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209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209화
209. 주차장
류민은 해외에 나온 김에 러셀을 만나기로 했다.
직접 만나서 할 이야기도 있었고 경제적으로 어떤 상황인지도 궁금했다.
“미스터 류! 오랜만입니다!”
뉴욕 JFK 국제공항에서 러셀이 반갑게 손을 흔들며 다가온다.
류민도 웃으며 다가가 악수했다.
“오는 데 오래 걸리셨죠?”
“에이, 아니에요. 영화 좀 보다가 한숨 자니까 금방이던데요.”
영국에서 미국까지는 7시간이 걸린다.
꽤 긴 거리였기에 류민이 찾아갈 생각이었지만 러셀이 한사코 말리더니 이렇게 직접 찾아왔다.
“시장하시죠? 런치 먹으면서 얘기 좀 나눌까요?”
“오우, 제가 배고픈 건 또 어떻게 아시고. 그럽시다!”
공항에 있는 스테이크 하우스에 데려간 류민이 이것저것 메뉴를 시켰다.
“배고프신 것 같은데 다 드실 수 있죠?”
“오, 그럼요. 쇠질을 하려면 이 정도는 먹어줘야죠.”
“혹시라도 돈 걱정은 마세요. 제가 다 살 테니.”
“에이! 무슨 소리! 당연히 제가 사야죠. 공짜 예언도 듣는 마당에 얻어먹을 순 없죠. 저 돈 많습니다?”
돈 얘기가 나오자 전에 했던 조언이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주식은 팔았습니까?”
“아이고, 그럼요. 듣자마자 팔았는걸요. 덕분에 돈 좀 만졌습니다. 제 생전 그렇게 큰돈이 통장에 들어오긴 처음이에요.”
“얼마나 챙겼는데요?”
“4만 파운드요.”
러셀이 마경록의 회사에 투자한 돈은 14,000 파운드.
지금은 3배 가까이 뛰어서 4만 파운드란 거금이 되었다.
한화로는 6,500만 원.
이제는 재룟값에 허덕이는 일 없이 몇 년간 대장질을 할 수 있게 됐다.
“많이 챙기셨네요.”
“자금도 없던 제가 이렇게 큰돈을 만져보다니…… 이게 다 예언자님 덕분입니다. 그래서 말인데 계좌를…….”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류민은 고개를 저었다.
무슨 말을 할지 안다는 듯.
“그 돈은 러셀이 전부 쓰세요.”
“예? 하지만 초기 자금을 대주신 건 예언자님 아닙니까? 돈을 빌렸으니 당연히 갚아야…….”
“처음 만났을 때 제가 한 말 기억하십니까?”
곰곰이 생각해 보던 러셀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시는 거라고 하셨죠.”
“예. 저는 러셀 당신에게 투자금을 예치해둔 상태입니다. 대장장이의 정점에 올라설 때까진 굳이 인출할 생각이 없어요. 제가 돈이 필요한 사람도 아니고요.”
“…….”
“돈은 필요한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게 맞죠. 그러니 러셀이 쓰도록 하세요. 빌린 돈이라서 쓰기 부담스러우면 원금만 남겨두도록 하세요. 나머지는 마음껏 쓰시고요. 어떻게 보면 러셀이 직접 투자해서 번 돈이니까요.”
따지고 보면 초기 자금도, 투자 정보를 준 것도 전부 류민이었기에 러셀의 돈이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투자라는 명목으로 가지고 있길 원하니 러셀로선 그저 감사한 마음으로 받을 따름이다.
“예언자님의 뜻은 잘 알겠습니다. 염치없지만 이 돈은 제 생활비로 유용하게 쓰겠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그 정도 돈으로 감사는요, 뭘. 그보다 러셀에게 중요한 이야기가 있는데…….”
“아, 그것 때문에 여기 온 거였죠? 말씀하세요.”
