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283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283화
283. 18라운드 시작
류민은 보름 동안 서아린뿐만 아니라 약속 잡은 모든 사람에게 포인트를 나눠줬다.
무려 인당 100만 포인트씩.
‘민주리, 서아린, 크리스틴, 조용호, 허태석, 엄준석, 러셀, 빅터, 소피아, 제프리, 알렉스, 도로시, 얌띠, 존 델가도, 주성탁……. 또 누구더라?’
손가락으로 세어보니 나눠준 사람만 총 15명이다.
1,500만 포인트가 보름에 걸쳐 사라진 셈이다.
‘남은 내 몫은 고작 100만 포인트인가?’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쉽지 않았다.
‘어차피 가지고 있어 봐야 쓸데도 없는 포인트. 보스전에서 도움이 될 사람들에게 나눠줘서 전력을 보강하는 게 훨씬 이득이지.’
100만 포인트면 이런저런 비싼 장비는 물론 레전더리 급도 2개는 만들 수 있을 거다.
‘물론 조합법을 알아야겠지만.’
경험치 팩에 지르면 5레벨을 단숨에 올릴 수도 있을 테고.
뭐, 그래봤자 갓 등급에 비할 바는 못 되겠지만 말이다.
* * *
시간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2023년 6월 1일 자정.
어김없이 그날이 찾아오자 286명의 플레이어가 이계의 땅을 밟았다.
“어? 여긴?”
뜨거운 열기와 떠다니는 유황 가루, 천지가 개벽한 듯한 하늘.
종말이라도 난 것 같은 환경이 플레이어들을 반겼다.
이곳이 바로 18라운드의 무대가 되는 곳, 지옥이다.
“이번 라운드는 지옥에서 싸울 거라고 하더니…….”
“상상 속에서 보던 거랑 똑같잖아?”
“지옥이 정말 이렇게 생겼구나.”
“곧 있으면 이곳에서 전쟁이 벌어진단 말이지? 그것도 악마들이랑.”
“이거 긴장되는데?”
“악마는 어떻게 생겨먹었을까?”
사람들은 저마다 중얼거리며 긴장감을 달랬다.
마족을 처음 보는 라운드이기도 하지만 전쟁에 직접 참여한다는 게 무엇보다 떨릴 거다.
류민이 그 모습을 보며 피식 웃었다.
‘하긴 요즘 같은 평화로운 시대에 서로 책상 앞에서 경쟁하기에 바빴지, 천사와 마족 간의 전쟁에 끌려올 줄 누가 알았겠어?’
엄밀히 말하면 진짜 전쟁이 아닌 친선 경기에 불과했지만 다를 게 뭐가 있겠는가?
플레이어들의 목숨이 걸렸다는 점에선 진짜 전쟁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그때 메테오라도 떨어질 것 같던 하늘에서 빛이 번쩍였다.
싱글벙글 웃는 천사의 모습에 평소 같으면 기분 나쁘다며 인상을 찌푸렸겠지만, 퀘스트를 알아서인지 사람들은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오늘은 저희 천사 측을 많이 도와주셔야 할 거예요. 무슨 뜻이냐고요? 우선 퀘스트 먼저 공개하고 설명하겠습니다!]◀ ROUND 18 ▶
└마족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기
[통합 구역 CA-EA001]└참가자 : 286
└달성자 : 0/143
이미 언질을 들었던 퀘스트였다.
마음의 준비까지 하고 있던 상황.
그래서인지 놀라는 사람은 없었다.
천사를 제외하곤.
[어라? 왜 아무도 놀라지 않는 거죠? 퀘스트를 미리 알고 있는 인간처럼?]“우리가 네놈 말장난에 매번 놀라야 하나?”
퀘스트에도 놀라지 않던 플레이어들이 휘둥그레진 눈으로 한 곳을 바라봤다.
천사에게 대꾸한 사람은 다름 아닌 류민.
천사 밀렌도 당황한 눈으로 류민을 내려다봤다.
‘가, 감히 인간 주제에 말대꾸를?’
마음 같아선 시살을 써서 죽여버리고 싶지만 아쉽게도 예전에 일찌감치 써버렸다.
더구나 이번 라운드는 천사와 플레이어가 같은 팀이 되는 탓에 시살의 사용이 막혀 있다.
시살 횟수가 남아 있더라도 쓸 수 없는 것이다.
[하……. 인간 주제에 천사에게 기어오르다니. 이런 적은 처음이라 정말 황당하네요.]“황당하든 말든 내 알 바 아니고, 플레이어들에게 설명이나 해주면 될 것이지 매번 잔말이 많아? 시스템이 그러라고 시켰어?”
