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81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81화
181. 더글러스
“뭐야?”
마경록은 저도 모르게 육성으로 소리를 냈다.
황당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크 오러가…… 먹지 않는다고?’
황용민을 덮쳤던 다크 오러는 이상하게도 표피에 달라붙지 않았다.
아니, 달라붙을 수 없는 모양새였다.
보이지 않는 투명막에 가로막히기라도 한 듯 거리를 두고 있었다.
‘대체 뭐지? 다크 오러에 면역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아무리 명령해도 오러는 황용민을 감싸지 못했다.
생명력을 갈취하지 못했다.
오히려 황용민이 걸을 때마다 주춤거리며 물러날 뿐이었다.
마경록으로선 황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크 오러가 먹지 못하는 대상은 처음 봤으니까.
‘설마 생명이 없는 언데드라서 그런 걸까?’
이미 죽은 사람이라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젠장, 다크 오러가 먹지 못하는 상대라니.’
마경록의 얼굴에 난감함이 떠올랐다.
회심의 작전도 막혀버리니 눈앞이 막막했다.
순간 공간을 도약하기라도 한 듯 거리가 좁혀졌다.
“헉!”
어느새 코앞까지 다가온 황용민이 스트레이트를 뻗었다.
빠악-
턱주가리에 맞은 순간 기절한 마경록이 10여 미터를 뒹굴었다.
“대, 대표님!”
기사의 보호가 풀린 안상철이 급히 검을 내질렀지만.
팅-!
손바닥으로 가볍게 쳐낸 황용민이 마찬가지로 턱을 날려 안상철을 기절시켰다.
“후우.”
두 사람을 사이좋게 기절시킨 류민이 가볍게 손바닥을 털었다.
“힘 조절하느라 힘들었네.”
1분 사이에 두 사람을 제압했다.
죽이는 것보다 제압하는 게 몇 배는 더 힘들었다.
‘다크 오러로 생명력을 갈취할 생각이었겠지만 어림도 없지. 사신은 다크 나이트의 상위 클래스니까.’
빛이 어둠에 약하듯, 플레이어의 직업 간에도 상성이라는 게 있다.
특정 스킬이 특정 직업에게 전혀 힘을 못 쓰는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바로 지금처럼.
‘다크 나이트와 사신은 같은 어둠을 다루는 것 같지만 실은 종류가 달라. 사신이 더 상위 개념의 어둠이라고나 할까?’
같은 어둠이라도 급이 다르다는 소리.
다크 오러가 류민을 건들지도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제 나와도 돼.”
류민이 머리를 까닥이며 신호하자 그제야 숲에 숨어 있던 주성탁이 나타났다.
“끝났습니까, 주인님?”
“그래. 이 녀석들, 적어도 반나절은 기절해 있을 거다.”
“그냥 죽이는 게 낫지 않겠습니까?”
주성탁의 발언에 류민이 잠시 노려보았다.
“그럴 거면 내가 진즉에 죽였겠지, 기절시켰겠냐?”
“죄, 죄송합니다. 제가 주제넘은 소릴 했습니다.”
“포인트를 위해선 무고한 사람이라도 죽이려던 놈들이다. 죽어 마땅하다는 건 알아. 하지만 아직 이용 가치는 있다. 크리스틴의 협력을 얻기 위해서라도 살려둘 필요가 있어.”
크리스틴이 아무리 마경록에게 마음이 없다지만, 녀석이 이대로 죽어버린다면 심적인 충격이 클 것이다.
‘마경록에 대한 마음이 완전히 떴다면 몰라도 말이지.’
일단은 마경록을 죽이는 건 계획에 없다.
주요 전력인 프리스트와 연관된 만큼 쉽게 버릴 수 없는 카드가 마경록이었으니까.
안상철은 마경록의 수족이니 세트로 묶어서 데려갈 수밖에 없고.
“일단은 놈들을 나무에 묶어라. 색이 거뭇하면서 얇아 보이는 나무줄기를 이용해라. 웬만한 플레이어도 쉽게 풀지 못하는 질긴 나무니까.”