들을 준비가 됐다는 듯 귀를 기울이자 류민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검은 낫이라는 닉네임에 대해 들어보셨죠?”
“검은 낫? 물론이죠!”
러셀도 역시 랭킹 1위를 모르지 않았다.
“다음 13라운드에서 검은 낫이 러셀을 찾아올 겁니다.”
“예? 거, 검은 낫이요?”
랭킹 1위가 찾아온다는 것도 놀랍지만 일면식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찾아온다는 걸까?
“저를 어떻게 알고?”
“모르죠. 하지만 곧 알게 될 겁니다. 제가 검은 낫에게 러셀을 만나라고 이야기할 거니까요.”
“네?”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분명했다.
“서, 설마 검은 낫이랑 현실에서도 알고 지내는 사이세요?”
“예. 어쩌다 보니 인연을 맺게 됐습니다.”
벙찐 얼굴을 하던 러셀이 이내 납득했는지 고개를 주억였다.
미래를 볼 수 있는 예언자라면 검은 낫의 본모습도 알고 있을 터.
둘이 알고 지내는 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 무서운 검은 낫을 지인으로 두고 계시다니…… 하하, 예언자님도 보통 강심장이 아니십니다?”
“검은 낫이 무서워요?”
“그럼요. 다른 사람들은 이제 막 트랙 한 바퀴를 돌았는데 그 사람만 혼자서 열 바퀴를 돌고 있지 않습니까? 랭킹 1위도 밥 먹듯이 해내고 있고요. 여러 의미로 무서운 사람이죠.”
하긴 다른 사람 입장에선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근데 검은 낫과 만나서 뭘 하라는……?”
“13라운드에 러셀이 성장하려면 검은 낫의 도움이 필요하거든요. 자세히 말하면…….”
류민은 13라운드 공략법과 더불어 러셀이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해 줬다.
“아, 그래서 검은 낫과…… 이해했습니다.”
“나중에 검은 낫에게도 말을 해놓겠습니다. 러셀을 찾아가서 도와주라고.”
“검은 낫이 흔쾌히 절 도와주겠다고 할까요?”
“아마 제 부탁이니 도와주긴 할 겁니다. 근데 혹시 모르니 만나면 러셀의 가치를 증명해 보이세요.”
“제 가치를?”
“대장장이 클래스의 버프들을 걸어준다면 분명 도와줘야 할 필요성을 느낄 겁니다.”
“아아, 알겠습니다.”
끄덕이는 러셀을 뒤로하고 류민이 남몰래 미소 지었다.
‘이걸로 러셀과 검은 낫의 관계를 만들어뒀다.’
중매를 자처함으로써 검은 낫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었다.
‘대장장이는 버퍼처럼 서포팅에 특화된 클래스. 20라운드까지 함께한다면 큰 쓸모가 있을 거다.’
류민이 웃는 사이, 핸드폰이 울렸다.
발신자가 주성탁이다.
‘시작됐나 보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아유, 편하게 통화하고 오세요.”
러셀에게 양해를 구한 뒤 한쪽으로 가 전화를 받았다.
“무슨 일이지?”
-마경록이 방금 인적이 드문 창고에 도착했습니다. 뭔가를 기다리는지 밖에서 담배를 피우며 서성이고 있습니다.
“제물을 기다리나 보군. 거기 위치는?”
-경기도 광주의 봉배산입니다.
위치를 들으니 맞다.
마경록이 애용하는 작업장이다.
“수고했다. 정확한 위치를 핸드폰으로 보내라. 그리고 계속 지켜보다가 때가 되면 제프리와 합류해서 지시대로 움직이도록.”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통화를 끊고 곧장 제프리에게 연락을 넣었다.
“제프리. 크리스틴은?”
-조금 전에 한국에 도착했습니다.
“잘됐군. 내가 보내는 장소로 유인하도록.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는 기억하겠지?”
-물론입니다.
“그럼 끊자마자 시행해.”
-명을 받들겠습니다.
