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5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5화
5. 천사의 관심
“쩌, 쩐다…….”
“저 사람 뭐야? 엄청나게 잘 싸우는데?”
“검은 낫? 닉네임도 간지나게 지었네.”
류민을 보며 입을 벌리던 사람들이 이내 긴장한 눈으로 시선을 돌렸다.
감탄만 하고 있기에는 상황이 촉박했다.
어느새 자신들 앞에도 고블린들이 다가왔으니까.
‘하, 할 수 있을 거야. 게임에서도 고블린은 X밥이잖아?’
‘어차피 이건 현실이 아니야. 잘 만들어진 가상현실게임이라고.’
‘저 사람도 혼자서 수십 마리째 죽이고 있잖아? 막상 상대해 보면 별거 아닐 거야.’
류민의 학살을 보고 자신감을 얻은 걸까?
어느새 사람들의 눈빛에서 두려움은 사라진 상태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푹- 푹- 푹-!
“아아아악!”
“아, 아파!”
우르르 몰려온 고블린들에게 단검을 찔리자, 사람들의 입에선 새된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그만해! 진짜 아프다고!”
“야 이, 괴물 새끼들아!”
“흐아악! 내 팔! 내 팔!”
어린애나 다름없다고 만만하게 보던 사람들이 애처럼 울부짖었다.
“사, 살려줘!”
“사람 살려! 사람 살려!”
“이, 이건 현실이 아니야. 현실이 아니…… 커억!”
몽둥이에 맞고 기절하는 사람.
단검에 찔려 자리에 주저앉는 사람.
도망치다가 밀려 넘어지는 사람.
여기저기 밟혀서 웅크리는 사람.
그런 사람들만 골라서 칼침을 놓는 고블린 등.
아비규환이 따로 없는 상황에서 더 이상 게임이라고 착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솔직히 그럴 정신도 없었다.
사람들이 머릿속에 떠올린 생각은 오직 하나.
생존.
어떻게 해서든 살아야 한다는 생존 본능이 머리를 지배했다.
그래서일까?
“죽어! 죽어, 이 괴물 새끼들아!”
도망치는 사람도 많았지만 맞서 싸우는 사람도 종종 보였다.
고블린이 코앞까지 오자 어쩔 수 없이 싸움을 택한 사람들이었다.
퍽- 퍽!
“끼에엑!”
죽기 살기로 주먹을 휘두르자 고블린을 기절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뿐.
죽이는 건 별개의 일이었다.
조그만 동물도 죽여본 적 없는 현대인들이 고블린의 목을 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푹-!
“커어억!”
도리어 칼에 찔려 힘없이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 이후는?
푹- 푹- 푹- 푹-
하이에나처럼 달려든 고블린들에게 둘러싸여 속수무책으로 당할 뿐이었다.
[쿄호호호, 재미있군요. 인간과 고블린의 싸움이라는 건.]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던 천사가 빙글거리며 웃었다.
천사에게 있어서 이 싸움은 개와 고양이의 싸움을 구경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단순한 유흥거리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어린아이 같은 상대라 하더라도 수십 명이 달려들면 버틸 재간이 없죠. 그것도 단검을 들고 있다면 더더욱.]그런데 어째서일까?
수십 마리가 달려들어도 버티는 한 사람이 있었다.
시작부터 고블린들을 학살했던 인간이었다.
‘저 인간은 뭐지? 검은 낫?’
천사 브리엘이 흥미로운 눈으로 인간을 내려다봤다.
이름은 모른다.
천사인 그녀조차도 플레이어들의 상태창은 볼 수가 없다.
시스템 규정이 그렇게 되어 있다.
당연히 어떤 룬을 각인했는지도 알지 못한다.
‘정말 개 같은 시스템이야. 퀘스트 진척도는 볼 수 있으면서 플레이어의 정보는 못 보게 막아놓다니.’
브리엘의 미간에 다시금 주름이 잡혔다.
위에서 시켜서 한다지만 안내역은 참으로 못 할 짓이다.
적성에도 맞지 않고.
하지만 그것도 잠시.
아비규환의 현장을 보자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나 같은 고귀한 존재가 하등한 인간들의 안내역이나 맡아야 하는 건 자존심 상하는 일이지만…….’
치열하고 잔혹한 현장은 브리엘의 취향에 딱 맞았다.
솔직히 기대하지 않았던 게 사실이다.
조금 전까지도 인간이랑 고블린이랑 싸움 붙여봤자 얼마나 재미있겠냐며 불만을 토로했었으니까.
‘쿄호호호. 근데 생각보다 구경하는 재미가 있잖아?’
절망에 찬 얼굴로 발악하는 인간들.
고통스러운 비명과 피 튀기는 혈전 등.
