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361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외전 6화
6. 안상철의 소원
원래 안상철에겐 이렇다 할 소원이 없었다.
라운드를 모두 클리어하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말도 그냥 흘려들었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갈 자신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예언자와 함께하는 지금은 희망이 생겼다.
라운드를 차근차근 돌파하며 끝내 20라운드를 넘어 파이널 라운드까지 왔을 때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원이라는 달콤한 보상을.
‘무엇을 소원으로 비느냐.’
그걸 떠올리자마자 생각난 사람은 다름 아닌 마경록이었다.
‘대표님이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그것이 자신의 소원.
남을 위한 소원이었지만 자신의 소원이기도 한 그것을, 안상철은 말하려 했다.
하지만 순간 머릿속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와 같이 대표님도 소원의 방에 들어갔을 터. 원하는 소원을 이루면 대표님도 행복을 이루는 것이 아닌가?’
중복된 행복.
그럴 바엔 자신을 위해 소원을 쓰는 게 좋지 않을까?
하지만 의문 하나가 안상철을 붙잡고 있었다.
“물어보면 뭐든 답해준다고 했지?”
[그렇습니다. 생각으로 물어보든, 육성으로 물어보든 상관없습니다. 성심성의껏 대답해 드리겠습니다.]염원석을 붙잡고 들어간 소원의 방에서, 안상철은 물었다.
줄곧 궁금했던 질문을.
“내가 빈 소원과 다른 사람의 소원이 같을 때, 중복될 텐데 그건 어떻게 처리하지?”
[중복될 염려는 없습니다. 소원을 비는 순간 해당 플레이어는 다른 세계선으로 이동이 됩니다. 그곳은 소원이 적용된 세계선이며 다른 플레이어는 소원의 방에 대해 기억하지 못하는, 지금과는 또 다른 세계선입니다.]“각자의 플레이어가 소원이 적용된 환경으로 간다는 건가? 그것이 복제된 차원이고?”
[정확합니다.]솔직히 당황스러웠다.
그럼, 소원을 이뤘을 때 보게 될 환경은 이곳이 아닌, 만들어진 다른 세상이라는 말이 아닌가?
‘그야말로 각자 꿈을 꾸는 것과 같잖아, 이건.’
꿈이지만 현실과 같다면 그건 꿈일까 현실일까?
철학을 논하기엔 안상철의 지식이 얕았다.
‘뭐가 됐든 나만의 소원을 빌자. 새로운 세상도 이쪽과 다를 거 없다고 하니까.’
그렇다면 답은 나왔다.
“소원을 말하지. 내 소원은…….”
* * *
눈을 떴을 때, 안상철은 침대에 있었다.
자신의 호텔 방.
즉시, 마경록의 호텔이기도 한 이곳에서 나와, 다른 방으로 향했다.
언제나 그렇듯 그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대표님, 마경록이었다.
똑똑.
“대표님. 오셨습니까?”
“들어오세요, 안 실장.”
띠릭-
만일의 상황을 대비한 마스터키를 갖고 있었기에 쉽게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었다.
‘과연, 내 소원이 적용됐을까?’
안상철은 긴장하며 침실로 이동했다.
셔츠차림으로 침대에 누워 있는 마경록이 보인다.
“안 실장. 드디어 끝났군요.”
“예. 우리는 살아남았습니다.”
“후, 긴 싸움이었네요.”
“저기, 소원은…….”
“무슨 소리죠?”
혹시 몰라 떠봤는데 마경록은 소원에 대해서 모르는 눈치였다.
시스템이 말한 대로 기억을 잃었다.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직 잠이 덜 깬 건 아니겠죠?”
“그럴 리가요. 멀쩡합니다.”
“그럼, 간만에 위스키 한잔하시죠.”
일어선 마경록이 위스키를 따라 잔을 건넸다.
보통 근무 중에 술은 마시지 않지만, 오늘만큼은 거부 없이 마셨다.
길고 긴 싸움을 끝낸, 의미 있는 날의 시작이었으니까.
“검은 낫이 해냈군요. 그 지독한 카오스를 죽이고 게임을 끝내 버렸어요.”
‘……!’
내심 놀랐지만, 안상철은 내색하지 않았다.
‘근래에 들어서 처음이다. 그분이 아니라, 검은 낫이라고 부른 건.’
