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363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외전 8화
8. 101회차의 민주리(中)
‘여, 여기가 어디지?’
주변을 살핀 민주리는 심히 당황했다.
한 점의 불빛도 없는 어두운 공간.
정신은 멀쩡한데 눈앞은 캄캄한 상황에 순간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나 설마…… 죽은 거야?’
인간인 이상 죽음은 누구나 두렵다.
하나, 민주리는 자신보다는 다른 걱정이 앞섰다.
‘아빠. 우리 아빠는……!’
자신이 죽으면 혼자 남겨진 아빠는 누가 챙긴단 말인가?
가뜩이나 아빠는 마음도 여린데.
‘내가 쓰러진 걸 알면 아마 펑펑 울고 있을 텐데…….’
그때 문득 드는 의문점.
‘지병도 없는 내가 왜 갑자기 쓰러진 거지?’
이유는 곧 밝혀졌다.
-인간들은 재밌군요. 자신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 줄도 모르고 새해를 축하한다니.
갑자기 TV처럼 영상 하나가 나타났다.
자연히 그쪽으로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저게 뭐야? 처, 천사?’
누가 봐도 아름다운 천사가 TV에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엔 타종 행사에 나선 수많은 사람이 보였고.
‘조금 전에 TV로 보던 그 장소잖아?’
집중해서 보고 있는데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퍼억!
-으아아아악!
-꺄아아악!
사람 머리가 폭죽처럼 터지자 근처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며 달아났다.
-하찮은 인간 주제에. 감히 고등한 내게 반말로 지껄이다니. 너희 인간들은 나한테 질문을 할 자격이 없어요. 건방지게 맞먹으려 들지 마세요. 저 인간처럼 머리가 터져 죽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이, 이게 무슨 상황이야? CG야? 영화야? 그것도 아님 꿈?’
이렇게 생생한 꿈을 꾼 적이 있었던가?
단 한 번도 없다.
-지금이 무슨 상황인지 의아하지요? 열등한 인간들이 뭘 알겠어요. 하나하나 쉽게 설명해 줄 테니 잘 들으세요.
천사는 게임에 대해 설명했다.
매달 1일이 되면 이계로 잡혀간다는 얼토당토않은 소리.
라운드마다 절반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런 소리를 들으면서도 민주리는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영혼처럼 모든 걸 볼 수 있는 상태가 된 자신부터가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으니까.
‘꿈이었으면 좋겠다. 꿈이었으면…….’
그러나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처럼 커스터마이징을 하는 공간에 끌려왔다.
[30초 이내로 시스템에 등록할 닉네임을 말해주십시오.] [제한 시간 내에 정하지 않을 경우, 자동으로 본명이 등록됩니다.]꿈이든 현실이든 뭐든.
민주리는 돌아가고 싶었다.
아버지를 혼자 놔둘 순 없었으니까.
‘라운드를 깨면 돌아갈 수 있다고 했지.’
살아서 돌아가야 한다.
그 어떤 상황에 놓이더라도.
[남은 시간 : 3초] [남은 시간 : 2초]“닉네임은 [민주주의]로 정할게.”
* * *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닉네임도 바꿨다.
그 사이 초원에서 천사가 나타났다.
아까 TV에서 봤던 천사와는 달랐다.
[호호호, 반가워요. 쓰레기 같은 인간들. 아닌 밤중에 개처럼 잡혀 오니 기분이 싱숭생숭하죠? 걱정 말아요. 1라운드는 그리 어려운 퀘스트가 아니랍니다. 시작하기 전에 인벤토리라고 속으로 말해보시겠어요?]인벤토리를 열었더니 안에 아이템이 있었다.
[랜덤 룬조각이에요. 1레벨 때만 쓸 수 있으니 지금 바로 사용하세요.]천사의 말대로 사람들이 아이템을 사용했다.
정말 랜덤으로 능력이 나오는지 탄식과 기쁨이 교차했다.
‘나도 얼른 써야겠어. 사용.’
