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120
제119화
강설의 눈빛이 일순 싸늘하게 변했다.
“나를 아십니까?”
박창식이 함께 이곳까지 달려왔던 옆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일들 제대로 했구나!”
“형! 맞다고 했잖아요. 북문에서 계속 지키고 있었는데 타이밍 좋게 지나가서 바로 형한테 달려갔다니까요!”
“잘했다, 잘했어!”
강설은 자기들끼리 알 수 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이들에게 물었다.
“묻겠습니다. 나를 아십니까?”
“아, 죄송합니다. 손님을 앞에 두고… 혹시 일전에 아우데닌에 들렀던 적이 있지 않으십니까?”
“네. 맞습니다.”
“휴… 그때 저희가 놓쳤던 분이 맞군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기다렸습니다.”
강설이 지금 할 만한 생각이라고는 단 하나뿐이었다.
‘나를 기다렸다고? 왜지?’
길드 간의 알력이라든가 분쟁에 개입해달라는 부탁은 사절이었다.
그보다 사소한 부탁은 당연히 거절할 생각이었고.
“절 기다린 이유가….”
“차근차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일단 숙소를 잡기 전이신 것 같은데 굳이 불편한 곳에서 주무시지 마시고 미리 마련해둔 곳으로 가시죠.”
“미리… 마련해뒀다니, 제 잠자리를 말입니까?”
강설의 뇌리에 박창식의 이미지가 철두철미함을 넘어서 약간 꺼려질 정도로 준비성이 철저한 남자로 남겨졌다.
“예. 꽤 오래전부터 공실이었는데 혹시 몰라서 계속 관리는 하고 있었습니다. 일단 그쪽으로 가시죠.”
원래라면 거절해야 마땅한 제안이었다. 속셈도 알 수 없는 자가 마련한 숙소에서 잠을 잔다니.
“걱정하실 일 안 생기게 하겠습니다. 기껏 이렇게 다시 만났는데 문제라도 생기신다면 저희 쪽이 더 괴로운 입장이라서요.”
“일단,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종서야, 넌 애들 데리고 먼저 가서 숙소 관리 상태 좀 확인해 봐.”
“알겠어요, 형.”
“그래, 수고했어.”
사람들이 우르르 빠져나가자 박창식만 남게 되었다.
“아, 옆쪽에 여성분은….”
“일행입니다.”
“숙소에는 방이 여러 개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딱히 그 문제로는 고민하지 않았는데, 박창식은 해결했다는 듯이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춥지 않습니까?”
박창식의 옷차림은 조금 단출해 보였다. 강설의 질문에 그가 맹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엄청 춥네요. 그러니까 얼른 걸으시죠. 밤공기가 찹니다.”
강설은 그가 어떤 목적이 있어서 홀로 남았다는 것을 은연중에 느꼈다.
단순히 숙소로 안내를 하는 것이라면 다른 이들에게 시켜도 되었을 것인데.
이렇게 직접 수고를 마다하지 않고 행동한다는 것은 그에 걸맞은 목적이 있다는 뜻이다.
“할 말이 있으신 겁니까?”
“예, 있지요. 일단 제게 드리운 그 경계심부터 걷어내야 하니까요. 숙소로 가는 동안이면 충분할 것 같은데….”
“글쎄요.”
“하하, 아니면 어쩔 수 없지만요.”
박창식은 생각 외로 대범했다.
그는 손을 후후 불어가면서 말했다.
“용건부터 말씀드리자면, 현재 당신의 도움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건 질색입니다.”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마 귀찮은 일이라고 생각하시지 않을 테니까요.”
“말씀해 보시죠.”
“얼마 전, 그러니까 당신이 아우데닌에 처음 온 날보다도 더 전에 어떤 물건이 발견되었습니다. 제가 당신을 기다린 건 그 물건 때문입니다.”
강설은 박창식의 말에서 느껴지는 음험한 냄새를 맡았다.
정확히는 박창식에게서가 아니라 그가 말한 물건에서.
박창식이 품에서 뭔가를 꺼내 강설에게 보여주었다.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조약돌이었다.
“흐음….”
곧, 그 물건에 대한 정보가 떠올랐다.
[자격의 증표(고행)]
등급 : 희귀
적정 레벨 : 없음
무게 : 0.1kg
고행의 미궁에 입장하는 데 필요한 증표.
증표 하나에 총 5명의 인원이 입장할 수 있다.
특수 능력 : 고행의 미궁에 입장한다.
“이건….”
강설은 조약돌을 보며 어딘가 낯이 익다는 생각을 잠깐 했었다.
특히나 돌 표면에 새겨진 문양이.
‘미궁의 증표다!’
미궁.
유적의 한 종류로서 판데아 대륙 전역에 존재하는 장소.
일반 유적과 미궁을 구분한 이유엔 이런저런 게 있지만, 굳이 하나만 꼽자면 바로 생존율이었다.
