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424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후일담 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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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이 만든 호스트와 시드를 전 차원에 뿌려놓은 직후.
류민은 102번째 세계선으로 돌아왔다.
다름 아닌 집으로.
‘차원의 신도 잡아두었고, 다른 세계선이야 팬텀들이 알아서 할 테고. 더는 신경 쓸 일이 없네.’
이제는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야 할 때.
일주일 만에 돌아온 류민을 가족들이 반겼다.
“민아. 여행은 잘 다녀왔니?”
“네. 여기저기 좋은 구경 많이 했어요.”
“형! 사진은 찍어왔어?”
“응. 여기.”
류민은 가족들에게 미리 찍은 여행 사진들을 보여주며 알리바이를 확보했다.
실은 차원의 신을 막기 위한 갖은 고행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보다 이쪽 세계선의 시간으론 일주일밖에 안 지났네?’
수십 또는 수백 개의 세계선을 돌아다니며 쓴 시간만 합쳐도 몇 달 이상은 걸릴 터였다.
그런 노력이 이쪽 세계에선 고작 일주일로 줄어들었다는 점이 괜히 억울했다.
‘그건 그렇고 사전에 여행 간다고 말해놓길 잘했어. 안 그랬으면 납득시키기 어려웠겠지.’
가족들의 생각을 읽어보니 역시나 기억의 주입은 사라진 상태였다.
가족만이 아니라 당장 밖에 나가서 사람들의 속내를 읽어봐도 마찬가지였다.
혼란을 겪던 세상은 이제 좀 잠잠해졌다.
더 이상 기억의 충돌로 자신을 의심하거나 정신병자라며 자학하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다 해도 여파는 남아 있지만.’
시간을 돌린 것이 아니었기에 매스컴이나 인터넷 글들을 통해 혼란스럽던 시기의 증거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물론 사람들은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그런 글을 썼는지 알지 못했고 기억하지도 못했다.
아무리 애써도 [생존게임], [플레이어], [라운드] 같은 단어는 떠올릴 수 없었으니까.
‘그래도 그때의 감정은 남아 있어서 여전히 불안해하는 게 사실이야.’
그렇다 해도 문제는 없다.
나라마다 풀어놓은 팬텀들이 세상을 지킬 테니까.
여기뿐만 아니라 관리하는 모든 세계선들을.
‘이제 남은 차원을 이따금 관리하면서 편하게 여생을 살면 되겠…….’
그때 류민의 핸드폰이 부르르 떨렸다.
[민주리 : 민아, 어디야? 집이야?] [민주리 : 급히 할 말이 있는데 지금 만날 수 있을까?] [민주리 : 전화로는 좀 그렇고 만나서 이야기해야 해. 꼭!]뭔 일이길래 폭풍 문자를 보내는 걸까?
류민은 의아해하면서도 답장을 보냈다.
[류민 : 그래. 어디서 볼까?]약속 장소를 잡은 뒤 곧바로 나갈 채비를 했다.
“형, 어디 가?”
“주리 만나러.”
“주리 누나? 그 누나는 왜?”
“몰라. 급한 일이 있다네.”
류민은 그 말만 남기고 집을 나섰다.
류원은 현관 앞에서 형의 말을 곱씹었다.
“급한 일? 급한 일이 뭐길래 형을 부르지? 아무래도 수상한데…….”
이때 류원은 직감했다.
어쩌면 주리 누나가 형을 좋아하는 게 아닐까 하고.
* * *
류원의 직감은 들어맞았다.
“민아. 너한테 할 말 있어.”
“…….”
류민은 마주 앉은 민주리가 아직 본론을 꺼내지 않았는데도 무슨 말을 할지 알았다.
저도 모르게 속마음의 룬으로 읽어버렸으니까.
‘이러려고 날 불러낸 거라고?’
마음의 준비를 하기도 전에 민주리가 입을 열었다.
“나 너 좋아해.”
“…….”
용기 내어 고백했으나 류민은 여전히 무반응.
민주리의 안색이 새빨개졌다.
하지만 이미 던진 말이라 어떻게 주워 담을 수도 없었다.
그저 밀고 나가는 수밖에.
