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203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203화
203. 사리엘
‘날 데려오라고 했다고? 누가?’
류민은 천사치곤 음침한 구석이 있는 사리엘을 주의 깊게 쳐다봤다.
말하는 걸 보면 위에서 자신을 잡아 오라고 지시가 내려온 모양.
정보를 캐낼 필요가 있었다.
물론 고문 따위의 비생산적인 노동은 할 필요가 없다.
속마음의 룬이 있는 이상 알아내는 건 굉장히 쉬웠으니까.
사리엘을 가만히 주시하자 생각이 읽힌다.
‘대천사 중 1위인 미카엘, 그자의 명령이 있었구나.’
미카엘이란 이름은 68회차 때에도 들은 적이 있었다.
직접 만나기까지 했기에 얼마나 강한 녀석인지 알고 있었다.
‘역시 미카엘, 그 녀석이 대천사들의 수장이었구나.’
어쩐지 다른 천사들과는 격이 다른 강함이 느껴진다 했다.
‘대천사의 수장이 내린 명령이라면 이해가 가지.’
얻은 정보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하게 데려오라고 했다는 점.
라구엘이라는 대천사가 자신을 죽이려고 벼르고 있다는 점.
대천사들이 천계의 질서를 위해 자신을 본보기로 삼으려 한다는 점 등.
필요한 정보는 모두 얻을 수 있었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벙어리인가? 검은 낫이 벙어리라는 정보는 듣지 못했는데?]중얼거린 사리엘이 아무래도 좋다는 듯 곡도를 겨눴다.
[말은 못 해도 귀머거리는 아니겠지.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저항…….]“제피.”
류민은 천사의 말을 무시하고 등 뒤에 있는 제프리를 불렀다.
“파티원들을 데리고 최대한 물러나 있어라. 곧 쑥대밭이 될 예정이니.”
“알겠습니다, 검은 낫님.”
제프리가 얼어 있는 동료들을 챙기러 가는 걸 본 류민이 다시 앞으로 고개를 돌렸다.
사리엘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천사가 아니라 악마라 해도 믿을 만큼 있는 대로 구겨져 있었다.
[벙어리인 줄 알았더니 혀는 달려 있었구나.]“너한테 욕할 손가락도 달려 있는 걸?”
가운뎃손가락을 들어 보이자 천사의 눈썹이 꿈틀댔다.
[쥐톨만 한 힘 좀 얻었다고 기고만장하구나. 한낱 인간인 주제에…….]말하던 사리엘이 돌연 놀란 표정을 지었다.
보아하니 류민의 목에 걸려 있던 악마의 펜던트를 본 모양이다.
순간 비수 같은 살기가 류민의 전신을 찔러 들어왔다.
[그 목걸이…… 어디서 난 거냐?]“그건 알아서 뭐 하게?”
[그게 무슨 물건인지는 알고나 있는 거냐?]“과묵해 보이는 새끼가 의외로 말이 많네.”
류민의 전신이 시커먼 어둠으로 뒤덮였다.
사신화를 시전한 뒤 준비해뒀던 버프를 사용했다.
[악마의 축복에 걸렸습니다.] [현재 스탯의 총합(109,967)을 기준으로 다음과 같은 효과가 적용됩니다.] [천사 처치 시, 기준치의 1배(109,967)만큼 골드를 획득합니다. 천사의 수준에 따라 최대 1,000배(109,967,000)까지 증가합니다.] [천사 처치 시, 기준치의 0.01%(11)만큼의 스탯 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천사의 수준에 따라 최대 10%(10,996)까지 증가합니다.] [천사 처치 시, 악마 진영의 평판이 소폭 상승합니다.] [버프는 해당 라운드가 끝날 때까지 지속됩니다.]메시지의 수치에 놀라 상태창을 봤더니 스탯이 말도 안 되게 상승해 있었다.
-힘 : 25,274, 지능 : 27,325
-민첩 : 27,532, 운 : 29,836
안 그래도 강화된 민주리의 버프를 받았을뿐더러 바닥에는 버프존까지 깔려 있다.
