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31st Piece Overturns the Board RAW novel - Chapter 134
제133화
머리를 풀어헤치고 아침부터 술을 마시는 여인이 있었다.
“언니… 또 밤새도록 마신 거예요? 곧 모험 들어가잖아요, 슬슬 몸 관리해야죠….”
“하하, 몸 관리? 그래… 몸 관리 좋지. 근데 인영아, 모험이 근육 있고 늘어진 살 좀 없다고 죽을 놈이 살아 돌아오는 곳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몸 관리 같은 거… 그래, 그거 꼭 해야 하니?”
“취했어요, 아저씨도 그만 들어가세요. 언니! 정신 좀 차려요.”
취한 여인은 아우데닌의 연합 주축 중 한 명인 손주연이었다.
평상시 날이 서 있고 쌀쌀맞던 여인의 이렇게 풀어진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려웠다.
“조금 더….”
“네? 뭐라고 하는지 잘 안 들려요.”
그녀는 구슬퍼 보였다.
“조금만 더… 기다려 봐도 될까?”
“……언니, 창식이 오빠 죽었어요. 그러니까 이제 이런 거 그만하면 안 돼요?”
“이이이… 야아아!”
쨍그랑!
공예가 들어간 술잔이 박살이 났다. 그녀가 분을 못 참고 집어던진 탓이다.
“흑… 흑… 창식이 안 죽었어, 안 죽었다고!”
“들어가는 거… 못 말렸잖아요. 그럼… 끝난 거잖아요.”
그토록 냉랭했던 미궁의 고행자 선발 분위기.
일이 그렇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길드 간의 알력도 이유로 꼽히긴 했지만, 실질적인 연합 지도자였던 박창식이 미궁으로 향하게 됐을 때 그의 부재를 모두 걱정했었다.
특히나 손주연이 그랬다.
그렇기에 그를 대신해 미궁으로 향할 이들을 찾았었다.
강설의 등장으로 보기 좋게 실패한 계획이었지만.
최인영은 손주연이 박창식과 교감하는 사이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박창식은 훌륭한 인품에 더해 늘 자신감에 차 있었고 연합원 일부는 그런 모습에 이끌린 사람들이었다.
최인영이 슬픈 표정으로 손주연의 발밑에 있는 유리 잔해를 그러모았다.
“이미, 미궁에 잡아먹혔다고요.”
“시발….”
“스읍… 험한 말! 또!”
“시발… 시발… 그러니까 그런 데는 왜 들어가서는 푼수 새끼가….”
“언니.”
“그냥 적당히 연합에서 떨어지는 꿀이나 핥으면서 자빠져 자지, 왜… 왜 나선 거야!”
최인영이 손주연의 손을 잡아주었다.
“창식 오빠 그런 사람 아닌 거 언니가 제일 잘 알잖아요.”
“머저리 새끼.”
“그 머저리 때문에 다들 모였었잖아요, 우리.”
“…처음엔 그랬지.”
전이된 이후, 가장 먼저 사라져갔던 가치는 믿음이었다.
상호 간의 신뢰와 약속들 그리고 동료로서의 믿음.
모두 살기 위해 발버둥 치니, 그들의 발에 누가 차이든 중요한 문제는 아니었으리라.
하지만 박창식은 달랐다.
그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그를 필두로 모여들었고 지금의 연합이 탄생한 것이다.
하지만, 이제 그가 없는 연합은 심심하고 온갖 구린 문제에 시달리는 이권 단체일 뿐이었다.
박창식이 없는 연합은, 쓸쓸했다.
“현재까지 모험 중에서 최장기로 진행된 기간이 3달이래요.”
“…3달?”
“네, 그리고 창식이 오빠가 미궁에 들어간 지 4달째에요.”
미궁에 들어간 후, 4달.
가망이 없었다.
미궁은 이번에도 사람을 잡아먹었다.
“그러니까 이제 이다음을 위해서라도….”
그때였다.
