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69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69화
69. 스틸
남자 다섯 명으로 구성된 파티였다.
“어? 저기 봐.”
“거, 검은 낫이잖아?”
류민을 발견한 남자들이 당황해서 걸음을 멈췄다.
초원에서 난데없이 사자를 만난 기분이었다.
‘내, 내가 왜 쫄았지? 몬스터도 아니고 같은 편인데.’
‘설마 같은 인간을 공격하진 않겠지? 미치지 않은 이상에야.’
‘옆에 여자도 데리고 있잖아?’
남자들은 흠흠 헛기침을 하며 경계를 풀었다.
류민 옆에 민주리가 있어서 좀 더 안심할 수 있었다.
“어, 안녕…… 하세요?”
“…….”
남자가 어색함을 무릅쓰고 인사했지만 류민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귀찮은 파리들을 보는 것처럼 눈살을 찌푸리고 있을 뿐이다.
“무슨 일이지?”
“어…… 그게, 오크 사냥하러 들렀는데 선객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그렇게 말하던 남자의 시선이 옆으로 향했다.
‘저, 저게 대체 몇 마리야?’
‘저 많은 걸 둘이서 잡았다고?’
산처럼 쌓인 오크의 시체에 놀라다가도 이내 이해가 된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상대는 다름 아닌 검은 낫이었으니까.
하지만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잠깐, 이 작은 마을에 저렇게 많은 오크가 있었다고? 아무래도 이상한데?’
‘옆에 있는 여자는 뭐지? 동료인가?’
‘검은 낫이 동료를 데리고 다닌다? 말이 안 되는데? 데리고 놀려는 거면 몰라도.’
‘얼굴도 반반하고 가슴도 빵빵한 게 나름 괜찮아 보이네. 흐흐.’
‘검은 낫한테 변태적인 취미가 있는 줄은 몰랐네. 킥킥.’
대놓고 말은 못 해도 생각으로는 누구든 씹을 수 있다.
대통령도 씹을 수 있다.
하지만 그들은 상대를 잘못 골랐다.
하필이면 속마음의 룬이 있는 상대를 흉보고 있었으니까.
류민의 눈썹이 휘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라.”
“예?”
“볼일 없으면 꺼지라고.”
갑작스러운 축객령도 그렇지만 난데없는 반말조가 기분을 상하게 했다.
“언제 봤다고 반말이세요?”
“맞아요. 초면에 반말은 예의가 없는 거 아닙니까?”
누가 보면 미쳤다고 할만한 짓이었다.
13레벨도 안 되는 것들이 감히 32레벨 앞에서 따지고 들다니.
류민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였다.
“한창 사냥하는 중에 어떤 날파리 새끼들이 와서 귀찮게 굴면 어떨 거 같나? 죽이고 싶겠지? 지금 내 심정이 그렇거든?”
“…….”
“귀찮게 하지 말고 꺼져라. 목숨이 아깝지 않으면.”
“얘, 얘들아. 가, 가자.”
“시, 실례했습니다.”
“방해해서 죄송합니다.”
남자들이 꾸벅 사과한 뒤 재빠르게 물러났다.
류민은 그들이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눈을 떼지 않았다.
다름 아니라, 생각을 읽는 중이었다.
‘저 새끼들. 숨어서 나를 지켜볼 심산이군.’
검은 낫이 어떻게 사냥하는지 궁금해하는 게 들렸다.
일단 후퇴했다가 숨어서 지켜보기로 한 것도.
‘지켜보라지. 난 내 목적만 달성하면 그만이니.’
하지만 언제까지고 오크 소환수만 잡을 순 없었다.
‘지금처럼 소환수를 유인하며 꿀 빨고 싶지만 그러기엔 다른 녀석들이 계속 찾아올 거란 말이지.’
아껴먹겠다고 나중으로 미뤘다간 애꿎은 놈이 보스를 채갈지도 모른다.
다른 보스도 잡아야 하기에 언제까지 이곳에 죽치고 있을 순 없다.