“알겠습니다.”
주성탁은 명령대로 기절한 두 사람을 나무에 묶었다.
‘이 정도만 시간 끌어도 놈들이 미궁에서 빠져나오는데 한참은 걸릴 거야.’
잘하면 24시간 내내 포인트도 벌지 못한 채로 라운드가 마감될 수 있다.
‘그렇다 한들 팀전이라 소멸하진 않겠지만.’
류민은 이번 게임에서 한국 팀을 생존시킬 자신이 있었다.
막판 뒤집기가 남아 있었고 그를 위한 천리안 스킬까지 겸비하고 있다.
‘계획대로만 된다면 절대로 질 수가 없지. 전 구역 1등도 따놓은 당상이고.’
이제 미궁의 숲에서의 볼일은 모두 끝났다.
예정대로 마경록이 1,000명을 죽이고 학살자 칭호를 받을 일도 없다.
‘하나의 비극은 막았다. 또 다른 하나도 막아야 하지만.’
천리안으로 크리스틴을 바라봤다.
절망교 세력도 거의 다 모였다.
폭풍 전의 고요처럼 금방이라도 일이 벌어질 조짐이 보인다.
‘서둘러야겠는걸. 크리스틴이 죽게 내버려 둘 게 아니라면.’
류민이 주성탁과 함께 걸음을 재촉했다.
미궁의 숲에 마경록과 안상철만을 남겨둔 채로.
* * *
더글러스는 북적이는 사람들의 머릿수를 세어봤다.
‘총원 101명이라……. 전부 다 모였군.’
모두가 유일한 성녀이자 프리스트를 찾아온 추종자들이었다.
‘실상은 성녀 곁에서 빨대나 꽂으려는 거지새끼들이지만.’
동료들을 비난하면서도 겉으로는 미소를 유지했다.
2라운드 때부터 성녀의 총애를 받던 팔라딘이 인상을 쓸 순 없는 노릇이니까.
‘성녀가 죽는 마지막까지는 본색을 드러내선 안 되지. 암.’
절망교에서 크리시를 죽이려는 이유는 자신도 모른다.
다만, 더글러스는 성녀를 버리고 절망교로 갈아탔다.
배신을 선택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다.
‘절망교가 더 혜택이 많으니까.’
사실 여기 있는 사람 대부분은 공짜 도움보다도 생존을 위해 크리시에게 붙은 것이 크다.
‘프리스트와 함께 다니면 생존율이 올라가는 건 당연하겠지.’
프리스트의 기본 스킬인 힐만 봐도 그렇다.
웬만한 상처는 전부 치유하는 경이적인 스킬이 힐이다.
심지어는 잘린 팔도 단면에 잘만 갖다 대면 힐로 바로 붙여서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더구나 ‘성녀의 축복’이라는 버프로 상태 이상과 디버프에 대한 저항력도 50%나 올려준다.
40레벨이 넘어서는 광역 도트 힐까지 쓸 수 있는 게 프리스트다.
‘그야말로 사람을 살리는데 최적화된 직업이지.’
물론 자신에게도 뭔가 이득이 있으니 사람들을 도와주는 거겠지만 무상으로 치료를 해준다는데 싫어할 사람은 없었다.
그게 성녀의 주위로 100여 명의 거지새끼가 모인 이유다.
‘하지만 난 싫어. 크리시의 곁에 있으면 생존율이 올라가는 건 맞아. 하지만 그것뿐이야. 내적인 성장이 전혀 없다고.’
프리스트의 스킬들은 단순히 버티는 데만 주력 되어 있다.
버티기만 해서는 20라운드까지 공략할 수 없다.
공격이 최선의 방어라는 말이 있듯이, 지금보다 더 강해지고 성장하는 게 앞으로 생존할 가능성이 더 크다.
그 사실을 일찍이 깨달은 더글러스는 크리시를 배신하기로 했다.
