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215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215화
215. 영웅의 룬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
플세바 카페에는 파격적이라 할만한 글이 올라왔다.
└내용 : 안녕하세요. 사신교 교주 노폐인노게이라고 합니다.
먼저 12라운드까지 생존하신 플세바 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존경을 표합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름 아니라 저희 사신교에서 역전의 용사이신 여러분들을 모집하고자 하는데요.
사신교는 전 구역 랭킹 1위이신 검은 낫님을 모시는 단체로, 검은 낫님을 사랑하고 동경하는 이라면 국적 불문하고 누구나 가입할 수 있습니다.
단, 가입자는 오직 플레이어여야 하고요, 신분증 지참 필수입니다(가입할 때 간단한 신상정보를 적습니다).
대신 다른 종교와 달리 가입비나 헌금은 일절 받지 않습니다(중요)!
게다가 이번에 서울 쪽으로 새롭게 교단을 이주한 기념으로 작은 이벤트를 열까 하는데요.
12월 25일 오전 10시, 저희 교단에 가입하신 분께는 1만 포인트를 지급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것도 검은 낫님이 직접! 나서서 포인트를 거래해 드리오니, 이참에 가입도 하고 포인트도 받고 현실에서 검은 낫님도 만나는, 일석삼조의 기회를 꼭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참고로 기존 가입자분들도 오시면 즉석에서 지급해 드리오니, 빠짐없이 참석해 주십시오!
아래는 바쁘신 분들을 위한 3줄 요약입니다.
◆이벤트 기간: 2022년 12월 25일 오전 10시
◆이벤트 내용: 사신교 가입 즉시, 검은 낫님께서 직접 1만 포인트 증정(신분증 지참 필수)
◆오시는 길 : 서울특별시 강남구 신사동 625번지 사신교
포인트는 스페셜 상점을 이용할 수 있는 화폐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벌지 못한다고 천사가 직접 공표했기에 골드보다 귀중하게 여겨진다.
그런 포인트를 가입만 하면 준다고?
그것도 1만 포인트나?
제목 어그로에 끌린 사람들은 댓글을 달 수밖에 없었다.
└진짜로 가입만 하면 1만 포인트 주나요?
└물론입니다^^
└그 유명한 검은 낫님이 직접 오신다고요?
└네! 이번 기회에 실물을 영접해 보세요!
└이벤트를 왜 하필 크리스마스 날로 잡으신 거죠? 연인들 파투 나는 거 보고 싶어서인가요?
└그런 의도는 없습니다. 부활절에 이벤트 하면 의미 있을 것 같아서 정한 날짜입니다. 정말입니다.
└그…… 먹튀 하면 안 되겠죠?
└한 번 해보세요. 어떻게 되나 보게 ㅋㅋ
└현실 이름이랑 얼굴 다 팔리는데 먹튀를 어떻게 함 ㅋㅋㅋ
└먹튀 하면 아마 검은 낫님이 추적하기로 직접 목을 가지러 갈 듯…….
5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지만, 허태석은 기쁜 마음으로 일일이 답변해 주었다.
홍보 글은 많이 올려봤지만 이렇게 많은 관심은 여태껏 처음이었다.
불과 이틀밖에 안 지났는데 조회 수가 120을 넘긴 것이다.
‘현재 플세바 회원 수가 130명이니 거의 다 읽은 거나 마찬가지잖아?’
이전에 올린 글의 조회 수가 20이었다는 걸 생각하면 이례적인 기록이었다.
‘과연 전부 올 수 있을까?’
그렇게 고대하던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었다.
류민과 허태석이 새로 마련한 교단 앞마당에서 신도들을 기다렸다.
입지가 좋은 곳이었기에 일반인들이 종종 지나가며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나 남았지?”
“현재 9시니까 1시간 남았습니다.”
“아직 멀었으니 여유 있게 기다리면 되겠군.”
하지만 플레이어들은 생각보다 더 이른 시간에 나타났다.
“안녕하세요, 여기가 사신교 맞습니까……?”
“맞습니다! 제대로 찾아오셨습니다. 저는 교주 노폐인노게이라고 합니다.”
“그, 그렇다면 이분이……?”
남자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흰색 가면에 범상치 않은 장비와 대형 낫을 든 류민이다.
딱 봐도 누구인지 유추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내가 검은 낫이다.”
“바, 반갑습니다. 영광입니다.”
가볍게 악수하면서 류민은 상대의 속마음을 헤집어봤다.
선인인지 악인인지를 구분하기 위해서였다.
‘나쁜 의도로 가입하려는 건 아니군.’
검은 낫에 대한 동경심에 찾아온 순수한 플세바 회원이었다.
‘하긴 플세바 회원이라면 대부분 인성에 문제없는 사람들이니.’
어차피 인성 면접에 통과한 그들이었기에 모난 구석은 찾아볼 수 없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추기경 엄준석입니다. 여기 순번이랑 가입서를 드릴 테니 읽으면서 대기해 주십시오. 약속 시간이 되면 순번대로 가입을 도와드리겠습니다.”