슬슬 보스를 죽이고 보상을 챙겨야 할 때가 왔다.
‘그전에 민주리를 20레벨까지만 키우고.’
남자들에게서 시선을 뗀 류민이 민주리를 보며 말했다.
“방해꾼은 갔으니 다시 사냥을 재개하지.”
“왜 그러셨어요?”
난데없는 말에 류민의 얼굴에 의문부호가 떠올랐다.
“뭐가?”
“왜 일부러 쌀쌀맞게 말해서 쫓으신 거예요?”
‘원래는 자상하신 분이잖아요.’
뒷말을 삼킨 민주리가 대답을 기다렸다.
생각을 읽은 류민이 조금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계속 귀찮게 굴 게 뻔하다. 죽인다는 말 정도는 해야 다시는 얼씬도 안 하지.”
‘아까 생각을 읽은 대로 어딘가에 숨어서 지켜보고 있겠지만.’
놈들이 지켜봐도 상관은 없다.
날파리가 기웃거린다고 사냥을 못 하는 건 아니었으니까.
류민이 민주리를 보며 문 쪽으로 고갯짓을 했다.
“이제 시작하지. 그 녀석들은 신경 쓰지 말고.”
* * *
검은 낫에게 쫓겨난 남자들이 걸음을 멈췄다.
“이쯤이면 시야에서 안 보이겠지?”
“뭐 하려고?”
“궁금하잖아. 검은 낫 저 새끼가 어떻게 사냥하는지.”
“어, 나도 궁금했는데. 어디서 그렇게 많은 오크를 공수해 왔는지.”
“그래서 어쩌자고? 몰래 숨어서 지켜보기라도 하자고?”
“멀리서 보면 들킬 일은 없으니까 염려하지 마. 쫄리면 뒈지시던가.”
“쪼, 쫄리긴! 당장 가지 뭐.”
다섯 남자가 목책 밖으로 나간 뒤 검은 낫이 있던 방향으로 접근했다.
“저기 보인다.”
목책 사이로 초가집과 그 앞에서 사냥하는 검은 낫이 보였다.
목책을 방패 삼아 좀 더 가까이 다가가기로 했다.
“이 정도면 보이지 않을 거야.”
“오케이. 여기서 저 새끼가 오크들을 어디서 데려오는지 지켜보자고.”
검은 낫은 초가집 밖에서 오크들을 베고 있었다.
후두둑 사지가 잘리고 몸통이 바닥에 쿵 떨어졌다.
그렇게만 만든 뒤 검은 낫은 등을 돌렸다.
자신의 역할은 끝났다는 듯.
“뭐지?”
“왜 마무리를 안 하는 거지?”
그때 옆에 있던 여자가 기다렸다는 듯 검을 찔렀다.
저항도 못 하는 오크의 목을 푹푹 꿰뚫어 경험치를 가져갔다.
“헐…… 저거 설마?”
“쩔 시켜주는 거야?”
“대체 왜? 뭐가 아쉬워서?”
랭킹 1위가 다른 여자 쩔이나 시켜주면서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저 년이 얼마나 즐겁게 해줬길래 쩔까지 시켜줘?”
“X발, 사냥 쉽게 하는 것 좀 봐.”
“X나 부럽네…….”
지켜보던 남자들의 심사가 뒤틀렸다.
누구는 오크 하나 잡느라 뼈 빠지게 고생하는 반면, 누구는 편하게 칼만 푹 찌르면 경험치가 들어온다.
당연히 배가 아플 수밖에.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아?”
“뭐가?”
“저 여자 좀 봐.”
여자가 초가집에 들어갔다 나올 때마다 오크들이 쫓아 나왔다.
한두 번이 아니다.
매번 왔다 갔다 할 때마다 오크들이 딸려 나온다.
“지금 계속해서 오크들을 빼내 오고 있잖아. 내가 본 것만 30마리째야.”
“뭔가 이상한데? 저 안에 저만한 수의 오크들이 있다고?”
