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80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80화
80. 젊은 대장장이
영면의 구슬은 스탯 포인트를 지급해 주는 사기적인 아이템이다.
‘기본적으로는 목걸이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소모형 아이템으로 보는 게 맞지.’
몬스터를 잡을 때마다 내구력이 닳으니까.
내구력이 다하면 파괴되고 사라지니까.
그것이 유일한 단점이었다.
어디까지나 내구력이 닳았을 때 말이다.
‘내구력을 회복할 수만 있다면 이만한 사기 템이 없어.’
그렇기에 대장장이들에게 안성맞춤인 아이템이다.
리페어 스킬로 내구력을 무한히 회복하며 영구적인 스탯 상승을 꾀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구슬을 얻기가 쉽지는 않지.’
5라운드 때 오크 샤먼을 잡지 못하면 구슬을 획득할 기회는 없다.
훗날 소셜 오픈 마켓인 ‘플플’에 매물이 올라오기도 하지만 천문학적인 금액이라 웬만한 대장장이들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하지만 꼭 대장장이만 혜택을 받으리란 법은 없지. 내구력을 회복하는 거야 누구든 가능하니까.’
그것이 류민이 해외로 나가려는 이유였다.
장차 업계의 원탑으로 이름을 날리는 대장장이가 해외에 있었으니까.
‘그 사람에게 부탁해서 구슬의 내구력을 고쳐야 한다.’
류민은 즉시 해외로 나갈 준비를 했다.
이럴 때를 대비해 여권을 미리 만들어놨다.
“형, 뭐해?”
캐리어에 짐을 싸는 류민을 보고서 동생이 의아함에 물었다.
“어디 가?”
“해외에 좀 갔다 오려고.”
“엥? 갑자기?”
“금방 올 거야. 사흘이면 충분해.”
챙길 거라곤 호텔에서 지낼 옷과 세면도구뿐.
나머진 현지에서 구매하면 된다.
“무슨 일로 가는 건데? 사업 때문에 가는 거야?”
“뭐 그렇다고 봐야지.”
“놀러 가는 거면 나도 따라가려고 했는데 안 되겠네.”
“이 시국에 놀러 가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어.”
“아, 그러네.”
“나 없는 동안 밥 잘 챙겨 먹고.”
“근데 어디로 가는데?”
류민이 씩 웃으며 말했다.
“영국.”
* * *
영국에 사는 러셀 다니엘은 일찍이 학교를 그만뒀다.
대장질이 좋다는 이유만으로 산속에 들어가 오두막 생활을 한 지도 6년째.
이제는 준수한 솜씨로 고객들에게 인정받는 어엿한 대장장이가 됐다.
까앙- 까앙-!
뜨거운 불에 달군 쇳덩이를 망치로 두들겼다.
모양을 잡고 강성을 끌어올리는 작업이다.
“후우, 이 정도면 괜찮겠어.”
러셀이 만들고 있는 건 15㎝ 길이의 단도.
제법 모양이 잡히자 숫돌을 이용해 날을 갈았다.
그리고 다시 뜨거운 불에 달군 뒤 칼날 부분만 물에 담갔다.
치이익-
이러면 칼날이 더욱 날카로워진다.
마무리로 철가루를 묻힌 특수한 숫돌로 칼을 갈고 손잡이를 끼워주면.
“다 됐다.”
취미로 만든 단검이 완성된다.
어디까지나 취미다.
판매용이 아닌.
“후우…… 이 짓도 이제 그만둘 때가 됐나?”
날카롭게 벼려진 단검을 바라보며 자조적인 웃음을 지었다.
“하루에 한 개라도 팔 수 있으면 좋을 텐데.”
젊은 나이에 패기 있게 도전한 대장질이었지만 그것도 고객이 있을 때의 이야기.
이제는 찾는 사람이 손에 꼽을 지경이다.
“이게 다 빌어먹을 천사 때문이야.”
2022년 1월.
오두막에서 어김없이 고객의 무기를 만들고 있던 러셀은 난데없이 이계로 불려갔다.
얼떨결에 아바타를 만들고 다른 사람들과 부대낀 채로 고블린에 맞서 싸워야 했다.
