금 누그러졌다.
“입벤의 초보자 공략이라면…… 그 베스트 오브 베스트 공략?”
“네. 맞습니다. 그거 읽어 보셨으면 설명하기가 편하겠네요. 거기 보시면 1렙에 꼭 해야 하는 퀘스트 목록 중에 ‘돌연변이 뿔 사슴 사냥’이란 게 있을 겁니다.”
라세는 출시된 지 6개월이 지난 게임이다. 그 정도 시간이면, 당연히 게임 커뮤니티에 초보자 공략이 올라오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어…….”
“확실히 공략에 그런 퀘스트가 있긴 했는데…….”
그중에서도 금발 사내가 언급한 공략은 압도적인 추천 수를 받은 실전 압축 공략! 초보자들의 바이블이라고도 불리는 알짜배기 공략이었다.
“진짜로 저런 퀘스트가 있어요?”
-있지. 시작 마을 퀘스트 중에는 가장 효율이 좋은 퀘스트 중 하나야.
“흐음.”
10년 차 고인물조차 효율이 좋다고 단언한 퀘스트다. 그런 퀘스트가 언급되자, 초보자들의 기세가 한풀 꺾였다. 그들이 머뭇거리자 금발 사내가 더욱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돌연변이 사슴은 사실 그렇게 강하지는 않습니다. 1레벨 유저라도 서너 명이 파티를 이루면 어렵지 않게 사냥할 수 있어요. 그런데, 문제는 놈들이 리젠되는 장소입니다. 시작의 마을에서 유일하게 PK가 허용되는 필드에서 리젠되거든요. 혹시, 원피단이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아!”
“들어 보셨나 보네요. 초보자가 뭣도 모르고 돌연변이 사슴을 사냥하다가는 십 중 십 놈들에게 당합니다.”
원거리 피케이단. 줄여서 원피단.
약 한 달 전부터 시작의 도시에서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무차별 피케이 집단이었다. 놈들은 사슴 리젠 존 근처 숲에 숨어 있다가, 자기보다 약한 유저가 나타나면 그들을 사냥했다.
“저희 길드에 들어오시면 책임지고 놈들에게서 보호해 드리겠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쾌적하게 시작의 도시를 졸업할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물론, 길드의 탈퇴는 언제가 되었든 자유롭고요.”
“음…… 하시는 말씀은 잘 알겠는데, 그래도 길드에 속하는 건 좀 그러네요.”
“아쉽지만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어쩔 수 없죠. 그럼 대신 돌연변이 사슴 퀘스트 정도는 제가 도와드리겠습니다.”
“오!”
“정말요?”
“이렇게 친절하신 분인지도 모르고…… 죄송합니다!”
처음에 적대적인 분위기는 더 이상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초보자 중 한 명, 리더로 보이는 남자만은 아직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았다.
“잠깐만요. 길드에 가입하지도 않을 건데 도와준다고요? 어째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저희 길드는 초보자들을 지원하는 길드입니다. 뉴비들이 잘 되는 게 게임이 잘되는 길이라는 것이 길드장님의 지침이죠.”
“……솔직히 믿기 힘든 말이네요. 당한 게 워낙 많아서. 대가 없는 호의라는 게 흔하지는 않죠.”
“음? 제가 언제 무상으로 도와드린다고 한 적이 있던가요? 대가를 받을 겁니다만.”
“아.”
초보자 무리의 눈빛이 ‘그럼 그렇지’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내 한 가지 공통된 의문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대가? 우리한테?”
“우리가 뭘 가진 게 있나? 야, 진식아. 너 뭐 가진 거 있어?”
“있겠냐? 너랑 똑같이 튜토리얼하고 막 나온 참인데 있을 리가.”
“튜토리얼 시작하자마자 고블린들한테 끔살당했지.”
그랬다. 그들은 이제 막 시작의 도시에 진입한 뉴비 중의 뉴비. 대가로 지불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을 턱이 없었다.
“설마, 현 거래를 대가로?”
“아닙니다. 저희 길드에서 도와드리는 대가로 바라는 것은 여러분들이 지금 다 들고 있는 것들입니다.”
라세를 시작한 유저라면 전부 만져 봤을 물건이었고, 유저들 대부분이 튜토리얼에서 남겨서 가져오는 물건이었다.
“바로 뽑기 코인이죠.”
“아…… 확실히 그거라면 남아 있긴 한데.”
“나도. 난 세 번째 10연 뽑에서 배후령 선택해서 7개 남았어.”
“난 세 개.”
