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26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26화
126. 무인 카페
야심한 밤.
류민의 시선이 버려진 창고를 향해 있었다.
그 안에서 간간이 소름 끼치는 비명이 들려왔지만 류민은 웃었다.
그야 죽어 마땅한 쓰레기들이었으니까.
‘장소는 잘 잡았어. 여기가 쓰레기 소각장으로는 딱이란 말이지.’
주변이 온통 산인 데다 인적도 드물어서 시체를 치우기에 좋다.
게다가 말 잘 듣는 청소부도 있고 말이다.
‘솔직히 마경록이 내 부탁을 들어줄까 반신반의했는데 이렇게 뜻대로 잘 움직여줄 줄이야…….’
류민은 쓰레기 청소를 마경록에게 부탁했다.
그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걸 드러내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일종의 승부수였지. 비밀이 드러난 이상 언제 적의를 보여도 이상하지 않았으니까.’
여차하면 마경록과 싸울 생각까지 했다.
아무리 흑마력을 공급할 수 있게 인간쓰레기를 대준다 해도, 평생을 숨겨온 치부가 까발려져서 기뻐할 사람은 없으니까.
그렇기에 오히려 정공법으로 나갔다.
그동안 마경록에게 가식적으로 대한 사람이 많았을 테니 반대로 하면 먹히지 않을까? 라는 계산이었다.
‘그런데 그게 먹힐 줄이야. 마음을 열고 솔직하게 말한 게 신의 한 수였어. 엄밀히 말하면 마음을 여는 척한 거지만.’
일이 수월하게 풀려서 다행이었다.
‘하긴 마경록에게도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닐 테지.’
행여나 마경록의 마음을 얻지 못하더라도 해결할 자신은 있었다.
7초 뒤의 미래를 볼 수 있으니 더 나은 방향으로 언제든 고치면 된다.
정 안 되면 마경록과 싸웠을지도 모르겠지만.
‘어쨌든 쓰레기 청소는 이걸로 해결됐군.’
류민은 즉시 몸을 돌렸다.
곱게 죽이진 않는지 비명이 길어졌지만, 굳이 안에 들어가 보진 않았다.
아무리 비밀을 공유했다고 해도 마경록의 은밀한 식사를 방해할 마음은 없었다.
지금은 비명을 들은 것만으로 족하다.
‘오전, 오후, 저녁, 새벽으로 나눠서 다섯 명씩. 하루 스무 명을 대주기로 했으니 마경록으로선 충분히 흑마력을 모을 수 있겠지.’
9라운드까지 남은 날은 28일.
28일을 꼬박 유인해서 죽여도 560명밖에 청소하지 못하지만 어쩔 수 없다.
‘그 이상은 위험해서 말이지.’
과도한 식사는 마경록도 부담스러울 것 같아 그 정도 선에서 합의를 봤다.
‘남은 471명은 어떻게 처리해야 좋을지…….’
어차피 다음 라운드에서 절반은 사라질 녀석들.
죽이려거든 아이템이라도 뜯고 죽여야 좋을 텐데 말이다.
‘마경록이 처리 못 한 녀석들은 내가 손 좀 볼까?’
그런 생각과 함께 집으로 돌아간 류민이 핸드폰을 들었다.
얌띠가 보내준 살인 명부를 보며 누구를 죽여야 좋을지 보던 중, 눈에 익은 이름이 보였다.
‘이 사람은……?’
고요한 밤, 류민의 눈빛이 서늘하게 빛났다.
* * *
8월의 여름.
세상이 망하기 시작한 지도 8달이 되어 간다.
짧으면 짧다고 할 수 있는 그동안 많은 일이 일어났다.
경제가 흔들리며 금융 위기가 온 것은 물론, 모든 주식의 주가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경제 활동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20대의 대부분이 죽었으니 당연한 결과.
가게 주인들은 급히 30대 인력으로 대체했지만, 일손도 손님도 부족한 게 현실.
이제는 문자 한 통만 넣으면 바로 구할 수 있는 게 알바 자리였다.
