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1
프롤로그
꿈이란 무엇일까.
무의식의 발현, 혹은 염원하던 가치의 확인, 이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나곤 하는 것.
만약에,
만약에 같은 꿈을 계속 이어서 꾼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 질문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물어도 답할 수 없겠지만, 단 한 사람만큼은 이 질문에 대하여 답할 수 있다.
“대체 왜….”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이제 막 25살이 된 강설이었다.
보육원 출신, 조용하고 말수가 적은 편인 남자.
강설은 같은 꿈을 이어 꾸고 있었다.
무려 17년 동안이나.
* * *
강설은 초등학교에 막 입학할 무렵, 어떤 꿈을 꾸었다.
– 응? 새로 오신 분이신가요? 이쪽으로 앉으세요. 마침 자리가 하나 비네요.
꿈속의 그는, 말쑥한 차림의 어른이 되어 있었고 처음 보는 의복과 처음 보는 가면을 쓰고 있었다.
강설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러했다.
– 자, 주사위를 굴릴 시간입니다.
– 하하하! 난 이때가 제일 좋아!
– 다들 자기 말을 골라.
– 난 그대로! 그대로 갈게. 이 붉은 도살자로!
– 그럼 나도 똑같이 바람의 순찰자.
– 어… 저기… 새로 오신 분이 있는데….
– 이런, 그럼 그 친구는 새로 만들라고 하라고.
여우 가면을 쓴 여인이 상냥하게 강설에게 말했다.
– 저… 저희가 어떻게 불러야 할까요?
강설은 자신의 이름을 뱉어내려다, 머뭇거리고는 다른 별명을 말했다.
“스노우맨이요.”
– 스노우맨이요? 좋네요. 자! 그럼 스노우맨 님이 직접 움직일 말을 생성해주세요.
강설은 서리 속성의 마법사를 선택하고 대충 아무렇게나 세부 사항을 결정한 다음, 차례를 기다렸다.
– 주사위가 굴러갑니다!
– 6! 6이 나왔어!
– 하지만 20면체 주사위였습니다.
– 안 돼!
그들은 즐겁게 게임을 즐겼다.
주사위가 판을 구르고, 여러 가지 선택지가 난무했다.
– 뾰족 가시 부족의 족장인 뾰족 가시가 등장했습니다. 자, ‘아무튼네탓이야’ 님의 선택은요?
1. 도주한다.
2. 맞서 싸운다.
3. [필요 : 지능15] 말로 설득한다.
4. [필요 : 기계공학1] 연막을 퍼트린다.
– 4! 4번으로 하지!
– 이런! 안타깝게도 연막을 터트리는 데에 실패했어요!
– 빌어먹을! 이건 사기야!
파티의 전멸 위기.
하지만, 강설이 선택한 마법사의 차례가 왔다.
“3번. 3번 ‘서리 마법으로 뾰족 가시의 발을 붙잡는다.’로 할게요.”
– 마법은 효과적이었습니다! 뾰족 가시의 발이 얼어붙었고 그는 한순간 무방비가 되었습니다.
옆에 있던 새 가면을 쓴 남자가 소리쳤다.
– 좋았어! 이제 내 차례군! 어서!
– 네, 캣타워파괴자 님.
‘캣타워파괴자’라고 불리는 남자는 뾰족 가시의 빈틈을 노려 멋지게 공격을 성공시켰고, 그것을 기점으로 파티의 상황은 호전되었다.
결국, 파티는 뾰족 가시를 쓰러트리고 성공적으로 모험을 마쳤다.
– 오늘의 모험은 여기까지. 다들 영원의 세계가 즐거우셨나요?
– 하하하, 말해 무엇 할까. 아무리 체험판이라지만 정말 재밌군.
– 이봐, 스노우맨. 내일도 같이 할 생각 없는가?
강설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정체를 알 수 없는 이들과 구성원을 바꿔가며 매일 밤 꿈속에서 영원의 세계를 즐겼다.
한 번은 강설이 보육원의 동생들에게 이런 꿈에 관해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돌아온 대답은 이러했다.
“형아는 이상해… 이상한 말을 해….”
“…뭐?”
“그런 게 어딨어?”
아마 당연한 대답일 것이다.
꿈을 이어 꾼다는 말을 믿어줄 사람은 좀처럼 없을 것이다.
그 이후로 강설은 25살이 될 때까지, 단 한 번도 이 꿈에 대해 남에게 얘기한 적이 없었다.
보육원 생활이 힘겨워 남들과 좀처럼 대화를 하지 않은 것도 있었고, 꿈의 비밀을 누군가에게 얘기하면 두 번 다시 같은 꿈을 꾸지 못할 것 같아서 그랬다.
그는 그렇게 어른이 됐고, 사회의 일부가 되었다.
그 후로도 꿈은 계속되었다.
무려 17년의 세월을 주사위를 굴리며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과 놀았다.
이들의 정체가 궁금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꿈에 대해 누군가에게 발설하지 못했던 것과 같은 이유로 이들에게 물을 수 없었다.
