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56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56화
156. 신탁
얌띠가 자기도 모르게 입을 벌렸다.
천사를 죽이겠다는 말은 그만큼 충격이었다.
상상해 본 적도 없었고.
“처, 천사를 왜 죽여요?”
“왜? 죽이고 싶지 않나?”
“아니, 천사가 나쁘다는 건 알지만…….”
“죽여서 무슨 이득이 있냐는 거겠지?”
“네.”
류민이 피식 웃었다.
“있어, 그런 게.”
이득이라면 1라운드 때 이미 받았다.
최초로 천사를 죽여서 칭호와 룬을 받았다.
애당초 사신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천사를 죽였기 때문이었다.
그 이후에 천사를 죽이지 않은 건 시살의 두려움보단 순전히 이득이 없어서였다.
‘어디까지나 일반 천사에 한해서 말이지.’
일반 천사는 이제 죽여도 아무런 보상도 주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전투 천사는 이야기가 다르다.
류민이 끌어내려는 건 이 전투 천사였다.
“너는 그저 옆에 있다가 내가 지배하라고 할 때 하면 돼. 알겠나?”
“네, 주인님.”
“얼른 가지. 민주리의 버프가 끝나기 전에.”
최초로 전투 천사를 죽일 때 스탯에 비례하여 받는 보상이 있다.
버프가 끝나기 전에 잡으려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류민이 앞장서자 얌띠가 총총거리며 따라왔다.
곧이어 도착한 곳은 신성 제국에서 가장 큰 루브아히의 신전.
신 루브아히를 모시는 곳이라고 하는데, 그딴 설정에 관심은 없다.
진짜인지 가짜인지를 떠나서 류민의 관심은 오직 천사를 불러오는 데 있었으니까.
신전의 문을 열기도 전에, 문 앞에 대기 중인 신성 기사단이 가로막았다.
“처음 보는 분들인데 무슨 용무로 오셨습니까?”
‘서브 퀘스트 하러 왔습니다’라고 말한다면 NPC들은 고개를 갸웃할 것이다.
이들에게 플레이어는 이계의 전사이고, 시스템이나 퀘스트는 모르는 용어였으니까.
“마음의 안식을 찾으러 왔습니다.”
“그렇습니까?”
기사가 창을 치우고 길을 터줬다.
들어가라는 뜻이다.
“루브아히의 안식처에서 원하는 길을 찾으시길.”
“감사합니다.”
류민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도 모른 채 통과시킨 기사는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얌띠는 강아지처럼 조용히 류민을 뒤따랐다.
예배당에 들어가기 전, 두 사람에게 한 신부가 다가왔다.
“반갑습니다, 형제님. 처음 오셨습니까?”
“예.”
“그럼 신전에 등록부터 하셔야겠네요.”
“아니요. 잠깐 들른 거라서요.”
“그러면 예배라도 참석해 보시는 게…….”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헌금을 내고 싶은데요.”
“헌금이요?”
류민은 신부를 바라보며 대뜸 거래 기능을 사용했다.
그러자 거래창이 떠오른다.
[상대에게 줄 아이템이나 골드를 자유롭게 떠올려주세요.]└거래할 아이템 : 없음
└거래할 골드 : 1,000,000G
☞거래하기☜
└거래할 아이템 : 없음
└거래할 골드 : 0 G
☞거래하기☜
[아이템을 올린 뒤 ‘거래하기’ 버튼을 눌러주세요.] [양쪽의 동의가 있어야 거래가 성사됩니다.]‘보통은 플레이어에게만 먹히는 줄 알겠지만…….’
이렇게 NPC와도 거래 기능을 사용할 수 있다.
처음에 류민도 NPC에게 먹힐까 싶었지만 해보고 나서 알았다.
류민은 골드를 바라보며 속으로 100만을 떠올렸다.
그러자 100만 골드가 자동으로 기재됐고, 곧장 거래하기 버튼을 눌렀다.
전혀 아깝지 않다는 듯이.
[거래가 성사되었습니다.] [신부 발루스에게 1,000,000 골드를 주었습니다.]상태창을 보니 170만이었던 보유 골드가 70만으로 줄었다.
100만 골드가 넘어간 것이다.
뜻밖의 거금에 신부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이렇게 많은 돈을 헌금하시겠다고요?”
“예.”
놀라던 신부였지만 그것도 잠시.
아닌 척하고 있지만, 입꼬리가 씰룩거리는 게 보인다.
탐욕에 일렁이는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세속적인 생각을 하는지.
그렇다고 넙죽 받아먹지는 않았다.
체면은 지키고 싶었는지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한다.
“100만 골드라니…… 이런 거금은 받을 수 없습니다.”
‘이미 가져가 놓고 받을 수 없기는.’
비웃음을 참은 류민이 자선사업가 같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위대하신 루브아히 님께 헌금하려면 이 정도는 드려야지요. 그리고 저한텐 그리 큰돈이 아닙니다. 부담가지지 않으셔도 됩니다.”