그러다 보니 무인 편의점은 물론 무인 카페까지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추세다.
서아린과 홍선아가 들른 이 카페도 무인 시스템이었다.
“자, 아린아. 캐러멜 마키아토 샷 두 번 추가, 맞지?”
“응응, 고마워.”
“세상 참 좋아졌네. 카페도 무인으로 이용할 수 있고.”
“너도 참. 누가 들으면 80 먹은 노인인 줄 알겠어.”
서아린이 빙긋 웃었다.
요즘 들어 웃을 일이 없었다.
이렇게 동료 배우와 밖에 나와서 평화롭게 수다 떠는 게 행복으로 느껴질 정도로.
그만큼 세상이 너무 변했다.
지옥은 멀리 있던 게 아니었다.
가까운 곳에 있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 주요 팬층이 이제 30대네. 20대의 대부분은 사망했으니.”
“아…… 갑자기 우울한 얘길 하고 그래.”
서아린은 몇 번이고 바랐다.
자신이 처한 현실이 거짓이기를.
죽고 죽여야 하는 생존게임이 전부 꿈이기를.
“난 아직도 라운드에서 돌아올 때면 생각해. 이 모든 게 꿈은 아닐까? 친했던 동료 배우들이 다시금 웃으면서 연락하진 않을까?”
연기에 있어서는 진심이었던 서아린이다.
자기 일을 사랑했고 배우들과의 케미를 즐겼다.
운이 좋아 마경록을 만나고 나서 여러 방면으로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승승장구했다.
성공한 인생.
하지만 이제 그런 인생은 없었다.
현재 처한 직업 대부분이 그렇듯 연예계도 망조를 보이고 있었다.
분위기가 급격하게 떨어지자 홍선아가 사과했다.
“미안. 우울한 얘길 꺼내서.”
“아니야. 현실이 이런걸.”
“힘들지? 이참에 담배 배워볼래? 맞담배라도 할까?”
“하하, 덕분에 웃는다.”
농담을 웃어넘기며 캐러멜 마키아토를 쭉 빨아들였다.
달콤한 게 입안에 들어가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그래도 우리는 좀 낫잖아. 살아남았으니까. 플레이어니까.”
“그러네.”
“난 아직도 궁 선배님 돌아가신 게 충격이야. 설마 1라운드에서 돌아가실 줄 누가 알았겠어? 그것도 남자가.”
“스탯이 같으니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지.”
“하긴, 중학생도 성인이랑 같은 힘을 발휘하는 데 의미는 없겠지. 지금 생각하면 고블린 따위는 개 X밥인데, 그치?”
동료 배우의 입에서 욕설이 나오자 서아린이 타박했다.
“아무리 사람이 없다고 해도 말 좀 가려서 해.”
“뭐 어때? 이게 내 매력 아니겠어? 팬들은 모르겠지만.”
홍선아가 새침한 미소를 지으며 콧대를 세웠다.
무인 카페라지만 주변에는 그녀들 말고 사람이 없었다.
“사람이 없으니까 이런 장점도 있네. 얼굴 가릴 필요 없이 밖에 돌아다닐 수도 있고.”
“대신 수익도 줄어들었잖아.”
“그렇지. 근데 이 상황에 수익이 문제겠어? 당장 살아남는 게 최우선이지.”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서아린은 잠자코 들었다.
지금 상황에 생존보다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는가?
“아린이 넌 좋겠다. 생존에 좋은 직업이어서.”
“아, 소환수들 말하는 거야?”
“그래. 네 말 들으니 완전 사기 직업이더만. 골렘이 몸빵 해줘, 요정이 보호막 걸어줘. 20레벨 넘어서는 요정이 전투까지 돕는다며? 노예처럼 나서서 다 해주니 얼마나 좋아? 부럽다, 부러워.”
“네 직업도 만만치 않잖아.”
“나? 아니야. 대미지만 조금 셀 뿐, 알고 보니 암살자는 흔해 빠진 직업이더라고. 투명화라는 스킬이 있다지만 쓸모도 없고.”
