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100th Regression of the Max-Level Player RAW novel - Chapter 81
만렙 플레이어의 100번째 회귀 81화
81. 미스터 류
다크 나이트, 버퍼, 용병왕과 다르게 대장장이는 유일 클래스가 아니다.
러셀을 대체할 대장장이는 충분하다는 뜻.
그런데도 류민이 비행기를 타고 영국 깊은 산속까지 찾아온 이유는 단 하나.
‘러셀만 한 인재가 드물기 때문이지.’
러셀이 15라운드까지 살아남는다는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대장장이의 정점을 찍는다는 것도.
‘비록 만렙은 못 찍고 죽었지만, 마지막까지 유일하게 살아남은 대장장이였지.’
그만큼 인성도, 실력도, 생존력도 훌륭하다는 뜻이다.
‘그런 인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면?’
라운드를 진행하는 데 있어서 여러모로 도움이 될 터.
구슬의 내구력을 고치는 건 덤이고 말이다.
‘대장장이 클래스는 버퍼와 비슷한 면이 있으니 곁에 둬서 나쁠 건 없어.’
차이점이라면 대장장이는 버퍼와 달리 항상 붙어 있을 필요가 없다.
장비들을 고쳐주거나 강화해 주면 제 할 일은 끝나는 셈이니까.
류민이 힐끔 러셀을 바라봤다.
머릿속이 복잡한 게 자신을 믿어도 될지 고민하고 있다.
‘선택에 도움 좀 줘야겠군.’
이럴 때를 위해 회귀를 거듭하며 배워뒀던 영어다.
류민이 유창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가 요구하는 건 크지 않습니다. 그저 필요할 때 장비들을 손봐주고 스킬 몇 번 걸어주시면 됩니다. 그 대가로 다음 라운드 정보를 드리겠습니다. 그렇게만 한다면 미래에서는 지나쳤던 이득들을 챙기며 빠르게 강해질 수 있겠죠.”
“으음…….”
고작 스킬을 써주는 대가로 미래의 정보를 얻는다.
고민할 것도 없는 제안이었지만 러셀이 신경 쓰는 건 그게 아니었다.
류민을 믿을 수 있느냐 없느냐다.
-말하는 걸 보면 솔직한 사람 같기는 한데 믿어도 될지…….
생각을 거듭하던 러셀이 절충안을 내놓았다.
“제 미래 가치를 높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만 아직 확신이 들지 않아서요. 그래서 말인데 계속 거래할지는 6라운드 결과를 보고서 결정하겠습니다.”
“편하신 대로 하세요. 계약서를 쓰자는 것도 아니니까요.”
류민이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마경록과 마찬가지로 두 눈으로 예언을 확인하고 나면 자신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으리라.
“일단은 아이템부터 고쳐드리겠습니다. 6라운드 정보는 그 후에 받도록 하죠.”
“알겠습니다. 여기.”
류민이 인벤토리에서 영면의 구슬을 꺼냈다.
내구력이 1밖에 남아 있지 않아 간당간당했다.
목걸이를 건네받은 러셀은 아이템 정보를 볼 생각도 안 하고 바로 스킬부터 시전했다.
파아앗-
구슬에서 잠깐 빛이 번쩍이는 걸 끝으로 수리가 끝났다.
“여기 다 고쳤습니다.”
류민이 아이템을 받아 정보를 확인해 봤다.
내구력이 어느새 [1,000/1,000]으로 꽉 채워져 있다.
‘좋아. 이제 다시 스택을 올릴 수 있겠어.’
씨익 웃던 류민이 러셀을 쳐다봤다.
-무슨 목걸인지는 모르지만, 꽤 좋은 건가 보네. 내구력을 고치면서까지 계속 쓰려는 걸 보면.
생각을 읽어보니 아이템에 대해 모르고 있다.
충분히 정보를 읽을 수 있었음에도 말이다.
‘고객의 프라이버시라 생각하고 일부러 읽지 않았어.’
역시 인성이 바른 프로다운 모습이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내구력이 완벽하게 회복됐네요.”
“이제 6라운드 정보를 주시겠습니까?”
“물론 드려야죠. 6라운드 퀘스트는 말입니다…….”
류민이 이런저런 고급 정보들을 풀어놓았다.
그때마다 러셀의 눈동자가 커졌다 작아지기를 반복했다.
“으음…… 방금 하신 말씀이 사실이라면 되도록 강한 동료들을 모아야겠네요.”
“예. 아무래도 그게 도움이 되겠죠. 몬스터가 워낙 강력하니 말입니다.”
고개를 주억이던 러셀이었지만 속으론 예언이 들어맞을지 의심하고 있었다.
‘하긴, 직접 겪기 전까지는 믿지 못하겠지.’
류민은 조급하게 생각지 않았다.
어차피 6라운드가 지나면 알게 될 것이다.
생존을 위해선 예언자라는 동아줄을 잡을 수밖에 없다는 걸.
“그럼 이걸로 거래는 끝난 겁니까?”