여기에 더해 균형의 룬, 학살의 룬, 최초의 천사 살해자, 사신화까지.
조목조목 따져보니 왜 이런 스탯이 됐는지 이해가 됐다.
‘더구나 저번에 레미엘을 잡고 스탯 보상을 두둑이 챙겼으니까.’
레미엘을 상대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해진 류민이었다.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다.
‘6위라고 해서 만만하게 봐선 안 된다.’
일단 놈의 실력을 모르는 만큼 간을 볼 필요가 있었다.
‘그 뒤에는 가차 없이 죽여주마.’
인간과 천사의 서슬 퍼런 살기가 허공에서 맞닿았다.
* * *
‘곱게 잡히진 않겠다 이건가?’
사리엘은 주제도 모르는 건방진 인간을 보며 실소를 머금었다.
‘하긴 순순히 잡혀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다.’
무려 대천사를 죽인 녀석이 협박한다고 눈이나 깜빡하겠는가?
‘힘의 차이를 깨닫게 해줘야겠군.’
상처 없이 데려오라는 명령이 있던 만큼 살초를 쓸 생각은 없었다.
어느 정도 사정을 봐줄 생각이었다.
악마의 펜던트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내 앞에서 감히 저 목걸이를 착용하다니…….’
지금도 그렇지만 천사들은 악마들과 기나긴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자신을 포함한 현존하는 대천사들도 당연히 참전했었다.
그렇기에 악마가 자랑스럽게 차고 다니는 목걸이를 못 알아볼 수가 없었다.
‘우리 천사들에겐 수치의 상징이나 다름없는 저 목걸이를 보란 듯이 차고 있다니……!’
그래서인지 형용할 수 없는 분노가 전신을 꽉 채웠다.
‘건방진 인간. 죽고 싶을 정도로 고통스럽게 만들어주마.’
악감정 없이 최대한 냉정하게 처리하려 했건만 저 펜던트를 본 이상 어쩔 수 없다.
양팔쯤은 잘라 버리고 데려가도 문제는 없으리라.
‘그런데 참 기괴하군. 저 모습은.’
전신이 어둠으로 뒤덮인 데다 낫까지 들고 있으니 흡사 죽음의 신처럼 보였다.
‘그래봤자 인간. 아무리 신을 흉내 낸다 해도 벌레는 벌레지.’
사리엘도 안다.
죽음의 대천사라 불리는 자신의 격과 녀석의 격은 견줄 바가 안 된다는 걸.
절대로 사신이란 클래스가 가지는 어둠이 자신의 어둠을 이길 수는 없다는 것을.
그렇기에 사리엘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와라. 인간. 자비를 베풀어 첫수는 양보해 주지.]검은 낫은 알겠다는 대답도 없이 달려와 낫을 휘둘렀다.
꽤나 빠른 움직임에 놀랐지만 그것뿐이었다.
‘낫의 움직임을 보니 횡으로 그어서 허리를 노릴 셈인가? 뻔하군.’
갈고리 무기의 특성상 허리를 노리면 뒤로 피하기 어렵다.
점프하거나 막는 수밖에 없었지만 사리엘은 놈의 생각대로 해줄 마음이 없었다.
‘피해 주지. 앞으로.’
오히려 앞으로 튀어 나감으로써 허리를 노린 횡베기를 피함과 동시에 적의 심장에 가까워졌다.
이대로 곡도를 가슴팍에 찔러주면 검은 낫은 즉사하리라.
‘그리 쉽게 끝낼 순 없지.’
가슴팍을 노리던 곡도를 번개처럼 올려 쳐 팔을 베어버렸다.
툭-!
그 모습을 봤는지 상대의 어깨너머에서 비명이 들렸다.
“거, 검은 낫님!”
벌레 같은 인간들이 구경이라도 난 듯 쳐다보고 있다.
[하찮구나. 이따위 실력으로 그리 자신만만하게 덤볐…….]순간 사리엘은 위기감을 느꼈다.