“조, 좋아한 지는 얼마 안 됐어. 1년 정도? 그래도 나한텐 네가 첫사랑이고 진심으로 좋아해. 그, 그러니까 우리 사….”
“그러자.”
“귀… 응?”
“사귀자는 말이잖아. 그러자고.”
예상과 다른 쿨한 수락.
하지만 민주리를 진짜로 놀라게 한 발언은 따로 있었다.
“아니면 결혼 먼저 해도 좋고.”
“으, 으에? 겨, 결혼?”
민주리의 소리가 컸는지, 카페 안 사람들의 시선이 모였다.
“목소리가 너무 커.”
“미, 미안.”
“나한테 미안할 건 없는데.”
“아, 아니, 그보다 무슨 소리야? 결혼… 이라니? 내가 잘못 들었나?”
류민은 태연한 얼굴로 말했다.
“방금 들은 대로야. 연애하면서 시간 버리지 말고 결혼부터 하자는 소리지.”
“지, 진심이야?”
“응.”
한없이 진지한 표정.
누가 봐도 장난으로 한 말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이런 걸로 장난칠 성격도 아니었고.
민주리가 조심스레 물었다.
“갑자기 왜 결혼하자는 건지… 알 수 있을까?”
“연애하면서 간 보는 건 싫어서 그래. 어차피 나도 너한테 마음이 있고 너도 그렇잖아?”
“나, 나한테 마음이 있어?”
“물론이지.”
그동안 표현은 안 했지만, 류민은 민주리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는 아니었다.
예전엔 그저 친구로만 생각했었으니.
‘하지만 지금은 예전과는 다르지.’
1라운드부터 파이널 라운드까지.
100회차, 101회차를 따지면 함께 고난을 헤쳐온 세월만 햇수로 4년이다.
그 가운데 누구보다 가까이하고, 누구보다 많은 시간을 보낸 게 민주리였고.
‘동갑이라서 더 친해졌고 편했던 게 사실이야.’
특히 민주리가 자신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얼마나 진심인지 속마음의 룬으로 전부 파악하고 있었기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진심은 그만큼 강력한 법이다.
“솔직히 살면서 누군가를 사귈 수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어. 그럴만한 여유도 없었고.”
사실이었다.
생존게임에 벗어나기 급급한 마당에 연애할 심적 여유가 어디 있으랴?
“하지만 지금은 달라. 상황이 안정되었고, 나도 이젠 가정을 꾸리고 정착하면서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싶어. 가능하면 내가 좋아하는 너와 함께.”
“…….”
류민의 고백.
평소라면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였겠지만, 민주리는 똑바로 바라봤다.
류민의 말이 진심인지 아닌지 파악하기 위해.
‘진심이야.’
그의 눈빛에서 진심을 읽은 민주리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미소 지었다.
서로의 마음이 통했다는 점에서 안도감이 올라왔다.
“너도 날 좋아하고 있었다니…… 짝사랑이 아니라 다행이야.”
해맑게 미소 짓던 민주리가 돌연 결연한 표정을 지었다.
“나도 결정했어.”
“뭘?”
“너랑 결혼할래. 연애 없이.”
아버지 민도훈이 들었으면 기함했을 법한 발언.
“후회하지 않을 자신 있어?”
류민이 겁주듯 물었으나 민주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고하다 못해 단호박 같은 눈빛이었다.
“후회하지 않아. 네가 먼저 프러포즈했으니 받아들여야지.”
“이게 프러포즈였나…?”
“프러포즈지. 먼저 결혼하자고 했잖아?”
장난스럽게 웃던 민주리였으나 그것도 잠시.
움찔-
갑자기 류민이 자신의 손을 잡는다.
“이 손가락에 반지가 있어야 프러포즈지.”
“그, 그런…가?”
“기다려 봐. 조만간 커다란 다이아로 하나 끼워줄 테니까.”
남자답게 말하는 류민의 모습에 민주리는 가슴이 콩닥거려 제대로 쳐다볼 수도 없었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얼굴이 붉어졌다.
“그나저나 급한 일이란 게 이거였어?”
“어? 으응… 지금 빨리 고백하지 않으면 앞으로 평생 할 수 없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들어서…….”
그 말을 들은 류민의 눈이 게슴츠레해졌다.
