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04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04화
104. 얌띠의 과거
“예담 씨. 일 이따위로 할 거예요?”
촤라락-
김예담의 얼굴에 보고서가 흩뿌려진다.
‘X발, 2시간 내내 작성한 보고선데.’
당장이라도 직장 상사의 얼굴에 침을 뱉고 싶었지만 참았다.
참아야 밥벌이는 할 수 있으니까.
“가서 다시 써오세요.”
“…….”
“왜 대답이 없지? 일하기 싫어요? 그럼 사직서 내고 나가던가.”
“아닙니다. 써오겠습니다.”
“아, 가기 전에 커피 한잔 부탁해요. 보고서는 못 써도 커피는 기가 막히게 타잖아요?”
“예.”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씹으며 탕비실로 들어간 김예담은 침 뱉은 커피를 들고 돌아왔다.
“여기요, 부장님.”
“고마워요. 음, 역시 맛있네. 아, 뭘 멀뚱히 보고 있어요? 시간 없으니까 보고서 빨리 써오고.”
“예.”
그날 김예담은 보고서를 다섯 번은 더 고쳐 썼다.
난생처음 누군가를 죽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품기는 처음이었다.
‘일은 일대로 밀려 있는데 부장이란 인간은 하…….’
퇴근 후 마시는 술은 꿀맛이었고 12월의 마지막 밤은 지옥이었다.
‘조금 있으면 새해인데 이 지랄 하고 싶을까, 진짜.’
부장에게 복수하고 싶어도 평사원인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여자인 그녀에게 힘이 있겠는가, 아니면 재력이 있겠는가.
고아 출신에 집안 형편도 그리 넉넉지 않아서 혼자서 먹고사는 것만으로도 벅차다.
‘이럴 때 로또나 당첨됐으면.’
그런 생각으로 술을 마시고 잠들었는데 깨어보니 초원에 있었다.
아니, 그 전에 꿈속에서 천사를 봤다.
‘20라운드까지 생존 어쩌고 하던데.’
영 믿지 못할 소리라 아직도 얼떨떨하다.
꿈이라 생각했고 별안간 닉네임을 지으라고 해서 얌띠로 지었다.
별 뜻이 있는 건 아니고 평소 닮고 싶었던 여캠 BJ의 닉네임이었다.
이윽고 하늘에서 천사가 나타나 말했다.
[각자 고블린 100마리만 처치하면 지구로 귀환할 수 있어요.]그 말에 김예담은 코웃음을 쳤다.
‘꿈 한 번 리얼하네.’
하지만 현실을 깨닫기까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초록색의 피와 아수라장이 된 현장.
여기저기 지르는 고함들, 전쟁을 방불케 하는 처절함 등.
꿈이라기엔 너무도 생경하고 사실적인 광경이 김예담의 정신을 깨웠다.
‘이, 이건 현실이야. 정말 현실이라구.’
고블린 100마리를 잡지 않으면 죽는다.
오직 그 사실만 머릿속에 박아넣고 고블린을 죽이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생각보다 움직이는 생명체를 죽이는 건 쉽지 않았다.
더구나 김예담의 손에는 짤막한 고블린의 단검뿐.
‘어떡하지? 어떻게 해야…….’
그때, 머릿속에 번뜩이던 건 처음 랜덤 룬조각으로 각인 받았던 룬이었다.
[매혹의 룬]-효과 : 상대와 눈을 맞추거나 신체를 접촉하는 것만으로도 인간을 유혹하고 지배한다. 최대 5명을 지배할 수 있으며 이성에게만 사용할 수 있다.
지속시간은 무한하며 매혹에 걸린 인간은 주인에게 충성을 다한다. 몬스터나 천사에겐 사용할 수 없다.
‘그래, 이게 있었지?’
김예담은 룬을 활용해 근처 남자 플레이어를 지배했다.
“저, 저기요!”
“예?”
지배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그저 쳐다보면서 유혹하겠다고 마음먹는 순간.
상대방의 동공에 잠깐 핑크빛이 돌면서 지배됐다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플레이어 ‘호구남’이 매혹에 걸렸습니다.]1. 호구남 (플레이어)
2. (없음)
3. (없음)
4. (없음)
5. (없음)
[‘매혹 해제’ 시동어와 함께 번호를 부르면 원하는 인간을 매혹에서 해제할 수 있습니다.]호구남이 나사가 빠진 표정으로 김예담을 바라본다.
“저한테 시키실 거 있으신가요? 주인님.”
“아…….”
얼떨떨해하는 것도 잠시.
“고, 고블린들! 절 고블린들로부터 지켜주세요!”
“알겠습니다, 주인님.”
다급하게 명령을 내리자 즉각 움직이는 호구남이었다.
촤악-
“키엑!”
“캬악!”