이후 제프리에게 위치 문자를 보낸 류민은 서아린에게도 전화를 넣었다.
다름 아닌 검은 낫의 목소리로.
* * *
마경상과 마경수는 원래 그리 친한 사이가 아니었다.
엄한 아버지 밑에서 경영 수업을 받으며 자란 그들은 서로를 경쟁자로 생각했다.
평범한 형제처럼 티격태격은 했지만 어디까지나 후계자 경쟁 때문이었다.
오직 돈만이 세상을 좌우한다는 걸 깨달은 그들에게 형제는 치워야 할 장애물일 뿐이었다.
하지만 서로를 경계하고 반목하는 것도 작년까지만이었다.
장남인 마경록의 회사가 점점 성장하기 시작하면서 둘은 불안해졌다.
이윽고 아버지의 조건을 달성할 것처럼 보이자 둘은 서로의 손을 잡았다.
공동의 적을 처리하기 위한 일시적인 동맹이었다.
“경상이 형. 작전은 생각해 봤어?”
“어, 생각해 봤는데 경수, 네가 말한 작전대로 하는 게 낫겠다.”
“그치? 내가 말한 게 가장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성도 크겠지?”
“그런 거 같더라.”
막내인 마경수가 제시한 작전은 실로 간단했다.
마경록이 회사에서 돌아오는 길에 복면을 쓰고 납치해 결투 신청을 제안한다.
이때 결투 신청의 조건은 자신들이 유리하도록 짜놓는다.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게끔.
불리한 조건이니 당연히 거절하겠지만 마경록으로선 들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장 죽여 버린다고 협박하면 자기가 어쩌겠는가?
눈물을 머금고 수락할 수밖에.
“형. 내가 말한 대로만 하면 깔끔하게 경록이 형을 보내버릴 수 있어. 결투에서 이기는 사람이 후계자 자리에서 물러나기니까. 보나 마나 우리가 이길 가능성이 크겠지만.”
“그럼 결투만 수락하면 다 끝나는 거네?”
“그렇지. 우리 승리나 다름없지. 게다가 어디 가서 발설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추가하면 후계자 구도에서 경록이 형을 완벽히 제외할 수 있어.”
“그때 되면 우리끼리 선의의 경쟁을 하고 말이지?”
“그렇지. 그때까지는 절대로 서로 뒤통수치면 안 돼. 알았어, 형?”
“야! 내가 그럴 놈처럼 보이냐? 너나 뒤통수치지 마.”
“알지, 알아. 그냥 노파심에 하는 말이니까 마음에 두지 마.”
말은 마음에 두지 말라며 달래는 마경수였지만 속으론 비웃음을 머금고 있었다.
‘마경록만 처리하고 나면 그다음은 너야 이 새끼야.’
마경록이라는 적을 처리하기 위해 힘을 합쳤을 뿐, 후계자 자리는 삼남인 자신이 차지할 것이다.
그 어떤 비열한 수를 쓰더라도 말이다.
“근데 경록이 형이 반항하면 어쩔 거야? 정말로 형제끼리 칼부림이라도 해야 하나?”
‘한심한 새끼. 차남이라는 놈이 머릿속이 아주 꽃밭이네! 그냥.’
질문을 듣고 한심하게 생각하던 마경수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마경상은 이용하기 좋은 둘째 형이었기에.
“해야지. 되도록 죽이지 않는 게 좋겠지만 만약 제압이 힘들 정도로 반항할 경우에는…….”
마경수의 눈빛에 살기가 맴돌았다.
“죽여야지. 아무리 맏형이라도.”
“야, 그건 너무 간 거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죽이는 건…….”
“그럼 납치는 말이 되고?”
“살인보다는 낫지 않겠어?”
“형. 그 정도 각오도 없이 오성 그룹을 이어받을 수 있을 것 같아? 아니면 나중에 내빼려고 밑밥 까는 거야? 이미 발 담가놓고서?”