‘생존게임에 대한 두려움이 아직 남아 있는 건가?’
사람들에겐 아직 기억 주입의 여파가 남아 있었다.
그건 민주리도 마찬가지였던 모양.
또다시 생존게임이 일어나서 갈라지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
그 때문에 류민을 찾아와 급하게 고백한 것이었다.
물론 기억이 사라진 지금이야 생존게임에 대해선 떠올릴 수 없었지만, 그때의 불안했던 감정만은 남아 있는 민주리였다.
‘이거 결혼하기 전에 확실히 해둬야겠는데?’
류민이 민주리를 향해 자못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주리야.”
“응?”
“결혼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뭐라고 생각해?”
“으음… 신뢰?”
“그래. 신뢰지? 나도 그렇게 생각하거든? 부부간엔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말이야.”
“응. 나도 같은 생각이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우리가 결혼하기 전에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어.”
“문제…?”
“음… 그게…….”
웬일로 뜸을 들이는 걸까?
민주리는 궁금하면서도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나에겐 비밀이 있거든. 믿기 힘들 정도로 커다란 비밀이.”
“비밀? 뭔데 그래?”
“네가 듣고 나서 충격받을 수도 있어.”
“괜찮아. 막 변태스러운 것만 아니면.”
장난스럽게 말했으나 류민은 표정 변화 없이 진지했다.
덩달아 민주리도 진지해졌고.
“나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달라. 흔히 말하는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
“초…능력?”
예상의 범주를 아득히 넘어가는 발언에 민주리가 잠시 벙쪘다.
그 모습을 본 류민은 단순히 말로는 납득시키기 어렵겠다는 판단을 내렸다.
“내가 어떻게 초능력을 얻었는지 알고 싶어?”
“응.”
“그러면 공유시켜 줄게. 내가 겪은 모든 일에 대한 기억을.”
* * *
결혼은 서로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다.
그 탓에 류민은 비밀을 밝히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까지고 내 능력을 숨길 순 없으니까.’
가족한텐 숨기더라도 민주리에겐 숨길 수 없다.
앞으로 한 지붕 아래에서 수십 년간 살아갈 동반자에게 나에 대한 진실을 숨긴다?
평생 떠안고 살아갈 자신도 없거니와 죄책감이 들 수밖에 없다.
본모습을 숨기고서 하는 결혼은 사기 결혼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러니 민주리는 알아야 할 필요가 있어. 나에 대한 모든 것을.’
그랬기에 류민은 민주리에게 기억을 공유시켜 줬다.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어쩌면 충격받고 쓰러질 수도 있어. 아니면 나를 괴물 보듯 하거나.’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일을 진행했다.
방법은 간단했다.
창조의 권능으로 다른 평행세계 민주리의 기억을 그대로 복사한다.
그리고 이쪽의 민주리에게 기억을 주입한다.
한마디로 한 대상에게만 시행하는 기억 주입 시술.
‘과연 나에 대한 모든 걸 알고도 결혼을 받아들일까?’
류민은 기억을 주입한 뒤 잠자코 민주리를 바라봤다.
어떤 반응을 보일진 모르지만, 그녀가 원한 일이기에 진행했다.
여차하면 주입된 기억을 다시 삭제시킬 수도 있는 거였으니까.
“아…….”
잠시 허공을 보며 혼란스러워하던 민주리.
들이닥친 기억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듯 보였으나 곧 안정을 되찾았다.
모든 기억을 받아들이고 이해한 것이다.
“이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고?”
류민은 끄덕였다.
지금의 민주리는 조금 전에 알던 민주리가 아니었다.
자신처럼 평행세계의 기억과 현재의 기억을 모두 가진.
유일한 102번째 세계선의 민주리였다.
“이제 믿겠어? 내가 무슨 능력을 가졌고, 그동안 무슨 일을 했는지.”
민주리가 말없이 끄덕거렸다.
“이런 나와 결혼할 수 있겠어?”
류민의 질문에 민주리는 고개를 들었다.
애초에 의미 없는 질문이었다.
이러나저러나 민주리는 류민을 사랑했으니까.
“결혼할래. 검은 낫이랑.”
둘의 결혼은 그렇게 성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