“예, 그런데…….”
류민이 말끝을 흐렸다.
대장장이에게 아직 볼일은 더 남아 있었다.
“저한테 아이템 좀 팔지 않으시겠습니까?”
“아이템?”
“[흑철가루]라고 갖고 계시지요?”
“……!”
여태껏 반신반의하던 러셀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뭘 가졌는지도 맞히다니!?’
설마 인벤토리 안에 있는 물건까지 예언으로 맞힐 줄은 몰랐다.
그러나 놀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그 아이템. 저한테 파시지요. 아무래도 재룟값이 모자라서 일자리를 구하시려나 본데, 돈은 넉넉하게 드리겠습니다.”
‘……내가 일자리를 구하려는 것까지 알고 있다고?’
예언이 아니라, 생각을 읽고 알아낸 거지만 러셀에겐 별 차이가 없으리라.
“정말 놀랍군요. 이제는 믿겠습니다. 당신이 예언자라는걸. 그리고 사과하겠습니다. 솔직히 말해 속임수가 있지 않을까 의심했었거든요.”
“사과할 것 없습니다. 저는 미래를 본대로 얘기할 뿐, 믿고 말고는 자유니까요.”
“6라운드 정보도 아마 틀림이 없겠죠.”
그렇게 말하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던 러셀이 결심했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흑철가루가 필요하십니까? 그냥 드리겠습니다.”
“그냥 준다고요?”
“해드린 것에 비해 받은 게 더 큰 것 같아서요. 저 그렇게 양심 없는 사람 아닙니다?”
뒤늦게 6라운드 정보를 믿고 값어치를 높게 쳐준 모양이다.
웃으며 말한 러셀이 인벤토리에서 흑철가루를 꺼냈다.
“받으세요.”
사양 않고 받자 아이템 정보가 떠오른다.
[흑철가루]-분류 : 소지품
-설명 : 흑색의 철가루. 미약한 마력이 느껴진다.
‘이 귀한 아이템을 그냥 주다니.’
엄밀히 말해 정보를 준 대가로 받은 셈이지만 러셀은 모를 것이다.
흑철가루가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
‘다름 아니라 갓 등급에 들어가는 재료니까.’
11라운드가 넘어가면 쉽게 얻을 수 있는 아이템이라지만 지금으로선 힘들다.
러셀처럼 몬스터를 잡다가 운 좋게 나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뜻.
‘이건 오히려 내가 감사해야 할 판인데?’
6라운드 정보를 주고 흑철가루를 얻었다면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괜찮겠습니까? 이걸 그냥 주셔도?”
“저는 괜찮습니다. 솔직히 어디에 쓰는지도 모르는걸요. 그 아이템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졌는지는 예언자인 당신만이 알겠지요.”
러셀도 어느 정도 눈치는 있었다.
-굳이 콕 집어서 요구한 걸 보면 꽤 중요한 아이템이겠지.
하지만 일부러 묻지는 않는다.
알려고 들지 않는다.
이미 도움을 받은 상황에서 그 이상은 욕심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불필요한 선을 넘지 않는다는 점. 그것이 러셀의 장점이지.’
씩 웃던 류민이 들고 왔던 가방을 내밀었다.
“받으세요.”
“이게 뭡니까?”
얼떨결에 받은 러셀이 가방을 열어봤다.
“헉!”
10파운드 지폐 수십 다발이 들어 있다.
“총 2만 파운드입니다.”
“…….”
“아이템을 그냥 받긴 뭐하니 대가로 지불하겠습니다. 그 정도면 재룟값을 충당하는데 충분하시겠지요?”
“그, 그럼요.”
러셀이 칼같이 대답했다.
충분하다마다.
2만 파운드면 한국 돈으로 3,200만 원에 달하는 금액이니.
-이, 이 정도면 일자리를 찾지 않아도 되겠어!
남은 시간 동안 원하는 대장질을 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일까?
류민을 바라보는 러셀의 눈빛이 금세 호의적으로 변했다.
그 모습에 피식 웃었더니 현실을 자각한 러셀이 뒤늦게 눈치를 봤다.
“아, 그, 그런데 이렇게 큰돈을 제가 받아도 될지…….”
“충분히 받아도 됩니다. 저한테 주신 아이템은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까요.”
‘사실 억 단위의 돈을 줘도 아깝진 않지만, 너무 많으면 오히려 부담스러워할 테니.’
그나마 자제한 게 이 정도였다.
하지만 러셀은 이마저도 많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 류민이 넌지시 말했다.
“물론 재룟값에만 쓰라고 이렇게 큰돈을 준 건 아닙니다.”
“예? 그럼…….”
“해외주식 계좌를 개설해서 제가 드린 돈의 절반 정도를 한국 주식에 투자하세요.”
“한국 주식이요?”
“회사명은 플레이어 플레이스. 조만간 대박을 터트릴 기업이니 투자하신다면 평생 재룟값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될 겁니다. 뭐, 믿고 안 믿고는 자유지만요.”
