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418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후일담 42화
42. 안정의 씨앗
조중식을 죽이고 난 뒤, 류민은 하늘을 날았다.
그리고 세상을 내려다보았다.
빌딩 숲 아래로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보인다.
어둠에 몸을 숨긴 채 가까이 접근해 생각을 읽어봤다.
‘생존게임에 대한 기억이 사라졌어.’
이 사람도, 저 사람도.
마주하는 모든 사람의 속마음 속에 혼란스럽던 기억들이 사라졌다.
‘플레이어고 뭐고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처음 그대로였다.
류민이 102번째 세계선을 만들었던 그대로.
‘바이러스처럼 잠식하던 기억들이 원래의 주인에게로 전이되었어.’
이제 세상은 혼란에서 벗어나 안정을 되찾았다.
붕괴하였던 차원도 모두 원상 복구되었고.
‘원점으로 돌아온 건가…? 데오란트가 개입하기 전의 그때로?’
그런 생각이 들었으나 류민은 곧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때와는 달라. 지금 나한텐 차원 관리라는 능력이 생겼잖아?’
달라진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류민의 마음가짐 또한 달라졌다.
‘그동안 나는 내 미래만을 생각했어. 지나온 과거 따윈 돌이켜보지도 않았고.’
과거에 실패했던 회차.
그곳의 사람들은 암울한 기억을 지닌 채 살아갔다.
생존게임에서 패하고 18억 명의 인구 소실을 겪은 채로 살아가는 사람들.
당연히 정상일 리가 없다.
그건 파이널 라운드까지 극복했던 101회차의 세계선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 라운드까지 살아남은 건 나 포함 97명뿐이었어. 뭐가 됐든 인류는 실패한 셈이지.’
생존게임에서 살아남으려 혼자서만 발버둥 쳤지, 지나온 세계선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신경을 쓰지 못했다.
카오스와 가이아를 무너뜨린 뒤에는 방치하기까지 했고.
‘이기적이었어. 나 혼자만 잘살아 보자고 102번째 세계선을 만들었지. 다른 세계선은 방치한 채…….’
각자 소원을 이루고 잘 살겠거니 내버려 두었다.
그것이 존중이고 배려라 생각했기에.
하지만 소원을 이룬 회차는 그렇다 치고, 자신이 실패했던 회차는?
0회차부터 100회차까지의 사람들은?
혼자 남겨진 원이와 인류의 패배를 겪은 사람들은?
모두 구했나?
행복을 얻었나?
‘아니. 나는 그저 방치했을 뿐이야.’
그동안 세계선을 돌아다니면서 류민은 깨달았다.
너무 102번째 세계선에만 신경을 쏟았음을.
다른 세계선의 사람들은 관심도 두지 않았음을.
‘나는 이런 결과를 바라지 않았어. 모두가 행복하길 바랐지.’
마음 같아선 모든 세계선을 생존게임이 일어나기 전으로 회귀시켜 버리고 싶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그건 불가능한 이야기.
102번째 세계선처럼 이상적인 세계로 고치기도 사실상 어렵다.
결국엔 또 다른 세계선이 늘어날 뿐이니.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하나야. 더 이상 사람들이 고통받지 않도록 신경 써주는 것.’
더는 지나온 세계선을 방치하지 않겠다.
세계 곳곳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최대한 도우리라.
‘할 수 있어. 데오란트에게서 얻은 이 차원 관리 능력이라면.’
류민은 이 능력을 이용해 만들 생각이었다.
자신만의 새로운 호스트와 시드를.
* * *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는 법.
사람들은 밝은 면만 보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누구는 풍족한 음식을 먹고 포만감을 느끼는 반면, 지구 반대편에선 기아로 인해 굶어 죽는 아이들이 속출한다.
멀리 지구 반대편까지 볼 것도 없다.
대한민국이란 작은 땅덩어리 안에서도 명암은 존재한다.
“하악, 학…….”
가로등을 등대 삼아 뛰어가던 여성이 순간 막다른 골목에 막혔다.
