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13
제12화
카루나의 몸이 달빛으로 타오르는 것을 보며, 강설은 주먹을 꽉 쥐었다.
‘어떻게… 여기까진 왔네.’
5형제를 공략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그중 강설이 택한 방법은 가장 난해한 방법이었다.
5형제의 사이를 이간질해 서로 싸우게 하는 방법.
큰 그림은 명확했지만, 조건이 꽤 까다로웠다.
1. 추방자, 혹은 다른 장치를 이용하여 부족 내부에 혼란을 심기.
2. 부족의 신물인 바위 주먹을 건드려 5형제의 마음에 의심을 심기.
3. 지도자 중 가장 강한 인물이 바위 주먹을 가져가는지 확인하기.
4. 족장인 첫째에게 그 책임이 돌아갔을 때, 형제 중 1명 살해하기. (받게 될 저주를 생각해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 단, 목표에서 둘째는 제외.)
5. 이제 가만히 있으면, 둘째가 형제들을 설득해 첫째에게 반기를 든다(인물상을 제외한 첫째와 둘째의 경쟁 관계는 고정. 때문에, 이건 고정 이벤트다. 단, 이때 첫째가 바위 주먹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첫째가 패배한다.)
6. 첫째가 이기는 것을 지켜보기. (3형제가 아닌, 첫째가 이겨야 하는 이유는 그가 이겼을 때 3형제의 ‘원한’ 저주를 몰아받아 상대하기 수월하기 때문.)
7. 첫째가 저주를 몰아 받았을 때, 그를 쓰러트리기.
이 모든 것들은 강설이 자정부터 벌인 일들이다.
‘고생도 이런 고생이 없군….’
예측하지 못했던 파티원의 전멸.
하지만, 최고 보상을 노릴 수 있는 모험이기에 여기까지 달려왔다.
이제, 그 고생도 곧 끝이 날 것이다.
그가 짜낸 5형제 공략은 7개의 과정이 끝이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은 7번째 과정을 치르는 중이고.
‘그래도, 아직 넘어야 할 산이 있지.’
쟈마드를 쓰러트리는 것.
여기서 중요한 건, 바위 주먹을 보유한 첫째는 엄청나게 강하다는 점이다. 파티 사냥이 강제될 정도로.
더군다나 마엘이 경고까지 할 정도로 강력한 쟈마드.
초반 기본 모험인 5형제의 인물상은 매번 달라지는데, 이때 첫째의 강함에 따라 이 공략의 난이도도 결정된다.
아마, 쟈마드는 상식 밖의 강함을 선보일 것이다.
강설은 자신도 모르게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걸 어떻게 저주로 비벼보는 거지만. 아무튼, 계획대로 돼야 할 텐데.’
강설의 상념은 거기서 끝이었다.
이제는 전투에 집중할 때였다.
쟈마드와 카루나가 지금 막, 충돌했으니까.
콰아아아아아아앙!
“크아아아아!”
“…….”
반월 상태의 카루나는 쟈마드의 공격을 정직하게 맞받아쳤다.
콰아아아앙!
치이익…
카루나는 뒤로 몇 발짝 밀려났을 뿐, 그 이상의 피해는 없어 보였다.
‘이 정도면….’
카루나가 충분히 쟈마드를 상대할 수 있다는 증거였다. 그렇다면 쟈마드를 그에게 맡겨도 될 것이다.
콰가가가각!
카루나와 쟈마드가 충돌할 때 만들어내는 소음은 일대를 떨어 울릴 정도였는데도, 부족원들은 광기에 휘말려 대회의장까지 들이닥치지 못했다.
‘형제끼리 충돌했을 때도 접근하지 못했으니, 마음 편하게 싸울 수 있겠어.’
강설이 다른 타이밍이 아닌 대회의장에서 쟈마드가 다른 형제들을 죽인 직후를 노린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쟈마드는 지금, 최상층에 강설과 함께 고립된 상태였다.
“감히 바위 어금니를 노리다니! 시체는 들개의 먹이로 주마!”
카가가각!
쟈마드는 원초적이고 직선적인 공격을 주로 했다.
원한 주술에 녹초가 되어 있기도 했고 주술력을 회복할 시간을 벌기 위한 것임이 분명했지만, 그것만으로도 카루나와 호각이었다.
카아앙!
캉!
‘빌어먹을… 그림자 소환 패널티가 뼈아프다.’
카루나가 쟈마드보다 약한 건 아니었다.
아마 바위 주먹을 지니지 않은 쟈마드와 패널티가 없는 카루나는 서로 호각이지 않을까 싶었다.
