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403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후일담 27화
27. 못다 한 말
서아린에게 있어 류민과 보냈던 시간은 행복 그 자체였다.
류민과 함께라면 항상 힘이 났고 무엇이든 헤쳐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류민이…….
“흐흐흑…….”
끝내 목숨을 잃었다.
의사의 말론 급작스러운 심장 발작으로 인한 사망이라고 했다.
“민아… 나 이제 어쩌지……? 너 없이 어떻게 살아가야 해……? 흐흑.”
서아린은 아직 류민을 보낼 준비가 안 됐다.
식물인간이었던 그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예전처럼 지낼 수 있을 거라 기대했었지만.
사망한 지금 모든 희망은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더 이상 서아린에게 남은 희망은 없었다.
절망만이 있을 뿐.
숨을 쉬지 않는 류민을 곁에 두고서 엉엉 우는 서아린을, 진짜 류민이 어둠 속에서 몰래 지켜봤다.
‘설마 이 세계의 내가 죽을 줄이야……. 기분 참 오묘하군.’
또 다른 내가 죽는 걸 보는 기분은 어떻게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당연하지만 좋은 감정도 아니었고.
다른 누구도 아닌 자신의 죽음이지 않은가?
‘이 세계에는 부모님이 없으니 원이가 내 장례를 치러주겠지.’
예상대로 장례식장에 가보니 원이가 상주로 서 있었다.
이 세계의 류원도 형의 죽음에 서아린 못지않게 슬퍼했다.
류민은 다른 게 아니라 녀석이 또 나쁜 마음을 먹을까, 그게 걱정이었다.
‘다른 세계선의 원이도 내가 죽은 걸 알고서 저렇게 슬퍼했었지……. 심지어는 나쁜 마음마저 먹었고.’
이곳의 류원도, 서아린도 절망적인 마음에 나쁜 선택을 하진 않을까?
우울해하는 속마음을 읽어보니 충분히 그럴 가능성이 있다.
오지랖인 줄은 알지만 류민은 서아린이 혼자 있을 때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가 목을 매는 꼴은 보고 싶지 않았으니까.
“서아린.”
“미, 민이? 어떻게……?”
“정신 차려라. 나다.”
“아…… 검은 낫 님이시구나.”
얼굴이 같다 보니 살아 돌아온 걸로 착각한 서아린이었다.
“이미 떠나신 줄 알았어요.”
“내가 죽었다는데 맘 편히 떠날 수가 있어야지. 네 상태도 걱정되고.”
“…….”
서아린은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검은 낫에게서 류민의 모습을 보았다.
함께 영원히 행복하게 잘 살자고 약속했던 류민의 모습을.
“검은 낫 님. 아니, 민아.”
“…….”
“네가 떠날 때 옆을 지켜주지 못해서 정말 미안해. 혼자서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하면 자꾸만 눈물이 나와.”
서아린은 대뜸 류민에게 생전에 못다 한 말들을 털어놓았다.
“나 바보 같지? 하지만 오늘만 울고 내일부턴 울지 않을게. 이렇게 울기만 하면 위에서도 네가 걱정할 테니까…….”
서아린의 말을 중단시킬 수 있었으나, 류민은 그러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그녀가 하는 말을 들어주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속마음을 읽지 않아도 그 정도의 눈치와 배려는 있었다.
“그럼, 떠난 곳에서도… 행복해야 해. 안녕….”
“…….”
“죄, 죄송해요, 검은 낫 님. 제가 이상한 말을 해서 당황스러웠죠?”
“아니, 괜찮다.”
“검은 낫 님을 보면 저와 함께했던 류민이 떠올라서요……. 마지막으로 인사 정도는 하고 싶었… 흐흑.”
또다시 눈물이 터진 서아린을 류민은 가만히 지켜봤다.
하지만 울음을 그칠 새가 없자 등에 손을 얹었다.