매혹의 룬에 걸린 플레이어는 김예담의 말을 곧잘 들었다.
충실한 호위 기사가 된 남자를 보니 더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대 5명을 지배할 수 있다고 했지?’
그녀는 근처에 있는 인간이라면 잡히는 대로 지배했다.
“앞에서 몸빵하세요!”
“몸으로 고블린의 단검을 막으세요!”
“거기! 제 옆에서 호위하세요!”
무슨 명령을 해도 들었다.
인간 고기 방패들을 만들자 고블린을 잡기가 훨씬 수월했다.
‘사, 살았어. 1라운드를 통과했어.’
매혹의 룬의 활용도는 현실에서도 뛰어났다.
“예담 씨! 지금이 몇 시인데 이제야 출…….”
사직서를 쓰러 회사에 출근한 날, 김예담을 괴롭히던 부장은 그녀의 종속이 됐다.
“개처럼 기세요. 저한테 잘못했다고 비시고.”
“멍멍, 알겠습니다. 잘못했습니다, 주인님.”
부장은 주변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회사를 온종일 기어 다녔다.
주인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참 어렵게만 느껴지던 상사였는데 이렇게 굴복시키기 쉬웠다니.’
동정심 따위는 잊어버린 지 오래다.
개처럼 기어 오는 부장을 보니 비웃음부터 나왔다.
“이제 그만 자살하세요. 내 눈앞에서 꺼지시고.”
“알겠습니다, 주인님.”
이후로 들은 소식은 없지만, 부장이 어떻게 됐는지는 볼 것도 없었다.
“하하, 하하, 히히힛.”
그날 이후로 김예담의 웃음은 그치질 않았다.
‘누구든, 누구든지 내 발밑에 꿇릴 수 있어!’
밑바닥 인생에서 한순간에 인간의 정점에 올라섰다.
지옥 같던 현실이 이제는 살만한 현실이 되어 있었다.
매혹의 룬은 강력했다.
누구든지 눈만 마주치면 굽신거리게 만들 수 있었고, 조종할 수 있었다.
돈을 이체하라고 하면 이체를 했고, 원하는 걸 달라고 하면 서슴없이 줬다.
‘흐흐, 역시 직장을 때려치우길 잘했어. 직장이 없어도 살 만하잖아?’
돈이라면 얼마든지 가질 수 있었고, 심지어는.
“이제부터 이 집은 내 집이니까 넌 저쪽 방에서 나오지 마.”
“알겠습니다, 주인님.”
남의 집에 무단침입해 자기 집처럼 생활하는 것도 가능했다.
‘돈 많은 아저씨 한 명 꼬시는 거야 일도 아니지.’
100평짜리 한강뷰 아파트에서 독신으로 사는 남자를 유혹했다.
수십억 원대 아파트를 자기 집처럼 살면서 김예담은 생각했다.
‘세상 참 불공평해. 같은 서울인데 누구는 반지하에서 살고 누구는 하늘 위에서 살고 있으니.’
불공평함을 탓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은 입장이 완전히 바뀌었으니까.
그냥 이렇게 높은 세상도 있구나 하는 심정으로 중얼거린 것뿐이었다.
‘좀 더 이 생활을 오래 하고 싶어.’
그러기 위해선 라운드를 버텨야 했다.
문제는 매혹의 룬이 사냥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진 않는다는 점이다.
‘몬스터를 지배할 수 있었으면 정말 쉽게 사냥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나름 나쁘지 않았다.
고기 방패가 될 플레이어들을 대동하여 누구보다 안전하게 사냥할 수 있었으니까.
나중에는 인간들이 몬스터를 제압하면 자신이 마무리하는 방식으로 경험치를 독식하기도 했다.
‘알고 보니 활용도가 엄청 좋잖아?’
그러다 보니 남들보다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
3라운드에서는 테이머라는 직업으로 전직도 할 수 있었다.
몬스터를 잡아서 수족으로 부리는 직업이었는데, 몬스터를 유혹할 수 없었던 그녀로선 더할 나위 없는 직업이었다.
그렇게 성장 가도만을 달리던 김예담은 어느 날 뒤늦게 매혹의 룬의 단점을 발견한다.
“다, 당신 뭐야? 누군데 남의 집에 들어와 있는 거야!?”
“어?”
어쩌다 집주인의 이름을 지웠더니 매혹이 풀려버렸다.
그동안의 인간들은 한 번 쓰고 버렸기에 목록에서 제외되면 매혹이 풀리는 줄 몰랐다.
그리고 한 번 매혹에 걸린 대상은 두 번 다시 걸 수 없다는 것도.
“아, 그러면 같은 대상을 걸었다가 풀었다가 할 순 없는 거였네.”
집주인을 죽인 뒤 흔적 지우기로 시체를 치워버린 김예담이 소파에 앉아 곰곰이 생각했다.
