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234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234화
234. 14라운드 시작
2월 1일 자정이 되자마자 류민의 눈앞에 초원이 펼쳐졌다.
‘오랜만의 초원이군.’
요즘 무채색의 공간에서 스타트를 자주 해서인지 오랜만이라 느껴졌다.
‘우선 저번에 고른 특별 보상부터 확인해 볼까?’
스킬창을 보니 라운드 한정으로 받은 보상이 있었다.
[임시 스킬 – 무적]-효과 : 사용 즉시 모든 피해로부터 면역이 된다. 지속시간은 60초이며 일회성 스킬이다.
무적의 지속시간은 1분.
임시 스킬치고 꽤 길다.
‘문제는 일회성 스킬이라는 거지만.’
단 한 번만 쓸 수 있기에 신중하게 사용해야 한다.
물론 류민은 어느 타이밍에 누구를 상대로 사용해야 할지 다 알고 있었지만.
‘이걸 이용해 서브 퀘스트를 깨고 포식의 룬을 획득한다. 변수가 생긴다면 어쩔 수 없겠지만.’
여기서 말하는 변수란 ‘천사’다.
현재까지 7인의 대천사 중 넷을 죽인 류민이다.
모르긴 몰라도 하늘에서 천사들이 자신을 향해 이를 갈고 있을 터.
분명 이번 라운드에서도 암살하기 위해 대천사를 보낼 것이다.
‘누굴 보내려나? 이제 1, 2, 3위 남았으니 2, 3위? 아니면 셋 다?’
어쩌면 이번 라운드에서 위기를 겪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강해졌다 해도 대천사 셋까지 이긴다고 장담할 순 없으니까.
‘여차하면 서브 퀘스트를 포기하고 무적을 쓰는 수밖에.’
물론 몇 번 상대해 보고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면 그때 사용할 거다.
‘어디 올 테면 와보라지.’
팔짱을 끼고 기다리는 사이, 초원에 나타나는 플레이어들이 늘어갔다.
그 수는 대략 4천 명.
얼핏 보면 많은 것 같지만 이게 전 세계에 남은 플레이어의 전부다.
‘이번 라운드가 끝나면 이 중에 절반만 살아남겠지. 다음 라운드엔 또 4분의 1로 줄어들고.’
암담했지만 아무리 류민이라도 줄어드는 인원을 막을 순 없다.
게임의 창시자가 되지 않는 한.
[안녕하세요, 인간 여러분. 14라운드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인원이 다 모이자 천사가 밝은 기색으로 나타났다.
[저번 생존자는 4,997명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4,608명으로 389명이 줄었네요?]천사는 놀라워했지만, 사람들은 딱히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야 왜 줄었는지 기사를 통해 접했으니까.
‘다들 알고 있군. 내가 죽였다는걸.’
검은 낫이 범죄자 플레이어들을 깡그리 소탕했다는 건 이제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
모르는 건 천사뿐이다.
[왜 줄었지? 서로 아이템 뺏겠다고 죽이기라도 한 건가요? 멍청하게?]인원이 줄면 생존자 TO만 줄어들기 마련.
천사가 멍청하다고 비웃는 건 바로 그 때문이었지만 류민은 범죄자들을 죽인 걸 후회하지 않았다.
‘죽이지 않았으면 더 큰 피해를 낳았을 테니까.’
류민이 위기에 빠진 나라를 구하지 않았으면?
디스토피아는 더욱 가속화되고 세상은 도탄의 분위기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을 거다.
범죄자 플레이어들은 더욱 기고만장해져 온갖 패악을 일삼았을 테고.
그 과정에서 희생된 일반인의 숫자야 셀 것도 없이 많으리라.
‘그런 쓰레기들을 지금이라도 정리한 게 다행이지. 계속 방치했다간 썩은 내가 진동했을 테니.’
물론 닉네임을 알아낸 뒤 이계에서 죽이는 방법도 있었다.
그럼 달성자 TO가 줄어들 일은 없다.