[미, 미친 건가? 인간, 18라운드에 오더니 드디어 정신이 나갔나요? 죽고 싶어요?]“죽일 수 있어? 그럼 죽여봐.”
[…….]“쫄아서 하늘에서 내려오지도 못하는 게 어디서 센 척이야? 전투 천사 축에도 못 드는 안내역이나 맡는 평천사 주제에.”
뇌 정지가 온 듯 밀렌의 표정이 굳어졌다.
너무 팩트 공격이었나?
“아무리 신분이 낮은 너라도 알고 있겠지. 대천사 여섯 명을 죽인 사이코패스 인간이 바로 나라는걸.”
[…….]“하늘에 떠 있어서 내가 못 죽인 줄 알지? 그동안은 안내역이 필요해서 가만히 있었다만 계속 거슬리게 하면 너도 죽일 수도 있어. 너 하나 죽여도 어차피 다른 안내역으로 대체될 거라는 걸 알고 있거든.”
바람 한 점 안 부는데도 밀렌의 날개가 바들바들 떨린다.
표정을 보니 모욕적인 말에 분노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협박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니 닥치고 네 역할대로 퀘스트나 설명해. 쓸데없는 말 주절거리거나 비웃지 말고. 너는 이 상황이 우습겠지만 우리는 아니거든.”
[…….]“알아먹었으면 빨리 설명해.”
[큼, 큼……. 서, 설명을 이어가죠.]밀렌은 당황스러움을 감추며 시키는 대로 설명을 시작했다.
[이, 이번 라운드는 말 그대로 마족과 전쟁을 벌이는 라운드예요. 여러분은 저희 천족과 한 팀이 되어 마족을 상대로 싸워서 승리해야 하죠.]잠시 말을 끊은 밀렌이 류민의 눈치를 살폈다.
서릿발 같은 눈빛이 무섭도록 소름 끼쳤다.
[저, 저희와 같이 싸워야 하는 게 여러분에겐 불만일 수 있어요. 그렇다고 천족을 죽이려고 들면 안 돼요. 같은 팀인 만큼 모두가 파티로 인식되어서 어차피 죽이지도 못하겠지만요.]검은 낫이 자신을 죽이지 못한다는 걸 알지만 밀렌은 두려웠다.
다음 라운드 안내역도 자신이 맡게 될 것이기에.
[지난 라운드와는 달리 이번에는 전쟁에서 승리하더라도 전부 살아남을 수 없어요. 승리에 관여한 기여도를 기준으로 순위를 매겨서 절반만 생존할 수 있죠.]이번엔 모두 살아남지 못한다.
절만만 살아남는다.
그 역시 검은 낫에게 들었던 정보라 사람들의 표정에 변화는 없었다.
대신 처음부터 지금까지 쭉 긴장 어린 표정을 유지했다.
겉보기엔 팀이지만 어떻게 보면 경쟁이었기에.
[서, 서로 간에 앙금이 많겠지만 이번만큼은 힘을 합쳐 간악한 악마들의 머리통을 함께 뽑아버려요. 파, 파이팅!]‘마음에도 없는 파이팅까지 하다니. 안쓰러울 지경이군.’
류민이 피식 비소를 흘리는 그때였다.
뿌우우우우-
전쟁을 알리는 뿔피리 소리가 천지를 흔들었다.
[시, 시작됐네요. 그, 그럼 자, 잘해보세요!]안내역 천사가 도망치듯 사라졌다.
그를 시작으로 게이트가 생성됐다.
근처에 나타난 빛의 게이트에선 휘황찬란한 갑옷을 입은 전투 천사들이.
저 멀리 언덕 너머에서 나타난 어둠의 게이트에선 붉은 갑옷을 입은 악마들이.
천사와 악마가 게이트에서 넘어와 지옥의 땅을 밟았다.
무수히, 계속해서.
“저, 저게 다 몇 명이야?”
언제까지 나타날 생각인지 끊임없이 게이트에서 넘어오던 병력은 어느새 한눈에 담기 힘들 정도가 되었다.
그쯤 되자 게이트가 닫히고 병력의 줄이 끊어졌다.
양측 병력을 눈대중으로 비교하니 마족 측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잠시 후 천족 5,000명(+플레이어 286명) VS 마족 10,000명의 전쟁이 시작됩니다.] [10% 이하로 먼저 병력이 줄어드는 진영이 패배한 것으로 간주합니다.]“마족이 두 배나 많잖아?”
“이, 이길 수 있을까?”
사람들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마족을 상대해 본 적 없으니 걱정하는 게 당연했지만 조금 있으면 알 것이다.
