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193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193화
193. 죽음의 손아귀
“아주 잘했어.”
말 잘 듣는 강아지를 대하듯 머리를 쓰다듬어 준 퍼스트워리어가 배신자에게 물었다.
“이름이 뭐라고 했지?”
“가, 강시혁입니다…….”
“좋아. 시키는 대로 했으니 넌 살려준다.”
“가, 감사합니다! 감사합…….”
“대신 검은 낫이 도착할 때까지 여기 있어.”
“예?”
“네가 거짓말했는지 안 했는지 우리가 확인할 길이 없잖아. 적어도 검은 낫이 올 때까진 있어야지.”
놈들의 협박에 못 이겨 부대장을 배신했는데 직접 마주하기까지 해야 한다니.
안색이 새파래진 강시혁이 더듬거리며 영어를 이어갔다.
“시, 시키는 대로 하면 보내준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지금도 시키고 있잖아.”
“여, 옆에서 들으셨을 거 아니에요. 확실히 검은 낫이라고요.”
“나 한국말 몰라. 네가 뭐라고 했는지 누구랑 통화했는지 내가 어떻게 알아?”
“이건 약속이랑 다른…… 아아악!”
퍼스트워리어의 손가락이 무릎을 꾹 눌렀다.
무슨 거대한 프레스기에 낀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다.
무지막지한 악력이었다.
“노란 원숭이 새끼가 하라면 하라는 대로 할 것이지, 혓바닥이 왜 이리 길어? 다시는 못 걷게 해줄까?”
“끄흐흐흑…….”
“우리한테 개죽음당하기 싫으면 직장 상사를 팔아서라도 살아남으란 말이야. 그게 생존본능이고 원숭이의 참된 마음가짐 아니겠어?”
“아, 알, 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이것 좀 놓아…… 컥!”
무릎을 놓는 대신 퍼스트워리어의 큼지막한 손이 강시혁의 뒤통수를 때렸다.
“머저리 새끼. 쯧.”
그가 몸집만큼이나 큰 대검을 어깨에 걸치고 12사도 동료들을 돌아봤다.
“연락은 했어?”
“두 팀 다 불렀으니 이쪽으로 올 거야.”
“검은 낫이 오기 전에 도착해야 할 텐데…….”
인도 1위 스윙맨의 걱정에 퍼스트워리어가 픽 실소를 지었다.
“뭔 그런 걱정을 하냐? 검은 낫이 오면 우리가 먼저 그 X같은 대가리를 깨부수면 되는 거지.”
“신사의 나라라더니 단어 선택이 참 저속하군.”
“누가 그래? 영국이 신사의 나라라고.”
“자신 있어? 90레벨이 만만하진 않을 텐데?”
“나 소드 마스터야. 내 검기 한 방이면 못 죽이는 새끼가 없다고. 미노타우로스도 한 방에 죽였다니까?”
“그런 놈이 왜 여태껏 전 구역 TOP 3에는 들지도 못한 걸까?”
“크흠, 그건 내가 그동안 너무 대충 공략해서 그런 거고. 이제부턴 두고 보라고. 랭킹 1위 자리에 누가 오르는지.”
자신만만한 퍼스트워리어의 모습에 스윙맨은 설레설레 고개만 저었다.
“그러지 말고 검은 낫이 오면 대화로 시간 끌어. 나머지 사도들이 도착할 때까지. 인질도 있으니까 그게 더 나을 거 같은데?”
“무슨 소리. 굴러들어온 파이를 다른 놈들이랑 나눠 먹자고?”
“그 파이 먹을 수 있는 거 맞아? 독이 든 파이는 아니고?”
“검은 낫 따윈 우리 넷이서도 충분히 죽일 수 있다니까? 말마따나 인질도 있잖아.”
“안 된다니까 그러네.”
“된다니까 그러네?”
옥신각신하던 두 사람을 보던 강시혁은 순간 퍼스트워리어가 쳐다보자 흠칫 놀랐다.
“이 새끼한테 물어볼까? 야, 노란 원숭이. 검은 낫이랑 내가 붙으면 누가 이길 거 같냐?”
“예?”
“뭘 되묻고 있어. 영어 못 알아들어? 1대1로 붙으면 둘 중 누가 이길 거 같냐고. 넌 부대원이니까 알 거 아니야. 부대장의 실력을.”
물론 안다.
첫날부터 결투했었기에 전 대원이 다 안다.
부대장이 얼마나 괴물인지를.
하지만 지금 강시혁의 눈엔 앞에 있는 거한이야말로 괴물이었다.
그래서인지 솔직하게 말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말해, 솔직히.”
“거, 검은 낫…….”
“…….”
“……은 생각보다 약합니다. 당신 정도라면 이길 수 있을 거예요.”
“거 봐! 봤지? 의외로 약하다잖아. 내 생각도 그렇다니까?”