‘그 대신 지금처럼 영웅 대접은 받지 못했겠지.’
공개석상에서 범죄자들에게 미리 경고하고 처단한 건 관심 병자라서 그런 게 아니다.
검은 낫이란 존재를 알리고 이름값을 높이기 위해서였다.
범죄를 저지르면 이렇게 된다는 걸 전 세계의 플레이어들에게 보여도 줄 겸.
‘그래야 15라운드에서 고분고분 내 통제에 따라줄 테니까. 지금 같은 눈빛을 보내면서.’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을 보는 플레이어들의 눈빛이 남달랐다.
존경과 두려움이 혼재된 눈빛.
그럴 수밖에 없다.
일반인들도 영웅시하는 검은 낫인데 플레이어들이야 오죽하겠는가?
‘아무렴 내가 두렵겠지. 두려워해야지.’
쳐다만 봐도 얼어붙거나 고개를 돌리기 일쑤였다.
몇몇은 양심에 찔렸는지 두려움에 자리를 피하기도 했고.
[아무렴 좋아요. 인원이 적으면 여러분만 손해죠. 내 알 바람? 14라운드 퀘스트나 알려드릴게요.]이죽거리던 천사가 날개를 흔들자 메시지가 떠올랐다.
◀ ROUND 14 ▶
└총 10번의 몬스터 웨이브에서 살아남기
[통합 구역 CA-EA001]└참가자 : 4,608
└달성자 : 0/2,304
“몬스터 웨이브?”
퀘스트를 보던 플레이어들의 얼굴은 대체로 침착했다.
비슷한 미션을 이미 경험해 봤으니까.
“3라운드처럼 버티는 미션인가?”
“그냥 살아남기만 하면 되는 거지?”
3라운드는 다섯 차례의 웨이브가 진행되는 동안 유물을 지키는 미션이었다.
지금 라운드는 열 차례의 웨이브에 살아남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미션이었고.
‘그렇다고 방심은 금물이지만.’
룰 하나가 더 있지만, 플레이어들을 속이기 좋아하는 천사들이 그걸 공개할 리가 없다.
오히려 쉽지 않냐고 놀리겠지.
지금처럼.
[이번 라운드는 총 10번의 몬스터 웨이브를 막는 거예요. 이게 끝입니다. 정말 쉽지 않아요?]천사가 싱글벙글 웃었지만, 미소에 속는 플레이어는 없었다.
‘쉽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뒤통수 맞은 게 한두 번이었어야지.’
[몬스터들은 30분마다 플레이어 숫자에 비례해서 나타납니다. 처음에는 약한 몬스터가 나오지만 진행될수록 점차 강한 몬스터가 나타나는 형식이죠.]“천사님! 만약 30분 내로 몬스터들을 정리하지 못하면요?”
누군가의 질문에 천사가 씨익 미소 지었다.
[간단해요. 30분이 되면 바로 다음 몬스터가 등장하죠. 이전 웨이브 몬스터가 남았든 말든 상관없어요. 시간이 되면 무조건 다음 웨이브가 진행됩니다.]“아…… 그럼 최대한 30분 내로 웨이브를 정리해야겠네.”
“안 그러면 계속해서 몬스터가 누적될 테니…….”
[맞습니다. 몬스터를 빨리 정리하지 못하면 그다음 몬스터 때문에 곤욕을 치를 겁니다. 아마도 이 넓은 초원이 몬스터들로 꽉 차 버릴지도 모를 일이죠.]최대한 빨리 몬스터를 처치하는 것이 관건인 미션이었다.
[행여나 살아남겠다고 몬스터를 피해 도망치는 멍청한 인간이 간혹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인간을 위해 마련한 것이 있죠. 주변을 한 번 보실까요?]초원을 둘러보니 반투명한 돔형 장막에 둘러싸인 것이 보인다.
[어디로도 도망치지 못하게 사방을 보호막으로 막아놨습니다. 일종의 투기장이라 생각하면 편하겠네요.]도망칠 생각은 꿈도 말라는 듯 비웃어 보이는 천사였다.