“그만 울어라. 네 마음은 이해하니까.”
“흐, 흐흐흑…….”
그래도 그칠 기미가 안 보이자, 하는 수 없었다.
류민은 서아린을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주었다.
“그래. 오늘만 울어라. 오늘만.”
“흑, 흐흑!”
한동안 서아린은 류민의 품에 안겨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다.
* * *
“…….”
“…….”
서아린은 쭈뼛거리며 류민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다.
그의 품에 안겨 엉엉 울었던 1시간 전의 자신을 떠올리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음… 검은 낫 님. 아까 일은 정말 죄송해요. 감정이 북받쳐서 저도 모르게…….”
“실컷 울었으면 됐다. 그걸로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면.”
“…….”
서아린이 그제야 검은 낫을 똑바로 바라봤다.
“고마워요.”
“이제 정말 시간이 없으니 떠나겠다.”
“다른 세계선으로 말이죠?”
“그래. 여기는 더 있을 이유가 없으니까. 아! 가기 전에 원이 얼굴 좀 보고 가야겠군.”
“원이가 걱정되어서 그러시는 거죠?”
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 죽음을 누구보다 슬퍼하고 있을 사람이 그 녀석이니까. 다른 세계선에서는 심지어 내가 죽었다고 따라 죽으려고 했다니까?”
“저, 정말요?”
“그래. 그러니 떠나기 전에 만나서 한마디 하려 한다. 혼란스러워하겠지만 자살을 막을 수 있다면 싸게 먹히는 셈이지. 그래서 말인데 너도 나 없는 사이에 원이 좀 잘 챙겨주었으면 한다. 녀석이 다른 마음 품지 못하게.”
“그럴게요. 걱정 마시고 원이는 저한테 맡기세요.”
“그리 말해주니 마음이 한결 놓이는군.”
씩 웃는 류민의 미소에 흠칫 놀란 서아린이 시선을 돌렸다.
눈앞에 있는 류민을 다른 류민이라고 세뇌해 봤지만 잘되지 않는다.
“그럼, 이만 가지.”
“아, 네…. 언제 한번 또 들러주세요. 꼭이요.”
“그러지.”
* * *
류민은 세계선 이동을 하기 전, 류원을 만났다.
다행히도 녀석은 이전 세계선처럼 목을 매진 않았다.
그저 슬픔에 잠겨 있을 뿐.
“혀, 형? 형이 어떻게……?”
“원아. 형 없는 동안 혹시라도 나쁜 마음 먹지 말고 잘 지내고 있어라. 위에서 지켜보고 있을 테니까 허튼짓은 하지 마. 형 마음 찢어진다. 알았어?”
“형…….”
“떠나기 전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러 온 거야. 그러니 힘내라. 언젠가 다시 만날 일이 있을 테니 우울해하지도 말고. 알았지?”
“아, 알았어. 형.”
“대답 들었으니, 형은 간다.”
그 말을 끝으로 류민은 홀연히 사라졌다.
아니, 사라지는 척을 했다.
마치 류원이 환영을 본 것처럼.
‘이건 뭐, 귀신 노릇을 하는 것도 아니고.’
동생 눈엔 자신이 귀신처럼 보이긴 하리라.
다른 세계선에서 왔다고는 말하지 않았으니까.
‘서아린도 원이를 챙겨준다고 했으니 이쪽 세계선의 원이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
한시름 놓은 류민은 이제 다음 세계선을 물색했다.
‘어디로 가볼까? 우선은 지인들이 있는 세계선이 좋겠지?’
누구에게 갈지 고민하다가 한 사람을 떠올렸다.
그리고 시간의 권능을 사용해 그의 세계선으로 이동했다.
한 가지 의문을 느끼며.
‘그런데…… 왜 내 힘이 더 강해진 것 같지? 기분 탓인가?’
* * *
생존게임이 끝난 이후로.
망할 것 같던 세상은 가까스로 모습을 유지했다.