“아, 아니야. 그런 거. 그냥 죽이는 것 말고 더 좋은 방법은 없나 해서…….”
“그래서 살 기회를 주잖아. 결투 신청해서 수락하면 경록이 형도 목숨은 건질 수 있다고.”
“그런데 말이야. 우리 둘이서 경록이 형을 이길 수 있을까?”
“왜 못 이겨? 우리 다 비슷한 레벨 아니야? 설마 쪽수가 많은 우리가 지겠어?”
“그래도. 그 느낌이란 게 있잖아. 넌 못 느꼈냐?”
“뭘?”
“경록이 형 말이야. 가끔 눈빛이 소름 끼칠 때가 있어. 그럴 때 보면 연쇄살인마 저리 가라 싶더라니까?”
“무슨 소리야, 형. 경록이 형이 뭐가 무섭다고. 설마 쫄아가지고 계속 밑밥 까는 거야?”
“아, 아니, 쫄긴 누가 쫄아. 그냥 그럴 때가 있었다는 거지.”
“쫄 거 없어, 형. 마경록이 검은 낫도 아니고, 우리 둘이 그 새끼 하나 제압 못 하겠어?”
“그, 그렇겠지?”
자신만만해하는 마경수와 달리 마경상은 조금 걱정스러운 눈치였다.
‘어휴, 병신 같은 둘째 형. 이딴 걸로 쫄고 지랄이야. 역시 후계자감은 나밖에 없어.’
그리 생각하던 마경수는 이내 마경상의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형. 자세한 회의는 내일 하는 거로 할까?”
“응. 아직 시간은 많으니까. 내일 몇 시에 하는지나 문자로 알려줘.”
끄덕이던 마경수가 차에 올라타자 마경상이 손을 흔들었다.
“조심히 가라.”
“알았어, 형. 어? 이런 X발.”
포르쉐의 시동을 걸던 마경수는 경고등이 뜬 걸 보고는 차에서 내렸다.
“왜 그래?”
“타이어가 펑크 났나 봐.”
“갑자기?”
“몰라. 아, 여기네. 여기 구멍 났네, X발.”
“그러게, 운전 좀 살살 하라니까. 너 또 동호회 사람들이랑 레이스한다고 새벽마다 기어나가냐?”
“에이 참, 그거 끊은 지가 언젠데.”
“그럼 멀쩡한 바퀴가 왜 펑크가 났어?”
“그러게.”
“누가 고의로 쑤신 거 아니야?”
“그런 가봐. X팔, 어떤 거지새끼가…….”
한숨을 쉬던 마경수가 형을 쳐다봤다.
“어쩔 수 없이 형 차라도 빌려야겠는데?”
“아, 귀찮은데……. 알았어, 기다려 봐. 차 키 가져올 테니까.”
마경상이 아파트로 올라간 사이, 마경수는 담배를 피우며 기다렸다.
칙칙-
“에이 씨. 왜 이렇게 안 붙…….”
순간 기척 감지에 누군가 걸리자 마경수가 고개를 들었다.
“형, 벌써 왔…….”
빠악-!
방패에 얻어맞은 마경수가 기절하고, 3분 뒤 마경상이 나타났다.
“경수야. 어디 있냐? 차 키 가져왔다. 잉?”
두리번거리던 마경상은 동생이 있던 자리에서 담배와 지포 라이터를 발견했다.
“뭐야? 이건 경수 거…….”
물건을 집은 순간 뒤에서 누군가 빠르게 다가오는 게 기척 감지로 느껴졌다.
동생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을 땐 마찬가지로 방패가 안면을 세게 강타해버렸다.
털썩-
형제들을 기절시킨 안상철이 승합차에 옮기곤 전화를 들었다.
“준비됐습니다, 대표님. 예. 지금 데려가겠습니다.”
이윽고 안상철이 탄 승합차가 빠르게 주차장을 벗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