‘그럼 계속 수족으로 부리고 싶은 인간은 함부로 매혹을 풀어선 안 되겠네?’
새로운 사실을 깨달은 그녀는 매혹에 좀 더 신중을 기했다.
‘다섯 자리밖에 없다는 게 조금 아쉽네.’
그래도 매혹의 룬은 정말 사기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구역 대표의 통솔권이 부럽지 않을 정도.
‘매혹은 플레이어만이 아니라 어떤 인간이든 지배할 수 있으니까.’
레벨이나 전직 여부도 상관없다.
자신보다 강한 상대라도 상관없다.
마음만 먹으면 대통령도 지배할 수 있는 게 매혹이다.
구역 대표의 지배권이나 다름없는, 아니, 그보다 훨씬 상위에 속하는 그 능력으로 사람을 지배했다.
테이머 능력으로는 몬스터를 수족으로 부렸다.
모든 생명체가 눈 아래에 있었다.
‘슬슬 지루한데?’
그러던 중, 김예담은 플세바라는 카페를 알게 됐다.
‘플레이어가 세상을 바꾼다? 마음에 드는 문구네. 가입한 플레이어도 많고.’
카페가 마음에 든 그녀는 일단 면접 테스트를 보기로 했다.
그러다가 살인에 가담해야 하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하지만 그뿐.
가담 정도야 이미 살인을 저지른 그녀로선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흠, 이거 잘하면 카페를 창설한 인간을 지배할 수 있겠는걸?’
좀 더 신뢰를 쌓아 간부직에 임명받은 그녀는 화상 채팅만이 아니라 오프라인에서도 모임을 하자고 꼬드겼다.
결국 현실에서 ‘회장’이라는 인간을 마주할 수 있었고.
“어머, 카페 창설자인 회장님이세요? 안녕하세용?”
“안녕하세요. 얌띠 님이시군요?”
“호호, 네. 반가워용.”
웃으며 눈을 마주친 순간 김예담은 회장을 지배해 버렸다.
[일반인 ‘송재겸’이 매혹에 걸렸습니다.]‘응? 잠깐, 일반인이라고?’
플레이어는 앞에 플레이어라고 뜨는데 일반인이라니?
황당해서 자기소개를 시켰다가 어이없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저는 LC 그룹 회장 송백현의 장남 송재겸이라 합니다. 나이는 만 30세로 일반인입니다.”
“플레이어가 아니라고?”
플레이어만 가입 받는 카페의 창설자가 플레이어가 아닌 역설적인 상황.
어이없었지만 김예담으로선 아무래도 좋았다.
‘플레이어든 아니든 플세바의 회장을 내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다는 거니까!’
이때부터였다.
“남들 앞에선 주인님이라고 부르지 마. 다른 간부들처럼 초창기 멤버인 것처럼 행동해.”
“알겠습니다.”
회장과 짜고 플세바의 간부 행세를 하며 카페를 쥐락펴락한 것은.
오성에 비하면 꿀리긴 하지만 LC 그룹 역시 억 소리 나오는 거대공룡기업.
그런 기업의 장남을 노예로 두고 있으니 돈 걱정할 필요도 없었다.
“그런데 회장. 카페는 왜 만든 거야?”
“처음엔 플레이어가 되지 못했으니 플레이어라도 모아보자는 생각이었습니다만…… 지금은 세력을 넓혀서 아버지를 놀라게 해주려는 취지가 큽니다.”
“아하, 아버지에게 인정받으려는 거구나.”
“예. 이를테면 깜짝 선물인 셈이죠. 하지만 그 전에 마경록은 죽일 겁니다.”
“마경록?”
“오성 그룹의 장남입니다. 아버지가 항상 저랑 비교하는 놈이기도 하죠. 그렇기에 미리 죽여야 합니다. 놈을 죽이지 않으면 평생을 비교질 당할 겁니다.”
매혹의 룬으로 지배했다지만 단순히 자신에 대한 호감이 0에서 100으로 늘어난 것일 뿐.
이들도 생각이라는 걸 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감정을 잃은 인형처럼 행동하지는 않는다.
지금처럼 지배를 당한 상태에서도 기존에 가진 복수심과 열등감은 그대로다.
‘뒤에서 칼을 갈고 있었구나.’
김예담은 저 마음을 잘 알고 있었다.
항상 부장을 칼로 찌르고 싶었던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네 뜻은 알겠어. 마경록을 죽이는 걸 도와줄게.”
“정말이십니까?”
“대신 지금보다 세력이 훨씬 더 커지면. 마경록이라는 자가 플세바에 지원할 수밖에 없게끔 영향력이 막강해지면.”
김예담이 씩 웃었다.
“그때 죽여보도록 하자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