미궁은 문자 그대로 일반 유적과는 달리 쉽게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미궁 안에 존재하는 마수들과 함정도 문제였지만, 가장 지독한 것은 살의였다.
‘미궁은 침입자의 피를 원한다.’
미궁은 그 공간 자체에 의지가 깃들어 있었다.
유적이 사체가 된 고래의 몸속을 탐험하는 것이라면 미궁은 살아있는 고래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차이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모험가와 용병들은 미궁이 발견되는 즉시 그곳으로 향했다.
바로 그곳에 많은 보물이 잠들어 있기에.
평범한 유적에서 일반적으로 얻을 수 있는 보물과는 조금 다른, 특별한 보상을 얻을 수 있는 곳이 미궁이었다.
마치 파리지옥처럼, 사람들은 그렇게 미궁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지만 미궁이 발견되더라도 모두가 미궁에 들어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미궁에 들어가기 위한 최소 조건인 증표가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증표는 미궁이 발견된 곳 주변의 강력한 마물들에게서 수확할 수 있었고.
한마디로 증표는 미궁에 들어갈 최소한의 자격을 증명하는 상징물이었다.
‘이걸 얻었단 거는… 미궁이 발견된 건가?’
강설은 판데아 대륙 전역에 있는 미궁을 탐험했었다. 대륙 미궁의 대부분을 돌파했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이 미궁은 한 번 돌파한 사람이 나오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남쪽 지방에서 돌파했던 미궁을 북쪽 지방에서 다시 마주할 수도 있었다.
물론, 그럴 확률은 매우 희박했지만.
“미궁이 발견된 겁니까?”
“네, 맞습니다. 문자 그대로 고행의 미궁이죠.”
강설은 태연하게 대답하는 박창식에게 물음표를 떠올렸다.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사실을 왜 외부인인 제게 말씀하시는 거죠?”
“하하… 외부인이라니, 너무 거리를 두시는 거 아닙니까? 이미 미궁 얘기를 알아버린 시점에서 외부인은 아니지 않습니까?”
박창식은 뒤통수를 긁적이며 멋쩍게 웃었다.
그 나름의 위트를 발휘한 거지만, 강설의 표정은 싸늘하기만 했다.
“…이미 한 차례 들어갔던 거군요.”
“어휴… 눈치가… 혹시 미궁에 대해 잘 알고 계십니까?”
“모른다고 하긴 어렵습니다.”
“그렇군요. 하긴, 점수도 거의 제3 배는 족히 되시는데 그럴 만도 하죠. 혹시 언제 한번 비결이라도….”
“그보다, 미궁 얘기를 하죠.”
“그렇죠. 미궁이 먼저죠. 그러니까… 음… 비공개 님? 그 어떻게 불러야 하죠?”
“스노우맨입니다.”
“스노우맨. 눈사람이군요. 절묘하네요, 사람 같지 않은 점수니….”
박창식이 증표를 꽉 움켜쥐고 말했다.
“사실, 증표는 애초부터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손가락을 펼쳤다.
3개의 손가락이 펼쳐졌다.
“3개였죠.”
“그런데 하나만 남았다는 건….”
“네, 맞습니다. 이미 2번이나 미궁에 들어갔었습니다. 그것도 한 번은 제가 직접.”
강설은 박창식의 말을 듣고 전후의 상황을 종합하다 불현듯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냈다.
가끔 기억이 이런 식으로 떠오를 때가 있었다. 아직 모든 기억을 되찾지 못했기에.
‘고행의 미궁… 그런가. 그렇게 된 거였군.’
고행의 미궁은 조금 특별한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강설은 그것을 알고 있지만, 일단은 박창식의 얘기를 경청했다.
“고행의 미궁은 상당히 특이하게 진행됩니다.”
“어떤 방식이죠?”
“우선, 현재까지 확인된 바로는 미궁에는 총 5명만 입장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보다 적은 인원일 경우에도 입장이 되지 않고요.”
여기까지는 미궁을 경험한 자들이라면 흔히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이제 그의 입에서 고행의 미궁만이 가지는 특징이 흘러나올 것이다.
“우선, 미궁에 입장하면 우리는 어두컴컴한 공간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시야는 극히 제한되어 있습니다. 자기 발치 앞만 겨우 보일 정도로.”
문이 있을 것이다.
“그곳에 문이 있습니다. 문은 총 5개가 있습니다.”
문 하나가 다를 것이다.
“그런데, 모두 같은 문이 아닙니다. 다른 문들은 평범하고 투박한 모양인데 오직 하나의 문은 조금 괴악한 문양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마치… 악마의 문처럼.”
여기까지는 똑같았다.
과연 그 뒤까지 똑같을까.
“고행의 미궁이라는 이름답게 미궁의 각 문은 서로 다른 고행을 경험하게 됩니다. 제가 들어갔던 문은… 사방이 컴컴한 곳을 거닐게 되는 곳이었습니다.”
알고 있었다.
시간 개념도, 감각도 흐릿해져서 어디로 향하는지도 알 수 없게 되는 관문.
