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103
제102화
차오의 다급한 목소리는 모닥불 앞의 평화를 깨트렸다.
“서둘러! 뭐 하는 거야?”
“추격자가 왔다면 굳이 도망치지 않고 싸우면 되지 않습니까?”
강설은 그녀가 무엇에 쫓기는지 알지 못했기에 이번 충돌을 통해 그 정체와 그들이 가진 힘을 목격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모험을 풀어나가야 하니 미리 정보를 축적해서 나쁠 게 없다.’
강설은 자신이 있었다.
전설 등급의 소환수가 무려 3기.
거기다 여러 기연까지 겹쳐 현재 무력으로는 누구에게도 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불의 사원을 완전 붕괴시키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패할 수 없었다.
그게 냉정한 분석이었다.
‘더군다나 혹 위험하더라도 내빼면 그만이니까.’
강설의 강력한 소환수들이 그가 도주할 시간조차 못 벌어준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때문에, 그는 이런 점까지 고려해서 차오에게 말한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건 차오의 어처구니없어하는 표정과 강설을 강제로 일으켜 세우는 그녀의 행동이었다.
“멍청한 소리! 여기서 죽을 셈이야? 추격자는 그림자 사냥꾼이라고!”
“그림자 사냥꾼?”
그림자 사냥꾼.
강설도 들어본 기억이 있는 집단이었다.
영원의 세계, 판데아에서 플레이어는 기본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직업이 무척 많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숨겨진 직업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 직업들마다 능력, 능력치 등 눈에 보이는 차이점 말고도 눈에 보이지 않는 다른 차이가 존재했다.
예를 들면 직업마다 친선 관계, 알력 관계 등 세계관에서 가깝거나 대립하는 집단이 존재한다는 사실.
이단 심문관은 교회와 상당히 가까운 관계였지만 광신도들과 끝도 없는 대립 관계에 있었고 마법사는 기계공학자들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이처럼 직업에는 수많은 알력 관계가 존재했는데 그림자 소환사 또한 거기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림자 사냥꾼이라면….’
그림자들, 특히 그림자 소환사를 미워하는 집단.
판데아의 정서상 시체의 그림자를 뽑아내어 하수인으로 부린다는 것 자체가 흉악한 사술(邪術)이라고 여겨지고 있었다.
대부분은 그냥 멸시하는 정도로 그치지만, 그림자 사냥꾼들은 아예 그림자 소환사들을 사냥하고 다녔다.
여기까지가 강설이 알고 있는 전부였다.
‘부딪힌 적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강설은 그림자 소환사들에게 그림자 사냥꾼이 어떤 의미인 것까지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차오의 과도한 경계 반응은 강설로부터 불길한 감각을 끌어올렸다.
‘이건… 위험한 거군.’
차오가 강설에게 외쳤다.
“알아들었으면 당장 뛰어! 서쪽으로 가! 거기서 보자고! 둘 다 무사히 살아남는다면 말이야….”
강설은 지체하지 않고 내달렸다.
곧, 멀리서 누군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녀가 도망친다! 잡아라!”
이는 곧 추격자가 상당히 가까운 곳에 있다는 것이었으니, 강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팟-!
과도하게 높아진 능력치는 이제 그를 캐스터로 보이지 않게 했다.
사삭…
팟!
표홀히 수풀을 헤치고 나아가는 모습이 꼭 민첩을 근간으로 하는 직업 같아 보였다. 누구도 지금 그의 모습을 보고 소환사라고 생각하지 않으리라.
강설은 할 때는 하는 사람이었다.
달리라고 했으니 달린다.
숨이 턱에 찰 때까지도 발을 멈추지 않았다.
“허억… 헉….”
그의 체력은 이제 어지간한 전사나 기사를 웃돌았으니 그가 헐떡인다는 건 이미 상당히 먼 거리를 주파했다는 의미였다.
“하아… 하아… 다들….”
휘이이이…
밤바람이 거셌다.
찬 공기가 폐부로 유입되면서 정신이 좀 든 그는 말을 이었다.
“허억… 헉… 다들 어디 간 거야?”
쟈마드와 쌍둥이 기사들.
분명히 얘기를 나누다가 같이 뛰기 시작했고 얼마 후 모습을 감추었다.
그림자 공간으로 되돌아간 것일까.
강설은 얘기도 없이 되돌아간 그들의 행동에 대해 의아함을 느꼈다.
그르르르…
컹! 컹!
“빌어먹을.”
추격이 계속되고 있었다.
아까부터 저 사냥개의 소리가 계속해서 쫓아왔다.
따돌렸다고 생각해도 얼마 지나면 바로 따라붙는 소리.
혹시 마법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추격은 끈질겼다.
‘아무래도 떨쳐내야겠어.’
소환수들이 멀쩡히 있으니 사냥개 정도는 금방 떨쳐낼 수 있을 것이다.