즉시 가입을 받지 않은 이유는 약속 시간이 안 됐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가입 후 도망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럴 순 없지. 최대한 사람들을 모아야 하니까.’
100명은 넘었으면 하는 바람이었지만 그 바람은 생각보다 빨리 이뤄졌다.
“와, 여기가 사신교야?”
“대박! 기대 안 했는데 엄청나게 크다!”
어느 순간 웅성거리며 사람들이 물밀듯 들어오기 시작했다.
약속 시간이 다가올수록 사람들은 늘어났다.
‘100명 정도는 우스운 목표였군.’
아직 10시가 되려면 20분이나 남았는데 목표치를 채우고 말았다.
‘이대로면 130명도 가능할지 모르겠어.’
회장을 제외한 플세바 회원 전원이 온다면 가능한 수치다.
“시간이 됐으니 차례로 가입을 도와드리겠습니다. 1번부터 이쪽으로…….”
가입 방법은 간단했다.
의자에 앉아 즉석에서 얼굴 사진을 찍은 뒤, 가입서에 이름, 생년월일, 전화번호, 주소를 적는다.
그리고 천재지변이 있지 않은 한, 한 달에 1번은 사신교 예배에 참석하겠다는 각서에 사인한다.
가입만 하고 활동하지 않을 것을 대비한 조치였다.
이후 류민과 대면해 거래 기능을 사용, 직접 포인트를 받는다.
“오오, 정말로 1만 포인트가…… 감사합니다. 검은 낫님.”
“사신교가 된 것을 축하한다. 포인트는 잘 쓰도록.”
“이제 집에 가도 되나요?”
“되지만 가능하면 연설을 듣고 갈 것을 추천하지. 놓치면 후회할만한 정보를 제공할 예정이니까.”
긴 대화를 나눌 새는 없었다.
뒤에서 줄줄이 다음 순번이 대기하고 있었으니까.
찰칵-
“됐습니다. 다음 38번 신도님?”
사진을 찍고 신상을 적고 각서를 쓰는 일련의 과정을 거친 뒤, 마지막으로 검은 낫과 대면해 거래한다.
간단한 일이었지만 사람이 많다 보니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 와중에 아는 얼굴을 만나기도 했다.
“검은 낫님?”
“민주주의?”
민주리가 온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다.
사신교에 같이 가자고 성화였기에.
하지만 예언자와 검은 낫이 동시에 존재할 순 없는 법이었기에 따로 간다고 둘러댔었다.
“현실에서 만나는 건 처음인데 바로 알아보시네요?”
“얼굴이 비슷하니까. 그리고 교주에게 이미 가입했다고 듣기도 했고.”
“헤헤, 이제 제 신상도 다 알려졌네요. 책임지세요. 검은 낫님.”
“책임지지.”
농담처럼 한 말에 진지하게 답하자 민주리의 얼굴이 순간 벌게졌다.
“어, 아…….”
잠시 할 말을 찾지 못할 정도로 당황했지만 류민은 태연했다.
“더 할 말은 없나? 없으면 나중에 대화하지. 다음 사람이 기다리고 있으니.”
“그, 그래요. 이따가 봬요!”
기회라는 듯 헐레벌떡 자리를 피한 민주리를 보며 피식 웃은 류민이 다음 사람을 받았다.
순번이 50번째가 넘어갔을 때 아는 얼굴이 또 나타났다.
류민은 이번에도 모른 체해야 했다.
“서아린? 너도 사신교에 있었나?”
“무슨 섭섭한 말씀을. CPF 홍보 대사인 제가 사신교에 빠질 수야 없죠.”
싱긋 웃던 서아린은 류민에게서 1만 포인트를 받은 뒤 꾸벅 인사했다.
“포인트 감사해요. 잘 쓸게요. 아, 그리고…….”
서아린이 주변을 의식하더니 류민의 귓가에 대며 속삭였다.
“저번 일은 정말 감사드려요.”
“저번 일?”
“마 대표가 죽은 일 말이에요. 저희가 곤란하지 않도록 힘 써주셨잖아요.”
“그거야 사실대로 했을 뿐이다. 실제로 너희가 잘못한 일은 아니지 않나.”
“그래도 고마워요.”
원래대로라면 경찰에 붙들려 이런저런 조사를 받고 있어야 했지만 류민이 힘을 쓴 덕에 귀찮은 일은 면할 수 있었다.
“아, 다음 사람이 기다리네요. 그럼 이따가 만나요.”
대화를 많이 못 한 게 아쉽다는 표정으로 서아린이 떠나자, 다음 사람이 다가왔다.
‘이거 쉴 틈이 없군.’
스탯이 없었다면 중노동이나 다름없을 정도로 고된 작업이었다.
그러다 잠깐 짬이 난 김에 시간과 대기 순번을 확인해 봤다.
‘10시 30분이 다 되어가는데 벌써 130명이 모이다니.’