“10번의 웨이브를 다 함께 막아야 한다라…….”
“그럼 우리 모두 파티인 건가?”
누군가의 중얼거림에 천사가 옳거니 손가락을 튕겼다.
[얘기 잘하셨네요. 맞습니다. 이번 라운드는 여러분 모두 파티로 적용되며 경험치와 골드도 사람 수만큼 나눠서 들어올 겁니다. 다만 기여도에 따라 모든 웨이브가 끝난 뒤에 최종 정산될 예정이니 이점 염두에 두시길.]“순위측정 방식은요?”
[순위를 측정하는 방식도 기여도에 따릅니다. 기여도를 점수로 환산하여 생존자 명단에 들어가게 되죠.]기여도에 따라 순위가 측정된다?
그 말은 최대한 많은 몬스터를 죽이거나, 몬스터를 죽이는데 많은 기여를 해야 함을 의미했다.
‘그야말로 힘 있는 사람한테 유리한 라운드지. 나처럼.’
그냥 낫질 몇 번으로 수십의 몬스터를 죽일 수 있는 류민에게 있어서 기여도 쌓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이번 라운드도 랭킹 1등은 따놓은 당상이라는 뜻.
‘그렇다고 혼자서 기여도를 독식할 수는 없어. 다른 사람 몫도 남겨놔야 하니까.’
마음만 먹으면 백 마리든 천 마리든 혼자서 다 쓸어버릴 자신이 있다.
하지만 그러면 다른 사람들에게 돌아갈 기여도가 줄어들고, 결국 동료들이 생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렇게 둘 순 없지. 적어도 사신교의 몫만큼은 남겨놔야지.’
이미 신도들에게 라운드의 특성과 웨이브별로 공략하는 방법 등을 알려준 류민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자신이 쓰지 않는 장비들도 나눠줬으니 기여도 쌓기란 어렵지 않을 거다.
[그럼 잠시 후 퀘스트를 시작할 테니 준비하고 계세요!]‘바로 시작하면 되지 준비랄 게 뭐 있나?’
류민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천사가 다른 꿍꿍이를 가지고 있는 줄도 모른 채.
그리고.
자신의 등 뒤로 누군가 흉흉한 눈빛을 보내고 있는 줄도 모른 채.
* * *
인생이 불합리하다고 느낄 때가 언제일까?
돈을 물 쓰듯이 쓰는 부자들을 보며 빈부격차를 실감할 때?
사장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자신보다 빠르게 진급할 때?
더 큰 힘과 폭력에 어쩔 수 없이 굴복할 때?
여러 상황이 있겠지만 결국엔 하나로 압축할 수 있었다.
바로 힘이 없을 때다.
‘힘이 없기에 남한테 짓밟히는 거야. 돈이든 권력이든 폭력이든.’
[소소한 먹방]은 이미 짓밟히는 경험을 당했다.플세바의 회장으로부터.
‘갈아 마셔도 시원찮을 놈 같으니. 말 한번 잘못했다고 사람을 이렇게 내쳐?’
한때 플세바의 중대사를 담당하는 간부였지만 어디까지나 한때일 뿐.
지금은 블랙리스트로 차단당해서 사이트에 접근도 못 하는 신세다.
이게 다 9개월 전에 했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검은 낫은 왜 가입 신청까지 했으면서 지금까지 잠수 타고 있는 걸까요?
-애초에 검은 낫이 아니었던 거 아닐까요?
-사칭범이라…… 그거 말 되네요.
-하긴 검은 낫 같은 거물이 ‘이런 카페’에 가입하려고 할 리가…….
-먹방 님? 지금 ‘이런 카페’라고 하셨습니까? 저희 카페가 뭐 어때서요?
-소소한 먹방 님은 이 시간부로 간부 자리에서 제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블랙리스트에 등재할 테니 새로운 시대가 오면 알아서 적응하도록 하세요.
플세바 회장에 의해 화상채팅 회의에서 가차 없이 버려진 후.