“믿겠습니다. 예언자님의 말이니 틀림이 없겠지요. 어차피 노력 없이 얻은 돈이기도 하니…….”
한국 주식에 투자할 것을 약속하는 걸 보고서야 류민은 걸음을 뗄 수 있었다.
“이걸로 볼일은 끝났군요, 러셀 다니엘. 다음 라운드에서의 무운을 빌겠습니다. 아, 핸드폰 있으십니까?”
“물론이죠. 핸드폰으로 너튜브에 영상도 올리고 있는걸요.”
“그럼 제 번호 불러드리겠습니다. 혹시 모르니 저장해 놓으세요.”
핸드폰을 들어 받아적던 러셀은 정작 중요한 걸 물어보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들었다.
“여태껏 귀인의 성함을 물어본다는 게 깜빡했습니다. 성함이……?”
류민이 빙그레 미소 지으며 말했다.
“미스터 류라고 불러주십시오.”
* * *
시간은 멈출 수 없다.
언제나처럼 그날이 찾아왔다.
6월 1일 자정.
여느 때처럼 이계로 불려온 류민이 주변을 둘러봤다.
푸릇푸릇했던 여태와는 달리 삭막한 황무지가 펼쳐져 있다.
다름 아닌 6라운드의 배경이었다.
‘6라운드는 협력 라운드다. 함께 움직일 사람들을 찾아야 해.’
주변을 돌아보던 류민이 추적하기 스킬을 썼다.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은 민주리.
파티해야 한다면 그녀는 꼭 필요한 존재다.
‘사실 민주리 말고는 필요한 사람이 없지.’
그렇지만 머릿수를 채울 사람은 필요했다.
이번 라운드의 규칙이 5인 파티를 결성하는 것이었으니까.
‘나와 민주리를 제외하고 세 사람이 필요해. 누구를 고를까?’
곧바로 네 사람의 후보가 떠올랐다.
그중 한 사람은 초면이지만 파티에 꼭 넣을 필요가 있었다.
장차 자신의 활동에 도움이 될 사람이었으니까.
“어? 검은 낫님!”
민주리가 류민을 발견하더니 손을 흔들며 달려온다.
“이렇게 보니까 반갑네요! 잘 지내셨어요?”
“마치 오랜만에 보는 것처럼 말하는군.”
“헤헤, 그래도 한 달 만에 보는 거잖아요.”
이제는 무섭지 않은지 해맑은 미소를 짓는 민주리.
하긴 전 회차에서도 둘의 궁합은 잘 맞았다.
‘그러니까 서로 정체를 모르고도 친해질 수 있었던 거겠지.’
류민이 쓱- 주변을 돌아보니 사람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해 있었다.
-저 여자는 뭐야? 뭔데 검은 낫이랑 대화하는 거지?
-민주주의? 검은 낫이랑 어울릴 정도의 상위 랭커인가?
-그러고 보니 지난 라운드 집계 결과 때 본 거 같아. 2위였던 거 같은데…….
-어쨌든 부럽다. 최상위 랭커를 연줄로 두다니…….
류민은 신경 쓰지 않았지만 검은 낫은 플레이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불변의 랭킹 1위인 데다 차가운 카리스마까지 겸비하고 있으니 남녀를 불문하고 친해지고 싶어 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만 그럴 뿐 정작 실천하지 못했는데, 이유는 단순했다.
검은 낫이 무서웠으니까.
범접할 수 없는 기운이 결계처럼 주변을 맴돌고 있었으니까.
그러나 민주리에겐 해당 사항이 없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걸었다.
“지난 라운드 때 마지막 보스는 잡으셨어요?”
“잡았지.”
“시간이 촉박했었는데 금방 잡으셨네요? 그럼 균형의 돌 모으는 서브 퀘스트도 완료한 거예요?”
“완료했지. 참고로 어떤 보상이 나왔는지는 안 알려준다.”
“칫, 어떻게 아셨어요? 물어보고 싶었는데.”
“척 보면 알지.”
“전부터 느꼈지만 진짜 통찰력이 깊으신 거 같아요. 검은 낫님은.”
“…….”
침묵이 일자 민주리가 그제야 분위기가 이상해졌음을 깨달았다.
-무, 무슨 소릴 한 거야, 내가? 낯부끄럽게.
뒤늦게 민망함이 밀려왔는지 얼굴을 붉혔다.
“아, 바, 방금 너무 오그라드는 말을 했죠? 죄송해요.”
“죄송할 게 뭐 있지?”
“예? 아…… 그러게요. 내가 왜 사과했지?”
“어쨌거나 칭찬은 고맙군.”
그렇게 말하며 피식 웃음을 흘리자 민주리도 따라 웃었다.
-자상했다가 카리스마 넘쳤다가…… 하여튼 신기한 분이야.
민주리가 웃어넘기는 그때.
“안녕하세요. 검은 낫님.”
두 명의 파티 후보가 검은 낫에게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