[랜덤 룬조각을 사용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보호의 룬’이 나왔습니다!] [획득한 룬이 플레이어의 신체에 자동으로 각인됩니다!] [보호의 룬]-효과 : 반경 10m 안에 있는 플레이어 수만큼 보호막이 덧씌워진다(최대 10 중첩). 플레이어 한 명당 하나의 보호막만 얻을 수 있다.
설명을 읽어보니 애매하다.
‘좋은 건지 나쁜 건지 모르겠어.’
이해하긴 했지만, 보호막의 강도가 어떤지도 모른다.
직접 겪어봐야 성능을 확인할 수 있을 듯하다.
‘어쨌거나 사람들 곁에 있어야 좋다는 거지?’
최대한 많은 사람 곁에 붙어 있기로 했다.
무리 지어 다니면 생존율이 올라갈 거라는 건 다른 사람도 다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키야야약!”
“캬아아아!”
5만 마리의 고블린이 생성되고, 놈들이 떼거리로 달려들었을 땐.
“으아아아아!”
“도망쳐어어어!”
사람들은 저마다 도망가기 바빴다.
뭉쳐서 뭔가를 하려는 무리는 소수에 불과했다.
‘아! 그렇게 도망가 버리면……!’
민주리도 겁에 질려 도망칠까 하다가, 관뒀다.
자신의 룬 특성에 의하면 사람이 모인 곳으로 가야 유리하다.
‘차라리 무리가 있는 곳에 합류해야 해!’
마침 고블린을 상대하려고 뭉쳐 있는 무리가 보였고, 그곳에 빠르게 합류했다.
몰려오던 고블린이 앞줄과 붙은 것은 그때였다.
푹푹!
푹!
“아악!”
“아파아아!”
“사, 살려……줘.”
첫 열에 있던 사람 대다수가 단검에 찔려 죽었다.
한 번 찔리면 그나마 다행이다.
여기저기 수십 번을 찔리는 사람이 태반이었다.
칼을 든 고블린이 떼거리로 몰려드니 당연한 수순이었다.
‘무, 무기! 무기가 없으면 상대가 안 되는 싸움이야.’
아무리 어린아이 같은 체구라도 맨손으로 제압할 자신이 없었다.
사실 어린아이보단 늑대 같은 짐승으로 보는 게 더 적합했다.
고블린은 짐승처럼 몰려들었고 사람을 죽이는 데 혈안이 되어 있었으니까.
‘아! 있다.’
운 좋게도 몇 미터 앞에 고블린이 떨어트린 단검이 보였다.
바로 가서 주우려 했지만, 다른 사람이 가로채버렸다.
“아.”
즉시 눈길을 돌려 바닥에 떨어진 무기가 없나 살폈다.
나무 몽둥이가 있어 그걸로 골랐다.
사실 선택지가 없었다.
“죽어! 죽어, 이 새끼야!”
옆에서 고블린을 찌르는 남자가 보였다.
방금 단검을 가로채던 그 남자였다.
민주리도 질 새라 달려오던 고블린을 향해 몽둥이를 들었다.
후웅!
빗나갔다.
애초에 뭔가를 휘둘러보지도, 맞춰본 적도 없었기에 서툴렀다.
“키잇!”
고블린이 비웃음을 지으며 빈틈을 노리고 뛰어들었다.
날카로운 단검이 몸을 비집고 들어온다.
푹!
끔찍한 고통이 예상되는 상황이었지만, 고통은 없었다.
푹 소리는 옆 사람의 것이었다.
“아아으으…….”
아까 단검으로 열심히 고블린을 죽이던 남자가 칼에 찔렸다.
푹푹! 푹!
남자는 어느덧 축 늘어진 채 고블린들에게 도륙당하는 처지가 됐다.
그 사이, 민주리는 눈앞에 뜬 메시지에 주목했다.
[현재 중첩 중인 보호막 9/10] [현재 중첩 중인 보호막 8/10] [현재 중첩 중인 보호막 7/10]……
……
……
보호막이 줄어들고 있다.
방금 옆 사람이 죽어서가 아니다.
앞에 있는 고블린이 자신을 찌르고 있기 때문이었다.
캉! 캉!
“키익! 키익!”
녀석은 자신 앞에 생성된 반투명한 벽을 두드리고 있었다.