“뭘 이런 놈한테 묻고 있어? 이 새끼 지금 너한테 겁먹은 거 안 보여?”
“아니야, 아니야. 솔직하게 말했다잖아. 그렇지?”
“네에…….”
강시혁의 어깨에 퍼스트워리어의 손이 턱 올라왔다.
“곧 있으면 검은 낫이 올 거야. 우리는 기습 준비를 할 테니까 넌 그동안 시선 좀 끌고 있어.”
“예? 제, 제가요?”
“왜? 싫어?”
어깨를 잡은 손아귀에 슬슬 힘이 들어왔다.
강시혁이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
“아, 아니요. 하, 하겠습니다.”
“그래, 그래야지. 혹시나 검은 낫에게 도움을 청한다거나 도망갈 기미가 보이면 어떻게 되는지 알지?”
퍼스트워리어가 무식하게 큰 대검을 보이며 위협했다.
“곧바로 검은 낫이랑 함께 뒈지는 거야. 도망? 우리 넷을 상대로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한다면 오산이야. 넌 모르겠지만 우리가 자국에서 1위는 우습게 찍은 최정상급 플레이어들이거든.”
“아아…….”
“그러니까 처신 잘해. 일 처리만 잘하면 살려줄 테니까.”
“저, 정말로…… 정말로 살려주시는 거죠?”
“당연하지. 네깟 파리 새끼 하나 풀어주는 게 우리한테 어려운 일이겠어? 일이 잘만 풀리면 살려준다고 약속하지.”
“그,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좋아 좋아. 그럼 기대하고 있을게.”
툭툭 어깨를 두들겨준 퍼스트워리어가 동료들과 함께 모습을 감췄다.
각자 흩어져서 위치를 잡고 검은 낫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기다린 지 5분.
조용하던 골목 안으로 낯선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검은 낫의 등장이었다.
“부, 부대장님…….”
“강시혁?”
오랜만에 본 검은 낫은 평소처럼 흰색 가면을 쓰고서 나타났다.
그 때문에 가면 속에서 쓴웃음을 짓고 있다는 사실을 강시혁은 알 수 없었다.
“그래, 여기서 보자고 한 이유가 뭐냐?”
“사, 상담할게…… 있어서 말입니다.”
“뭐지?”
“그, 그게…….”
누가 봐도 긴장한 얼굴에 식은땀까지 흘리고 있으니 의심스러울 법도 했건만.
검은 낫은 가만히 그의 말을 경청했다.
그 모습이 오히려 의심스러웠던 걸까?
“저 새끼 눈치 깠네.”
잠복하고 있던 퍼스트워리어가 먼저 모습을 드러냈다.
“Hey, 네가 검은 낫이지? 낫을 들고 있는 거 보니까 맞는 거 같긴 한데.”
대검을 들고 껄렁거리며 나서자 다른 사도들도 한숨을 쉬며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열 발자국 앞에서 멈춰선 퍼스트워리어가 이죽거리며 물었다.
“너 영어 할 줄 아냐?”
“…….”
“뭐, 몰라도 상관없어. 말은 안 통해도 대충 느낌은 오겠지? 네가 지금 X됐다는 걸.”
“…….”
“고통 없이 가고 싶으면 순순히 무기 버려. Drop the weapon. 안 그러면 최대한 고통스럽게 죽일 거야. 계집애처럼 비명 지를 때까지 고문하다가 죽여준다고 내 XX에 대고 약속하지.”
대놓고 도발했지만 검은 낫은 무반응이었다.
‘이 새끼 봐라? 이 정도면 알아들었을 텐데? 진짜 영어를 못 하는 건가?’
퍼스트워리어의 입에서 허탈한 한숨이 나왔다.
상대를 흥분시켜 판단을 흐리게 만들겠다는 작전은 물 건너갔다.
“얘들아. 말로 해선 안 되겠다.”
네 명의 사내가 무기를 들고 다가오는데도 류민은 태연히 강시혁을 보며 물었다.
“저놈들은 누구지? 네 친구냐?”
“그, 그게…….”
강시혁은 이 순간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졌다.
곧장 검은 낫에게 붙어서 살려달라고 애원할지, 아니면 자신을 협박한 저 괴물들의 뒤로 숨을지.
‘부대장님이 날 용서해 주실까? 아, 아니야. 저 냉혈한이 날 봐줄 리 없어. 차라리 저놈들 편을 드는 게 나을지도……. 하지만 놈들이 부대장님을 처리하지 못한다면?’
둘 중 누구에게 붙어야 목숨을 건질 수 있을지 저울질을 해봤지만, 쉽사리 답을 얻을 수 없었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설명해 주겠나?”
“그, 그게 말입니다, 부대장님…….”
“설마 날 함정으로 유인한 거냐?”
강시혁의 고개가 푹 꺼졌다.
“죄,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살려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부대장님……. 흐흑.”