“재력이 상당하신 분이시군요. 허허허.”
돌려주지 않기로 마음먹었는지 신부가 한동안 허허 웃음만 지었다.
물론 류민이 거금을 턱 하니 내놓은 데엔 이유가 있었다.
‘현재로서 가장 쉽게 깰 수 있는 서브 퀘스트가 [헌금하기]니까.’
아니나 다를까, 눈앞에 기다리던 메시지가 나타났다.
└조건 ▶ 신전에 100만 골드 이상 헌금하기
[서브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검은 낫에 대한 인간의 평판이 ‘중립적’->‘우호적’으로 상승하였습니다.]판타지 세계에는 수많은 서브 퀘스트들이 있다.
이곳 신성 제국만 하더라도 30개는 존재한다.
‘수십 번 회귀할 수 있는 점을 활용해서 서브 퀘들을 일일이 찾아보고 공략해 봤지.’
그 결과 가장 빠르게 공략할 수 있는 최적의 퀘스트와 루트를 정립할 수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이거다.
‘돈만 많으면 1초 만에 완료할 수 있는 퀘스트가 바로 헌금하기지.’
그렇다곤 하지만 지금 시점에 100만 골드라는 거금은 아무나 구할 수 없기에 다른 플레이어는 불가능한 퀘스트이기도 했다.
단숨에 평판이 오른 것도 이 때문이다.
“거금을 헌납하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신도님께 항상 루브아히의 은총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하하하!”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빈말은 싫어해서요. 말만 그럴 게 아니라 신께 직접 은총을 받고 싶은데요.”
“직접이요?”
류민이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신탁 말입니다.”
“…….”
“루브아히 신전은 신탁으로 신과 소통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신께서 직접 은총을 내려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일 것 같은데 말이죠.”
신전에서 신탁을 받는 건 누구나 아는 사실.
하지만 이를 요구하는 사람은 없다.
오직 신성 제국의 최고위 지도자인 성황만이 신탁을 받을 자격이 주어지기에.
그래서인지 신부의 얼굴엔 곤란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처음 오셔서 모르시나 본데 신탁은 오직 성황 폐하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신앙심이 부족한 신도는 받을 수 없습니다.”
“100만 골드나 헌금했는데도요?”
“그렇다 해도 불가능한 건 불가능한 겁니다. 어디서 왔는지 모를 외부인이 신과의 접촉을 원하다니요. 성황께서 들으시면 진노할 일입니다.”
“그럼 제가 준 골드나 다시 돌려주시죠.”
줬다가 뺏는 것처럼 치사한 게 없지만 류민은 뻔뻔하게 손바닥을 내밀었다.
하지만 철판을 까는 건 신부도 만만치 않았다.
“이미 받은 헌금은 돌려주지 않는 게 원칙입니다.”
“제가 달라고 하잖아요.”
“불만이 있다면 밖에 있는 신전 기사에게 얘기하시죠. 친절히 감옥으로 안내해 드릴 겁니다.”
더 이상 강짜 부리지 말라는 협박에 류민은 포기했다.
“어쩔 수 없네요.”
말로 설득하는 건 여기까지다.
“얌띠. 지배해.”
* * *
신부를 지배한 류민은 쉽게 안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
물론 100만 골드도 돌려받았다.
딸칵-
책장에 숨겨진 버튼을 누르자 드르르륵- 열리며 비밀통로가 나타났다.
“여기서부턴 어두우니 조심히 따라오십시오.”
신부가 무감정하게 말하며 먼저 앞장섰다.
제단으로 안내하라는 지시만 내렸는데도 이렇게 친절하다.
“이곳입니다.”
비밀스러운 지하 통로를 지나 도착한 곳은 어두컴컴한 공동이었다.
신탁이 내려지는 곳답게 은은한 빛이 맴돌고 있는 게 제법 분위기 있다.
뭐, 빛만 없었으면 흑마법사가 제물을 바치는 곳으로 봐도 무방했겠지만.
“이곳에서 잠시 기다려주십시오. 성황 폐하를 모셔오겠습니다.”
“빨리 데려와. 크로노스의 대리자가 혼자서만 오라고 했다고 전하면 될 거다.”
신부는 힐끔 보기만 할 뿐 류민의 명령을 무시했다.
그의 주인은 오로지 얌띠였기에.
“저분 말대로 해! 어서!”
“알겠습니다.”
얌띠가 말하고 나서야 비로소 공동을 나서는 신부였다.
“얌띠.”
“네, 주인님.”
“장비 제대로 착용해라. 잘못하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니.”
“어머, 제 걱정해 주시는 거예요? 정말 감…….”
“네가 아니라 매혹의 룬을 잃을까 봐 걱정이지.”
“히잉.”
오리처럼 입술을 내미는 얌띠를 뒤로하고 류민은 장비를 착용했다.