‘그야말로 시골에 있다가 난데없이 전쟁에 동원된 기분이었지.’
그렇게 5라운드까지 버티고 뒤돌아봤을 때, 세상은 망조를 보이고 있었다.
18억 명으로 시작했던 인구는 1,900만 명으로 줄었고, 그만큼 경제가 흔들리고 고객도 줄었다.
‘뭐, 이렇게 될 거라곤 예상했잖아? 원래가 밥벌이하긴 힘든 직업이었으니.’
대장질하는데 드는 재룟값은 만만치 않다.
그동안은 어찌어찌 버텼지만, 이제는 한계다.
통장의 잔고가 바닥을 보인다.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리고 싶지도 않다.
“이제 다른 직업을 알아봐야 하나…….”
가능한 한 오래도록 대장질을 하고 싶었는데…… 그 꿈이 이제는 무너져가고 있다.
세상이 플레이어를 중심으로 급변하고 있다.
‘20라운드까지 깨면 소원을 들어준다고 했나?’
소원이라.
러셀의 소원은 다른 게 아니다.
오랫동안 살아남아서 여전히 좋아하는 대장질을 하는 것.
거창한 것 없는, 말 그대로 작은 소원이었다.
‘그래. 대장질을 포기할 순 없어. 젊어서 좋은 게 뭐겠어? 남자가 패기가 있어야지!’
시무룩한 감정은 털어버리고 앞으로 나아가기로 했다.
새로운 목표를 세웠다.
‘최종 라운드를 깨고 소원을 이루고 말겠어!’
그동안은 어쩔 수 없이 살아남았다면 이제는 적극적으로 라운드 공략에 나서기로 했다.
‘대장장이가 전투에 적합한 직업은 아니겠지만 그래도 지금의 나라면 할만해.’
어떤 조건인지는 몰라도 러셀은 초반부터 대장장이 전직 아이템을 얻을 수 있었다.
처음엔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좋아했다.
하지만 반대로 세상이 망하며 현직을 이어가기가 힘든 상황이 왔다.
‘어떻게든 20라운드까지 가보자. 내가 좋아하는 대장질을 하기 위해선 그 방법밖에 없어.’
어렵겠지만 불가능하다는 생각은 안 들었다.
20레벨 때 배운 [무기 연마]라는 스킬로 주 무기인 도끼의 성능을 높였다.
그 덕분에 오크도 쉽게 때려잡았다.
‘6라운드가 얼마나 어려울진 모르겠지만 자신 있다고!’
물론 이계에서 살아남는 것과는 별개로 아직 현생의 일을 놓을 생각은 없다.
‘돈을 모을 때까지만 잠깐 접는 것뿐이야. 재료 살 돈만 충당되면 다시 오두막에 와서 취미로라도 시작해야지.’
돈이 없다면 벌면 그만.
그렇다고 몇몇 플레이어처럼 강도질할 생각은 없다.
‘죽으면 죽었지, 남한테 피해를 줄 순 없지. 뭐, 4라운드의 살육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우선은 하산한 뒤 일자리를 알아볼 생각이다.
‘이 시국에 할만한 일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전 세계 인구의 23%가 사망한 상황.
고작 몇 달 사이에 수십억의 사람이 죽었으니 경제가 좋을 리 만무했다.
‘플레이어들이 약탈을 벌여서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았다는 기사를 봤는데…….’
아무래도 일자리를 찾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그래도 한 번 찾아봐야지! 찾지도 않고 포기할 내가 아니지.’
여차하면 인벤토리의 아이템을 팔아서라도 돈을 마련할 생각이다.
‘이런 걸 살 사람이 있을진 모르겠지만.’
결정을 내린 러셀이 오두막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때, 자박자박- 등 뒤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무심결에 돌아본 러셀은 놀랐다.
산짐승이라도 나타난 줄 알고 고개를 돌렸건만 웬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그것도 동양인이.
‘뭐지? 이런 곳에서 사람을 만나기란 흔치 않은데…….’
남한테 피해 주지 않으려고 일부러 구석진 곳에다 오두막을 지었기에 더욱 그랬다.