두 사람은 오크들을 빼내 오고 사냥하기를 무한정 반복하고 있었다.
“옆에 쌓인 시체가 저 초가집에서 나온 거라면?”
“최소 300마리 이상이 들어 있었다는 건데.”
“말이 안 되지, 그건.”
“그렇다면 결론은…….”
남자들의 머릿속에 공통된 생각이 떠올랐다.
“저 초가집이 오크 리젠 장소라는 거야?”
“그런 거 같아. 그게 아니면 말이 안 돼.”
게임처럼 만든 세상이니만큼 리젠 장소가 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당연한 사고방식.
“설마 리젠 장소가 있을까 어렴풋이 생각했었는데 정말로 있었다니…….”
“와…… 그럼 저 새끼들 여태 한자리에서 졸라게 꿀 빨고 있었던 거야?”
“이제 보니 리젠 장소 독차지하려고 우리한테 꺼지라고 한 거였구만?”
괘씸하고 열받는 일이었다.
두 연놈에게 어떻게 해서든 보복하고 싶었다.
하지만 검은 낫을 상대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그저 지켜보는 수밖에.
“저놈들 떠날 때까지 기다리는 게 어때? 자리를 비우면 우리가 냉큼 차지하는 거야.”
“그게 좋겠어. 강제로 뺏고 싶지만 그럴 힘은 없으니…….”
남자들은 하는 수 없이 기다리기로 했다.
그것이 자신들의 인생에 있어서 최악의 실수인 줄도 모른 채.
* * *
“검은 낫님! 저 20레벨 됐어요!”
오크를 찌르던 민주리가 기뻐하며 소리쳤다.
15분 만에 이룩한 성과였다.
류민이 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축하한다.”
20레벨이 된 민주리에겐 많은 변화가 생겼다.
등급이 레귤러로 오르고, 조합 기능이 해금됐다.
“새로운 스킬도 배웠어요. 블레스의 효능도 50%에서 60%로 올랐어요!”
“지금 걸어줄 수 있나?”
“잠시만요!”
민주리의 손에서 생성된 빛이 류민에게 향했다.
[스킬 블레스의 효과로 모든 스탯이 60% 증가합니다.] [지속 시간 : 02:59:59]“지금 걸어드린 건 강화된 블레스고요. 이건 새로 배운 버프예요.”
이번엔 초록색의 빛이 떠올라 류민의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스킬 스위프트의 효과로 공격 속도와 이동 속도가 60% 증가합니다.] [지속 시간 : 00:29:59]스위프트는 공속과 이속을 올려주는 버프다.
고작 30분짜리였지만 그 효과는 만만치 않았다.
‘스탯으로 따지면 민첩 40이 오르는 것과 같은 효과니까.’
물론 블레스보다야 못하지만 없는 것보단 나은 스킬이다.
더구나 류민의 타임어택 기록에도 큰 도움이 되리라.
“스위프트라, 나쁘지 않은 버프군.”
“그렇죠? 시간은 짧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30분마다 꼬박꼬박 걸어드릴게요.”
“말이라도 고맙군.”
“빈말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알아. 나한테 고마워하고 있는 거.’
속마음의 룬으로 민주리의 심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류민이지만, 검은 낫의 컨셉상 내색할 순 없었다.
“그럼 쩔은 여기까지 하고, 오크 샤먼을 잡도록 하지.”
“지금처럼 오크 사냥하는 게 이득 아니에요?”
“다른 보스도 잡으러 가야지. 언제까지고 이곳에 죽칠 순 없으니까.”
“제가 도와줄 일은 없을까요?”
“걸리적거리지 않게 피해 있어.”
“네! 걱정 마세요.”
기분 나쁠 법한 말인데도 민주리는 주눅 들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챙겨준다는 느낌에 기분이 좋았다.
류민이 오크 샤먼을 처리하러 들어가기 직전.
2시 방향의 목책을 티 나지 않게 쳐다봤다.
‘어설픈 녀석들.’