후우우웅…
강설은 달리면서 손아귀에 힘을 모았다.
거무튀튀한 기운이 곧 그의 손에 응집됐고 그림자 공간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것이 물고 온 것은 카루나나 카렌, 쟈마드가 아닌 절망적인 소식뿐이었다.
[빛이 없는 곳의 영향권에 있습니다.]
[그림자 소환이 불가능합니다.]
“…뭐?”
– 멍청한 소리! 여기서 죽을 셈이야? 추격자는 그림자 사냥꾼이라고!
차오가 다급한 경고를 날렸던 이유.
– 이 모험은 위험한 모험입니다.
이번 모험이 쉽지 않은 모험이었던 이유.
그 많은 것들이 방금 떠오른 문장 안에 함축되어 있었다.
“흐흐흐… 계속 도망치지 그러냐?”
저 멀리서 추격자의 목소리만 들려왔다.
강설의 머리에 경고등이 켜졌다.
‘이건… 위험하다.’
강설은 머뭇거리지 않았다.
추격을 따돌리기에 속도가 부족하다면 더 빠르면 그만이었다.
강설이 오른쪽 발로 왼쪽 발의 뒤꿈치를 걷어찼다.
팟-!
펑-!
[위기 탈출이 발동합니다.]
[짧은 시간 동안 이동속도가 대폭 증가합니다.]
구사일생의 장화는 이런 순간을 위해 존재했다.
쒜에에엑-!
강설이 전보다 몇 배는 빨리, 마치 화살과도 같이 숲을 헤치고 나아갔다.
그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몬스터들은 모두 강설의 속도에 반응하지 못할 정도로 그의 속도는 어마어마했다.
“하아… 하아….”
불현듯, 예전 기억이 떠올랐다.
카루나를 얻기 전 처음 판데아에 떨어졌을 때의 기억이.
아무것도 없이 맨몸과 기지, 그리고 판데아의 지식만으로 유적을 돌파했다.
“후우… 후….”
그리고 강력한 소환수를 얻었다.
승리는 계속되었다.
강력한 소환수들이 계속해서 그의 품으로 들어왔고 그들은 계속 강해졌다.
한데, 이렇게 보니 제자리걸음이나 마찬가지였다.
강력한 소환수들이 있지만 소환수가 없는 그는 이전과 똑같이 나약했다.
‘그림자 손만으로는… 상대할 수 없어.’
그림자 사냥꾼들과 이대로 정면 승부를 고려하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었다.
계속해서 달릴 뿐.
이제, 입에서 침도 나오지 않는 것 같았다. 메마른 입에서는 헐떡이는 숨만이 새어 나왔다.
그리고.
그르르르… 컹!
또.
또 저 지긋지긋한 사냥개 소리가 들려왔다.
“흐흐흐… 꼬마야, 착하지. 너는 처음 보는 놈이니 나중에 사냥해주도록 하마. 너랑 같이 있던 여자가 어디로 갔는지 아니? 그래, 미레이 말이야.”
강설은 순간 귀를 의심했다.
‘미레이? 미레이라고?’
강설과 함께 있던 여성의 이름은 차오였다. 그런데 사냥꾼은 ‘미레이’를 찾고 있다.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도 강설은 미레이라는 이름이 어쩐지 낯설지 않다고 느꼈다.
‘미레이! 파문당한 미레이!’
그레고리의 영토에서 쫓겨난 여인.
그녀는 그레고리의 수많은 제자 중 하나가 아니었다. 그레고리가 가장 아꼈던 세 명의 제자 중 하나였다.
‘그레고리의 세 번째 제자 미레이!’
강설은 자신도 모르게 미레이라는 이름을 꺼낸 방향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
곧, 통찰안이 상대를 포착하고 정보를 읽어냈다.
[눈먼 말라쿠스]
등급 : 영웅
추정 레벨 : 20~24
말라쿠스는 그림자 소환사를 사냥합니다.
그는 그림자를 사역하는 일이 옳지 않은 일이라 확신하고 있으며 이것은 그가 유년 시절 겪었던 불행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는 듬직한 사냥개 디르와 함께합니다.
말라쿠스와 디르는 그림자 소환사들에게 악몽이나 다름없습니다.
기본 능력 : [발자국 추적 1], [야생의 시야 1], [무력화 사격 2], [실재하는 고통 1], [야행성 2]
특수 능력 : [짐승의 후각 2], [빛이 없는 곳 3]
‘빛이 없는 곳, 저것 때문이었어.’
컹! 컹!
그는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찾았다.
그것은 역시나 달리는 것뿐.
“꼬마야, 포기해라. 더 괴롭게 죽을 뿐이야. 얌전히 이 말라쿠스에게 목을 내어 놓거라.”