절망교는 크리시와 달리 성장에 초점을 맞춘 조직이었으니까.
‘절망교에선 포션을 비롯하여 기타 여러 가지 성장에 도움 되는 아이템들을 많이 지원해 준다. 이번 일이 끝나면 약탈로 얻은 아이템도 갈취해서 나눠 가지기로 했고.’
하지만 성녀의 추종 세력들은 어떠한가?
그저 오매불망 성녀 하나만을 바라보며 힐만 주워 먹을 뿐, 성장을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는다.
하루하루 버티기만 할 뿐이다.
‘그래서는 얼마 못 가서 무너질 거야. 지금까지야 잘 버텨왔지만, 언제까지고 운이 따라줄 거 같아?’
그럴 바에 일찍이 손절하는 게 낫다.
더 생존 가능성이 있는 종교로 갈아타는 게 훨씬 희망스럽고 현명하다.
하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더글러스의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순 없었다.
진정으로 그가 배신한 이유는 아이템 따위가 아니다.
절망교에서 약속했으니까.
‘크리시를 죽이기 전에 가지고 놀 수 있게 해준다고.’
비릿한 웃음을 지은 더글러스가 크리시를 바라봤다.
홀로 도도하게 빛나는 아름다운 꽃.
그 꽃을 꺾었을 때의 쾌감이 어떨지가 몹시도 궁금했다.
‘몇 번이고 가지고 싶었으니까. 너라는 여자를.’
그동안 곁에서 흑심을 품어왔지만 좀처럼 기회가 없었다.
딱 봐도 남자에게 관심이 없는 여자인 것 같았다.
그래서 더욱 끌렸다.
사람이란 게 중고보다는 새 상품에, 아무도 가지지 못한 명품에 더 끌리는 법이었으니까.
‘사랑? 의리? 그딴 건 필요 없어. 쾌락이 제일 중요하다.’
그렇기에 이번 일로 크리시가 죽든 말든 상관없었다.
자신의 성욕만 채울 수 있다면.
그때 더글러스의 눈에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는 베르베르가 보였다.
“베르베르 님. 부르셨습니까.”
베르베르는 성녀를 감시하기 위해 절망교에서 잠입시킨 첩자.
자신을 절망교로 끌어들인 장본인이기도 하다.
여기 있는 101명 중 유일한 자신의 편이기도 했고.
“조금 전에 형제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준비가 끝났다고.”
“인원이 모두 모인 겁니까?”
“그래. 500m밖에 200여 명의 형제가 대기하고 있다. 지금 바로 칠 수 있지.”
“아아. 드디어…….”
준비는 끝났다.
여기 있는 거지 같은 추종자들을 깡그리 쓸어버리고 크리시를 납치할 준비가.
“약속대로 저한테도 기회를 주시는 거겠지요?”
“기회?”
“그…… 있잖습니까. 헤헤.”
“아, 그거? 두말하면 잔소리지. 내부에서 배신하는 너의 공을 인정해 교주님께서 특별히 30분을 허락하셨다.”
“오오, 30분씩이나…… 흐흐, 감사합니다!”
그 정도면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거다.
“이제 제가 뭘 하면 되겠습니까?”
“나는 지금 바로 형제들을 데리러 갈 것이다. 그동안 너는 크리시의 주의를 돌리도록 하라. 행여나 주변 탐색 스킬을 쓰거나 미리 눈치채지 못하도록 옆에서 계속 말을 걸어라. 상황이 벌어지면 바로 제압해 버리고.”
“그리하겠습니다.”
성녀의 기사라 불리우는 팔라딘의 입꼬리가 비릿하게 올라갔다.
* * *
크리스틴은 모인 사람들을 보며 감탄했다.
‘날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고작 1시간을 기다렸을 뿐인데 100여 명의 추종자가 모였다.
이 정도면 어느 누가 기습을 해도 안심이 됐다.
두터운 인간 방벽이 생긴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여러분?”