아까 꺼지라고 했던 그 5인방이 지켜보고 있다.
이미 기척 감지에 들킨 줄도 모른 채.
속마음의 룬 사거리에도 닿았기에 은근슬쩍 쳐다보며 생각을 읽기도 했었다.
‘나랑 민주리를 아주 잘근잘근 씹어대던데…….’
욕설과 비난에 흔들릴 정도로 멘탈이 약하진 않다.
다만 남을 깔보고 업신여기는 태도가 불쾌하고 괘씸할 뿐.
‘레벨 차이가 압도적인 나를 두고도 저런 생각들을 한단 말이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아직 검은 낫이란 존재의 무서움을 몰라서 저런 것이리라.
‘좀 더 분발해서 명성을 쌓아야겠어. 감히 욕할 생각도 못 하도록.’
그러기 위해 류민이 즉흥적으로 준비한 것이 있다.
놈들을 골려주기 위한 계획이었다.
‘어떻게 보면 인성 테스트이기도 하고.’
씨익 웃은 류민이 초가집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콰지직-!
초가집의 문짝이 부서지며 류민이 뛰쳐나왔다.
방해되지 않게 멀리 피신해 있던 민주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류민의 뒤로 줄줄이 소시지처럼 오크들이 쫓아 나왔기 때문이다.
‘검은 낫님이 왜 도망가시지?’
수백 마리의 오크를 학살한 그가 어째서? 뭐가 무서워서?
의문은 잠시 후 풀렸다.
이상한 나무 가면을 쓴 오크 샤먼이 지팡이를 짚고서 따라 나왔기 때문이다.
“취이익, 췩! 취히이이이-!”
오크 샤먼이 뭐라고 고함지르니 오크 10마리가 추가로 소환됐다.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서 민주리가 피해 볼 일은 없었지만, 문제는 검은 낫이었다.
‘거, 검은 낫님이…… 오크들에 둘러싸였어!’
무려 20마리의 오크가 검은 낫을 포위했다.
‘어, 어떡하지? 내가 도와줘야 하나?’
민주리의 갈팡질팡은 그리 길지 않았다.
정작 본인인 검은 낫의 얼굴에 당황스러운 기색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 검은 낫님이 질 리가 없지.’
그녀가 아는 검은 낫은 절대로 20마리에 굴할 존재가 아니었다.
자신이 버프도 걸어주지 않았는가?
‘충분히 도망칠 수 있는 달리기 속도일 텐데도 굳이 따라잡히셨어.’
뭔가 생각이 있으리라 여긴 민주리가 일단 상황을 관망했다.
“취이이이익! 취익!”
검은 낫을 둘러싼 오크들이 샤먼의 명령에 따라 일제히 공격했다.
까앙- 까앙-!
낫으로 도끼를 쳐내고, 어깨를 틀어 피하고, 머리를 숙여 날아오는 도끼를 피하는 등.
좁은 공간 안에서 검은 낫이 쉴 새 없이 움직였다.
20마리의 공격에 정신을 차릴 새도 없어 보였다.
‘저걸 일일이 막고 피하다니……. 정말 대단한 실력이야.’
속으로 민주리가 감탄했지만, 그것도 잠시.
‘어? 저 사람들은……?’
난데없이 오크 샤먼의 뒤로 접근하는 사람들을 보고서 당황했다.
다름이 아니라 아까 마주쳤던 그 남자들이었다.
‘저 사람들 뭐 하는 거지? 설마 검은 낫님이 시선을 끌고 있을 때 오크 샤먼을 잡으려는 거야?’
무기를 들고서 뒤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걸 보니 확실했다.
‘안 돼. 샤먼은 검은 낫님 몫이라고!’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검은 낫은 오크들을 상대하기에 바빴다.
‘이러다간 오크 샤먼이 애꿎은 사람에게 스틸 당하겠어!’
자신이라도 나서서 막아야겠다고 여기고 걸음을 뗀 순간.
두웅-
검은 커튼이 내려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