칼이 벽을 두들길수록 보호막의 수도 줄어들었다.
‘아, 안 돼.’
빠악!
정신 차린 민주리가 뒤늦게 고블린의 골통을 때렸다.
빡! 빡! 빠직!
한 번, 두 번, 세 번.
핏물이 바닥에 번지고 나서야 메시지가 떠올랐다.
[고블린을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4%] [골드 +10]‘하, 한 마리 잡았어.’
그사이 사람들이 움직이며 몰려들었다.
그때 메시지가 또 주르륵 올라왔다.
[현재 중첩 중인 보호막 10/10]3까지 줄었던 보호막이 어느덧 10까지 꽉 차버렸다.
그때 민주리는 깨달았다.
‘아, 이거…… 엄청 좋은 거였구나.’
생존을 보장해 주는 사기적인 룬임을.
* * *
고블린 100마리 잡기는 어렵지 않게 달성할 수 있었다.
보호의 룬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살았어. 나는 살았지만…….’
수천 명이 고블린에게 죽거나 소멸당해야 했다.
왠지 모를 죄책감을 안고서 현실로 돌아왔다.
“아…….”
“주, 주리야! 정신이 들어?”
“아……빠?”
아빠가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침대에 누워 있는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여긴…… 집이야?”
“그래. 집이야. 편의점에서 갑자기 쓰러진 너를 여기까지 데려왔단다.”
“아! 나 편의점에 있었지?”
다 기억 난다.
꿈이긴 해도.
“아빠, 나 이상한 꿈을 꿨는데…….”
꿈이라기엔 너무도 생생했지만 꿈으로 치부할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랬다간 제정신으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으니까.
이제 막 1라운드를 깼는데 20라운드를 무슨 수로 생존한단 말인가?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아빠가 한숨을 푹 쉬었다.
“꿈이…… 아닌 듯하구나.”
꿈이 아니라는 건 뉴스 속보를 통해 알 수 있었다.
기면증으로 쓰러진 18억 명의 사람들.
그중 절반만 생존했고 그 생존자에 자신도 포함되어 있었다.
‘꿈이…… 아니라고?’
꿈이 아니라는 건 켜지는 상태창이 증명해 주었다.
아빠도 딸이 살아 돌아온 건 기쁘지만 목숨이 저당 잡힌 상황인지라 마냥 웃지도 못했다.
새해가 왔지만, 기쁘지 않았다.
의사의 꿈도, 뭣도 전부 포기할 수밖에 없는, 국가적 재난이 찾아왔다.
그날 이후로, 민주리는 생존을 위해 이것저것 정보를 찾았다.
커뮤니티를 돌아다녔지만, 다음 라운드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 없었고, 온통 추측 글만 난무했다.
2라운드에 끌려가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불안은 점점 커져만 갔다.
‘괜찮아. 나한텐 보호의 룬이 있잖아.’
보호의 룬은 현실에서도 적용되었다.
플레이어가 많은 곳을 가면 자동으로 메시지가 떠올랐다.
10 중첩을 쌓기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민이는…… 어떻게 됐을까? 나처럼 1라운드는 통과했을까?’
자신이야 룬이 좋았던 탓에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류민은?
‘궁금한데 연락할 수단이 없네……. 방학이라 학교에 가도 볼 수 없고.’
혹시 몰라 그가 일하는 고깃집에 가봤지만 통 보이지 않았다.
항상 일하던 시간에 없으니 없던 불안이 생겼다.
‘설마 아니겠지…… 설마…….’
류민은 강하다.
일진들에게 당하면서도 꿋꿋하게 알바하는 그 집념과 끈기라면 뭘 해도 살아남으리라.
그렇게 애써 죽지 않았을 거라 합리화해 봐도, 자꾸만 나쁜 생각이 들었다.
‘죽었겠지……. 다른 사람들처럼.’
칼 든 고블린 앞에서 정신적 강함이 무슨 소용이겠는가?
‘아니, 확정 짓지 말자. 언젠가 만날 수 있을 거야. 살아 있다면.’
살아야 할 이유가 또 생겼다.
아버지를 위해서도 살아야 하지만, 류민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도 살아남을 것이다.
반드시 이 게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