대표님은 항상 검은 낫을 그분이라고 높여 불렀다.
처음엔 안 그랬지만 나중에는 무슨 변화인지 그렇게 불렀다.
그것이 못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바뀌었다.
‘소원이 적용된 거야.’
마지막에 안상철이 빈 소원은 다름이 아니었다.
마경록이 믿고 의지하는 사람을, 검은 낫에서 자신으로 바꿀 것.
즉, 다른 사람이 아닌 오직 자신을 믿고 의지하도록 마경록의 마음을 바꾼 것이다.
그래서일까?
안상철을 보는 마경록의 눈빛에 신뢰와 믿음이 가득했다.
“검은 낫도 잘했지만, 제겐 무엇보다도 안 실장의 영향이 더 컸어요.”
“…….”
“말은 안 했지만, 그동안 제가 믿고 의지한 사람은 가족도 누구도 아닌, 오직 안 실장뿐이었거든요.”
“대, 대표님…….”
솔직히 감격스러웠다.
가끔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곤 했지만, 자신을 이렇게 믿는다며 말해준 적은 한 번도 없었기에.
‘물론 마음으로 느끼고는 있었어. 하지만 그걸 입 밖으로 표현하실 줄이야…….’
그간의 보상을 한 번에 몰아받는 기분을 느끼며, 안상철이 고개를 숙였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대표님.”
“그럼, 잘 부탁해요, 안 실장.”
* * *
마경록에게 인정받은 후, 안상철의 삶은 달라졌다.
하루하루가 에너지로 활기차고, 의욕도 넘쳐났다.
‘대표님은 내가 지킨다. 누구보다도 날 믿어주고 계시니까.’
더 이상 대표님의 입에서 검은 낫, 류민의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았다.
아예 기억 속에서 지워진 것처럼, 오직 자신을 믿고, 자신만을 호출했다.
“안 실장. 오늘 작업을 나갈까 하는데, 타깃은 준비됐습니까?”
“아, 아직 준비하진 못했습니다. 요새 흉악 범죄가 많이 줄어들어서 마땅한 타깃을 찾기도 어려워서요.”
검은 낫이 대 플레이어 부대, 통칭 CPF(Counter Player Force)를 운용한 이후로, 사회를 좀먹던 벌레들이 많이 줄어들었다.
급기야 나라를 장악하던 범죄자 플레이어들을 보란 듯이 박살 냈을 때는, 사상 최하의 흉악 범죄율을 기록했다.
그건 모든 라운드가 끝나고 플레이어들의 힘이 사라졌음에도 지속됐다.
검은 낫 덕분에 세상이 살만해진 것이다.
그 벌레들을 잡아먹던 마경록으로선 욕구 해소하기가 쉽지 않은 아이러니한 상황에 이르렀지만.
“흉악 범죄자를 찾기가 힘들다라……. 그러면 흉악 범죄자가 아니면 되잖아요?”
“그 말씀은……?”
“사소한 절도죄나 추행, 폭행을 저지른 가벼운 범죄자들도 타깃으로 삼으세요.”
“예전처럼 하시겠다는 겁니까? 검은 낫의 말대로 안 하고요?”
“예. 예언 능력도 없는데 이제 와서 검은 낫의 말을 들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원래 마경록은 검은 낫의 말이라면 기이할 정도로 신봉하고 따르던 사람이었다.
‘그분’이라고 높여 부를 정도.
‘그랬던 대표님이 달라지셨다.’
이유는 명확했다.
자신만을 믿게 해달라는 소원 때문이었다.
“플레이어의 힘도 사라진 마당에, 검은 낫을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뭐, 두려워서 그의 말을 듣던 건 아니지만요.”
“그렇죠.”
“전처럼 잡범들도 타깃으로 삼으세요. 그러면 견적이 나옵니까?”
“물론입니다, 대표님.”
“최대한 이른 시일 내로 준비해 주세요. 이러다 또 불면증이 도질지도 모르니까요.”
* * *
푸욱!
“허으으윽!”
사람은 한없이 연약한 존재다.
대표님이 범죄자를 죽이는 걸 볼 때면 그런 생각이 든다.
‘저깟 나이프 하나에 돼지처럼 죽어버리니.’
예전 같았으면 저런 나이프는 살에 박히지도 않았을 거다.
새삼 플레이어가 얼마나 강한 존재였는지 실감이 났다.