상대의 팔 한쪽도 잘라서 위기라 할만한 상황은 없었지만 분명하게 느꼈다.
등 뒤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감각에 본능적으로 몸을 틀었다.
그러나 반응이 느렸는지 날개 다섯 장이 금빛의 피를 뿌리며 잘리고 말았다.
[크윽!]“감각 좋네. 전부 자르려고 했는데.”
대답할 새는 없었다.
갑작스러운 검은 낫의 기습에 놀라기 바빴으니까.
“대천사도 분신은 간파하지 못하는 모양이네.”
‘분신?’
황급히 시선을 돌려보니 팔이 잘렸던 검은 낫은 어느새 사라지고 없었다.
눈앞에는 오직 멀쩡한 검은 낫만 있을 뿐.
“어느 정도 실력은 간파했어. 이게 6위의 수준이구나?”
[뭐?]사리엘이 눈에 띄게 놀랐다.
6위라는 말은 내뱉은 적도 없건만 녀석은 자신이 누군지 아는 눈치였다.
[어떻게…….]카앙-!
물어볼 새도 없이 공격이 들어와 곡도로 막았다.
카앙- 카앙-!
‘뭐, 뭐냐? 이 힘은?’
이상했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줄곧 어둠의 힘을 끌어다 쓰고 있는 자신이다.
인간들이 마나라는 걸 힘의 원천으로 삼는 것처럼, 죽음의 대천사인 자신도 어둠을 근원으로 한다.
‘그런데 어째서? 내가 힘에서 밀리는 거지?’
본디 상위 어둠은 하위 어둠의 충격에 저항하는 성질이 있다.
녀석의 스탯이 아무리 높아도 밀릴 걱정은 없건만 어째서 반대의 상황이 나오는 걸까?
카앙- 캉- 카앙-
연속해서 칼을 부딪쳐봤지만, 의문은 해소되지 않았다.
오히려 단계를 높이듯 점점 늘어나는 힘과 속도에 사리엘이 당황했다.
급기야 이마엔 식은땀이 맺혔고 막기에도 버거울 정도로 방어에만 급급했다.
“역시나. 힘과 스피드는 고작 이 정도였군.”
[뭐라? 크윽!]별안간 느껴지는 날개의 통증에 고개를 돌려보니 모든 날개가 떨어져 있었다.
‘언제?’
언제 베었는지 보지도 못했을 정도로 녀석의 속도는 상상을 초월했다.
‘위험하다. 위험해.’
위기감을 제대로 느낀 사리엘은 최후에 쓰려고 남겨뒀던 능력을 써야 했다.
끼이이이이이이이-
곡도가 바르르 진동하며 기괴한 울음소리를 내었다.
악마처럼 보일까 봐 스스로 사용을 금지했던 기술, [영혼의 울음]이다.
“아, 아아…….”
“아아아…….”
멀리서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두려움에 몸을 떤다.
그 정도로 영혼의 울음의 범위는 넓었다.
‘끝났다.’
모든 생명체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귀머거리가 아니었으니 검은 낫도 이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을 터.
‘영혼의 울음은 듣는 생명체의 사지를 마비시키고 공포심을 떠올린다. 시전자인 날 제외하면 누구도 예외는 없다.’
시전한 순간 사형선고를 내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움직이지 못하는 상대를 베어버리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으니.
[놀이는 여기까지다. 팔 두 짝만 가져가 주마.]움직임이 없는 검은 낫을 보며 사리엘이 여유롭게 걸어갔다.
당연하게도 공포에 걸렸다고 생각했지만 어디까지나 착각이었다.
“놀이? 그동안 놀아준 거였어?”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듯 움직이는 모습에 사리엘의 걸음이 뚝 멈췄다.
“나야말로 실력 파악 좀 하겠다고 놀아준 거였는데.”
어째서 영혼의 울음이 통하지 않는 걸까?
생각할 시간은 없었다.