문제는 하급의 그림자 소환을 사용해 카루나의 능력이 20%로 제한되어 있기에, 원한 주술로 기진맥진한 쟈마드도 겨우 상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하지만… 타이밍이….’
쟈마드는 카루나의 능력을 어느 정도 파악했다고 생각했는지, 더욱 광분해서 공격해왔다.
[쟈마드가 지진태세로 전환합니다.]
드드드드드!
운 좋게, 주술은 성공했고 쟈마드의 몸에서 막대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고작 이따위 힘으로 산을 넘보았단 말이냐!”
쟈마드의 지진 태세.
꾸준히 주술력을 소모하여 진동을 만들어내는 능력.
쟈마드가 자신의 체력이 일정량 이상 소모되었을 때 펼치는 능력이었다.
후우웅-!
카가가가가가가각!
쟈마드의 주먹을 간신히 방어한 카루나.
쟈마드가 월광검을 부러트리려는 듯한 기세로 맹공을 펼쳤다.
카아앙!
드드드드!
카앙!
드드드!
카루나는 충돌 지점부터 퍼져나오는 진동 때문에 쟈마드를 상대하는 것이 버거워 보였다.
“쟈마드는 산이다! 나는 모든 것을 발아래에 둘 자다!”
콰가가가가각!
카루나가 강설을 보호하려다 또다시 밀려났다.
반월 상태로는 쟈마드를 쓰러트릴 수 없었다.
‘이상해, 지금쯤 바위 주먹을 사용한 반동에 걸레짝이 되어 있어야 정상인데….’
여러 번 솔로 플레이를 하며 확인했던 부분이었다.
반월 상태의 카루나가 쟈마드에게 계속 밀린다는 건, 그의 계산과 경험상 말이 되지 않는 일이었다.
‘뭔가 문제가 생겼나? 뭔가 놓친 게….’
강설은 지난 과정을 짧은 시간 내에 돌이켜 봤지만, 딱히 문제 될 만한 부분은 없었다.
그렇다는 얘기는, 문제가 발생한 부분이 과거가 아닌 현재일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였다.
후우우우웅!
일전과 지금, 오차는 하나뿐이었다.
바로 쟈마드의 존재 그 자체.
강설은 그간 수많은 첫째를 상대했지만 쟈마드를 상대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쟈마드의 바위 주먹이 한 차례 굉음을 토해냈다.
직후, 그의 주먹이 대지를 내려찍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큭… 카루나!”
카아앙!
캉!
카루나가 강설에게 밀어닥치는 바위 파편을 남김없이 쳐냈다. 월광검이 그때마다 비명을 토하는 것이, 바위 파편 하나하나에 막대한 경력이 담겨있다는 게 느껴졌다.
‘잠깐, 저 바위 주먹….’
강설은 바위 주먹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지금쯤 모든 힘을 소진해 충전 상태에 들어가야 정상인 바위 주먹.
한데, 어째서인지 계속 주술력을 뿜어내고 있었다.
“힘! 온몸에 힘이 넘친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지금의 바위 주먹은 반동으로 쟈마드를 괴롭히기는커녕 오히려 계속 그에게 힘을 주고 있었으니까.
‘이런… 어떻게 이런 일이….’
모든 일에는 확률이라는 게 있다.
특히나 영원의 세계는 그 확률이라는 것이 아주 민감하게 작용하는 세계관이었다.
강설이 17년 동안 플레이하면서 한 번도 보지 못했던 달의 씨앗을, 영원의 세계를 직접 플레이했을 땐 획득할 수 있었던 것처럼.
확률이라는 이름의 얄궂은 운명은 플레이어를 넘어지게 만든다.
‘바위 주먹이… 산의 주먹으로 개화해버렸다.’
설정집에서나 짤막하게 기록되어 있는 문구.
– 개요 : 산의 주먹
「바위 주먹에 대지의 기운이 가득 차오르면 개화하여 산의 주먹이 된다. 이 물건에 대해 다른 정확한 기록은 남겨지지 않았다.」
바위 주먹이 대지의 기운을 받아들여 더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는 이스터 에그.
물론 17년 동안 그런 일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강설 입장에서는 빌어먹게도 단 한 번도.
“이래서 될 놈은 되고 안 될 놈은 안 되는 거군….”
“짓눌려라! 침략자여!”
콰아앙!
콰아아앙!
저건 바위 주먹이 개화한, 산의 주먹이었다.
강설이 뭔가 이상함을 느낀 순간, 이미 상황은 벌어지고 난 후였다.