“뒤처리해 주세요.”
“네.”
수건으로 손을 닦으며 마경록이 물러서자, 안상철이 나섰다.
시체의 뒤처리는 항상 그의 몫이다.
묵묵히 창고의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마경록이 불렀다.
“안 실장.”
“예, 대표님.”
“이런 일도 이젠 지겹지 않습니까?”
“예?”
나도 모르게 반문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걸까?
저의를 모르겠다.
“저는 안 실장을 누구보다 믿고 있어요. 그래서 하는 말입니다만…… 회사의 대표가 되어보시는 건 어떻습니까?”
“예?”
“공동대표가 되자는 뜻입니다.”
갑자기 사업 제안이라니?
얼떨떨한 눈으로 안상철이 손사래를 쳤다.
“저는 됐습니다. 그런 거에 성미도 안 맞고 배워본 적도 없습니다.”
“성미야 해보기 전까진 모르는 거고, 회사 돌아가는 거야 차차 배우면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도 대표 자리는 좀…….”
“그럼 다른 하고 싶은 일은 없나요?”
“없습니다. 저는 오직 대표님을 지켜드리는 일 외엔 관심 없습니다.”
충견이 따로 없었지만, 마경록은 그리 만족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제 뒤치다꺼리나 하면서 개인 경호를 하는 걸로 만족하신다고요?”
“물론입니다.”
“저는 안 실장이 더 큰 일을 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 믿고 있었는데…… 사업에 관심이 없다니 유감이군요.”
실망을 안겨드린 건가?
아니다.
말은 그렇게 했을지언정, 대표님의 표정에 변함은 없었다.
“안 실장의 의견은 존중하겠습니다. 언제든 생각이 바뀌면 말씀하세요. 안 실장에겐 회사 자리도 물려줄 수 있으니.”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대표님.”
* * *
파이널 라운드 이후로, 세상은 많이도 달라졌다.
무너졌던 경제가 차츰 회복하기에 이르렀고, 그에 따라 마경록의 회사도 제 모습을 찾았다.
비전 컨설팅.
애초에 류민의 말만 듣고 만들었던 플플 마켓은 수요의 부족으로 망해버렸다.
‘정확히는 류민, 그자가 31%의 지분을 중도에 빼버린 탓이 컸지만.’
그 이후에 심기일전하여 만든 회사가 바로 [비전 컨설팅]이었다.
제2의 천마 컨설팅이라고나 할까?
익숙한 직종이기도 한데다 지금과 같은 취업난에 컨설팅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하지만 경제가 아무리 회복 중이라 해도 한 번 고꾸라진 회사를 키울 여력이 대표님에겐 없었다.
그렇기에 결정 내렸다.
“대표님. 전에 하신 제안 말입니다.”
“공동대표 말인가요?”
“예. 해보려고 합니다. 그렇게라도 해서 회사를 살릴 수 있다면.”
“안 실장이 도와준다면야 더할 나위 없이 든든하지요.”
씨익 웃은 마경록이 손을 내밀었다.
“이제부터 안 대표라 불러야겠군요.”
* * *
바지 사장일 뿐이었지만, 비전 컨설팅의 대표가 된 이후로 삶이 또 한 번 달라졌다.
경호와는 다른, 새로운 일을 배워야 했으며, 그건 이따금 안상철에게 스트레스를 줬다.
하지만 꾹 참고 열정적으로 일했다.
‘마 대표님의 곁을 지키는 것만으로는 도움을 줄 수 없다. 이제 흉흉함과는 거리가 먼 세상이고, 회사 사정상 어린아이의 도움이라도 필요한 실정이니.’
그것이 안상철이 고민 끝에 제안을 수락한 이유였지만, 그는 몰랐다.
자신이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줄은.
그로 인해 대표님 또한 곤란한 처지가 될 줄은.
“회사 주가가 바닥을 모르고 떨어지고 있습니다. 자격도 없는 경호원을 공동대표로 꽂는 바람에 생긴 일인 걸, 누구보다도 마 대표님이 잘 아실 겁니다.”
“고로, 저희 임원진은 더 이상 회사의 미래가 없다고 판단, 회사에서 사퇴하겠습니다.”
회사가 망해 버렸다.
안상철을 대표로 집어넣은, 마경록의 안일한 판단으로 인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