“왜? 전투 중에 쓸 수 있잖아?”
“그렇긴 하지. 근데 싸울 때는 별로야. 공격 한 번 하면 풀려 버리거든. 쿨타임도 길고. 그냥 위험할 때 생존용으로 쓰는 게 전부지.”
“그럼 좋은 거네. 생존만큼 중요한 게 어디 있다고.”
“그렇지. 근데 현실에서는 위험할 일이 많이 없잖아? 활용하기가 애매하더라고. 내가 관음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은행을 털기엔 요즘 대책이 마련되어 있어서 소용없고.”
“…….”
“여기 카페도 무조건 카드 결제만 가능이라고 쓰여 있더라? 괜히 플레이어들한테 현금 털릴까 봐 무서운가 봐.”
“선아야. 설마 진지하게 생각해 본 건 아니지?”
“내가 바보냐? 그런 어이없는 생각을 했을까 봐? 하여간 농담이랑 진담도 구분 못 한다니까?”
핀잔을 들었지만 서아린은 배시시 웃을 뿐이었다.
같이 작품 여러 개를 찍은 우정을 생각하면 이렇게 수다 떠는 것마저 좋았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배우 친구이기도 했으니.
“그런데 우리 진짜 대단한 거 아니냐? 8라운드까지 살아남다니.”
“그렇지.”
“지금까지 연예계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손에 꼽는다던데?”
“그렇게 많이 사망했어?”
“그럼! 너 아직 잘 모르는구나? 웬만한 선후배랑 가수 쪽 아이돌 쪽 거의 다 죽었잖아. 연예인의 70%는 죽었을걸?”
“설마. 그 정도일 줄은…….”
“얘가 정신없이 조문 다니더니 정말로 정신이 없었네.”
홍선아가 쯧쯧 혀를 찼다.
“너 혹시 그것도 몰라? 우리 몸값 엄청나게 오른 거?”
“응? 몸값이 오르다니?”
20대가 상당수 포진한 연예계가 망하는 건 예정된 사실.
하지만 반대로 살아남은 플레이어는?
오히려 소수정예 연예인으로서 대중들의 인기를 독차지한다.
그것이 대격변이 일어난 연예계의 현주소다.
홍선아가 그 사실을 말하자 서아린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이었다.
“우리가 몸값도 오르고 전보다 더 유명해졌다고?”
“정말로 모르는 거야? 인터넷에 네 이름 검색 안 해봤어?”
“난 에고 서칭 잘 안 해서…….”
“지금이라도 쳐봐.”
서아린이 속는 셈 치고 검색창에 자기 이름을 쳐봤다.
그러다 자기도 모르게 얼빠진 목소리를 냈다.
“어?”
기사가 생각보다 많았다.
[8라운드 생존한 20대 연예인 목록은? 서아린, 홍선아, 구연승, 장복출 등 총 19명!] [우울한 상황 속 간판스타로 자리 잡은 서아린, 홍선아 등, 연예인 플레이어! 광고주들의 문의 빗발쳐.] [10년째 엑스트라로 출현한 장복출, 서아린에 이어 반짝스타로 떠올라…….] [무명 배우 플레이어로 명성을 얻은 장복출, 자신의 이상형은 서아린이다. 깜짝 고백.] [서아린 및 8라운드 생존 플레이어들, 전보다 광고 몸값 전체적으로 2.8배 상승.]서아린의 이름으로 검색하니 나오는 기사들이다.
자신의 이름이 이렇게 많이 언급되는 줄 몰랐다는 듯 서아린이 놀란 토끼 눈이 되었다.
“이, 이게 뭐야? 내 몸값은 또 언제 올랐지?”
“연예인들이 줄어드니까 오히려 광고 수익이 늘어나고 몸값이 뛴 거지. 거기 기사에 있는 장복출이라는 애는 무명 배우였는데 이번 8라운드에서도 살아남으면서 엄청난 기세로 인지도를 쌓고 있어.”
“…….”