“아무튼, 중요한 건 제가 경험한 문이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잠겨 있던 문이었죠.”
“그 문은 어떻게 열었죠?”
“4명이 각기 다른 문에 입장하니 마지막 문이 개방되었다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아마 마지막 사람이 그 문으로 향했겠죠.”
“그렇군요.”
“그리고, 저희 파티는 조금 뒤에 미궁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강설은 그 이유 또한,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마지막 문에 들어갔던 사람이… 죽었거든요.”
“음….”
“거기까지가 처음 미궁에 들어갔을 때 알게 된 사실이고, 다음이 있습니다.”
“한 번 더 들어갔으면… 직접 들어가시지 않은 겁니까?”
“저는 아직은 공략이 어렵다고 판단했지만 다른 이들은 그렇게 판단하지 않은 것 같더군요. 이런저런 알력이 있어서 말입니다.”
“길드 문제입니까?”
“비슷합니다. 아우데닌은 5개의 거대 길드가 전이자들을 이끌어가고 있거든요. 제가 실패한 건 제 실패일 뿐, 전이자의 실패라고 여기지 않는 거죠.”
“어리석군요.”
“그들은 고행의 미궁에 직접 들어가 보지 않았으니까요.”
강설은 다음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대충 결과는 짐작이 갔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한 차례 더 진입해서 알아낸 것들이 있습니다.”
“그게 뭐죠?”
“미궁은 끊임없이 고행자의 정신을 오염시킨다는 것. 이게 조금 지나면 수치로 표현이 되더군요. 처음 진입 때는 몰랐던 사실입니다.”
“그 정신 오염 수치가 가득 차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모릅니다. 그 전에 마지막 문에 들어갔던 사람이 죽었거든요.”
“흠….”
“하지만, 이번에 들어갔던 사람은 연합 내에서도 꽤 엘리트에 속하던 사람이라 그런지 오래 버텼습니다.”
“거기서 알아낸 사실은?”
“마지막 문이 해답이었습니다. 마지막 문의 고행자가 뭔가를 해냈는지, 한쪽 문의 고행을 견디던 사람이 괴로움에서 해방되었다고 하더군요.”
강설은 그의 말을 정리했다.
“즉, 마지막 문의 고행자가 파티원들의 목숨을 쥐고 있는 열쇠로군요.”
“실패는 다양한 원인으로 일어날 수 있겠죠. 고행을 견디지 못한 파티원들이 모두 죽든가, 혹은 정신이 돌이킬 수 없이 오염되든가 하는. 하지만 성공한다면 그 이유는 오직 한 가지일 겁니다.”
박창식이 강설을 쳐다보았다.
“마지막 고행자가 모든 관문을 돌파하는 것. 그것뿐이겠죠.”
“나름 값진 정보였군요. 그럼 이제 용건을 말씀하시죠.”
스윽.
박창식은 꾸벅 고개를 숙이며 진중하게 말했다.
“부디, 이번 미궁 돌파의 마지막 고행자가 되어주셨으면 합니다.”
“대신 위험을 짊어져 달라는 거군요.”
“이번 미궁에는 저도 다시 한번 들어갈 계획입니다. 하지만, 저 스스로가 마지막 고행자에 적합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른 이들보다 조금 앞서있지만, 그것이 다른 4명의 목숨줄을 쥘 정도로 대단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강설을 바라보았다.
“죽는 게 두렵지 않으십니까?”
“두렵지 않을 리가요. 처음 미궁에서 빠져나왔을 때는 부끄럽게도 다시는 들어가지 않겠다고 다짐했습니다. 너무 무서웠으니까요.”
그는 미궁에서 전해져오는 살의를 느낀 것이다.
‘겁을 먹는 게 당연하겠지.’
강설은 고행의 미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이미 그의 말 중 2개, 아니 2명이나 그곳을 거쳐 갔었으니까.
그중 하나는, 미궁에 잡아먹혔다.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정신이 오염되어 통제력을 상실했기에.
“하지만, 더 무서운 건 이대로 미궁에 굴복한 채 무너지는 겁니다. 전, 전 여기서 무너질 사람이 아닙니다. 전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어요. 이 미궁이 그 시작일 겁니다.”
“그리고 그걸 위해 제 도움이 필요한 거군요.”
“저는 여태 여러 전이자들을 만나봤지만, 그중 스노우맨 님이 가장 압도적인 모험가 점수를 보유하고 계셨습니다. 제 목숨을 걸어볼 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사람은 거짓말을 하더라도 점수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요. 얄팍한 신뢰보다 압도적인 점수를 믿어보는 게 더 나을 것 같더군요. 부끄럽지만 부디….”
“좋습니다.”
“…네?”
그리고, 강설의 다른 하나의 말.
“자세한 얘기는 내일 듣도록 하죠, 숙소에 도착한 것 같으니.”
그 말은 고행의 미궁을 정복했다.
그의 최강의 말 중 하나였던 피의 성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