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321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321화
321. 확정된 패배
촤아아아악-!
카르뮤가스의 얼굴이 두개골부터 그대로 절단되었다.
“어?”
오히려 공격한 류민이 놀랐을 정도로 허망한 죽음이었다.
탁- 쿠웅!
류민이 바닥에 착지하기 무섭게 드래곤의 몸뚱이가 옆으로 쓰러졌다.
‘이렇게 쉽게 죽었다고?’
그래도 명색이 보스인데 평타 한 방에 죽을 거라곤 생각도 못 했다.
그래서인지 눈앞에 메시지가 올라오는데도 류민의 표정은 멍하기 그지없었다.
[경험치+10,000,000] [획득한 경험치가 10만을 넘어섰습니다.] [경험치가 스탯 포인트 100으로 치환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보스 한 마리 잡고 111레벨이 되었다.
아니, 보스라기엔 허무한, 드래곤 한 마리를 잡고서.
‘내 대미지가 강한 건 알았지만…… 그렇다고 평타 한 방을 못 버틸 줄이야.’
류민은 어이없는 눈으로 사라지는 카르뮤가스의 시체를 바라봤다.
다른 플레이어의 시선도 같았다.
“진짜로 죽은 거야? 그것도 한 방에?”
“하하…… 보스라는 놈,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잖아?”
“맥이 탁 풀리네.”
기껏 보스를 상대하기 위해 이것저것 작전을 준비했더니 맥빠질 정도로 허무한 결과였다.
“검은 낫 님, 수고하셨습니다! 수고했다고 말하기 민망할 정도로 쉬웠지만 하하…….”
“드디어 20라운드를 공략하네요! 다들 소원 빌 준비하세요!”
“아 씨, 소원 생각 못 했는데…… 무슨 소원 빌지?”
“저처럼 부자 되게 해달라고 하세요. 빌 게이트를 뛰어넘는 갑부가 되는 겁니다.”
“저는 저와 우리 가족 모두 영생을 얻게 해달라고 할 거예요. 평생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살 수 있게요.”
“어? 저랑 겹치네요? 저도 그 소원 빌 생각이었는데.”
“소원이 겹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둘 다 들어주는 거 아닐까요?”
“그럼 다 같이 영생을 얻게 해달라고 하면 어떨까요?”
“하하하! 그거 좋겠네요!”
왁자지껄 행복한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었지만 류민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아니야. 이대로 끝날 리가 없어.’
경험치가 들어온 것으로 보아 카르뮤가스를 처치한 것은 맞다.
그런데 어쩐지 느낌이 싸했다.
류민이 여전히 긴장감을 놓지 않고 있는 그때, 민주리가 다가왔다.
“수고하셨어요, 검은 낫 님.”
“…….”
“검은 낫 님?”
“어, 그래.”
“무슨 일 있으세요? 표정이 좋지 못하신데…….”
“아직 끝나지 않았다.”
“네? 끝나지 않았다니요?”
“메시지가 뜨지 않고 있잖아.”
류민의 말을 들었는지 사람들의 목소리가 줄어들었다.
“어? 그러고 보니 왜 종료 메시지가 안 뜨지?”
“보스를 처치했으니 라운드는 끝난 거잖아?”
“처치하면 즉시 라운드가 종료된다며?”
“뭔가 이상한데?”
“천사님! 얼른 나와봐요! 20라운드를 공략했다고요!”
사람들의 부름에도 천사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제야 이상한 낌새를 느꼈는지 사람들이 주변을 돌아보며 긴장했다.
“검은 낫 님. 이게 무슨 일…….”
“잠깐.”
류민이 변화를 감지했는지 손을 들었다.
그 순간.
후루루룩-
켜져 있던 횃불들이 모조리 꺼졌다.
한순간에 어둠이 찾아오자, 사람들이 당황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당황스러운 일은 따로 있었다.
빛.
어둠 속에서 발광하는 새하얀 빛.
그 빛과 함께 나타난 존재가 있었다.
펄럭-
거대한 날개를 펼치며 나타난 존재는 다름 아닌 천사였다.
여태까지 본 천사 중 가장 아름답고 커다란 날개를 가진 천사.
아르타로스.