강시혁이 참회의 눈물을 뚝뚝 흘려댔지만 류민의 목소리에 변화는 없었다.
“미안하긴. 내가 더 미안하지.”
“흑…… 예?”
류민의 낫이 섬광처럼 번뜩였다.
강시혁의 머리가 기울더니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와 함께 뒤에 있던 12사도 한 명의 몸이 미끄러지듯 잘렸다.
털썩-
“고통은 없을 거다.”
그 모습을 나머지 사도들이 질겁하며 쳐다봤다.
공포.
그들이 방금 느낀 감정은 공포였다.
다름 아니라 류민이 가진 학살자 칭호가 목격자들에게 상태 이상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3초가 지나자 제정신을 차리긴 했지만.
“미, 미친 새끼가 같은 부대원을…….”
“내가 죽인 건 부대원이 아니라 배신자다.”
자신에게 유인 전화를 건 순간부터 강시혁은 배신자가 됐다.
협박당했다고 해도 배신자는 살려둘 수 없다.
그 원칙에 따라 이 자리에서 즉결 처형했다.
뒤에 있던 12사도와 함께.
“너 이 새끼, 영어 할 줄 알았어?”
“못한다고 한 적은 없다만.”
“…….”
류민의 대꾸에 퍼스트워리어가 어이없다는 듯 침묵했지만 실은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이 새끼가 말도 없이 사람 죽이고 지랄이야…….’
유창한 영어 실력도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갑작스러운 행동이 그를 놀라게 했다.
다른 사도들도 심장이 벌렁거리긴 마찬가지였다.
‘배신했다고 가차 없이 부대원을 죽이다니…….’
‘인질로 쓰겠다는 작전은 물 건너갔군.’
거침없는 판단력과 냉철함이 무섭게 느껴졌지만, 무엇보다 무서운 건 따로 있었다.
언제 공격했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저 원숭이 뒤에 내가 있었다면 꼼짝없이 당했을지도…….’
그리 생각하는 동료들을 제쳐 두고 퍼스트워리어가 다가갔다.
커다란 대검에는 언제든지 공격할 수 있도록 이미 검기를 걸어놓았다.
“이야, 거 장난으로 협박 좀 했다고 다짜고짜 사람을 죽이다니. 랭킹 1위가 알고 봤더니 싸이코였구만?”
“장난으로 협박?”
가면 속의 류민이 입 밖으로 비웃음을 흘렸다.
“그렇게 말하면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 줄 알았나? 12사도들?”
“…….”
12사도의 표정이 돌처럼 굳어졌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는데 정체를 알아냈으니 그도 당연했다.
“애초에 날 견제하기 위해 각국의 랭커들이 모여서 메시아라는 웃기지도 않는 단체에 가입해놓고선 단순히 장난이었다고? 지나가던 개가 웃겠군.”
“……어떻게 알았지?”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지.”
말 끝나기 무섭게 류민의 낫이 채찍처럼 늘어났다가 돌아왔다.
촤르륵- 탁!
무기가 움직였는지조차 보지 못한 12사도 한 명이 뱃가죽에 구멍이 뚫린 채로 쓰러졌다.
털썩-
눈 깜짝할 순간에 시체가 생기자 동료들이 흠칫 놀랐다.
반응할 새도 없었던 퍼스트워리어와 스윙맨이 마른침을 삼켰다.
‘저, 저게 랭킹 1위라고?’
‘괴물이다. 완전 괴물이야.’
도저히 대응할 수 없는 속도를 봐버린 두 사람에게 이미 전의라곤 온데간데없었다.
그저 머릿속으론 어떻게든 이 자리를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뿐.
“영국의 소드 마스터, 퍼스트워리어. 인도의 무투가, 스윙맨. 이제 너희 둘만 남았네?”
“…….”
“뭘 가만히 있어? 덤비든 도망치든 몸부림은 쳐봐야지?”
“What the fuck!”
가장 먼저 자리를 뜬 건 퍼스트워리어였다.
거구에 맞지 않은 날렵한 움직임으로 벽을 딛고 도약한 그는 건물의 옥상으로 도망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생각은 생각으로만 그칠 뿐.
‘죽음의 손아귀.’
류민이 녀석의 뒤꽁무니를 조준해 스킬을 사용하자 뱀처럼 늘어난 검은 손아귀가 퍼스트워리어의 허리를 감쌌다.
“놔! 놓으라고!”
“이리 와. 나랑 놀아야지.”
끌려오던 퍼스트워리어의 얼굴에서 자신만만해하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그저 공포에 질린 채로 도살장에 끌려오는 한 마리의 가축만 보일 뿐.
서걱-!
죽음의 손아귀로 잡혀 온 퍼스트워리어의 머리가 댕강 잘려 나갔다.
그 사이, 나머지 사도 스윙맨이 저만치 도망갔지만 류민은 여유만만했다.
죽음의 손아귀의 쿨타임은 없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