“무슨 일이십니까? 길이라도 잃으셨습니까?”
대화가 통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말부터 걸어봤다.
그런데.
“러셀 다니엘 맞죠? 젊은 대장장이로 유명한.”
상대는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뿐더러 자신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다.
러셀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당신 누굽니까?”
“반응을 보니 제대로 찾아왔네요.”
“저에 대한 정보를 어디서 들은 거죠? 제 거래처 중에 동양인은 없는데요.”
“어디서 들은 게 아닙니다. 본 거지.”
“보다니요?”
류민이 먼저 자신의 패를 오픈했다.
“저는 예언자입니다. 미래를 볼 수 있죠.”
“예언자? 이 사람이 무슨 헛소리를…….”
“러셀. 레벨은 21. 직업은 대장장이. 해당 구역명은 C-EUKE008. 맞습니까?”
“…….”
러셀은 대답 대신 입만 뻐끔거렸다.
놀란 나머지 말이 안 나왔다.
‘레벨이랑 직업은 운 좋게 찍었다고 쳐. 그런데 구역명까지 맞히다니…….’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구역명을 맞힌 걸 보면 예언자라는 게 허언은 아닌 모양이다.
“정말 미래를 볼 수 있다고요?”
“예.”
“예언자라는 직업은 들어보지 못했는데요?”
“그럴 수밖에요. 흔치 않은 직업이니까요.”
“흔치 않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이계에는 수많은 직업이 있죠. 그중 유일 클래스라고 단 한 명만 가질 수 있는 직업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예언자죠.”
“그런 대단하신 분이 여긴 왜 오신 겁니까?”
“그렇게 비꼬지 마세요. 러셀, 당신과 거래하고 싶어서 온 거니까.”
“거래요?”
“리페어 스킬로 아이템 하나만 고쳐주세요. 그렇게만 해주면 쓸 만한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정보?’
솔깃했는지 러셀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쓸 만한 정보라면?”
“6라운드에 대한 정보입니다.”
러셀의 눈자위가 커졌다.
‘다음 라운드에 대해서 미리 알 수 있다면 공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거야.’
아이템 하나 고치는 거?
솔직히 말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장질을 하는 것보다도 쉬웠다.
아이템에 손대고 스킬만 시전하면 그만이니까.
‘문제는 너무 쉽다는 거야.’
쉬운 일에 비해 얻는 이득이 컸다.
무려 6라운드 정보라니.
남들보다 인간관계에 신중한 러셀로선 경계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정말로 아이템의 내구력만 채워주면 6라운드 정보를 주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수지타산이 안 맞는데요? 혹시 다른 목적이 있는 거 아닙니까?”
러셀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쳐다보자, 류민이 웃었다.
이렇게 나올 줄 예상하고 있었다.
‘과연, 러셀다워.’
손해 볼 것 없는 제안일 텐데도 의심하고 경계한다.
‘넙죽 받아먹었으면 오히려 실망할 뻔했어.’
이렇게 의심할 때는 속여선 안 된다.
먼저 마음을 열고 정공법으로 나가야 한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도 되겠습니까?”
“……?”
“저는 당신과 친해지고 싶습니다.”
“뭐, 뭐요?”
“미래에서 봤습니다. 대장장이의 정점을 찍는 당신을.”
‘내, 내가? 정점을 찍는다고?’
러셀의 눈이 커지든 말든 류민이 말을 이었다.
“당신은 누구의 도움 없이 15라운드까지 생존합니다. 대단한 일이죠. 하지만 거기까지일 뿐. 이후로 당신이 그리는 미래는 없습니다. 절망적인 일이죠.”
“…….”
“하지만 제가 도와드릴 수 있습니다. 저와 손을 잡으신다면, 더 쉽게 성장하고 15라운드 이상까지도 바라볼 수 있을 겁니다. 당신이 그토록 소원하는 대장질까지도.”
“……!”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러셀은 동양인의 말을 믿지 않았다.
예언이 아니라 속임수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소원까지도 맞히는 걸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저한테서 뭘 바라는 겁니까?”
“크게 바라는 건 없습니다. 그저.”
류민이 빙긋 웃었다.
“서로 돕자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