“흐흐, 이제 도망갈 데가 없지?”
“그만 포기하고 이리 와. 괜히 힘 빼지 말고.”
두 남자가 다가오자, 여성은 어깨에 걸친 핸드백을 내던졌다.
“가방 안에 돈 있어요. 전부 가져가세요. 신고 안 할게요.”
하지만 남자들은 가방 따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기분 나쁘다는 듯 미간을 구겼다.
“X발, 이거나 먹고 떨어져라, 이거냐?”
“갑자기 기분 확 나쁘네?”
분위기를 직감했는지 여성이 털썩 주저앉아 두 손을 비볐다.
“제발, 살려주세요. 이렇게 빌게요…….”
“이년 봐라? 과민반응 쩌네. 누가 죽인대?”
“같이 놀자고 말 걸었더니 도망가기나 하고 말이야.”
“가, 강제로 차에 태우려고 했잖아요.”
“그야 집까지 태워주려고 그런 거지.”
“지금 새벽 4시라고. 아가씨 혼자 다니기엔 위험한 시간이잖아.”
하지만 누가 봐도 위험해 보이는 건 남성들이었다.
이 상황을 즐기듯 실실거리며 웃는 모습이 그 증거였다.
“괘, 괜찮아요. 저 혼자 걸어갈게요. 가게 해주세요…….”
“야. 말로 해선 안 듣는다. 누가 보기 전에 얼른 태우자.”
“어.”
합의한 두 남성이 여성의 팔다리를 나눠서 들었다.
“꺄아악! 사람 살려! 사람…….”
퍼억!
주먹으로 얼굴을 가격하자 여성이 기절했다.
“X발 년이 시끄럽게.”
“야, 빨리 들어. 무겁다.”
새벽에 혼자 걷던 여성을 노리던 2인조는 순조롭게 차에 태울 수 있었다.
“흐흐, 성공이다, 성공! 야, 이제 출발하자.”
“잠깐. 아까 가방 안에 돈 있다고 했잖아. 그것도 챙길까?”
“오케이. 내가 금방 가져올게.”
동료가 가방을 가지러 간 사이, 운전대를 잡은 남성은 여성이 깨는지를 감시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동료는 돌아오지 않았다.
“금방 온다던 새끼가 왜 이리 안 와? 길도 어렵지 않은데.”
보는 사람은 없다지만 그래도 시간 끌면 좋을 것 없는 상황.
전화를 걸어봤으나 받지도 않는다.
“이 새끼가 진짜… 내가 나서게 만드네, 꼭.”
여성이 잘 자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 남성이 기어코 차에서 내렸다.
혹시나 동료가 길을 잃었나 싶어서였다.
아까 가방이 있던 곳으로 찾아가 보니 쓰러진 동료가 보였다.
“야! 왜 그래? 괜찮아?”
남성이 놀라며 달려갔지만 이내 얼굴을 보곤 식겁했다.
“히익! X이발!”
동료의 얼굴이 미라처럼 말라비틀어져 있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팔다리도 뼈만 남긴 시체처럼 앙상하기 그지없다.
“뭐, 뭐야. 대체 무슨 상황…….”
그때 남성의 두 눈이 커졌다.
땅 아래에서 사람 형상의 그림자가 솟아올랐다.
“헉! 귀….”
남성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쫘악 찢어진 손아귀가 남성의 머리를 한 손에 쥐었기에.
쭈아아아악-
“끄, 끄허억….”
급속도로 피부가 말라비틀어진 남성이 털썩 쓰러졌다.
동료 옆에서 사이좋게.
* * *
호스트가 생체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모습을, 하늘 위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었다.
통솔자인 시드 이스가리옷이었다.
‘음, 제대로 빨아들였군. 창조주님이 말씀하신 조건에도 부합하고.’
실수하지 않고 침착하게, 가방을 미끼로 범죄자들을 끌어모은 호스트를 보며, 이스가리옷이 감탄했다.