‘당신들은 대체 누구냐고 말이지.’
꿈에서 만나, 주사위를 굴린다.
그리고 웃는다. 그게 전부였다.
강설은 한때 그들을 신이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내 관심을 껐다.
그에게는 상대가 신이든, 괴물이든, 악마든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이 영원의 세계를 즐기는 것.
오직 그것만이 그의 모든 관심사였다.
– 스노우맨 님, 오늘은 저희랑 하시기로 하지 않으셨나요? …아닌가?
– 무슨 소리야! 스노우맨 님이 마지막 날은 우리랑 하기로 했었어! …아닌가?
– 둘 다 조용히 해! 오늘 스노우맨은 대현자의 마지막 모험 때문에 단독 모험으로 진행할 거야.
– 맞다! 그러면 그거 봐야겠다!
강설이 만들어낸 꿈속의 존재, 스노우맨.
스노우맨은 이제, 영원의 세계를 즐기는 이들에게 우상이나 다름없었다.
영원의 세계에 길이 남을 전설적인 캐릭터를 여럿 만들어냈으니까.
그가 플레이한 캐릭터는 무려 30여 개, 그중 허무하게 목숨을 잃었던 캐릭터도 있었지만, 강설의 캐릭터들은 대부분 영원의 세계의 역사에 이름을 남겼다.
서리의 대공, 외팔이 검성, 불사, 그리고 대현자까지.
스노우맨은 17년간 여러 역할을 플레이했고 그 정점까지 순탄하게 도달했다.
주사위 운이 좋게 작용하기도 했지만, 선택지를 꿰뚫어 보는 그의 기지도 주효했다.
영원의 세계에 관심을 가진 그가, 규정집을 거의 달달 외우다시피 하여 얻게 된 결과물이다.
‘아쉽네, 시간이 조금 더 있었다면 그것까지 해봤을 텐데.’
마지막으로 플레이할 예정이었던 캐릭터.
여러 직업을 전전하며 시행착오도 많이 겪은 그가 고민하여 만들어 낸 성장 방향과 공략들.
그것을 집대성한 최후의 말을 만들 예정이었는데, 아쉽게도 영원의 세계는 오늘까지였다.
– 내일부터는 이제, 우리의 꿈이 실현되겠네요.
– 너무 늦은 감도 있지. 이제 우리의 신성을 되찾아 와야지. 또한, 우리를 이렇게 만든 벌레들에게 복수도 겸하고.
– 하하! 후자 쪽에 더 무게가 쏠린 것 같은데?
‘오늘 영원의 세계 체험판이 끝난다고 했지?’
영원의 세계 체험판이, 오늘을 끝으로 정식 서비스한다는 공지.
강설은 이 정식 서비스가 어떤 의미인지 알지 못했지만, 이들은 대강 알고 있는 듯했다.
강설은 그들의 말을 대충 흘려넘기고 눈앞의 상황에 집중했다.
대현자가 최후의 모험인 승천(昇天)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발… 제발….’
지금, 강설은 그의 말인 대현자 밀란을 위해 마지막 주사위를 굴리는 중이다.
떼구르르르.
덜컥.
움찔!
주사위 눈을 확인한 강설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
주사위의 눈은 1이 나왔다.
[승천 과정에서 마력이 역류합니다.]
[마력 반동으로 밀란은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밀란이 승천에 실패합니다.]
“…….”
– 스노우맨, 안타깝습니다.
– 아쉽네, 스노우맨.
– 힘내!
강설은 밀란에게 남은 선택지가 없음을 확인했다.
‘또 인가….’
강설이 육성한 30개의 말 중에서 가장 나중에 탄생한 10개의 말, 그들은 모두 마지막 모험인 승천에 도달했다.
하지만, 그것을 돌파하지는 못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하늘에 오르는 것이 쉬울 리 없다지만, 대현자를 마지막으로 10개의 말이 모두 실패하다니.
‘이걸 어떻게 깨라는 거야….’
강설은 말없이 자신의 말을 바라보다가, 선택을 내렸다.
[밀란의 모험을 포기하시겠습니까?]
1. 그렇다.
2. 아니다.
1번을 고를 경우, 플레이어는 더는 말의 운명을 조율할 수 없다. 강설은 1번을 골랐다.
[모험가 밀란은 이제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나갈 것입니다.]
[비록 가슴 뛰는 모험은 끝이 났지만, 그의 삶은 계속됩니다.]
강설이 멍한 표정으로 밀란의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 다른 이들이 그에게 말을 걸었다.
– 괜찮아, 스노우맨. 최선을 다했잖아. 승천까지 온 것만 해도….
– 그래, 스노우맨만 가능했던 일인걸.
승천까지 도달한 말은 이로써 10기.
모두 강설의 말이었다.
영원의 세계를 즐기는 이들에겐 엄청난 업적이었지만 정작 강설에게는 아쉬움이 남았다.
“후우….”
그렇게 그가 17년간 즐겼던 영원의 세계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이 끝은 새로운 운명의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