카르페처럼 마지막까지 ‘가즈아!!’를 외친 유저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 잔여 코인을 들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이거 공략에 보면 그냥 초반에 상점에 팔아서 푼돈 버는 용도라고 하던데……. 분명, 다섯 개 팔아도 포션 하나 값 정도라고.”
“푼돈도 모으면 돈이니까요. 그리고 이건 사실 비밀인데…….”
금발의 사내는 마치 대단한 비밀을 말해 준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이며 그들에게 속삭였다.
“저희 길드에는 특수 직업 ‘상인’으로 전직하신 분이 계시거든요. 상인의 스킬 [흥정]을 이용하면 같은 아이템이라도 더 비싼 값으로 NPC에게 팔 수 있습니다. 코인을 대량으로 모아서 [흥정]으로 전부 팔아 버리면…….”
꿀꺽.
초보자 중 누군가가 침을 꼴딱 삼켰다. 필시 돈이 굴러들어오는 상상을 했을 터였다.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이제 의심이 좀 풀리셨나요?”
“물론이죠! 야, 이렇게 훌륭하신 분일 줄이야. 이게 다 진호 네가 의심해서 그렇잖아. 어서 사과드려!”
“……죄송합니다. 좋은 의도로 말을 거셨는데 저희가 무작정 화만 냈네요.”
“아닙니다. 충분히 이해합니다. 자, 이제 오해도 풀렸다면 퀘스트를 클리어하러 가 볼까요? 돌연변이 사슴은 개체 수가 적어서 대기 행렬이 꽤 길거든요.”
“아, 그럼 어서 가야죠!”
“그럼, 그 전에 잠시.”
금발의 사내는 초보자들로부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카르페를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
“거기 계신 분도 같이 가실까요? 대충 들으셨을 텐데 이 퀘스트가 보상이 아주 짭짤합니다.”
“아뇨. 권유는 감사하지만 제가 가진 코인이 없…….”
“아, 알겠습니다. 즐겜하세요. 자, 그럼 여러분, 가실까요?”
금발의 사내는 카르페가 코인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자마자 그대로 무시한 후 초보자들과 함께 자리를 떠나갔다.
카르페는 황당한 표정으로 그들의 뒷모습을 쳐다봤지만, 그 누구도 그에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 모습이 퍽 웃겼는지, 천마가 킬킬대며 카르페에게 말했다.
-자 그럼, 여기서 질문. 저 머리에 똥칠한 놈의 말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
“싸가지 없는 건 둘째치고…… 구린 냄새가 나네요.”
-다행이군. 구린 냄새를 맡았다는 건 적어도 네가 저기 네 얼간이보다는 낫다는 거니까.
“그래서, 그놈이 한 말 중에 거짓은 뭔데요?”
-거짓? 없어.
“엥?”
카르페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천마를 쳐다봤지만, 천마는 어깨를 으쓱일 뿐이었다.
-똥칠이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야. 거짓 같은 건 없어.
돌연변이 사슴이 1레벨 때 가장 효율이 좋은 퀘스트라는 것도 진실.
무턱대고 퀘스트를 수행하다가는 원피단에게 습격당한다는 것도 진실.
그리고 그것을 마모니즘 길드가 막아 주는 것도 진실.
초보자 베스트 공략집에 코인이 그저 잡템이니 상점에 팔아 버려서 푼돈이라도 벌라고 적혀 있는 것도 진실.
결과적으로 마모니즘 길드가 초보자에게 도움을 준다는 것도 진실.
전부 다 진실이다.
“뭐야? 그럼 진짜 좋은 길드예요? 자선 단체?”
-그럴 리가 있나. 지들도 다 노림수가 있으니까 이런 번거로운 짓을 하는 거지. 좋은 기회니까 이참에 한번 느껴 봐라.
“뭘요?”
-라세의 기득권들. 그리고 그 기득권의 정점들. 소위 말하는 10대 길드라는 놈들이 얼마나 음험한 놈들인지 말이야.
앞으로 게임 하는 내내 끈덕지게 달라붙을 것이다. 놈들은 결코 자신에게 위협될 만한 요소를 가만히 두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이번 기회에 놈들 잔칫상에 똥 한번 뿌려 놓는 것도 괜찮겠지.
“저 그런 거 되게 좋아하는데. 갑질하는 거대 세력에 대항해서 홀로 싸우는 고독한 남자. 소설 주인공 같잖아요.”
-그럼 축하해야겠네. 소설 주인공이 된 걸 말이야.
카르페와 천마는 조용히 금발 사내의 뒤로 따라붙었다.
뽑기로 강해진 10성급 플레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