그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사를 불렀더니 정말로 나타났어?”
“근데 아까 봤던 천사가 아니라 다른 천사잖아?”
“보상을 주는 천사인가?”
수군거리던 사람들은 자체적으로 발광하는 천사의 경이로운 자태에 눈을 떼지 못했다.
몇몇은 황홀한 표정을 지을 정도.
일부는 보상을 주는 천사라고 생각하고 기대감에 차 있었지만, 상대가 누군지 아는 류민만큼은 싸늘한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나타났구나. 아르타로스.’
20라운드가 끝나기 전에 나올 거라고 예상은 했다.
그렇기에 놀랄만한 일은 아니었다.
‘보스룸에서 만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정말로 나와버렸군.’
상대는 스탯이 억 단위를 넘어가던 자신을 몰아세운 유일한 상대다.
당연히 긴장해야 마땅하건만 류민은 오히려 안정감을 느꼈다.
미친 듯이 복습했던 문제가 나온 기분이랄까?
‘안 나오면 섭섭할 뻔했다고.’
현실에서 팀원들과 구상한 작전은 모두 아르타로스와의 결전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한 번 자신을 노렸던 녀석이기에 반드시 마주칠 거라 예상했으니까.
‘잘 됐어. 어차피 피하지 못할 상대라면 이번 기회에 확실히 끝내는 것이 좋겠지.’
지난번 싸움 때 약간 고전했음에도 류민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 데다 동료들의 버프를 한 몸에 받고 있다.
특히 민주리의 만렙 스킬인 ‘이중 버프’가 자신에게 걸려 있는 덕분에 블레스의 효과가 중복으로 적용되는 중이다.
‘한마디로 블레스 하나만으로 스탯이 4배 증가했다는 말씀.’
이러니 녀석의 실력에 변함이 없다면 자신의 털끝도 건들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또 보는구나. 필멸자 검은 낫이여.]아르타로스의 말에 사람들이 일제히 류민을 돌아봤다.
“둘이 아는 사이에요? 검은 낫 님?”
“알지. 나랑 붙어본 적 있는 놈이니까.”
류민은 아르타로스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로 물었다.
“네 녀석. 여긴 무슨 일이지?”
[무슨 일이긴. 너희 인간들을 모조리 말살시키기 위해 왔지.]말살이라는 단어를 들은 플레이어들의 표정이 굳었다.
몇몇은 적이라는 걸 깨닫고 살기를 띠기도 했다.
[우습군. 버러지 같은 것들이 상대가 누군지도 모른 채 날을 세우다니.]“그 버러지한테 된통 당한 놈이 누구였더라?”
류민의 이죽거림에도 아르타로스는 반응이 없었다.
무감정한 눈빛으로 쳐다볼 따름이다.
[네가 강하다는 건 인정한다, 검은 낫이여.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 당시 기억을 지웠다고 생각한 네가 멀쩡하게 돌아다니는 걸 보고 솔직히 놀랐었다. 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능력을 갖춘 듯하더군.]“그래서. 이번엔 좀 더 공부해서 나타난 거야? 복수하려고?”
[복수라는 감정은 내게 사치다. 상대에게 알량한 감정을 품는 것만큼 무의미한 짓도 없지.]“그럼 왜 우리를 방해하는 거지? 너희는 천마 대전에서 이기기 위해 인간 용병을 구하는 게 아니었나? 우리가 20라운드를 통과하지 못하면 도와줄 수도 없을뿐더러 천족에 베팅한 신들이 내기에서 지게 될 텐데?”
[전쟁 따윈 이제 상관없다. 더 높으신 분께서 너와 여기 있는 인간들을 소멸시키고 판을 뒤엎기를 원하시니.]“…….”
[내가 움직이는 건 그 이유뿐이다. 너에게 어떤 사적인 감정도, 불만도 품고 있지 않다. 솔직히 너희 인간들이 죽든 말든 나랑은 아무 상관없는 일이야. 다만…….]“높으신 분의 지시가 내려와서 수행할 뿐이라는 거지?”
[그렇다.]“그 지시를 내린 놈은 태초의 신이라는 개새끼고?
표정 변화가 없던 아르타로스의 눈썹이 약간이나마 꿈틀거렸다.