도망쳐야 한다는 생각이 머리를 지배했으니까.
키이이이잉-
상대가 갑자기 낫을 뒤로 빼며 자세를 잡고 뭔가를 준비했다.
‘저, 저건 피해야 한다.’
본능적으로 날아오르려던 사리엘이 제동이 걸린 듯 움찔거렸다.
‘아, 날개!’
날개가 없어서 공중으로 피하기는 무리다.
그럼 어떻게 피할까? 라고 생각했을 땐 이미 늦어버렸다.
섬광이 지척까지 다가왔으니까.
콰콰콰콰콰콰쾅-!
월광섬 한 방에 동굴이 초토화가 되었다.
* * *
‘이, 이게 무슨 일이야?’
물러나 있으라는 말에 파티원들과 멀찌감치 피신해 있던 존은 갑작스러운 천사의 등장이 당황스러웠다.
‘보상을 주러 나타났나 싶더니만 갑자기 검은 낫에게 칼을 겨누고 있잖아?’
하긴 안내역이라고 보기엔 천사의 날개가 너무도 웅장하고 분위기도 싸늘했다.
게다가 무기를 든 천사도 처음 봤다.
‘왜 갑자기 검은 낫과 싸우려는 거지?’
다짜고짜 나타나서 죽이느니 마느니 하는 걸 보면 안 좋은 이유라는 건 알겠다.
그 이후는 파티원들과 몸을 피하느라 대화를 들을 정신이 없었지만.
“검은 낫님은 괜찮으실까요? 분위기가 안 좋던데…….”
“괜찮을 겁니다. 아무리 상대가 천사라도 검은 낫님이 당할 분입니까?”
“천사는 마음만 먹으면 머리를 터트릴 수 있잖아요.”
“어, 다시 생각해 보니 위험하겠네요.”
걱정하는 민주주의와 제피, 똥 멍청이들이었지만 존의 생각은 달랐다.
‘잘 왔다, 천사야. 검은 낫을 죽여줘. 제발. 화이팅!’
오히려 천사를 응원하며 검은 낫이 이참에 죽기를 바랐다.
그리고 그 응원은 현실이 될 모양인지 시작부터 팔을 잘라버리는 천사였다.
‘나이스! 천…….’
속으로 쾌재를 불렀지만, 그것도 잠시.
멀쩡한 검은 낫을 보자 존은 자신의 눈을 의심해야 했다.
‘어, 어떻게 된 거야? 검은 낫이 둘?’
분신이라는 걸 깨닫고 난 뒤 상황은 반대로 흘러갔다.
날개가 잘린 천사가 검은 낫과 여러 차례 공방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누가 봐도 천사 쪽이 밀리고 있었다.
급기야 나중에는 날개도 모두 잃는 상황에 이르렀다.
‘망했어.’
절망하는 그때, 끼이이이이- 이상한 소음이 들렸다.
“아, 아아…….”
“아아아…….”
자신은 물론 파티원들까지 몸이 마비되고 공포에 덜덜 입술을 떨었다.
그러기도 잠시.
콰콰콰콰콰콰쾅-!
동굴이 무너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의 폭음과 함께 상태 이상이 풀렸다.
자욱한 먼지가 가라앉은 끝에는 반파된 동굴 벽면과 상·하체가 나뉜 천사만이 있을 뿐이었다.
‘끝났네…….’
존의 얼굴이 실망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천사라도 허리가 잘렸는데 살아날 가능성은 없지 않겠는가?
‘어? 잠깐만.’
그때 존의 머릿속에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스쳐 지나갔다.
‘설마…… 가능하려나?’
사령술사인 자신의 특기는 시체를 일으켜 세우는 일이다.
그리고 지금, 눈앞에 천사의 시체가 곧 생길 예정이고.
‘저 천사를 소환수로 부릴 수 있다면……?’
검은 낫에게 대항할 수단이 되진 않을까?
기가 막힌 생각이었지만 존은 몰랐다.
류민이 마침 그 생각을 읽고 있을 줄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