경제활동을 시작하는 연령대인 15~29세를 잃긴 했으나 아직 지구에는 62억의 인구가 남아 있다.
그리고 아래 세대가 차근차근 올라오며 비어 있는 20대 라인을 채우기 시작했고.
“나도 이제 30대 중반인가…?”
경제적 활동을 하기에 모자람이 없는 나이였으나 안상철에겐 일자리가 없었다.
다름 아니라 자신 때문에 대표님이 쌓아 올린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기에.
“죄송합니다. 대표님…….”
비전 컨설팅.
과거 천마 컨설팅의 노하우를 담아 새롭게 만든 마경록 대표의 회사.
파이팅 넘치게 차린 회사였으나 그것도 잠시.
회사는 마경록이 자신을 공동대표 자리에 앉히면서 무너지기 시작했다.
임원진의 반발과 대거 퇴사.
내부 분열과 경영 악화로 어긋난 회사가 제대로 돌아갈 리는 없었다.
결과는?
큰 폭으로 주가가 하락하며 결국 망해버렸다.
모든 게 자신 때문임을 알기에 안상철은 마경록에게 항상 미안했다.
“하아… 경영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르는 나 같은 놈이 무슨 자신감으로 그 제안을 받아들인 건지…….”
마경록 대표님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 없다는 이유로, 안상철은 공동대표를 하자는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믿음의 결과는 회사의 몰락을 가져왔고, 결국 자신의 선택이 마경록까지 끌어내리는 최악의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다.
‘애초에 그런 소원을 비는 게 아니었나……?’
안상철이 빈 소원은 마경록이 자신을 향해 절대적인 믿음을 보이도록 하는 것.
‘검은 낫에게 맹목적인 믿음을 보이는 것 같아서 지른 소원이었는데…….’
이런 결과가 도출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회사가 망했어도 소원은 여전히 유효한지.
“안 실장. 너무 자책하지 마세요. 어차피 제가 했던 제안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상황이 이렇게 되었어도 저는 그때의 선택을 후회하지 않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저는 안 실장을 믿어요.”
마경록은 안상철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을 보여왔다.
‘기분은 좋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표님을 곤란에 빠트리고 말았어.’
겉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마경록이 요새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걸 안상철은 잘 안다.
그 증거로 살인을 저지르는 날이 이전보다 몇 배나 늘었다.
흉악범이든 잡범이든 가리지 않고 단죄했고 그때마다 안상철이 도와줬다.
“안 실장. 시체 좀 치워주세요. 그동안 저는 바람 좀 쐬고 있겠습니다.”
“예. 대표님.”
“이젠 대표도 아닌데 대표란 소리 좀 그만하고요.”
마경록은 그리 말하며 창고 밖으로 나갔다.
아마 새벽 달빛을 감상하러 가는 것이리라.
안상철은 마경록이 만든 시체를 보았다.
수십 번의 칼질로 숨통이 끊긴 범죄자의 시신이었다.
‘원래 대표님은 단 한 번의 칼질로 목숨을 앗아가시지. 개인적인 원한은 없다는 듯.’
그러나 요즘 들어 시체들을 보면 수십 방의 자상이 남아 있었다.
내색은 안 해도 마경록이 그만큼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증거였다.
‘나에 대한 믿음은 올라갔지만, 결과적으로 대표님을 불행하게 만들었어. 이게 다 나 때문이야.’
아니, 어떻게 보면 검은 낫 때문이다.
자신이 이런 소원을 빈 것도 검은 낫 때문이 아니던가?
검은 낫에 대한 분노와 대표님에 대한 죄스러운 마음을 동시에 느끼며, 묵묵히 시체를 치우는 와중이었다.
창고 밖에서 소란이 일었다.
‘무슨 일이지?’
궁금한 마음에 밖으로 나가봤다.
그리고 이내.
“대, 대표님?”
안상철은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