“손주여어어언!”
“…응?”
“손주연! 손주연 여기 있다고 들었는데! 하아… 하아… 손주여어언!”
어떤 남자가 손주연이 있는 가게에 찾아왔다. 익숙한 목소리였으니 아마도 그녀와 친하게 지내는 길드원 중 한 명일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왜 왔어요? 주연 언니 아침까지 술 마셔서 지금….”
“하아… 하아… 거기 있었구나…. 잠깐만, 잠깐만 숨 좀 돌리고… 후….”
급하게 달려왔는지 남자는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다.
이렇게 급하게 달려와 전할 소식이 무엇일까. 취기와 피로에 졸음이 쏟아지려던 손주연은 그 의문에 잠시 파묻혔다.
그리고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너… 설마….”
남자가 웃었다.
“하아… 맞아.”
점포 밖으로 튀어 나가려다 우당탕 소리를 내며 넘어지는 손주연.
“언니!”
“맞지? 너, 맞지?”
손주연은 별다른 충격 없이 일어나 소리쳤다. 그리고 그녀가 던진 질문에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돌아왔어.”
기다림은 끝을 고했다.
* * *
“죽여 버릴 거야! 죽일 거라고!”
박창식의 목이 손주연의 손에 붙잡혔다.
“컥… 컥… 누가 좀… 숨… 숨이….”
“어떻게 된 거야! 대체 안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고!”
“설명… 다 설명할 테니까, 숨 좀 쉬게 해줘!”
최인영이 손주연의 허리를 뒤에서 안으며 잡아끌었다.
“언니, 주정 좀 그만… 그러니까 작작 마시랬잖아.”
“놔! 저 자식 저거….”
“후… 이제 살겠네.”
박창식이 목을 매만지며 웃었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이게 어찌 된 상황인지 잠시 판단했다.
“미궁? 미궁이라고?”
“4개월 전에 갔었다며?”
“다 죽은 거 아니었어? 가망 없다고 했잖아?”
“몰라, 나도 방금 왔어.”
사람들이 한가득.
아우데닌의 전이자들이 전부 몰려온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수많은 인파가 전이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박창식을 둘러싸고 있었다.
뒤늦게 진정한 손주연이 물었다.
“근데 왜… 혼자야?”
“…….”
“다른 사람들은….”
박창식이 다리를 절뚝거리며 길드원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고개를 푹 숙였다.
“죄송합니다. 장흥수, 성재호, 김태규는 미궁 안에서 사망했습니다.”
“…….”
“다 제가 나약했던 탓입니다. 그들은….”
털썩…
“아니야…. 재호가… 재호가 죽었다고?”
“거짓말이지? 다 죽은 거야?”
“비공개는? 그 비공개는 산 거야, 그럼?”
“그 자식 혼자만 동료들을 버리고 산 거 아니냐고!”
그들은 모른다. 안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그렇기에 저렇게 상실의 분노를 쏟아낼 상대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으드득…
박창식은 마치 자신이 모욕받기라도 한 듯, 이를 꽉 깨물었다가 최대한 침착하게 대응했다.
“여기서 말씀드릴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등대로 가서 말씀드리죠.”
수많은 인파를 헤치며 연합 핵심 인원이 등대로 향했다.
등대에 도착해 회의용 탁자 앞에 앉은 박창식. 그리고 그의 다리가 온전치 않다는 것을 눈치챈 손주연이 길드 내의 치유사에게 부탁해 회의 동안 살피도록 했다.
“멀쩡해요. 아마 휴식만 취하면 원래대로 돌아올 거예요.”
“고마워.”
“윽, 술 냄새.”
“주연 씨, 아침부터 술 마셨어?”
“아뇨, 어제부터 마셨습니다.”
“…….”
연합의 수뇌부들이 피식하고 웃어넘겼다.
그들은 박창식의 입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우리는….”
드디어 그가 말문을 텄다.
그가 세세하게 풀어놓는 얘기들은 너무도 끔찍해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리도록 만들었다.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라 이거네.”