강설은 그에게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도주했다. 애써 대화를 나눠봐야 살려줄 것도 아니니 힘만 빠지리라.
그때, 강설은 싸늘한 기운이 느껴져 몸을 틀었다.
팟-!
“크윽….”
귓불을 뭔가 스치고 지나갔다.
아무래도 화살이었던 것 같았다.
[말라쿠스의 무력화 사격의 영향을 받습니다.]
[은총의 반지가 발동합니다.]
[무력화의 저주를 튕겨냅니다.]
“호오! 그런 재주도 있었나? 그래도 다음은 없어.”
크르르르…
“디르, 놈의 목을 물어뜯어라.”
컹!
컹!
어둠 속에서 커다란 멧돼지, 아니 멧돼지만 한 검은 사냥개가 튀어나왔다.
‘이번엔… 어렵겠는데.’
포기하는 건 아니었지만, 피해 없이 공격을 막아내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여기서 공격을 당하더라도 절대 목을 내어줘선 안 됐다.
강설은 비장한 마음으로 디르가 달려드는 것에 맞추어 한쪽 팔로 목을 방어했다.
최악의 경우, 팔을 잃을 각오를 하고.
그때였다.
콰아아앙-!
강설의 곁으로 누군가 쏜살같이 다가와 디르를 걷어찼다.
키에에에에엥… 키에에엥…
“으흐흐… 역시나, 미레이. 한참 찾았잖나.”
“아… 지겹다, 지겨워. 이 인기도 지겹다니까. 근데 이렇게 매달려도 안 돼. 난 아저씨 취향이 아니거든.”
“큭큭큭, 꼬마야. 미레이가 널 살렸구나.”
“그새 다 분 거야? 낭만이 없는 건 여전하네, 마르쿠스.”
“평생을 숨어 다닐 수 있을 줄 알았나, 미레이?”
차오 아니, 이제는 정체를 확신할 수 없게 된 여인이 강설을 구한 것이다.
“차오, 날 속였습니까?”
“하하, 미안. 근데 일부러 속인 건 아니야. 애초에 날 찾아와서 조른 건 너였고 말이야.”
“미레이… 미레이라면 그레고리의 세 번째 제자 아닙니까?”
“그래, 나에 대해 잘 알고 있구나. 그럼 내가 그에게서 파문당한 것도 알고 있겠네.”
“네.”
“하하… 어쩔 거야, 말라쿠스. 덕분에 내 정체가 다 뽀록났잖아. 신비감이 증발했어.”
쒜에에엑-
말라쿠스는 대답 대신 화살을 보내왔다.
팍-!
그리고 미레이는 아무렇지 않게 그 화살을 잡아챘다.
“이딴 건 통하지 않아.”
강설은 감탄하면서도 의아해했다.
‘소환사 맞아?’
사냥꾼이 쏘아낸 화살을 맨손으로 잡아채는 소환사라니. 뭔가 이상했다.
“널 되돌아봐라, 미레이. 네 모습을… 이제 다른 사냥꾼들이 여기 당도할 것이다.”
“어머, 무서워라. 그런데 어쩌나? 나도 놀고 있던 건 아닌데?”
“뭐?”
따악-!
스으으으으…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 갑자기 검은 안개가 피어올랐다.
[미레이가 검은 안개를 사용합니다.]
“이런… 검은 안개! 아직 남아있었나? 놓칠 줄 알고!”
“하하, 놓칠 거잖아. 어차피 내가 가까이 가지 않는 이상 냄새도, 소리도 사라질 텐데 말이야.”
“빌어먹을!”
스으으으으으…
덕분에 강설까지 검은 안개 속으로 사라질 수 있었다.
미레이는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 대어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낸 후 조심스럽게 현장을 빠져나갔다.
그런데 미레이를 코앞에서 놓친 말라쿠스가 돌연 안개 속으로 숨어든 강설에게 말을 걸어왔다.
“이봐, 꼬마야. 그 마녀에게 속고 있는 거야.”
강설은 알고 있으니까 닥치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검은 안개가 소용없게 되므로 반응하지 않고 걸었다.
“그 마녀는 널 기만하고 있다! 감히, 인간을! 인간을 기만하고 있어!”
이게 대체 무슨 소리일까.
미레이의 안색이 굳어졌다.
“그녀는 이미 죽었다! 미레이는 분명 죽었어! 내, 내 화살이 그녀의 가슴을 꿰뚫는 걸 분명히 봤단 말이다!”
강설은 말라쿠스가 도대체 무슨 헛소리를 하는지 이해하지 못하다가, 그를 붙잡고 있는 미레이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뭔가를 느꼈다.
‘몸이… 검다?’
한여명의 손보다 검은 손, 그리고 후드 사이로 언뜻 보이는 그녀의 목은 새카맸다.
말라쿠스가 소리쳤다.
“그녀는 그림자다! 이미 죽은 존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