크리스틴의 말 한마디에 웅성거림이 잦아들었다.
이내 침 넘기는 소리도 들릴 만큼의 고요한 침묵이 찾아왔다.
“저를 믿고 따라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모이라는 말 한마디 없었는데도 이렇게 찾아주신 여러분께 제가 해드릴 수 있는 일은 한 가지밖에 없을 것 같아요.”
잠시 뜸을 들인 크리스틴이 사명감이 깃든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
“끝까지 지켜주고 함께 가는 것 말이에요. 그게 제가 해드릴 수 있는 보답이겠죠. 우리 함께 20라운드까지 살아남아 봐요.”
“와아아아아!!!”
“크리시! 크리시!”
하늘을 향해 주먹을 들어 올리며 플레이어들이 열광했다.
어떻게 보면 독실한 신자들 같았고 어떻게 보면 흡사 광신도를 연상케 했다.
짝짝짝-
지켜보던 더글러스가 손뼉을 치며 다가왔다.
“크리시 님은 역시 대단하십니다.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기품 있고 믿음직해 보여요.”
“그럴 리가요. 저는 평범한 20대 여성에 불과합니다. 여러분이 좋게 봐주신 덕이겠지요.”
“사람을 지키는 일을 어찌 평범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크리시 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이 많은 건 다 크리시 님의 인덕 덕분입니다.”
“그리 말해주시니 감사해요. 팔라딘 님처럼 좋은 분을 옆에 둔 것도 인복이 있어서겠죠.”
싱긋 웃는 크리시를 마주 보며 더글러스가 미소 지었다.
‘정말 아까운 여자란 말이야. 이대로 죽이기에 너무 아까워.’
평생을 감금해 놓고 성욕을 푸는 대상으로 가지고 놀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런 감정을 크리시는 알고나 있을까?
‘큭큭, 내 밑에 깔려서 울부짖는 표정이 어떨지 정말 기대되는군.’
꿀꺽 마른침을 삼키던 더글러스가 작전대로 크리스틴에게 말을 걸었다.
“이제 인원도 모였으니 퀘스트 하러 가실 겁니까?”
“네. 시간이 조금 지체됐으니 한시라도 빨리 포인트를 모아야겠죠?”
“이렇게 대인원이 참가해야 하는 퀘스트가 있기나 할까요?”
“그건 모르겠지만 일단 함께 움직이는 편이 좋겠어요. 항상 그렇게 해왔잖아요?”
“그렇죠. 하지만 행동하기 전에 작전 먼저 짜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한 작전이 있는데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시선을 끌기 위해 더글러스가 미리 준비한 말들을 내뱉었다.
정신을 돌리기 위한 말들이었지만 크리스틴은 오히려 의아함을 느꼈다.
‘평소에 말수가 적던 팔라딘 님이 오늘따라 왜 이리 말이 많지?’
무슨 작전을 알려준다곤 하지만 딱히 귀에 들어오진 않았다.
쓸데없는 말만 장황하게 늘어놓는 데다 억지스러운 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상한데? 갑자기 안 하던 짓을 할 사람이 아닌데…….’
더글러스는 2라운드부터 쭉 함께해 온 팔라딘이다.
그의 성격을 모를 리가 없다.
‘이상해. 정말로.’
예언자에게 언질을 들어서인지 기습에 대한 경계심이 극도로 예민한 상태였다.
그래서인지 크리스틴은 주변 탐색 스킬을 습관처럼 확인하곤 했다.
바로 지금도.
“어?”
우연히 켠 스킬에 빨간 점 다수가 보였다.
순간 더글러스의 표정이 굳어졌지만 크리스틴은 보지 못했다.
정확히 이쪽으로 다가오고 있는 빨간 점들에 시선이 쏠린 탓이다.
“이, 이것 보세요! 이쪽으로 웬 사람들이…… 웁!”
크리스틴은 비명도 지르지 못했다.
더글러스의 우악스러운 손이 그녀를 잡아채 끌고 갔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