소소한 먹방은 지금껏 혼자서 버텨왔다.
회장에 대한 복수로 이를 갈면서.
‘마음 같아선 회장 그 새끼를 찾아서 죽여버리고 싶지만, 닉네임이랑 얼굴을 알 수 없으니 원…….’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플세바 회장은 플레이어가 아닌 일반인이었기에.
그 사실을 소소한 먹방은 모르고 있었지만.
‘현실의 얼굴은 아니까 본명만 알면 추적하기로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런 생각으로 이곳저곳 흥신소에 도움을 청해봤지만 결국 의뢰비만 날리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은 회장 찾기를 거의 포기한 상태다.
찾을 방도가 없는데 뭐 어쩌겠는가?
다만 아직도 가슴속엔 그때의 설욕과 울분으로 가득했다.
‘이게 다 검은 낫, 저 새끼 때문이야. 저 새끼 얘기를 하다가 제명당한 거 아니야!’
따지고 보면 검은 낫이 아닌 자신의 잘못이었지만 소소한 먹방에겐 비난할 대상이 필요했다.
자신의 응축된 분노를 표출할 대상이 필요했다.
그게 지금의 검은 낫이었고.
‘개새끼, 죽어버려. X발 영웅은 빌어먹을, 쓰레기 새끼!’
매달 이계에서 검은 낫의 뒤통수를 향해 욕지거리를 뱉었지만, 속으로만 할 수밖에 없었다.
인정하기 싫지만 검은 낫과 자신에겐 아득한 힘의 차이가 있었으니까.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가 검은 낫이라는 걸 의식하고 있었으니까.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세상이야. 빌어먹을, 망해버려라. X 같은 세상.’
회장 탓을 하고 검은 낫 탓을 하고 세상 탓을 하면서도, 소소한 먹방은 절대 자신을 탓하지 않았다.
세상을 향해 망하라고 저주를 퍼부어도 자신의 목숨만큼은 건지고 싶은 소소한 먹방이었다.
복수도, 남 탓도 살아야 가능한 것이었으니까.
‘나는 살아남을 거야. 20라운드까지 살아남아서 소원으로 누구도 무시할 수 없는 힘을 갖게 해달라고 할 거야. 그래서 회장과 검은 낫, 너희 X 같은 새끼들 모두 내 앞에 무릎 꿇리고 잘못했다고 두 손 두 발 빌게 만들 거야.’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검은 낫의 뒤통수를 주시하던 소소한 먹방이 급히 고개를 돌렸다.
갑자기 시선을 돌리기에 이쪽을 보는 줄 알고 식겁했다.
‘아 씨, 깜짝이야. 저 새낀 왜 저렇게 움직임이 빠른 거야? 간 떨어질 뻔했네. 그나저나 미션을 보아하니 이번 라운드도 검은 낫이 1등 하겠구만? 더러운 세상.’
몬스터 기여도가 높은 사람 순서대로 순위가 정해진다는 말을 듣는 순간, 이미 결과는 나온 거나 마찬가지였다.
‘일단 열심히 해서 커트라인에라도 드는 수밖에.’
최대한 많은 수의 몬스터를 잡아야겠다고 여기고 있는 그때.
-소소한 먹방?
머릿속으로 미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뭐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목소린데?’
-이쪽 좀 보세요. 소소한 먹방. 아니, 거기 말고 이쪽. 하늘!
고개를 올려보니 안내하는 천사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
-그래요. 여기!
“지금 천사님이 말을…….”
-아이 씨! 아는 척하지 말고. 입 닥치고 들어요!
천사의 말에 소소한 먹방이 입을 꾹 다물었다.
왜 저러는지 통 알 수가 없다.
-당신에게 볼일이 있어요.
‘저요?’
-대화할 게 있으니 조용히 따라오세요. 남들에게 들키지 않게.
천사가 따라오라는 듯 고갯짓을 하더니 천천히 하늘을 이동했다.
그 모습에 소소한 먹방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