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110
제109화
전장엔 기묘한 침묵이 맴돌았다.
갑자기 그림자 그 자체가 되어 나타난 강설.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눈먼 사냥꾼 말라쿠스까지.
크르르르…
“그림자 소환사는 모두 내 손에 죽어야 한다.”
“누구에게도 염원하는 게 있기 마련이니까, 존중할게.”
“…네게서 모든 그림자를 해방하겠다. 그것이 그들을 위하는 길이다.”
“그것도 존중하지. 이제 내 염원을 알려주지.”
강설이 말라쿠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미레이를 저렇게 만든 널 박살 내는 거다.”
“넌 날 이길 수 없어. 내가 사냥한 그림자 소환사가 모두 몇이나 될 거라 생각하나?”
“글쎄, 전혀 관심 없는 내용이라. 그리고 그건 내가 아니야. 그러니까 의미 없어.”
“…너희들의 오만함을 후회하게 될 거다.”
스르륵…
말라쿠스가 아티팩트를 발동했는지 그의 모습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하지만 기척은 약간이나마 남아있었기에 그가 아직 이 공간에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빛이 없는 곳의 영향권에 있습니다.]
[당신은 그림자입니다.]
[모든 능력치가 20% 줄어듭니다.]
‘자신감에 차 있는 이유가 있었네.’
말라쿠스가 괜히 강설과 쟈마드를 도발한 것이 아니리라.
하지만.
‘20%가 깎여도… 능력치는 넘칠 정도니, 괜찮아.’
태산에서 돌 하나 깎아낸다고 태산이 아니게 되는가.
강설은 여전히 압도적인 강자였다.
컹! 커어엉!
[사냥개 디르가 암습을 사용합니다.]
[정확하게 방어하지 않으면 50%의 추가 피해를 받습니다.]
‘저 사냥개에게도 능력이 있었구나.’
지금이라도 통찰안으로 살펴보려면 그럴 수 있겠지만, 구태여 그러지 않기로 했다.
후우우웅-
콰아아아아앙!
강설이 휘두른 주먹에 화들짝 놀란 디르가 공격을 멈추고 물러났다.
아마도 이 공격에 정통으로 얻어맞았다면 그대로 싸움이 끝났을 수도 있었다.
“디르!”
쒜에에엑!
“소용없다.”
팍!
파아악!
그림자 손이 화살이 날아오는 방향으로 정확히 움직였다.
파파파팍!
제아무리 여러 발의 화살일지라도 강설의 터럭 하나 건들 수 없었다.
“넌 졌다. 말라쿠스.”
“…네가 강하다는 것을 인정하지. 하지만, 승리를 선언하기엔 섣부르군.”
크르르르르…
숲은 또다시 조용해지고, 강설에겐 메시지가 떠올랐다.
[말라쿠스가 복수심의 영약을 복용합니다.]
[말라쿠스가 그림자 속성을 상대할 때 30%의 추가 능력치를 얻습니다.]
[말라쿠스가 그림자 속성을 공격할 때 치명타 피해량이 50% 상승합니다.]
“고작 생각해낸 게 약물인가?”
“너희 같은 족속들을 상대할 때 효과가 좋은 편이지. 이미 수차례 증명해냈고 말이야.”
“자꾸 예전 이야기를 들먹여봐야 네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만 명확해질 텐데.”
“그거야 두고 보면 알겠지.”
철컹-
[디르의 억압된 야성의 목걸이가 해제됩니다.]
[디르가 농축된 야성의 효과를 받습니다.]
[피해의 일부를 야성으로 상쇄합니다.]
[이는 야성 수치를 전부 사용할 때까지 지속됩니다.]
[공포가 제거됩니다.]
“어디, 제대로 한번 붙어보자고.”
“흥.”
강설, 혹은 쟈마드가 양 주먹을 부딪쳤다.
쾅-!
천둥 치는 소리가 나며 그의 몸이 서서히 타오르기 시작했다.
[화산 태세로 전환합니다.]
[모든 공격에 불길이 옮겨붙습니다.]
[충격 지점에 폭발이 일어납니다.]
[지속 : 옮겨붙는 불길이 적용됩니다.]
[불길의 대상과 접촉하는 모든 것들에 높은 확률로 불이 옮겨붙습니다.]
[지속 : 뜨거움과 따스함이 적용됩니다.]
[불길이 자신에게 주는 피해가 100% 줄어들고 상대에게 주는 피해가 50% 늘어납니다.]
강설은 거세게 타오르는 폭탄이 되었다.
커어어어엉-!
퉁! 투우웅!
디르가 달려드는 소리와 함께 강궁을 튀기는 듯한 소리도 함께 들려왔다. 이제 말라쿠스는 디르가 맞을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배제한 채로 총공세를 퍼붓는 것 같았다.
‘하지만….’
컹!
[사냥개 디르가 악전고투를 사용합니다.]
[짧은 시간 받는 피해를 50% 감소시키며 충격에서 빠르게 회복합니다.]
[상대에게 출혈을 발생시켰을 경우, 더 많은 피를 흘리게 합니다.]