100명이란 기본 목표는 이미 달성했고, 기대했던 130명까지도 넘겼다.
그런데도 입구를 보니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오고 있었다.
‘비회원들도 어찌어찌 알고서 찾아오는군.’
플세바에 글을 올렸다고 플세바 회원들만 찾아오진 않았다.
외부로 글을 퍼 나르고 기사화까지 돼서인지 비회원들도 이렇듯 찾아왔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 때가 됐어.’
계획대로 영웅의 룬을 얻기에 좋은 조건이 되었다.
‘슬슬 시작해 볼까?’
때마침 교단으로 우르르 들어오는 인원들이 보인다.
‘또 온다고?’
누군가 봤더니 눈에 익은 무리였다.
‘조용호?’
용병왕과 휘하의 용병들이 사신교를 찾았다.
‘이거 잘하면 전국의 모든 플레이어를 모을 수 있겠는데?’
놀라는 건 이쯤하고 계획을 실행해야겠다.
류민이 허태석을 쳐다봤다.
마침 눈이 마주친 허태석을 보며 가면을 고쳐 썼다.
검은 씨앗을 발동시키라는 신호였다.
작게 끄덕거린 허태석이 씨앗을 심어놓은 장소를 바라봤다.
하필이면 백 명 이상의 사람들이 밀집된 마당이었다.
‘지금 씨앗을 발아시키면…….’
상급 악마가 소환되고 사람들은 놀랄 것이다.
물론 악마라곤 해도 허태석의 소환수였기에 공격할 일은 없지만.
‘잘은 모르지만 검은 낫님에게 무슨 생각이 있겠지.’
신의 명령이었기에 고민할 것도 없이 스킬을 사용했다.
‘발아.’
순간 플레이어들이 밀집되어 있던 흙바닥에서 줄기 하나가 불쑥 솟아올랐다.
“으악, 뭐, 뭐야?”
“이거 뭔데!?”
전봇대처럼 솟아오른 악마의 줄기에서 잎사귀가 갈퀴 같은 입을 벌렸다.
쩌억-
침이 뚝뚝 떨어지는 잎사귀 아래로 떨어진 랜덤한 악마가 지면을 밟았다.
“키힉, 키힉, 키힉.”
신장 2m에 고블린의 생김새를 닮은 붉은 피부의 악마, 데블린이었다.
“드디어, 키힉. 인간 세상에 키힉. 나타났 키힉.”
더듬거리며 말하던 녀석의 말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악마어를 할 수도 없거니와 갑작스러운 이 상황이 매우 당혹스러울 따름이었으니까.
하지만 당황한 건 플레이어들만이 아니었다.
“인간들이, 키힉. 이렇게 많이 키힉. 모여있다니 키힉, 당황스럽 켁!”
순간 핑그르르 솟아오른 데피즈의 머리가 툭 바닥으로 떨어졌다.
류민의 낫이 지체 없이 악마의 목을 잘라버렸다.
소환된 지 5초 만에 벌어진 허망한 죽음이었다.
“신성한 장소에 악마를 소환하다니. 제정신인가?”
서릿발 같은 목소리로 말한 류민이 좌중을 향해 경고를 내뱉었다.
“누군지 몰라도 이곳에서 스킬은 사용하지 말도록.”
웅성거리긴 했지만, 상황은 일단락됐다.
어느 멋모르는 소환사가 악마를 소환했고 류민이 일찍 처리한 것으로.
물론 소환사인 허태석은 매우 당황하고 있었다.
예고하지 않은 일이었으니까.
“검은 낫님. 방금은…….”
“수고했다.”
자기가 소환하라 시켜놓고 뻔뻔하게 악마를 죽이는 모습에 조금 당황했지만, 허태석은 그러려니 했다.
뭔가 이유가 있으니까 그랬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이유야 있지. 아주 분명한 이유가.’
자기 자리로 다시 돌아온 류민은 웃으며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를 바라봤다.
[최초로 상급 악마 종을 처치하여 위기에 처한 100명을 구해냈습니다.] [발동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히든 룬인 ‘영웅의 룬’이 지급됩니다!] [획득한 룬이 플레이어의 신체에 자동으로 각인됩니다!]‘드디어 얻었군. 필수로 얻어야 하는 룬 리스트 중 하나인 영웅의 룬을.’
룬을 얻는 조건은 간단했다.
100명 앞에서 악마 한 마리를 죽이기만 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위기에서 구한 것으로 처리되지.’
시스템은 무방비한 사람들 사이에서 악마가 나타난 것만으로도 위기에 처한 걸로 인식했다.
단, 악마는 반드시 상위 종 이상이어야 하는데 40레벨 때 배운 검은 씨앗으로는 중하위 악마 종밖에 소환하지 못한다.
‘그래서 허태석이 60레벨이 될 때까지 기다린 거지. 상위 종 악마를 죽여야 하니까.’
다행히 계획대로 잘 돼서 룬을 얻을 수 있었다.
가면 속에서 웃은 류민이 눈앞에 떠오른 정보창을 바라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