‘호스트의 지능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다. 이 사실을 창조주님이 알면 기뻐하시겠어. 후후.’
검은 형상이 입꼬리를 찢어 웃는 모습은 섬뜩하기 그지없었다.
이스가리옷은 다른 나라의 호스트를 감시하러 가기 전에, 보고부터 올리기로 했다.
-창조주님? 창조주님?
생체 신호를 퍼트리며 텔레파시를 시전하자 곧 응답이 들어왔다.
-낯간지럽게 뭔 창조주야. 그냥 검은 낫이라고 부르라 했잖아.
-아… 그럴까요? 검은 낫님?
-무슨 일인데 이스가리옷.
-다름이 아니라 호스트에 대해 보고드릴 게 있어서 말입니다.
-뭔데.
이스가리옷은 자신이 본 상황을 가감 없이 보고했다.
-조금 전에 귀가하던 여성을 남성 둘이 납치하려 했는데요, 지켜보던 호스트가 응징했는데 아무래도 지능이 더 올라간 것 같습니다. 범죄자를 유인하기 위해 침착하게 기다릴 줄도 알더라니까요?
-그랬어? 이거 내 생각보다 더 잘 만들어졌네.
-예. 벌레들을 퇴치하면서 나름대로 학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스스로 판단할 줄도 알아야 해서 만들 때 지능을 어느 정도 남겼으니까.
-역시 창조주님… 아니, 검은 낫님은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런 존재를 다 만들어내실 생각을…….
-기습 숭배는 됐고, 계속해서 지켜봐. 호스트가 확실히 선과 악을 구분하는지, 행여나 잘못된 판단을 내려서 죄 없는 사람을 죽이진 않는지.
-알겠습니다. 분부대로 지켜보겠습니다.
-어. 그럼, 수고.
* * *
차원 관리 기능 중에는 [창조물 배양하기]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명령을 듣는 자신만의 창조물을 만들어내는 것인데 호스트와 시드가 그랬다.
‘하지만 데오란트가 만든 것과 내가 만든 창조물 간에는 차이가 있지.’
데오란트의 호스트와 시드는 차원의 붕괴를 목적으로 하는 반면, 류민의 호스트와 시드는 차원의 안정을 목적으로 한다.
이름하여 붕괴의 씨앗이 아닌 안정의 씨앗.
세상을 안정시키기 위해서라면 어떤 일이든 하는 것이 류민이 만든 호스트와 시드의 목적이었다.
‘얼개는 얼추 비슷해. 호스트 300마리를 나라마다 풀어놓는다. 그리고 그들을 관리하는 시드 12마리 또한.’
호스트에게는 어느 정도 지성을 부여했다.
스스로 선과 악을 판단 내릴 지능 정도는 있어야 했으므로.
‘세상을 좀먹는 악한 자라고 판단되면 생체 에너지를 흡수해서 응징한다. 지능 높은 시드들은 그 모습을 지켜본 뒤 나에게 보고하고.’
조금 전에도 시드 이스가리옷의 보고가 들어왔었다.
호스트가 아주 능숙하게 범죄자 사냥을 마쳤다고.
‘세상엔 죽여야 할 쓰레기들이 많지. 호스트와 시드는 이들을 정리하는 청소부 역할을 할 거야.’
자신의 세계선만이 아니었다.
펼쳐져 있는 모든 차원마다 호스트와 시드를 배치했다.
더 이상 방치하지 않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결과가 바로 이러한 창조물들이었다.
‘모든 차원을 생존게임이 없던 시절로 되돌릴 수는 없어. 하지만 세상을 이롭게 만들 수는 있지.’
모든 범죄를 예방할 순 없겠으나, 호스트와 시드가 없는 것보단 훨씬 나을 것이다.
세상은 점점 더 나은 쪽으로 변화할 테고.
필요 없는 차원을 붕괴시키려는 데오란트와는 확연히 다른 가치관이었다.
‘나는 어떠한 차원도 버리지 않을 거야.’
그런 의미에서 류민은 진정한 차원의 신이었다.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