공포라는 게 제거된 맹수는 자연재해나 마찬가지였다.
피할 수 없다는 무력감과 그 잔혹함을 함께 몰고 왔으니까.
“하!”
파아아악!
키엥!
짧은 후려치기.
이것은 디르의 아가리를 후려쳤다.
하지만, 금세 회복한 디르는 강설의 목줄기를 물기 위해 다시 고개를 돌려왔다.
파파파팍!
“으윽!”
그림자 손으로 화살을 붙잡는 데 아까와는 다른 힘이 느껴졌다. 활대의 탄성으로부터 전해져 온 이 엄청난 힘은 화살에 한 번이라도 공격을 허용할 시, 곱게 끝나지 않으리라는 느낌을 주었다.
“엄살떨지 마라.”
“그쪽부터 해결하고 말해.”
“흥! 금방이다.”
덩치가 더 커진 사냥개와 씨름하던 강설의 몸이 일순 자세를 바꿨다.
후우웅!
그의 어깨가 디르의 턱 아래에 정확히 걸쳐졌다.
“잡았다, 이 자식.”
“디르!”
강설의 몸을 움직이는 쟈마드는 디르를 짊어진 그대로 아름드리나무를 향해 돌진했다.
콰가가가가가각!
콰지이이이익!
아름드리나무가 통째로 넘어지고 그 후에도 내던져진 디르가 나무 하나를 더 부러트린 후에야 충격이 끝이 났다.
타다닥…
타아아악…
화르르르륵!
그들이 부딪힌 지점에서 불길이 일었다.
“이제 좀… 이런!”
커어엉-!
하지만, 디르의 넘치는 생명력은 금세 되살아나 강설에게 돌진했다.
[사냥개 디르가 그림자 암습을 사용합니다.]
[공격 준비 자세에서 모습이 사라집니다.]
[공격을 시작할 때 모습이 드러납니다.]
[상대가 디르를 포착하지 못했을 경우 출혈과 함께 추가 피해 50%를 받습니다.]
“보통 개가 아니군!”
“그야 그렇겠지. 이 개는….”
콰지이익!
다시 한번 디르의 턱주가리가 강설의 주먹에 얻어맞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디르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 눈이 붉게 번들거렸다.
“그림자니까.”
“이봐, 사냥꾼. 모순됐다고 생각하지 않아?”
“…….”
투우우우웅!
파아악!
동요한 듯한 말라쿠스의 화살은 강설에게 뻔히 보였다.
[말라쿠스의 무력화 사격이 명중에 실패합니다.]
콰지이이익!
강설의 주먹이 디르를 다시 한번 날려버렸다.
키에에엥!
쿠지지직! 쿠지이이이익!
디르와 강설의 싸움이 일어난 주변부는 온통 부러진 나무들로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정작 그림자를 멋대로 부리는 건 네가 아닐까?”
“닥쳐라! 디르는… 디르는 하나뿐인 내 친구야….”
“그래서 그런 거군. 너는 억지로 죽은 디르를 살려낸 거냐?”
“하지 마! 그렇게 말하지 마아아아아!”
투우우웅! 투우우우우웅!
[말라쿠스가 실재하는 고통을 사용합니다.]
[화살이 짧은 시간 동안 고정 피해를 입힙니다.]
파팍-!
화살을 계속해서 쏘아내 봐야 맞질 않으니 의미가 없었다.
푸스스.
그때, 갑자기 숲속에서 말라쿠스가 직접 단검을 쥔 채로 뛰쳐나왔다.
그에게 달리 남은 수가 없었던 것일까.
커어어어엉!
나름 회심의 수였고 다른 이들이라면 반응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속도도 매우 빨랐지만, 강설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팍-!
“커헉… 뜨… 뜨거워어어어!”
키에에에엥-!
강설은 말라쿠스의 목과 디르의 목을 동시에 붙잡았다.
부우웅-!
콰지지직!
그는 디르를 저 멀리 힘껏 던져버린 후, 말라쿠스마저 땅에 패대기쳤다.
“크헉!”
“이런 모순된 네가 감히 그림자를 심판하다니, 농담하는 거지?”
“디르는 내 유일한 친구다.”
“그래서? 죽은 사냥개를 되살린 건가? 네 이기심을 위해?”
“…디르가 없으면 나에겐 아무것도 남지 않아. 모두… 모두 네놈들이 빼앗아갔으니까… 내가 아는 거라고는… 네놈들의 그림자 소환술뿐이었으니까.”
“웃기는군. 그림자 소환술을 심판하는 네가 이런 꼬락서니라니. 네가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기나 해?”
말라쿠스는 천장을 바라본 채로 읊조렸다.
“잘못된 거… 안다. 이미, 알고 있었어.”
“뭐?”
“네놈들이 내 부모와 내 눈, 그리고 내 삶을 앗아갔을 때 디르는 내 곁에 남았다. 빛을 잃은 내게 빛이 되었어.”
“…….”
“그런 디르가 죽고 나서, 정신을 차려보니 디르는 내 곁에 있었다. 내가… 자각하지도 못한 채 이 끔찍한 술법을 행한 거지.”