생각보다 약하다는 것을.
‘마족은 몬스터로 치면 하이 오크 수준이야. 물론 가장 약한 녀석이 그렇다는 거지만.’
숫자에서 차이가 나지만 그렇다고 천족의 수준이 밀리는 건 또 아니다.
6품 전투 천사라 해도 하이 오크 정도는 혼자서 거뜬히 죽일 수 있으니까.
‘보니까 6품만이 아니라 5품, 4품, 3품까지, 다양하게 나와 있네.’
전투 천사의 등급은 그들이 입은 갑옷의 인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여기저기 눈알을 굴려보니 1품 천사의 등급마저도 보였다.
질 좋은 먹잇감을 발견한 것인 양 류민의 입술이 귀에 걸렸다.
하지만 정말 기쁜 일은 따로 있었다.
자신의 예상대로 미카엘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검은 낫이여.]“어, 왔어?”
아는 체한 류민이었지만 미카엘은 막상 대화하기가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잠깐 단둘이 대화하고 싶군.]“그러던가.”
주변 시선을 의식한 미카엘이 류민을 한적한 공간으로 데려갔다.
다시 보니 반갑다는 듯 류민이 씩 미소 지었다.
“용케 살아 있었네? 죽었으면 어쩌나 했는데.”
[다행히 네 작전이 먹혔다. 신을 속일 수 있었어.]하지만 미카엘은 어쩐지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이었다.
“근데 표정이 왜 그래?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으음, 그게 말이지……. 너한테 부탁할 게 있는데…….]말하길 주저하는 미카엘을 보며, 류민은 단번에 눈치챘다.
표정에서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다.
‘이 새끼, 연기하고 있구나.’
아니나 다를까, 말하기 껄끄러워하는 표정과 달리 속으론 대본처럼 대사 칠 타이밍을 계산하고 있는 미카엘이었다.
“무슨 부탁인데?”
[악마 대공이랑 대화 한 번만 하러 갔다 오면 안 될까?]“나더러 악마 대공을 만나라고?”
[신들이 여전히 너를 악마 대공에게 넘기길 원해서 말이야. 그렇다고 널 팔아넘기겠다는 건 아니다. 그저 둘이 대화하는 모습을 보이기만 하면 신들도 약속대로 접촉했다고 생각할 거다. 무슨 대화를 하는지는 들리지 않으니까.]“그러니까 위에서 볼 수 있게 접촉하는 모습만 보여라, 이거지? 악마 대공에게 넘어갈 필요도 없고.”
[그렇지, 그렇지. 그리 어려운 부탁은 아니지 않나?]류민이 끄덕였다.
정말 어려운 부탁은 아니다.
애당초 18라운드에서 플루닉토스를 만나려고도 했었고.
문제는 미카엘이 자신을 속이고 있다는 거다.
‘이 새끼가 둘이 협상한 내용은 쏙 빼놓고 얘기하네? 게다가 마왕성에 발을 들이면 악마의 권역이라 나오지 못한다는 것도.’
위험하지 않다는 듯, 그저 대화만 하고 오라고 말하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마왕성은 천계처럼 아무나 진입할 수 없는 구역이다.
플레이어가 그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플루닉토스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는 한 벗어날 수 없을 거다.
[혹시라도 빠져나오지 못할까 걱정하지는 마. 그냥 악마 대공이랑 말 몇 마디만 주고받은 다음 바로 이쪽 진영으로 도망쳐 오면 문제없을 테니까.]안심하라는 듯 말했지만 빠져나오지 못할 거라는 건 류민도 알고 미카엘도 안다.
‘괘씸한 놈. 내가 살아야 자기도 신이 될 수 있다느니 마느니 하더니만 날 마족에 팔아넘겨?’
아카식 레코드의 권한을 넘기는 대신, 18라운드로 유예 기한을 늘렸고 자신을 넘기기로 했다는 걸 생각을 통해 알아냈다.
아카식 레코드가 뭔진 정확히 모르겠지만.
‘신이 되는 것보다 전쟁에서 패배하는 게 더 두려웠던 모양이지.’
이해는 됐지만 뻔뻔한 얼굴로 자신을 사지로 몰아넣으려는 게 기가 막힐 따름이었다.
물론 자신도 미카엘을 이용하다가 죽일 생각이었지만.
‘오래 이용하긴 글렀군. 이럴 줄 알았다만.’
스스로 제삿날을 정한 줄도 모른 채, 미카엘이 대답을 재촉했다.
[부탁이다. 할 수 있겠나?]그 물음에 류민이 입가를 당기며 웃었다.
“물론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