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104
제103화
강설과 미레이는 검은 안개가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그림자 사냥꾼들의 추격을 따돌릴 수 있었다.
“으윽….”
“미레이, 괜찮습니까?”
“괜찮아. 그냥… 그냥 좀 쉬면 괜찮아져.”
미레이가 품에서 궐련을 꺼내 입에 물었다. 곧 궐련에 불이 붙으며 그녀의 입에서 연기가 뭉게뭉게 새어 나왔다.
“하하… 꼴사납게.”
“그거, 진통제입니까?”
“어떻게 알았어?”
판데아에는 궐련 형태의 진통제도 있었다. 약초를 태워 그 기운을 몸 안으로 받아들이는.
‘진통제를 평소에도 가지고 다닌다고?’
강설이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미레이를 바라보자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몸이 좀 안 좋아서.”
“…설마 시간이 별로 없다는 게 그것 때문입니까?”
– 음… 어쩌지, 난 시간이 많이 없는 사람인데. 딴 친구를 알아보면 안 될까?
미레이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가 강설에게 했던 말이었다.
“그걸 기억해?”
“대답하세요. 이제 제게 아무것도 숨기지 마세요.”
“…알았어. 맞아. 난 얼마 살지 못해.”
“얼마나 남은 거죠?”
“그거야 모르지. 길면 일 년도 넘게 살 수 있는 거고, 짧으면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는 거고. 뭐 삶이란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어?”
미레이는 배시시 웃으며 연기를 토해냈다.
“이제 좀 괜찮아졌네. 우리 좀 걸을까? 은신처는 여기서 멀지 않아. 얘기는 걸으면서 해도 충분하잖아. 알지? 나 바쁜 사람인 거.”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비척비척 걸어갔다.
“은신처는 놈들에게 들키지 않겠습니까?”
“글쎄, 찾더라도 시간은 좀 걸릴 거야. 놈들은 그림자 소환사에게서 나는 냄새와 느낌을 주로 추적 수단으로 사용하는데 은신처엔 특수한 처리를 해뒀거든.”
“그렇군요. 그리고 하나 더, 그림자 사냥꾼 앞에서 소환이 불가능한 건….”
“너는 그림자 사냥꾼을 처음 만나봤구나? 놈들은 그림자 소환사들만을 사냥하기 위해 단련하는 놈들이야. 그런 신기한 능력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지. 뭐, 그레고리 정도 되는 사람에게는 통할 리가 없겠지만 적어도 우리에게는 치명적이지.”
그녀의 말대로 믿고 있던 소환수가 그림자 공간에서 꿈쩍도 하지 않는 건 다시없을 끔찍한 경험이었다.
‘그런데… 소환수를 부르지 못하면 말라쿠스를 어떻게 몰아내지?’
이번 모험에서 깨달음을 얻는다, 쳐도 그다음은? 말라쿠스를 처치하거나 따돌리는 일이 가능할까?
강설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심각해졌다.
“너무 걱정하지 마. 이 실험이 성공만 하면….”
“미레이, 난 이제 당신을 신뢰할 수 없습니다.”
“…….”
“너무 많은 것들을 숨겼습니다. 이름도, 추격자들도, 심지어는 자신이 그림자라는 것까지.”
“미안.”
“마음이 변한 건 아닙니다, 하지만 모든 정황을 이제는 알아야 할 것 같습니다.”
미레이가 머리를 벅벅 긁적였다.
“뭐가 알고 싶은 거야?”
강설이 답했다.
“전부.”
미레이의 은신처가 그들의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당신이 앓고 있는 병이 무엇인지, 그림자 사냥꾼이 당신을 왜 쫓는지, 그레고리와 멀어진 이유는 무엇인지. 그리고….”
강설의 황금빛 눈이 미레이의 눈과 선을 교차했다.
“당신이 왜 그림자가 됐는지.”
미레이의 입술이 달싹이기 시작했다.
* * *
그레고리는 괴팍하고 정 없는 사람.
“이 멍청한 자식! 그만 포기해!”
“싫어! 싫다고! 그레고리 멍청한 자식아!”
그레고리는 멍청이.
“이게 어디 스승에게!”
“이딴 가르침 하나도 필요 없거든!”
“하!”
미레이는 그레고리가 미웠다.
사람들이 왜 그를 전설적인 존재라 추앙하는지도 공감하지 못했고.
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서 그레고리가 어떠한 존재이든 간에, 그레고리는 전설적인 그림자 소환사였다.
그는 젊은 나이에 그림자 소환술이란 특이한 학문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단순히 전 시대 소환사들의 망상이라고 치부되어왔던 학문, 그림자 소환술.
그레고리는 흩어져 있던 그 파편들을 하나하나 모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론과 합쳐 하나의 학문으로 집대성했다.
그것이 그림자 소환사라는 전대미문의 직업이 탄생한 배경이었다.
그레고리는 제자를 여럿 두었는데, 그중 가장 아끼는 제자가 있었다.
그 제자의 이름은 미레이였다.