레전더리 무기, 갓 등급 갑옷, 갓 등급 투구 등.
스탯을 최대한 올릴 수 있는 아이템으로 무장했다.
그래야 전투 천사를 잡았을 때의 보상이 극대화될 수 있을 테니까.
그때.
저벅저벅-
어둠 속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들려오는 걸음과 기척 감지로 보아 걸어오는 사람은 두 명.
한 사람은 아까 데리러 간 신부였고 다른 한 사람은 신성 제국의 황제라 할 수 있는 성황이었다.
“정말로 신의 대리자가 여기서 기다린다고 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저기 저분입니다.”
신부가 류민을 가리키며 말하자 성황이 늙은 호랑이 같은 눈으로 쳐다본다.
“저 사람이 크로노스의 대리자라고? 지금 나랑 장난하는 게냐? 신성력이라곤 터럭만큼도 느껴지지 않거늘.”
“아. 안 느껴져?”
류민이 피식 웃으며 숨겨놨던 칭호를 꺼냈다.
인간 평판에 적대적이라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 역행자].
그 칭호를 ‘공개’로 바꾼 순간 성황의 눈이 큼지막하게 벌어졌다.
“어때? 이제 좀 느껴져?”
“네, 네이노오오옴! 이곳이 어디라고 감히! 신의 대리자를 사칭하고 대주교를 죽인 놈이 뻔뻔하게 들어와 있구나!”
단숨에 살기를 피워내던 성황이 온몸으로 신성력을 내뿜는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 기세에 눌려 오금을 저렸겠지만 류민은 코웃음을 지었다.
NPC가 강해봤자 NPC.
전투 천사에 비할 바는 아니다.
‘그나저나 역시 평판의 효과가 크군. 날 보자마자 바로 살기를 피워대고 죽이려 들다니.’
하긴 대주교를 죽였으니 자신은 모든 인간 NPC들에겐 공공의 적이다.
‘하지만.’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 성황의 복부에 주먹을 먹여줬다.
뻐억-!
“크허억!”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던 성황의 신성력이 단숨에 쪼그라든다.
‘나한텐 안 되지.’
이내 뒤통수를 잡고 바닥을 찍었다.
둔탁한 충격이 성황의 머리통에 전해진다.
그대로 뒤통수를 누르며 힘으로 압박했다.
수도꼭지로 잠근 듯 신성력이 새어 나오지 않는다.
“그 정도 실력으로 어딜 89레벨에 비비려고.”
“크으으윽!”
성황이 강하긴 하나 그래봤자 NPC.
플레이어로 치면 60레벨 수준이다.
다른 플레이어라면 몰라도 류민에겐 쥐똥만큼의 피해도 줄 수 없다.
“얌띠. 이 녀석도 지배해.”
“네, 주인님.”
신부에 이어 성황까지 지배했다.
지배가 끝나자 류민이 뒤통수를 누르던 손을 뗐다.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성황이 얌띠를 보자 얌띠가 류민을 쳐다본다.
“주인님. 뭐라고 지시할까요?”
“신부는 돌려보내고 성황에겐 신탁을 받고 싶다고 해.”
“알겠습니다.”
신탁.
신이 인간을 통해 세상에 뜻을 내려주는 걸 의미한다.
말하자면 신과 인간의 소통 창구.
이는 신성 제국의 성황만이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실상은 신이 아니라 천사와 대화하는 거지.’
류민이 시선을 들어 성황을 바라봤다.
커다란 제단 앞에서 성황이 신성력을 뿜어낸다.
천사를 불러내는 절차다.
‘이제 곧 있으면 천사가 부름에 응답할 거다.’
여기서 나타나는 천사는 일반 천사다.
전투 천사가 아니기에 굳이 긴장할 필요는 없다.
물론 일반 플레이어들은 시살 때문에라도 겁내겠지만 류민에겐 그럴 이유가 없다.
시련의 탑에서 얻은 칭호인 지고의 존재가 있었으니까.
‘일반 천사를 협박해서 전투 천사를 불러낸다.’
그런 간단한 계획을 세우고 있던 류민의 앞에 빛이 번뜩였다.
펄럭-
날개를 펼치며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던 존재, 천사가 굽신거리는 성황을 굽어봤다.
[무슨 볼일로 불렀느냐? 늙은 인간이여?]“아, 그게…….”
“볼 일이 있는 건 저 녀석이 아니야.”
대화 도중 류민이 끼어들자 천사의 시선이 닿는다.
[넌 누구지? 플레이어인가?]“천사의 눈엔 플레이어라는 게 보이나 보지?”
천사의 고운 미간이 사정없이 찌그러졌다.
[건방진 벌레 같으니. 머리통이 터져 죽고 싶은 게로구나.]눈에선 당장이라도 죽일 듯 살기를 품고 있다.
류민이 비웃으며 한마디 내뱉었다.
“어디 한번 죽여봐. 천사 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