“모순됐구나.”
“그때 깨달았다. 그림자 소환술이… 잘못된 게 아니라는 것을… 그림자를 종으로 부리기 위해, 그런 끔찍한 마음으로 만들어진 술법이 아니라는 것을.”
그림자 사냥꾼 말라쿠스.
그의 해답이 여기에 있었다.
“…그리움이다. 누군가를 향한 그리움이 만들어낸 술법이야. 이 술법은 저주받은 술법 따위가 아니었어. 오로지… 그 뜻이 술자에게 달린 거였어.”
“그걸 깨달았는데도 왜 소환사들을 사냥했나?”
“속죄할 수 없으니까. …씻어낼 수 없으니까.”
“미친 자식….”
오물을 씻어낼 수 없으니, 오물에 깊숙이 머리까지 처박는다. 그것이 말라쿠스가 삶을 살아온 방법이었다.
“디르, 이리 온….”
끼이이잉…
커다란 사냥개가 말라쿠스의 곁으로 다가왔다.
이미, 말라쿠스는 죽어가고 있었다.
목이 시커멓게 타버렸고 목소리도 점차 갈라져 소리가 희미해졌다.
“착하지… 놀라지 마, 함께 잠이 드는 거야.”
끼이이잉…
“누구도 괴롭히지 않고, 괴롭지 않은 그런 세상으로 가는 거야.”
말라쿠스가 최후의 말을 남겼다.
“나는… 악당이다.”
끼이잉…
디르는 말라쿠스의 곁에서 잠들었고, 그의 주인이 죽자 곧 먼지처럼 흩어졌다.
푸스스스…
말라쿠스는 끝까지 악당으로 죽었다.
[눈먼 말라쿠스를 처치했습니다.]
[악당의 소지품이 생성됩니다.]
[모험 목표를 충족하였습니다.]
[제한 시간이 종료되거나 보상을 선택하면, 모험을 마무리할 수 있습니다.]
[사냥개 디르를 처치했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강설이 뒤를 돌아보았다.
비척거리며 미레이가 다가와 있었다.
“하하… 개자식. 정말 끝까지 모순됐구나.”
“미레이. 괜찮은 겁니까?”
“아니, 죽을 것 같….”
농담처럼 말했지만, 그건 농담이 아니었다.
풀썩.
그녀가 쓰러졌다.
“미레이!”
“으으… 죽음이 조금만 더 천천히 왔으면 어땠을까. 그러면 네 모습을 좀 더 눈에 담을 수 있었을 텐데.”
“몸이….”
“알아, 사라지고 있지?”
그녀의 사지가 말단부터 사라지고 있었다. 말라쿠스의 사냥개 디르가 사라졌던 그 모습처럼.
단지, 그 죽음이 아주 서서히 진행될 뿐.
“불완전한 생명 연장은 여기까지인 거지. 하하…. 그리고 생각해보니 어쩌면 죽음이 기다려준 걸 수도 있겠어.”
“…무슨 소리입니까.”
“결국엔 내가 옳았음을 확인했잖아? 그러니, 궁상맞은 미련 따위는 남아있지를 않네, 신기하게도.”
“…….”
“스노우맨, 그거 알아? 우리에겐 두 가지 길이 있어.”
“두 가지… 길.”
“한쪽은 그림자의 모든 힘을 끌어내기 위해 그들 위에 군림하는 잘 닦인 길. 다른 한쪽은 아직 누구도 가지 못한… 그림자와의 공존을 꾀하는 거친 길이야. 넌, 어느 쪽….”
미레이는 질문을 끝마치지 못했다.
강설이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 대답을 대신했기에.
그녀는 세상 가장 환한 미소로 그 눈빛을 반겼다.
그녀는 품에서 궐련을 꺼내어 불을 붙였다.
후우웁…
한 모금 깊게 들이쉰 후, 그녀는 말을 내뱉었다.
“소딘… 그동안 견뎌줘서 고마워. 우리가 해냈어.”
“…….”
“우주에서 제일가는 천재 미레이의 300번… 아니 마지막 기록. 나는 증명했어, 그레고리. 이게 내가 세상에 남기는 마지막 발자국이야.”
그녀의 시선이 점점 탁해졌다.
“가… 가서 널… 아니 우리를 세상에 보여줘. 우리가….”
말이 끊길 듯 말 듯 이어지지 못했다.
“공존할 수… 있다는….”
투욱.
그녀의 말소리 대신 궐련의 향만이 그 자리에 남았다.
이곳은 정의조차 길을 잃는 곳.
판데아였다.
세상을 바꿀 그림자 소환사 미레이와, 뒤틀린 그림자 사냥꾼 말라쿠스는 오늘 이곳에서 죽었다.
[조력자 ‘그림자 소환사 미레이’가 사망하였습니다.]
[앞으로의 모험에서 해당 조력자가 등장하지 않습니다.]
오직, 그들의 죽음을 지켜본 장본인인 강설만이 남아 한참 동안 자리를 지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