“다들 거기서 무너진 거고… 재호가 태규를 공격한 것도….”
“어떡해….”
감성이 예민한 사람은 눈물까지 글썽였다.
“그러면… 그렇게 영혼을 빼앗긴 사람들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맞아, 설마 모두 그곳에 영원히….”
“그건….”
박창식은 이어, 최후의 고행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믿기지 않았던 미궁의 최종 보스의 힘과 그에 맞섰던 비공개의 무력까지.
“말도 안 돼!”
“창식 씨가 아무 도움도 못 됐다고요?”
그리고 결국 미궁의 보스를 쓰러트리고 보상을 선택했다는 내용까지 이야기가 흘러왔다.
쿵-!
박창식이 보물 상자를 꺼내 놓았다.
사람들도 내심 저 상자가 이번 미궁의 보상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철컥-
“허… 허허….”
“무슨 장비가….”
열댓 개가 넘는 비범한 장비와 고대 주화, 보석까지.
하지만, 모자랐다.
“제가 선택한 보상은… 이것뿐이었습니다.”
3명의 길드원이 목숨을 잃었고 미궁에 사로잡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는 턱없이 부족한 보상이었다.
“비공개! 그 사람과 보상을 따로 받은 거 아닌가요?”
“그 사람은 지금 어딨죠?”
“시비에 휘말리지 않기 위해 먼저 숙소로 돌아가셨습니다.”
수뇌부 중 한 명이 말했다.
“아니지! 그게 아닐 거야. 우리가 보상에 대해 권리를 주장할까 봐, 먼저 돌아간 거겠지.”
“맞아! 어떻게 보면 그 사람이 보상을 챙겨 나올 수 있었던 것도….”
어쩐지 허탈해 보이는 박창식의 표정.
그것을 눈치챈 것은 손주연뿐이었다.
“…비공개가 선택한 보상은 뭐였죠?”
“뻔하지! 혼자서 이 많은 보물을 독식하려면….”
박창식이 고개를 저었다.
“영혼의 해방.”
“…….”
“그는 미궁에 사로잡힌 모든 영혼의 해방을 원했습니다. 그것이, 정당한 보상이 되어주지 못할 거라는 걸 알면서도요.”
“…….”
“그, 그럴 리가….”
박창식이 눈을 감고 말했다.
“그 선의 덕분에, 먼저 떠난 미궁 공략 조원들도 수확자에게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그걸 지금 믿으라고….”
박창식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
“목숨이 아깝다면 더는 그를 모욕하지 마세요, 그런 취급을 받을 사람이 아닙니다. 그가 아주 약간의 힘만 써도 여기 있는 모두의 입을 닫는 건 쉬운 일일 겁니다.”
“…….”
“제 얘기는 끝입니다. 이제 보물의 일부를 증표의 수수료로 떼어 가셔도 좋습니다. 조금… 지치는군요.”
분위기는 참담했다.
기껏 생존자가 돌아왔다는 소식에 모두 기뻐했었거늘, 보물이 조원들의 목숨값이라는 사실과 비공개라는 인물의 심성에 모두 숙연해졌다.
그때, 구석진 곳에 앉아있던 여인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저… 이번에 갱신된 순위, 다들 보셨나요?”
“아, 그러고 보니….”
“미처 확인을 못 했네요.”
평소, 손주연을 흠모하여 박창식을 시기하던 남자가 말했다.
“창식 씨, 이제 점수 나한테 뒤처진 거 알아?”
“그런… 가요?”
남자는 박창식을 도발하며 은근슬쩍 손주연을 쳐다보고는 말했다.
“뭐, 점수가 강함의 절대적인 지표는 아니지만 그렇더라도….”
“마, 말도 안 돼!”
“…음?”
“점수! 점수 다들 지금 확인해 보세요.”
“왜 그래?”
“무슨 일인데?”
다들 순위표에 눈이 향했다.