그가 세 번째로 들였던 제자, 젖도 떼지 못한 소수 부족의 고아를 데려와 키운 그의 행동은 남들에게 기행이라 평가받았다.
하지만, 그레고리는 다르게 생각했다.
‘이 아이는… 천재다.’
미레이는 천재였다.
그림자 소환술의 정수를 금방이라도 깨우칠 것처럼 지식을 빨아들이는 그녀의 빛나는 지성.
그레고리는 그녀에게 감탄했다.
‘언젠가 나보다 더 위대해질 것이다, 미레이는.’
하지만, 그레고리는 그녀의 천성을 간과했다.
후에 알게 된 미레이라는 이름의 뜻은 ‘상냥한 꽃’이었다. 그녀는 이름 그대로 상냥했다.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그들을 위했다.
문제는, 그녀의 그런 성격이 그림자 소환술의 경지를 높이는 데 방해가 된다는 것이었다.
“미레이, 그림자는 도구다. 아니, 도구라는 표현조차 위험해. 그들은 맹수다. 재갈을 물리고 철저하게 굴종을 가르쳐야 해.”
“아니야, 그림자는 친구가 될 수 있어.”
“어설픈 생각… 나는 그림자의 진정한 힘을 안다. 그들은 두려운 존재야. 어설프게 그들을 위한답시고 틈을 보이는 건 위험한 행동이다. 언젠가 그들이 너를 물어뜯을 거야.”
늘 이런 말싸움을 했다.
그레고리는 그녀가 얌전히 그의 교육에 집중해줬으면 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녀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물려줄 생각이었고.
하지만, 그녀는 그것을 거부했다.
“그레고리, 당신은 내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똑똑해. 나보다도, 아니 그 누구보다도.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내가 옳아. 그림자는 힘에 굴종하는 단순한 존재들이 아니야. 우리는 그들의 주인도 아니며 그들을 더 이해해야 해.”
“어리석은 녀석… 그림자는 죽은 존재들. 그 모든 미련을 산 자인 네가 떠안아야 한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으냐? 그림자들에게 휘둘리기만 할 것이야!”
“내 모든 삶을 걸고 내가 옳다는 걸 증명하겠어. 그리고 그레고리, 당신은 단순히 그림자가 무서워 다가가지 않는 겁쟁이야.”
“내가 남긴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될 날이 있을 것이다, 미레이.”
그레고리와의 인연은 여기까지였다.
그가 생각하는 그림자 소환술과 미레이가 생각하는 그림자 소환술은 그 근간부터 달랐기에.
미레이는 그렇게 그레고리의 곁을 떠났다.
그 이후 그녀는 온 세상을 떠돌았다. 하지만 그레고리의 품을 벗어나자, 그에게 원한이 있는 많은 악한이 그녀를 노렸다.
그림자 사냥꾼들 또한 그녀의 주된 적 중 하나였다.
“하아… 하아….”
매번 힘겨운 싸움이 계속됐지만, 그녀는 연구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천재 미레이의 일흔일곱 번째 기록… 그림자와의 공존은 단순히 동화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동화란 소환사가 고삐를 쥐고 그림자를 휘두르는 것에 불과하며 서로의 이해로 나아가지 못하는 한계가 있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그레고리에게도, 미레이에게도.
수많은 가짜 신분과 수많은 가짜 표정들, 그녀는 다른 사람을 연기하며 살아갔다.
하지만, 단 하나의 진심만큼은 간직했다.
“힘들어, 소딘?”
소딘은 오랜 세월, 그녀와 함께한 그림자였다. 미레이는 소딘에게 늘 상냥했다, 그녀의 이름처럼.
“…괜찮습니다.”
“아프면 말해.”
“저는 괜찮지만… 미레이는 어떻습니까?”
“나? 하하… 나도 쌩쌩하지.”
소딘은 그런 그녀에게 늘 미안했다.
그녀의 연구는 오랜 세월 진척이 없었다. 그녀의 그림자인 그는 그것이 자신의 탓이라 생각했다.
“미레이, 당신의 생각은 옳을지도 모릅니다. 다만….”
“그만.”
“연구에 진척이 없는 것은 제가 강하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다른 그림자를….”
“그 얘기는 그만해, 그 문제가 아니야.”
미레이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충분히 시간을 들인다면, 그림자와의 완벽한 공존이 가능할 것이라 믿었다.
하지만, 그녀가 예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남은 시간이 많지 않았다는 것을.
“커헉….”
“미레이! 이 마녀야!”
추격은 집요했다.
말라쿠스라는 그림자 사냥꾼이 포함된 저 무리는 특히.
기어코, 놈의 화살에 꿰뚫린 채 강물에 휩쓸렸다.
“하하… 이럴 수가. 이 천재 미레이 님이… 쿨럭… 이런 실수를 할 줄이야.”
마차에 함부로 올라탄 것이 실수였다.
말라쿠스에게 정체를 들킨 것이다. 최대한 분전했지만, 화살은 결국 피할 수 없었다.
그녀는 기지를 발휘해 간신히 그를 따돌렸지만, 상태가 좋지 못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렸다.