꽤 시간이 흘렀음에도 지켜보는 브리엘의 입가에선 미소가 떠날 줄을 몰랐다.
‘그래, 죽여라, 죽여! 하등한 벌레들끼리 잘들 싸워보라고! 킥킥킥.’
불난 집 구경하듯 여유롭게 감상하던 브리엘의 시선이 한곳으로 움직였다.
빨간 피로 물들었던 조금 전과 달리 그녀가 보는 곳은 초록 피로 가득했다.
그 가운데엔 검은 낫이라는 닉네임을 가진 플레이어가 있었다.
‘저 인간은 대체 정체가 뭐지? 아직도 살아 있잖아?’
처음에 나서서 고블린들을 죽였을 때는 꽤 실력 있다고 생각했다.
뭔가 전투에 도움 되는 좋은 룬을 얻었나보다 싶었다.
그러나 그것뿐.
관심 없다는 듯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차피 체력이 바닥나서 결국엔 다른 인간들처럼 죽을 테니까.
하지만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인간은 아직도 살아 있다.
살아 있을 뿐이랴?
미친개처럼 날뛰며 고블린들을 학살하고 있었다.
‘벌써 70마리째야. 다른 인간은 20마리도 못 넘기고 있는 판국에.’
퀘스트 현황을 보던 브리엘이 혀를 내둘렀다.
단독으로 그만큼이나 죽였다는 건 실로 대단한 위용이었다.
처음이라는 걸 감안하면 말이다.
‘이런 상황이 처음일 텐데 어떻게 당황하지도 않는 거지? 마치 몇 번이나 겪어본 인간처럼.’
일말의 망설임도 없는 움직임과 냉철한 칼 놀림은 고블린들조차 주춤거리게 했다.
‘지구에서의 직업이 킬러라도 되나?’
잘은 모르겠지만 상황이 생각보다 재밌게 돌아가고 있다.
브리엘의 입꼬리가 기분 좋게 말려 올라갔다.
* * *
스걱-!
“키에에엑!”
양쪽 눈을 잃은 고블린이 자지러지며 쓰러졌다.
류민이 지체 없이 몸을 날려 쓰러진 고블린의 목에 단검을 박았다.
푹-!
레벨이 올랐지만 메시지를 무시하며 즉시 몸을 굴렸다.
칵-!
류민이 있던 자리에 단검이 박힌다.
아찔함을 느낄 새도 없이 튕기듯이 일어났다.
푹-!
“키아아악!”
고블린의 가슴을 찌르고 몸을 돌려 또 다른 고블린을 노린다.
쉴 틈 없는 움직임의 연속.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류민의 눈동자가 빠르게 전황을 훑었다.
“키이이이…….”
고블린들이 겁먹은 얼굴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다.
가까이에 온 고블린들은 전부 죽었다.
그렇다고 방심하진 않는다.
‘잠깐 숨 좀 돌릴 수 있겠군.’
여유를 되찾은 류민이 상태창을 열었다.
어느새 레벨이 4까지 올라 있다.
류민의 손가락이 빠르게 스탯을 터치했다.
‘당분간은 민첩에 올인한다.’
레벨이 오르면 주어지는 스탯 포인트는 2개.
류민은 4레벨이 될 동안 전부 민첩에 투자했다.
그 결과 3이었던 민첩이 9까지 올랐다.
‘민첩만큼 중요한 건 없지.’
힘, 지능, 민첩, 운 중 당장 필요한 건 민첩이었다.
민첩을 찍으면 회피율은 물론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까지 골고루 증가한다.
류민의 고개가 아군 측을 향했다.
30m 정도 떨어진 곳에선 고블린과 사람들이 얽히고설켜 있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사, 살려줘, 아아악!”
“죽어! 좀 죽으라고 이 괴물 새끼들아!”
빨간 피와 초록 피가 한데 어우러져 난장판을 만들고 있었다.
혼자서 시체의 산을 쌓고 있는 류민과는 온도 차가 극심한 상황.
‘그럴 수밖에 없지. 저 사람들은 고블린을 상대하는 게 처음일 테니.’
제아무리 어른이라도 고블린을 죽이기는 쉽지 않다.
무섭고 겁이 날 거다.
막상 싸우려고 하면 몸이 굳어서 움직이지 않을 거다.
이해한다.
자신도 1회차 때는 도망 다니기에 바빴으니.
‘하지만 도망 다닌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야.’
그 사실을 깨달은 건 두 번 죽고 나서였다.
도망 다니면 시간은 벌 수 있겠지만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천사가 고블린들을 풀어서 어떻게 해서든 싸우게 만드니까.’
게다가 이 초원.