그리고, 1위와 2위에 차례대로 적힌 비공개라는 이름에 시선이 멈췄다.
“창식 씨가 200만 점이 넘었다고?”
“미궁 한 번에 100만 점 넘게 줬다고?”
“그게… 그게 아니라 1위가….”
“맙소사….”
아우데닌에서 박창식의 200만 점을 뛰어넘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 * *
[정보가 비공개 상태입니다.]
[당신의 점수는 5,482,500점입니다.]
[모험 점수가 5,000,000점을 돌파했습니다.]
[최초 업적 ‘최전선’을 달성합니다.]
[최초 칭호 「첨병」을 얻습니다.]
최상위 모험가 순위
1. 비공개(5,482,500)
2. 비공개(2,211,710)
3. 말로합시다(1,502,120)
4. 숟가락살인마(1,372,420)
5. 누가망고를먹다망고야(1,240,130)
강설은 찢어진 상의를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후, 숙소에 앉아있었다.
고된 미궁 생활에 기운이 쭉 빠진 상태라, 칭호의 확인을 위해 시선을 움직이는 것조차 고단했다.
[최초 칭호 : 첨병]
관련 업적 : 최전선 (모험 : 없음)
특수 능력 : 능력 나무의 이미 개방된 능력을 강화할 때 소모되는 능력 점수를 1만큼 줄여줍니다.
‘그러고 보니 능력 점수도 꽤 모였었지….’
– 와… 개쩌는 효과인데 눈사람 표정 변화 없는 것 봐 ㅋㅋㅋ
– \(ㅡ ㅅ ㅡ)/ 눈사람 표정 ㅋㅋ
– 점심 뭐 먹을지 고민하는 표정임, 저거
– 방금 미궁에서 나온 사람 맞음? ㅋㅋ
– 이제 최초 칭호 정도로는 만족 못 하는 남자!
– 스노우볼 오지게 굴러가는 능력이네;
– 빈익빈 부익부라니까, 이거? 최초 칭호 쓸어 담는 사람이 무조건 다 먹는 구조야!
– 그걸 지켜보는 우리는 늘 새로워, 늘 짜릿해!
– ღ’ᴗ’ღ 여기 후원 놓고 갑니다~
미궁에 관한 일은 아마도 박창식이 정리해서 알려줄 것이다.
‘지금은… 좀 쉬고 싶네.’
미궁에서 워낙 많은 일이 있었기에, 몸도 마음도 조금 지쳤다. 때문에, 조금 눈을 붙여볼까 하는 심정으로 안락의자에 누워 서서히 눈꺼풀을 내리는 그때.
똑, 똑, 똑.
누군가 그의 휴식을 방해했다.
‘연합인가?’
아마 미궁에 대해 궁금한 것이 있다면, 그에게 직접 찾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십니까?”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얘기?”
문득 문밖에 선 자가 연합에 속한 이가 아닐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끄응….”
그가 몸을 일으켜 문에 가까이 다가갔다.
“어떤 목적이신지 말씀해주셔야 이쪽도 문을 열 기운이 날 것 같습니다.”
“…멜리.”
“네?”
“제 이름은 차멜리, 검은 순례자입니다.”
“검은… 순례자?”
미궁의 마지막 고행자로 경쟁했던 강보석이 속한 집단.
무려 4개월 전에 결판이 났던 그 일 때문에 온 것일까?
끼이익…
강설이 문을 열자, 상대의 인상이 보였다.
키가 그렇게 크지 않은 사람.
옷을 입은 선도 여인처럼 보였다.
로브의 후드를 젖힌 검은 순례자. 그 뒤로 다른 순례자 몇이 서 있었다.
차멜리가 말하였다.
“형제님께 상의할 것이 있어서 왔어요.”
“아직 아우데닌을 안 떠난 겁니까?”
“기다려야 했으니까요.”
“누구를… 설마….”
“네.”
차멜리가 어색하게 웃었다.
“당신을요.”