점점 의식이 희미해져 갔다. 가슴에서 피가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헉… 흐윽… 몇 번째 기록이더라… 소딘, 기억해?”
“…299번째입니다.”
“그래. 처, 천재 미레이의 299번째 기록… 어… 생각이 안 나네. 왜 아무 생각도 안 나는 거지? 소딘, 죽는다는 건 신기하네. 아픈데 아프지 않아, 소딘도 이랬어?”
“…저도 그랬습니다.”
“다행이야, 네가 있어서…. 어… 어? 그렇구나. 그래, 그게 문제였어!”
“무슨 소리를 하는 겁니까, 미레이.”
“왜 하나가 될 수 없는지 알았어. 쿨럭… 아, 안 되는데… 죽으면 안 되는데, 이제 알았는데. 그레고리한테 증명해야 하는데….”
“미레이!”
미레이는 죽음을 앞두고 깨달았다.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그리고 그림자와 하나가 되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그림자와 소환사가 단순히 굴종하는 관계를 넘어 서로를 받아들이는 관계가 되는 그 방법을.
“소환사도… 죽음을 경험해야 하는 거구나. 그게… 그림자와 소환사의 유일한 차이점이었어. 그걸 이해하면 가능한 거였어. 하지만 어떻게? 으윽… 어떻게 해야? 시간이 모자라, 안 돼….”
미레이의 유리알 같은 눈망울은 점점 흐려져 갔다.
죽음을 목전에 둔 것이다.
그때였다.
소딘이 입을 열었다.
“미레이.”
“일시적으로 가사 상태에 빠트리면… 아, 그거구나.”
“미레이.”
“소딘… 추워, 너도 항상 추운 거야? 미안해, 몰랐어. 가방에 다, 담요가….”
“미레이, 제 얘기를 들어주세요.”
털썩.
소딘이 미레이 앞에 무릎을 꿇었다. 미레이는 흐려져 가는 눈으로 물었다.
“내 최후는 그레고리의 말대로일까? 네 소망을 내가 이뤄주지 못해서 실망했어, 소딘? 그래서 날 잡아먹을 거야?”
“아니, 맹세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미레이.”
“다행이다….”
소딘은 결연한 표정으로 그녀에게 말했다.
“당신은 상냥한 사람입니다.”
“헤헤… 그래, 고마워.”
슥.
소딘이 미레이의 손을 잡았다.
그녀의 손에서 점점 힘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따뜻함이 없는 소딘의 손, 하지만 미레이의 손도 곧 그와 같아질 것이다.
그때, 소딘이 말을 꺼냈다.
“제가 시간을 벌어보겠습니다.”
“무슨… 무슨 소리야.”
쿵.
소딘이 바닥에 이마를 박았다.
“당신은 아직 죽어선 안 됩니다. 늘 입에 달고 살았잖습니까. 위대한 한 걸음을 남기겠다고. 그레고리가 틀렸음을 증명하겠다고. 모든 그림자들을 죽음에서 삶으로 나아가게 하겠다고.”
“…….”
“제 몸을 드리겠습니다. 오래 버티진 못하겠지만 당신이 세상에 소리칠 시간은 벌어줄 겁니다.”
“안 돼, 소딘. 으으… 하지 마! 하지 마아아아!”
“내가 더 강했다면 너를 지켰을 텐데… 약해서 미안해.”
휘이이이이이이-!
소딘의 검은 기운이 서서히 분해되어 미레이를 감쌌다.
마치 새로운 피부가 덧씌워지는 기분.
미레이는 멀어져가는 의식에서도 소딘의 마지막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미레이, 내 소망은 너였어. 네가 원하는 것을 이루길. 안녕히, 내 친구….”
* * *
미레이의 궐련이 연기를 뿜어냈다. 연기는 그녀의 기억을 밀어냈다.
소딘의 얼굴도, 목소리도, 추억들도.
“산 자와 죽은 자가 서로를 받아들인다. 말은 쉽지, 그게 가능하겠어? 그렇지? 그렇게 생각하지?”
“…이제 이 모든 일이 이해가 됩니다.”
“있잖아, 그레고리의 소환수들은 강력하지만 모두 그레고리를 증오해. 그는 금제를 걸어 그들의 행동을 통제하지.”
강설이 가만히 미레이의 말을 들어 주었다.
“그게 옳은 걸까? 난 아니라고 생각해. 그래서 도전해 볼 생각이야. 마지막 위대한 한 걸음까지.”
미레이가 강설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서 장난기는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너를 통해서. 자, 선택해. 이대로 돌아가도 좋아. 그럼 우리는 만난 적 없던 사이고, 멀리 떠나면 신변의 위협도 없을 거야.”
“다른 선택지는 뭡니까?”
“날 도와서 이 연구의 끝을 보는 거야. 그 과정에서 너는 죽음을 경험할 거고, 어쩔래?”
모든 정황을 알게 됐으니, 남은 건 강설의 선택뿐.
짧은 고민 후에 그가 대답하기 위해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