‘도망칠까? 아니, 지금 나한테 남은 선택지가 있기는 한가?’
강설의 무엇보다 강력한 무기인 경험.
지금은 그 경험이 무용지물이 된 상황이었다.
콰가가각!
콰가각!
“박살내주고, 뭉개주마!”
원한 저주도, 신물의 힘을 강제로 끌어다 쓴 반동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쟈마드는 강설을 맹렬하게 죽음으로 내몰고 있었다.
강설은 죽음의 공포 앞에 텅 빈 동공으로 중얼거렸다.
“카루나! 위험….”
콰가가가가가가가가각!
콰아아앙!
쟈마드의 공격이 강설과 카루나를 저 멀리 날려버렸다.
“커허억…….”
강설은 벽에 처박히는 강렬한 충격에 일순, 시야가 까매졌다.
* * *
게임판을 지켜보는 다섯 명의 플레이어, 그중에는 강설도 포함되어 있었다.
그런데, 게임판을 들여다보니 상황이 좋지 못했다.
“스노우맨, 도망치자.”
“그래… 우리라도 도망치자. 이건 못 깨. 그냥 말 몇 개 던져주고 살 수 있는 말들은 살려 보내자.”
“…….”
강설은 이때를 기억했다.
정확한 나이는 기억나지 않지만, 그가 아주 어렸을 때였다.
스노우맨의 전설이 아직 여물지 않았을 때의 기억.
파티원들이 그들의 실수로 위험해 처했고, 리더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정해야 하는 순간이었다.
‘이때 내가 무슨 생각을 했었지? 아! 기억났다….’
말들이 불쌍해.
이렇게 죽기에는, 너무도 불쌍해.
줄곧 힘내왔는데.
그 여린 아이는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았다.
“스노우맨….”
“도망치지 않을 거예요.”
“왜? 이건 못 이긴다니까? 그냥 말 몇 마리 죽으면 그만인….”
“아뇨, 말 몇 마리가 아니에요. 여기까지 오기 위해 우리 모두 노력했잖아요….”
“우리는 괜찮….”
“그게 아니라니까요. 내가 말하는 건 플레이어가 아니에요.”
“…그럼?”
“말. 말들이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죽을 수는 없어요.”
“……하아. 고작 말 때문에?”
“…무모하군.”
스노우맨은 무모하다.
하지만, 그와 한 번이라도 게임을 플레이했던 플레이어들은 모두 다시 한번 그와 함께하기를 원했다. 그의 판단은 늘 정확했고, 말의 목숨을 허투루 여기지 않았다.
정말, 그 세계에 사는 인물처럼 플레이했다.
“…할 수 있어요?”
“아직, 방법이 있어요.”
스노우맨에겐, 공식 아닌 공식이 있었다.
위기는 누구에게나, 언제나, 어디서나, 이유 없이 찾아온다.
그런 위기에서 가장 먼저 죽는 말은 어떤 말일까?
‘싸우지 않는 말. 도망치는 말….’
싸우지 않으니 이길 수 없고, 도망치니 이길 수 없다.
스노우맨의 말이 항상 기적을 만들어냈던 이유도 위기에 맞섰기 때문이었다.
“빌어먹을, 좋아! 제발 우리 좀 구해줄래?”
“스노우맨 부탁해!”
“이런 씨… 나도 싸울게, 스노우맨!”
창과 방패의 가면을 쓴 여인이 스노우맨에게 말했다.
“그럼 선택지를 고르세요, 스노우맨.”
“3번. 검을 휘둘러 거인 쥬르의 발목을 노린다.”
“과연… 스노우맨의 검격은 동료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요? 아주 낮은 확률이 예상되는데….”
또르르르륵.
주사위는 구른다.
언제나처럼, 확률이란 가면을 쓰고 운명을 물어다 오며.
“주사위가 굴러갑니다. 당신에게 기적이 일어나기를.”
주사위 눈을 확인하기 전, 그는 회상에서 튕겨 나왔다.
* * *
카아아아앙!
“끄으으윽…. 카, 카루나….”
“…….”
카루나가 정신을 잃었던 강설을 훌륭하게 지켜내고 있었다.
그런데 카루나의 그림자가 군데군데 구멍이 나 있었다. 여러 번 위기를 맞이했던 것 같았다.
“이제, 끝장을 내주마….”
쟈마드의 기세는 오히려 더욱 강해지고 있었다.
마무리만 하면 될 줄 알았던 상황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드드드드!
[쟈마드가 산사태를 준비합니다.]