“그런데도 이런 상황인 줄 전혀 몰랐다고? 너 지금 나 놀리려고 거짓말하는 거지?”
서아린이 진심으로 당황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니야. 정말 몰랐어. 이름 검색은커녕 한동안 인터넷을 안 들어가서…….”
“인터넷을 안 해도 매니저나 회사 직원 누군가가 말은 해줬을 거 아니야.”
“매니저……?”
서아린이 안상철을 떠올리더니 고개를 저었다.
“나한테 아무 말도 없었는데…….”
“이렇게 기사가 많은데 아무 말도 못 들었다고? 너희 기획사 대표가 누구야, 대체?”
정식 기획사는 아니지만 서포트 해주는 기업의 대표라면 마경록인데…….
역시 아무 말도 들은 적이 없다.
씁쓸한 표정으로 서아린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도 말 안 해줬어. 지금 상황이 어떤지.”
“하, 이게 말이 되니? 연예인이 자기 몸값 오른 줄도 모르고.”
서아린이 한숨을 쉬는 홍선아를 쳐다봤다.
어쩐지 웃고 있는 듯한데 기분 탓일까?
“너 회사 빨리 때려치워야겠다. 아주 X같은 놈들이네? 계약금 빨아먹으려고 철저하게 정보를 숨겨두고 있었네.”
“…….”
“몸값 기사가 뜬 건 3개월 전이야. 그럼 최소 3개월은 알면서도 입 싹 닫고 있었다는 건데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런 말 하긴 뭐하지만…… 너도 별말 없었잖아. 연락도 몇 개월 안 하다가 오늘 갑자기 한 거고.”
“야! 난 당연히 네가 아는 줄 알았지! 인터넷 기사도 안 보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냐? 그것도 연예인이!”
서아린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괜히 말 꺼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바빠서 그랬어. 알다시피 세상이 너무 흉흉해서 한동안 오는 연락 다 피하려고…….”
“으이그, 진짜! 댕청해, 댕청해!”
거침없이 타박하던 홍선아가 선심 쓰듯 말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 회사로 들어와. 우리 대표님이 얼마나 잘해주는데. 아린이 너 정도면 꽤 대우받을 수 있을 거야. 나름 신인 배우 중에선 이름값 좀 있으니까.”
“아니야. 됐어. 이제 와서 옮겨봐야 어쩐다고. 계약기간도 남아 있고.”
“그깟 계약 파기해. 우리 대표님한테 말해볼까? 너라면 아마 위약금도 내줄걸?”
“됐어, 여기저기 철새처럼 옮겨 다니고 싶진 않아.”
홍선아의 눈빛이 순간 싸늘해졌다.
“나 들으라고 하는 소리니?”
“응? 뭐가?”
“아니야. 어쨌든 아쉽네. 같은 회사에서 일하면 좋을 텐데.”
“일이랄 게 뭐 있어? 연예인 생명은 이제 다 끝났잖아. 다음 라운드만 해도 생존할 수 있을지 장담 못 하는데 드라마든 뭐든 장기적인 일을 할 수 있을 리가…….”
“얘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네? 일이 없긴 왜 없어? 괜찮은 광고만 따내도 평범한 직장인 10년 치 연봉을 버는데. 광고뿐이겠어? 드라마나 영화는 못 찍어도 예능이나 각종 프로그램에는 출현할 수 있잖아.”
듣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었다.
“그런데 너희 회사는 그런 일거리조차 전부 차단해 왔다는 거야? 대격변 이후로 제대로 일한 적이 정말로 없어?”
서아린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괜히 혼날까 봐.
“으응…….”
아니나 다를까 홍선아가 이마를 탁 짚었다.
“진짜 거기 회사 안 될 곳이네. 뭐 그런 병신 같은 곳을 들어가가지고…….”
“선아야. 아무리 그래도 말이 너무 심한…….”
“가자!”
“응?”
난데없이 홍선아가 일어서더니 서아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소개해줄 사람이 있으니 가자고.”
“누구?”
“있어! 널 사지에서 구원해 줄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