“함부로 말할 건데? 태초의 신은 개뿔, 쓰레기 같은 신 새끼.”
상관을 욕하는 일은 확실히 효과 있었다.
스스로 무감정하다고 말하던 아르타로스가 전에는 볼 수 없던 화난 표정을 지어 보였으니까.
[날 도발해서 좋은 꼴은 볼 수 없을 텐데?]“그건 서른 번이나 죽은 녀석이 할 말은 아닌 거 같은데?”
[힘에서 밀렸다는 건 인정하지. 그렇다고 내가 네놈을 무서워할 거란 착각은 하지 마라. 그 당시 내가 물러난 건 네놈의 기억이 지워졌다고 판단해서 그런 것이다. 무서워서 도망친 것이 아니지.]“알아. 네가 죽지 않는 존재라는 거. 하지만 너도 날 힘으로 무릎 꿇릴 순 없을걸?”
서로를 죽일 수 없는 대등한 관계.
그게 검은 낫과 아르타로스였다.
하지만 아르타로스는 미소 지었다.
아무런 대책 없이 나타난 것이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네놈과 여기 있는 인간들의 발은 묶을 수 있지.]“무슨 소리냐.”
[20라운드가 왜 끝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류민은 아르타로스의 생각을 읽고 눈살을 찌푸렸다.
“설마…….”
[태초의 신의 도움을 받아 20라운드 보스는 나로 변경되었다. 조금 전에 한 방에 죽어버린 허약한 레드 드래곤 따위가 아니란 소리지.]“그 말은…….”
아르타로스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래. 나를 죽여야 라운드를 통과할 수 있다. 하지만 죽일 수 있을까? 죽어도 죽어도 무한정 부활하는 나를?]“…….”
불사의 저주에 걸린 아르타로스를 죽여야 라운드를 통과할 수 있다?
가능할 리가 없었다.
녀석의 말마따나 자신의 발목을 묶기엔 최적이었고.
[나를 죽여서 통과할 수도 없겠지만, 내가 가만히 있어도 너희들은 제한 시간이 지나면 룰에 의해 소멸할 것이다. 그러니 너희의 패배는 확정된 것이나 다름없다.]류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인정했다.
“그래. 네 말이 맞아. 하지만.”
척-
낫을 겨누자 아르타로스의 눈빛이 묘하게 변한다.
“할 수 있는 건 전부 해봐야지.”
[어리석구나. 필멸자여. 막다른 길이라는 걸 알면서도 덤비겠다니.]“오히려 막다른 길이니까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 하는 거 아니겠어?”
[그러니까 어리석다고 하는 거다, 인간. 아무리 발악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말을 끝맺기도 전에 아르타로스의 목이 떨어졌다.
툭-
보스의 죽음에 긴장하던 플레이어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주, 죽였어?”
“이, 이겼다. 검은 낫 님이 이겼다!”
“아직 아니야!”
류민의 고함에, 환호성을 지르던 사람들이 의아한 눈으로 돌아봤다.
“기뻐할 때가 아니다. 저길 봐라.”
“헉?”
시선을 돌린 사람들이 일제히 숨을 죽였다.
기괴하게도 아르타로스의 떨어진 목이 제자리로 붙고 있었다.
“저 녀석은 불사신이다. 죽여도 죽여도 계속 살아나지.”
“예? 부, 불사신?”
“그, 그럼 어떻게 죽여요?”
“멍청아! 불사신이니까 못 죽이지!”
“미, 미친. 아까 패배가 확정됐다는 소릴 하더니만 이 뜻이었어?”
당황하는 사람들을 향해 류민이 또 한 번 소리쳤다.
“당황하지 마! 진정하고 긴장을 유지해라! 정신만 똑바로 차리면 길이 생길 거다.”
[길은 무슨 길?]완전히 부활한 아르타로스가 슬쩍 비웃음을 머금었다.
[날 죽이지 못하면 라운드를 통과할 수 없는데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거지?]“그렇다고 가만히 손 놓고 있을 순 없잖아.”
[차라리 손 놓고 있는 게 덜 고통스러울 거다. 나라고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으니.]“그러셔?”
류민이 입꼬리를 당기며 웃었다.
“그럼 어디 한번 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