‘산사태!’
쟈마드가 주술력을 박박 긁어모아 사용하는 기술.
저기에 휩쓸리면 죽을 게 분명하다.
멈칫.
강설은 도망치려던 몸을 억지로 붙들었다.
그리고 차분하게 정신을 집중했다.
‘지진 태세의 산사태의 총 데미지… 카루나가 반월 상태로 전투를 벌인지 대략… 5분 언저리….’
생각을 멈추면 죽는다.
‘빌어먹을 얼마나 기절해있던 거지? 그 시간을 알아야….’
그때, 강설이 자신을 찾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치지지지직!
후아아아아아앙!
[카루나가 월광충천(月光衝天) 3단계, 만월(滿月)에 돌입합니다.]
카루나의 갑옷이 찬란한 달빛으로 빛났다. 잊힌 달의 유적에서의 그 모습이었다.
“됐어!”
콰가가가가각!
쟈마드의 산사태가 거의 완성되었다.
뾰족 바위산이 크게 진동했다.
“보아라! 이것이 산이다!”
[쟈마드의 산사태가 발동합니다.]
“카루나!”
카루나가 검을 하늘로 치켜올린 후, 달빛을 끌어모았다.
그의 갑옷이 맹렬하게 푸른빛을 토해냈다.
‘아직 부족해, 산사태에 휩쓸릴 거야!’
그 부족함을 메워야 한다.
쟈마드가 노력하는 그를 비웃었다.
“크하하하하! 탄크리드 님의 힘에 짓눌려져라!”
강설은 재빠르게 예상치 못한 위기를 맞이했을 때 사용하려 아껴둔 기술을 꺼내 들었다.
“…아직, 안 졌어!”
후우우우웅-!
강설의 몸에서 서늘한 기운이 뿜어 나오기 시작했다.
[휘발성 능력 달의 무대를 사용합니다.]
[달의 무대에 막이 오릅니다.]
[주인공이 정해집니다.]
스으으으으윽…
하늘에서 거대한 달빛이 뾰족 바위산 가장 높은 봉우리를 한꺼번에 태울 듯이 내리쬈다.
그리고 그 빛에 가장 밝게 빛나는 것은 단연 카루나였다.
파앗!
[주인공은 월광(月光) 기사 카루나입니다.]
[달빛이 내리쬐는 동안 카루나의 모든 능력치가 50% 상승합니다.]
[주인공이 아닌 자들은 무대에서 내려오게 됩니다.]
[달빛이 내리쬐는 동안 카루나를 제외한 이들의 모든 능력치가 20% 감소합니다.]
조연인 강설의 몸에서 얼마 안 되는 힘이 스르륵 빠져나갔다.
그리고 또 다른 조연인 쟈마드는 몸에서 급격하게 빠져나가는 힘에 놀랐지만, 서둘러 주술을 완성했다.
“무슨!”
‘이러면… 산사태를 넘어설 수 있어!’
계산을 끝낸 강설이 이를 드러내며 후련하게 웃었다.
“지지 마, 카루나!”
[카루나가 만월참(滿月斬)을 사용합니다.]
[능력치가 충분합니다. 만월참이 온전한 월광참(月光斬)으로 향상됩니다.]
카루나는 조용히 읊조리며 검을 내리 그었다.
“달이 차올랐으니… 겸손하라….”
그의 월광검에서 엄청난 빛이 뿜어 나왔다.
카루나의 나직한 말소리가 굉음과 함께 봉우리를 울렸다.
“이제, 뜻을 관철하겠다.”
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무수한 바위 파편과 뾰족 바위산 어디에서도 보일 만큼 강렬한 빛이 충돌했다.
카가가가가각!
카가가각!
혹시 계산이 틀렸다면?
산사태, 지진 태세, 산의 주먹까지.
모든 계산이 정확했을까.
하지만 이미 선택지를 골랐고, 주사위는 던져졌다.
‘제발… 제발….’
“끄으아아아아아아아아!”
카가가가각!
콰지직!
엄청난 충돌음.
카루나의 기세도 대단했지만, 그에 맞서는 쟈마드도 어마어마했다.
산 전체에 큰 흔들림이 전해졌다.
강설이 디디고 있던 땅도 그에 따라 출렁거렸다.
굉음과 먼지가 30초 가까이 지속했다.
산사태의 부가 효과인 여진이 벌인 일이었다.
콰가가각!
결과가 어떻게 되었을까.
강설은 먼지가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스으으으.
그리고, 곧 먼지가 사라진 전장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