보기엔 넓어 보이지만 사방엔 보이지 않는 장벽이 있다.
‘어찌어찌 천사의 눈을 피할 수 있다 쳐도 독 안에 든 쥐라는 거지.’
지옥 같은 이 상황에서 벗어나려면 오직 퀘스트를 수행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퀘스트에 성공하더라도 귀환할 수 있는 인원은 절반뿐.
‘선착순으로 달성하는 사람만 보내주는 시스템이니 가만히 있으면 오히려 손해지.’
차라리 도망치는 것보다 한 마리라도 빨리 죽이는 편이 낫다.
혼자서 고블린을 100마리나 잡는 건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마냥 어려운 일은 아니야. 사람이 많다는 건 시선 분산하기 좋다는 뜻이니까.’
좋게 말하면 시선 분산이고 나쁘게 말하면 고기 방패가 되어줄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사람들도 슬슬 느끼고 있겠지. 협동하면 그래도 할만하다는 사실을.’
물론 협동한다고 킬 카운트가 같이 오르진 않는다.
고블린을 죽이는데 기여도가 큰 사람만 킬 수가 오른다.
‘그래도 백지장도 맞들면 나은 법이니까.’
인간들이 유리한 점은 그뿐만이 아니다.
고블린의 키는 성인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이곳에 불려온 중학생보다도 작다.
리치 면에서 인간들이 더 유리할 수밖에 없다.
‘비록 몽둥이나 단검 따위를 든 고블린과 달리 인간에게 주어진 무기라곤 없지만…….’
류민의 시선이 바닥을 향했다.
‘무기가 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
지금은 발에 챌 정도로 널리고 널린 게 무기다.
고블린들이 죽기 전에 들고 있던 것들이었다.
‘그렇다고 나처럼 싸우는 건 무리겠지만.’
류민과 다른 사람 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기본 스탯이 3으로 같다는 점.
근육질이든 마른 몸이든 상관없다.
신체와 관계없이 모든 인간이 똑같은 스탯, 똑같은 조건으로 시작한다.
달리 말하면 다른 사람도 류민처럼 움직일 수 있다는 뜻이었지만…….
‘쉽지 않겠지. 수십 번의 경험으로 숙달되지 않는 한.’
영화에서나 나오는 킬러가 아닌 이상에야 류민처럼 학살하긴 힘들 거다.
더구나 지금은 민첩도 찍어서 전보다 더 날렵하다.
‘이만하면 천사의 관심도 끌었을 테니 슬슬 끝내볼까?’
류민이 움직이자 근처에 있던 고블린들이 눈치를 보며 피하기 시작했다.
즉시 바닥에 있던 단검 하나를 집었다.
별다른 조준 없이 던진 단검이 고블린의 미간에 정확히 명중한다.
“키엑!”
부들거리며 쓰러진 동료의 모습에 고블린들이 흠칫한다.
“안 들어올 거야?”
류민이 다가서자 고블린들이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다시금 단검을 집어서 던지자 또 한 마리가 나자빠진다.
“안 오면 내가 가고.”
순간적으로 거리를 좁힌 류민이 칼춤을 췄다.
초록색의 핏물이 사방을 수놓는다.
[고블린을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 +4%] [골드 +10] [레벨이 올랐습니다!] [퀘스트 진척도 : 고블린 100/100마리] [1라운드 퀘스트를 달성하였습니다!]100마리를 잡고 퀘스트를 달성한 순간.
류민의 주변에 반투명한 빛의 기둥이 생겼다.
퀘스트 성공 즉시 몬스터로부터 격리하는 일종의 보호막이었다.
‘1라운드는 가볍게 통과했군.’
보호막이 생겼다는 건 절반의 범주에 들었다는 뜻이다.
선착순으로 통과하지 못하면 즉시 소멸해 버린다.
‘내가 고블린을 미친 듯이 잡은 건 천사의 관심을 얻기 위한 것도 있지만…….’
류민의 시선이 곧이어 떠오른 메시지에 향했다.
[축하합니다! 해당 구역의 1등으로 퀘스트를 달성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전 구역의 1등으로 퀘스트를 달성하였습니다!] [닉네임이 랭킹에 등재됩니다.]‘1등이 되기 위해서 빨리 잡은 것도 있지.’
라운드별로 퀘스트는 빨리 달성할수록 유리하다.
등수에 따라 보상이 차등으로 지급되니까.
‘해당 구역별로, 전 구역별로, 최대 3위까지 보상이 주어지지.’
그중 전 구역 1위는 단연코 남들보다 유리한 보상을 얻을 수 있다.
18억 명의 플레이어 중 1등으로 퀘스트를 달성했다는 거니까.
잠시 후, 류민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보상에 관한 메시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